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99)
아라는 눈을 깜박였다. 이야기의 흐름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러니까··· 언니는 날 그룹에서 나가게 만들기 싫었다는 거지?”
“네.”
“···그건 날 위해서인 거잖아?”
“한유미 씨는 그렇겠죠.”
“좀, 이상한 장난은 그만둬, 언니!”
아라는 화를 벌컥 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이었고 또한 알고 싶지도 않았다. 대체 뭐라는 거야?
“대체 어느 시절 3인칭화야? 까딱하면 귀척 떤다고 인터넷에 악플 징하게 달릴 거라고!”
“···다음 얘기로 넘어갈게요.”
“존댓말도 그만두고! 진짜 그 컨셉 끝까지 밀 거야?!”
더욱 목소리가 높아진 건 더없이 친숙해야 할 목소리가 낯설게 들리기 시작한 걸 감추려는 허장성세인 까닭이다.
한유미는 그런 아라를 아랑곳하지 않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주리 씨랑 은솔 씨 말인데··· 어떻게 할 생각이었을 거 같아요?”
“······뭐?”
다시금 언성을 높이려던 아라가 순간 멈칫했다.
‘어떻게 할 생각이었냐니··· 당연히 언니랑 같이 활동시키려던 거 아니야?’
하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참고로 당신을 은퇴시킨 건 딱히 본의가 아니었어요. 당시의 당신에게는 딱히 상품가치가 없었거든요.”
운이 좋았죠 – 하고 담담하게 덧붙인다.
상품가치.
더없이 서늘하고 비인간적인 말에 아라는 저도 모르게 몸이 떨리는 걸 느꼈다.
“매니저는 둘째 치고 여러분의 실장과 그 윗분들은 꽤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인간은 대개 가장 절실한 순간에 본성이 드러나게 마련이거든요.”
으스스한 한기가 돌았다. 겨울은 멀었는데도.
그건, 아마도 그 이후에 나올 말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빚은 한가득, 낭떠러지는 코앞. 그리고 품에는 어설픈 인지도를 가진 어중이떠중이 여자애들.”
한유미가 희미하게 웃었다.
“맞춰보세요. 궁지에 몰린 ‘좋은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그걸 어떻게 써먹으려고 했을까요?”
#
『에어리즈』의 막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건 촬영이 없던 날의 이른 저녁의 일이었다.
– 죄송해요, 피디님. 제가 이렇게 연락드릴 주제가 못 된다는 건 아는데요······.
짐짓 평소처럼 들리는 어조.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불과 한 마디만으로 그 기분이 어떤지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뭐, 딱히 원해서 익힌 건 아니지만.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지금 밖에 나올 수 있습니까?”
– 예? 아니요, 매니저 언니가······.
“전화 바꾸십시오.”
곤혹스러워하던 이영신 매니저가 다 뒤집혀가는 목소리로 긍정을 표한 뒤 다시 상대가 바뀌었다.
“차 보내겠습니다. 매니저님과 같이 방송국까지 오십시오. 거기서 얘기합시다.”
약간의 간격 후 멍한 대답이 돌아왔다.
– 무슨 마법을 쓰신 거예요?
“비법을 말하면 마법이 아니게 되지요. 그리고······”
나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유미 씨 보고 싶으십니까?”
잠시간의 침묵 후 대답이 돌아왔다.
– ···아니요.
“알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집어넣었다. 피로감이 올라왔다. 타고 남은 재와 같은 냄새였다.
김철 선배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지랖이라는 거 압니다.”
『에어리즈』의 막내는 나와 별반 연관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저건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한 목소리다. 그리고 그 바톤이 나에게까지 돌아올 만한 일일 테지.
나는 외투를 걸쳤다. 밖으로 나오며 서예린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이 피디님? 무슨 일이세요?
“죄송하지만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 ···말씀하세요.
갑작스런 요청이었지만 서예린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따라주었다. 그 마음씀씀이가 고마웠다.
넷이 있던 회의실은 곧 둘만 남았다.
이영신 매니저가 서 작가에게 끌려 나간 뒤에도 강아라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꾹 움켜쥐고 있는 옷소매가 구깃구깃했다. 나를 보는 눈동자가 혼란스러웠다.
“···피디님은 알고 계셨나요?”
무엇을, 이라고 되물을 필요는 없겠지. 아무래도 설유미 씨가 어지간히 대차게 지르신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요.”
“그럼······!”
“그걸 표면화시켜서 여러분께 좋을 일은 없습니다.”
이어지는 말을 내가 담담하게 끊었다.
“애초에 이제 일어나지 않을 일이기도 하고요. 여러분의 인기는 이제 와서 잘라낼 수 있을 정도가 아니니까 말입니다.”
아마 ‘예전’에는 그렇게 되었겠지만.
···아무튼 최근 『에어리즈』의 상승세는 제법 무시무시했다.
한유미가 빠지며 잠시 주춤하곤 있지만 그건 셋에게 있어서는 비단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유미 씨가 빠져나온 이상 소속사는 더욱 여러분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테고요.”
이전에는 한유미 하나만 돌보고 잡으면 되었다. 하지만 이제 득이 되는 『에어리즈』의 간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셋 전부에 투자할 필요성이 생겼다.
예전 박진태는 그런 의미에서 셋이 잔류하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지는 아니라고 평가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강아라가 물었다.
“···유미 언니는, 그것까지 생각하고 혼자 나간 걸까요?”
거기에 대해서는 나도 쉬이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단언했다.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유미라면 그럴 터였다.
기본적으로 엉뚱하고 밝던 아가씨가 동생들 얘기만 나오면 사려 깊은 어머니처럼 변하곤 했으니까.
강아라가 고개를 숙였다. 옷자락을 쥔 손이 더욱 조여들었다.
“···유미 언니한테 너무 미안해요.”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배신당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럴 수 있습니다.”
“유미 언니가 그럴 리가 없는데.”
“예.”
“저는 항상 그 모양이에요. 멍청하고 한심한데다 눈치도 없고, 은혜도 모르는 년이에요.”
강아라가 물기 어린 눈을 들었다. 달래려던 나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표정에 잠시 멍해졌다.
“···예전에 오디션 때, 제가 피디님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아세요?”
이후 강아라는 고해성사라도 하듯 더듬더듬 자신의 착각을 털어놓았다. 본인은 심각했지만 나로서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귀여운 오해였다.
···그래서 거기서 다짜고짜 머리를 박은 거였군.
나는 피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나, 아예 다른 사람이다.
대화가 마무리될 무렵, 내가 물었다.
“그래서, 아라 씨는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강아라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눈가를 떨고, 이마에 주름을 만들고, 한참을 입술을 달싹인 끝에 간신히 입이 열렸다.
“제가요.”
“네.”
“혹시 제가··· 언니들을 설득한다면요.”
고개를 숙인 상태로 눈만 치켜뜬 채로 조심조심 묻는다.
“저희도··· 유미 언니랑 같이 받아주실 수 있으신가요?”
나는 내심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물론, 환영하겠습니다.”
···멋지게 제 무덤을 판 셈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
『에어리즈』의 셋이 마저 넘어오는 과정은 썩 순탄치 않았다. 소속사는 간신히 거위를 키워놓으니 빼앗아가는 불한당이라고 이쪽을 신나게 두들겼다.
한유미가 제공한 정보를 터트린다면 간단히 풀리겠지만, 그건 당연히도 멤버들의 이미지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터였다.
당연히 저쪽도 그걸 알고 뻗대는 것이리라.
“···선배님은 절 대체 뭐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나는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선량함과 배려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게 이현석이라는 인간의 본질이다. 어찌 쉬이 협박 같은 선택지가 나오겠는가?
[···KBC 나올 때 실컷 했던 건 뭐냐?]“그쪽은 사정이 사정이었잖습니까.”
일단 지아가 얽힌 데다 시상식에 뭐에··· 뭐, 하는 김에 이설도 있었다. 그러니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라도 도전해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철 선배는 어째선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다가 크흠 헛기침을 했다.
[그··· 물론 네 적성에 안 맞는 건 나도 안다. 알고말고.]“예.”
[하지만 도리가 없잖냐. 그럼 계속 저렇게 지껄이게 놔둘 거냐?]“음······.”
그럴 수는 없지. 내가 문제가 아니라 에어리즈의 다른 멤버들에게도 문제가 될 테고.
나는 마지못해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그렇다 해도 당연히 협박은 아니고 조곤조곤 설득할 생각이었다.
대표로 나온 실장은 죄책감 탓인지 조금 겁을 먹은 표정이었다.
“···그, 애들과 저희 사이에 오해가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정의부터 확실히 하도록 합시다. 오해라는 건 사실이 아닌 걸 사실이라고 착각할 때 오해라고 하는 겁니다.”
나는 최대한 얼굴을 부드럽게 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오해였던 겁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사과가 오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건······.”
실장이 입을 달싹이며 망설였다. 나는 애써 그의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저도 설마하니 그런 인간말종들이 존재할까 의심하던 참이었습니다. 부디 납득할 수 있게끔 설명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저도 최대한 돕겠습니다.”
“힉······!”
다행히 부드러운 말만으로도 이야기는 잘 풀렸다. 역시 누구에게나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게 마련이었다.
같이 있던 멤버 셋은 내 온화한 화술에 놀랐는지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강아라의 묘한 표정만이 조금 신경이 쓰였다.
뭐, 어쨌든 그렇게 위즈톤 엔터테인먼트는 쓸데없이 잘 나가는 걸그룹 하나를 통째로 데려오게 되었다. 최도정 사장이 썩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 사태였다.
“뭐, 이럴 것 같더군요.”
박진태만이 예상했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을 따름이었다.
『에어리즈』의 재결성이 예정된 일이었다면 그렇지 않은 일도 있었다.
시작은 아주 당연한 지적이었다.
“···요즘 너무 자주 오시는 거 아닙니까?”
최근 제 집처럼 사무실에 드나드는 이도나에게 한 소리를 하자 몹시 이상하다는 듯한 눈빛이 돌아왔다.
“내 소속사에 드나드는 게 뭐가 문제라는 거예요?”
잠시 멈칫했던 건 너무나도 끔찍한 소리에 내 사고능력에 타임렉이 발생했던 까닭이었다.
“···그 나이에 치매라도 오셨습니까?”
내 말에 이도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진심으로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나 계약기간 얼마 안 남은 거 알죠?”
“그야··· 네.”
“그럼 나 잡아야겠죠?”
“······?”
“그럼 내 소속사 맞으니 드나들어도 되는 거죠.”
실로 기적의 논리였다.
일단 이쪽이 정말 눈곱만큼도 잡을 생각이 없다는 것부터가 그랬다.
“착각하지 마요. 그쪽 보고 가는 거 아니니까. 박 실장님 계시니까 가는 거지.”
내가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가운데 이도나는 이미 결정이라도 난 듯 새침을 떨었다.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린 뒤 그녀에게 근엄하게 통보했다.
“죄송하지만 저희는 이도나 씨를 모실 생각이 없습니다.”
“···네?”
정말로 눈곱만큼도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던 듯 이도나는 눈을 크게 떴다.
“왜요? 뭣 때문에요? 제정신이에요? 어디 아파요?”
···음.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그야 이런 개울가 연못 같은 회사는 이도나 씨와 같은 공룡이 몸을 담기엔 너무 작지 않겠습니까? 이도나 씨께는 좀 더 큰 물이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
이후 이도나는 읽기 어려운 표정으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곧장 돌아갔다. 그렇게 알아들었겠거니 생각하고 있던 며칠 뒤였다.
이른 아침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 저기··· 대표님. 혹시 도나한테 뭐 들으신 거 없으십니까?
“뭐, 있었다면 있었습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전화 너머의 박진태는 몹시 곤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
– 그··· 도나가 우리 회사 관련해서 오늘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했답니다.
“······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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