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578
578
시작부터 큰 피해를 입고 부하들을 잃은 것에 가슴이 아팠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이쪽으로 공격이 퍼부어지기 전에 어서 내려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판 여기저기에서 시뻘건 예광탄 줄기들이 레펠 중인 헬리콥터를 향해 날아왔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키돈 대원들은 안전수칙을 무시하고 기체 양옆에 늘어뜨려 놓은 로프에 매달려 줄줄이 아래로 내려갔다.
나아만도 제일 마지막에 장갑을 낀 손으로 로프를 붙잡고는 헬리콥터에서 발을 뗐다.
허공에 뜨는 것과 동시에 차르르르 소리를 내면서 빠르게 떨어져 내리다가 마지막에 제동을 걸어 가볍게 갑판에 발을 디뎠다.
군화가 갑판에 닿자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방금 전까지 나아만이 타고 있던 헬리콥터가 다시 날아온 RPG 로켓탄에 맞아 폭발했다.
불꽃과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고 강한 충격파에 나아만은 중심을 잃고 딱딱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아악!”
한편 조타실에서 깨진 방풍창 너머로 두 대가 연달아 격추되고 남은 헬리콥터 한 대가 황급히 고도를 높이며 거리를 버리는 모습에 혁권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는 무전기를 입에 가져다 댔다.
“좋아. 적들이 한곳에 몰려 있을 때 한꺼번에 다 처리한다. 내가 정면을 맡을 테니까 알아바디와 라미는 측면으로 돌아가!”
-라저.
교신을 끝낸 혁권은 언제든지 쏠 수 있게 권총 슬라이드를 당겼다가 놓고 크게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는 엄폐물 뒤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하킴과 임영식이 각자 무기를 든 채 얼른 따라붙었다.
살짝 상체를 숙인 자세로 조타실 밖으로 나오자 좌현 갑판 일부가 불길에 휩싸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상대가 발사한 로켓탄이 명중한 곳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새빨간 화염이 일렁이는 모습에 그는 얼굴을 굳힌 채 침음성을 흘렸다.
다행히 선박의 크기가 있었기에 당장 침몰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피해가 적지 않아 보였다.
당장은 습격해 온 적을 소탕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몸을 움직여 함교 바깥에 설치된 철제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먼저 공격을 받았지만 미리 대비를 한 데다 초반에 헬리콥터 두 대를 잡았으니, 승기는 이쪽으로 기울어졌다고 봐야 했다.
운 좋게 적들이 배에 올랐으나 사방이 탁 트인 갑판 한구석에 몰려 있는 상태에서 고립되어 무장을 단단히 갖춘 아군과 총격전을 벌이는 건 승산이 없었다.
이대로 습격해 온 무리를 정리하고 최대한 빨리 이란 영해에 들어선다면 어느 정도 위험을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이런 혁권의 생각이 산산조각 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막 계단을 다 내려왔을 때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 로터 소리가 들렸다.
“……!”
온몸에서 소름이 쫙 끼치는 것과 동시에 밤하늘을 가르며 나타난 블랙호크 헬리콥터가 승무원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초 근접 비행을 하면서 측면에 장착한 M60 기관총을 난사했다.
투타타타탕!
섬뜩한 예광탄 줄기가 작열하자 비명과 함께 갑판에 불꽃이 마구 튀었다.
단 1대였지만 블랙호크 헬리콥터에서 쏴 대는 기관총의 위력은 치명적이었다.
상대를 압박해 들어가던 아군은 허겁지겁 엄폐물을 찾아 흩어져 허공에다 자동소총을 쐈지만 그리 큰 위협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총구 섬광이 적에게 위치를 알려 주는 표적이 됐다.
무전기를 입으로 가져간 혁권은 먼저 공격에 나선 알아바디를 찾았다.
“알아바디, 들리나?”
아무런 응답이 없자 그는 속이 바싹 타들어 갔다.
“알아바디, 라미 들리면 아무나 응답을 해!”
연달아 몇 번을 부른 끝에 치직하는 잡음에 섞여 알아바디의 목소리가 들렸다.
-말하십시오, 보스.
“괜찮나?”
-저희는 피해가 크지 않은데 우측에서 접근하던 중국 애들이 심하게 당한 것 같습니다.
중국 측이 피해를 입은 건 안타까웠으나 자신의 부하들이 무사한 것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귀찮게 하는 헬리콥터부터 먼저 잡아!”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RPG 사수가 당했습니다.
“뭐야!”
고함을 내지르며 주위를 살핀 혁권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정말로 RPG 사수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는 걸 발견하곤 얼굴을 구겼다.
아무래도 아까처럼 당하지 않으려고 적 헬리콥터가 제일 먼저 RPG 사수부터 찾아 제거한 것 같았다.
혁권은 서둘러 다른 부하들의 위치를 파악했으나 다들 너무 멀었다.
짧은 고민 끝에 바로 결심을 한 그가 몸을 낮춘 자세로 뛰어나가려던 찰나,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붙잡았다.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빨리 저 헬리콥터를 처리해야 돼!”
아무리 훈련이 잘된 부하들이라고 해도 머리 위에서 총탄을 퍼부어 대는 것엔 버틸 재간이 없었다.
말싸움을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듯 혁권이 하킴의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하킴은 재차 그의 어깨를 부여잡고 가지 못하게 단단히 억눌렀다.
“너무 위험합니다. 저희가 갈 테니 보스께선 여기 계십시오.”
혁권이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하킴이 먼저 엄폐물에서 뛰쳐나갔다.
RPG 사수가 죽어 있는 곳까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으나 몸을 숨길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허허벌판에 맨 몸을 내던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나 다를까 헬리콥터에 타고 있던 기관총 사수가 딱 좋은 표적을 발견한 것처럼 총구를 돌리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하킴!”
혁권이 경고의 말을 내뱉은 순간, 공기를 찢는 기관총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면서 하늘에서 총탄이 내리꽂혔다.
“보스!”
뒤에서 다른 부하가 그를 보호하려고 감싸 안았으나 혁권은 엄폐물 너머로 머리를 내밀고 눈앞의 광경을 망막에 새겨 넣기라도 하듯 눈을 크게 떴다.
하킴은 등을 동그랗게 말고 갑판에 웅크려 있었다.
덜컥 내려앉은 심장과 함께 주변의 모든 움직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표적을 정확하게 맞혔다고 생각했는지 적 헬리콥터가 살짝 방향을 트는 것과 동시에 죽은 듯이 웅크려 있던 하킴이 벌떡 일어나 빠르게 내달렸다.
그 모습에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던 혁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하킴!”
미끄러지듯 넘어지면서 RPG 발사기를 집어 든 하킴은 재빨리 어깨에 견착을 하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발사 자세를 잡았다.
그러고는 조준과 동시에 방아쇠를 힘껏 잡아당겼다.
푸슉!
강한 후폭풍을 일으키면서 앞에 장전된 로켓탄이 오렌지색 불꽃을 일으키면서 발사됐다.
뒤늦게 적 헬리콥터가 위험을 감지했지만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일직선으로 날아간 로켓탄은 정확히 목표에 명중해 마지막 남은 블랙호크 헬리콥터를 시뻘건 불덩이로 만들어 버렸다.
꽈아앙!
“잘했어!”
환호성을 내지르는 것도 잠시, 손에 들고 있는 무전기에서 다급한 알아바디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심하십시오. 그쪽으로 적들이 가고 있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총구 화염이 번쩍이면서 섬뜩한 소리를 내며 총탄이 날아왔다.
“젠장. 숙여!”
피슝! 티팅.
얼른 몸을 숙인 혁권과 임영식은 곧바로 엄폐물 밖으로 총을 내밀고는 응사를 했다.
타탕! 타타탕!
금방 탄창 하나가 다 비어 버리자 엄폐물에 등을 기댄 채 새걸로 갈아 끼우던 혁권은 힐끗 하킴 쪽을 살펴보고는 미간을 찡그렸다.
제대로 몸을 숨길 곳이 없는 데다 헬리콥터를 격추시키면서 표적이 되어 버린 하킴은 바닥에 엎드린 채 집중공격을 받고 있었다.
저 상태로 놔둔다면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문 혁권은 옆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엄폐물 위에 MP7 기관단총을 올리고 사격을 가하고 있는 임영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좌측으로 우회해서 놈들을 칠 테니까 눈치채지 못하도록 시선을 끌고 있어.”
“안 됩니다, 만약 보스가 당하기라도 하면……!”
“하킴을 저대로 놔둘 수도 없잖아!”
혁권은 임영식의 말을 단번에 끊어 버리고는 권총 하나만을 들고 미처 붙잡을 새도 없이 달려 나갔다.
불빛이 미치지 않는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혁권의 뒷모습에 임영식은 자신도 따라나갈까 하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적들의 시선을 붙잡아 두기 위해 더욱 맹렬하게 기관단총을 쏴 댔다.
엄폐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몇 미터 뛰기도 전에 총탄이 날아왔지만 조준 사격을 한 것이 아닌지 대부분 크게 빗나갔다.
철제로 된 갑판에 총탄이 부딪치면서 시퍼런 불꽃이 튈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졌으나 그는 달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임영식이 제대로 견제 사격을 해 주고 있는지 어느새 그를 노리고 날아오는 총탄이 사라졌다.
상체를 숙인 채 철제 구조물들 사이를 이리저리 얼마쯤 뛰어 갔을까 커다란 구명보트를 엄폐물로 삼아 총을 쏴 대고 있는 적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6~7명 정도 됐는데 다들 검은색 군복을 입고 야시경에 방탄복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제대로 훈련을 받은 특수부대원들이 분명했다.
미리 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습격을 받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가지고 있는 글록 권총을 가지고는 방탄복을 뚫기 어려웠기에 드러나 있는 얼굴이나 다른 부위를 노려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적들이 야시경을 쓰고 있어서 시야가 극도로 좁다는 거였다.
다른 부하들의 도움을 받으면 더 좋겠지만 총성과 비명이 난무하고 폭발음까지 들리는 걸로 봐서 선수 쪽 상황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지원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었는데 몇 분 사이에 하킴이 목숨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결국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혼자 적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상대가 아직 눈치를 못 채고 있었기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서 먼저 공격을 가한다면 어느 정도 승산이 있었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낸 혁권은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고는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발소리를 죽인 채 살금살금 접근한 혁권은 제일 가까이에 있는 놈의 뒤통수를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불의의 일격을 당한 적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고 상대가 당황하는 사이에 혁권의 권총이 연속해서 불을 뿜었다.
“크악!”
“윽.”
다시 한 명이 바닥에 주저앉았고 황급히 그를 향해 총구를 돌리던 놈은 총탄이 스치고 지나가 목덜미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양쪽 허벅지에 권총을 한 발씩 쏜 혁권은 휘청거리는 놈의 목을 한쪽 팔로 단단히 감고는 방패처럼 앞에 세웠다.
타타탕! 타탕!
남은 세 명이 뒤늦게 자동소총을 쐈지만 총탄은 방패막이로 세운 놈의 가슴팍에 꽂히기만 할 뿐 그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다.
그러자 혁권은 앞으로 밀고 나가면서 방탄복 밖에 나와 있는 다리와 목 언저리를 노리고 권총을 연사했다.
퍼퍼퍽!
삽시간에 피투성이가 된 적들은 힘없이 무릎을 꺾으면서 바닥에 주저앉거나 뒤로 넘어졌다.
철컥.
어느새 탄창이 다 비었는지 쇳소리가 나자 그는 글록 권총을 버리고는 방패막이로 삼고 있던 놈의 허벅지에 꽂혀 있는 권총을 대신 빼 들었다.
이미 숨이 끊어져 축 늘어져 있는 놈을 동료들 사이에 내버려 둔 뒤, 바닥에 떨어진 무기들을 발로 차 멀리 떨어트려 놓았다.
상황이 일단락되자 그제야 하킴과 임영식이 한발 뒤늦게 달려와 그의 안위를 살폈다.
“보스, 괜찮으십니까?”
“보다시피 멀쩡해.”
어깨를 으쓱인 혁권은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는 신음을 흘리면서 쓰러져 있는 적의 얼굴에서 발라클라바를 벗겨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