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protagonist!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
141화.
평화로운 저녁.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가 차려준 저녁밥을 먹고 있는 와중에, 내 귀에 이상한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 다음 뉴스입니다. 오늘 오후, 미국의 실리코프의 회장 제니카 폴른이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아진 전자와 아르고스가 함께 추진하던 호접몽 프로젝트와 관련한 논의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청와대는······. ]딸그락
“왜 그러니? 민수야? 혹시 국이 너무 짜게 됐나······?”
너무 놀라 밥 먹던 숟가락을 떨어트리자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국을 한 숟갈 떠먹었다.
“아니에요. 그냥 손이 미끄러진 거예요. 근데 저 배 아파서 남은 밥은 나중에 먹을게요! 잘 먹었습니다.”
“어머머? 쟤가 오늘따라 왜 저래?”
재빠르게 식탁을 벗어나 방으로 들어가는 나를 보며 황당해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문을 쾅 닫고는 소지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젠장······. 이거 딱 봐도 그냥 박아버릴 각인데······.”
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중얼거렸다. 언뜻 TV에 비친 비행기에서 내리는 제니카의 표정을 봐 버린 나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지금 매우 빡쳤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원흉이 나라는 것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르고스. 제니카 지금 어디 있어?”
바쁘게 옷을 갈아입고 집에서 탈출할 채비를 마친 나는 아르고스에게 그녀의 위치를 먼저 물었다. 그리고 곧바로 아르고스는 그 미친년이 있는 곳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 현재 관리자님이 거주하는 집 대문 앞에 서 있습니다.
“뭐······뭐라고?”
당황해 소리치는 내 말소리와 함께 요란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엄마는 그 문을 열어버리고 말았다.
“누구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민수 어머님이시죠? 민수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저는 민수랑 같이 미국에서 연구하던 친구. 제니카라고 해요.”
“어머? 그래요? 우리 민수가 그런 말은 안 하던데······. 온다고 미리 말했으면 저녁 식사라도 같이하게 준비했을 텐데 이를 어쩌나······.”
방문 밖에서 친절이라는 위선의 가면을 팍팍 눌러쓴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깜짝 놀란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엄마의 비음이 들려왔다.
“어머. 아니에요. 어차피 금방 민수랑 얼굴 보며 인사만 하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던 걸요. 이것도 지나가던 차에 들린 건데······. 혹시 민수 있나요?”
은근슬쩍 나를 찾는 미친년의 목소리에 나는 엄마한테 없다고 하라고 온 정신을 집중해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리고 엄마는 그런 내 신호를 가뿐하게 무시했다.
“그럼! 아까 밥 먹고 지금 방에 들어갔단다. 얘!!! 민수야!!!! 너 손님 왔어!! 빨리 나와봐!”
집 전체가 떠나가게 소리를 질러대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마주할 수 있었다. 환하게 미소 짓는 엄마 앞에 서 있는 아수라의 모습을.
“어머! 민수야! 이거 얼굴 보는 건 참 오랜만이지? 그동안 많이 변했네.”
불과 두 달 전 방학 동안 NASA에서 같이 로켓을 쏘아 댄 추억을 저버린 그녀의 가식에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니카는 반갑다는 듯이 다가와 나를 포옹하며 내 귓가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야 이 개 같은 새끼야. 부모님 앞에서 못 볼 꼴 보여드리기 싫으면 밖으로 쳐 나와라.”
환하게 웃으며 저런 험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것을 보면 역시 미친년도 그냥 미친년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나가자. 밖에서 이야기하는 게 편하겠지?”
“어머······. 그럴까? 여기 근처에 괜찮은 카페 있던데. 그럼, 거기로 가자.”
웃는 얼굴로 재잘거리며 팔짱까지 끼는 제니카의 모습에 엄마는 말릴 수 없었다. 그저 감격한 표정으로 다 커버린 아들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눈물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우리 아들······. 다 컸네. 언제 저런 예쁜 여자친구도 만들고 말이야······.”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한 아들의 뒷모습을 활짝 피어난 꽃길을 걷는 것으로 착각한 엄마였다.
*
집 앞 동네 카페.
“꺄하하하하!! 나 잡아 봐라!”
“너어어~! 잡히면 너가 술래야!”
“으아아앙! 엄마! 얘가 나 때렸어.”
애 딸린 주부와 아줌마들의 모임 장소인 그곳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요란하고 정신 사나운 분위기 그대로였다. 카페 안에서 술래잡기를 하며 온갖 소음을 발생시키는 아이들 사이는 어느 비밀스러운 장소보다도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당한 장소였다.
“흐음······. 여기 생각보다 커피 맛이 좋네.”
눈을 지그시 감고 커피 향을 즐기는 제니카를 보면서 나는 먼저 용건을 꺼냈다.
“도대체 여기까지는 뭐하러 온 거야?”
그 물음에 제니카는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더니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놈은 내 손으로 직접 죽이려고.”
“······.”
시작부터 살벌한 발언에 나는 그녀를 보면서 진땀을 흘렸다.
“내가 분명히 말했지? 실리코프랑 네놈이 이번에 개발한 그 발모제랑은 관련짓지 말라고. 말도 없이 연구소 안에 실험용으로 저장해 둔 불로초는 모조리 쓸어가서 그걸로 대량으로 만들어서 팔아먹기까지 해? 그것도 암시장에다가? 진짜 제정신이야?”
말을 하면 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지 제니카의 입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자꾸 이상한 짓거리 하면 내가 변종 에이즈 바이러스를 네놈 모가지에다가 처넣어버리겠다고 경고했을 텐데? 지금 그 말이 농담인 줄 알았나 봐?”
진짜 핸드백 안에서 괴상한 액체가 가득 담겨있는 주사기를 꺼내며 중얼거리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미친 건 알았지만, 협박을 실행에 옮길 정도로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미친년인 줄은 몰랐다.
“제발 진정 좀 해라.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한 짓이라고.”
“생각? 무슨 생각?”
자신이 이해가 되게 설명해 보라는 듯이 주사기를 한 손에 쥐고 살기 어린 눈빛으로 노려보는 제니카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차피 이번 신약을 개발하면서 불로초를 전 세계에 공개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고. 슬슬 호접몽 프로젝트도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업무 대부분이 아르카디아에 이전된 상태니까 실리코프가 불로초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여력도 되잖아? 그러니 이참에 특허 내고 전 세계에 팔아먹을 생각이었거든.”
솔직히 이번 일은 순전히 사업가적인 시각으로 벌인 것이었다. 불로초를 대량 생산할 시기를 가늠하고 있던 시기에 때마침 아빠의 탈모가 겹치면서 이 발모제로 화려한 시작을 알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제니카는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두 눈을 깜빡였다.
“뭐······뭐라고? 그러니까 이 기술을 그냥 대중에 공개해버리겠다고?”
“응. 오래 혼자 묵혀둬서 뭐 하게? 그러다 똥 된다는 속담도 몰라?”
“너······. 불로초를 대중에 공개하지 말라고 주장한 게 너 자신이라는 건 알고 있지? 그때 너 때문에 피어슨 대통령이 국가 핵심 기술 보호에 대한 법안을 새롭게 만들면서까지 철저하게 비밀로 틀어막았는데······. 그걸 이제는 풀어버리겠다고?”
제니카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뻔뻔하게 말했다.
“그때는 호접몽 프로젝트랑 두 개를 동시에 추진하면 네가 힘들까 봐 나름 배려해 준 거야. 이제 어느 정도 사업이 안정화가 됐으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서야지. 돈 많이 번다고 너무 물러진 거 아냐?”
내 말에 제니카는 해탈한 듯 초연한 표정으로 할 말도 잊은 채,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말했다.
“하아······. 그보다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으면 도대체 그 발모제는 왜 몰래 팔아먹은 거야? 그냥 기다렸다가 나중에 정식 판매하면 됐잖아.”
“용돈 벌이나 좀 하려고 했지. 근데 용돈치고는 꽤 금액이 세더라고.”
제니카는 황당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너······. 그 물건 사 간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 줄 알고는 있어?”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아르고스를 통해서 그때 그 5개의 자라나라의 머리머리의 주인들을 모두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
“일본이랑 러시아, 독일 정부가 불로초 기술 빼먹으려고 하나씩 사들였고······. 나머지 두 개는······. 중동 왕가의 대머리 왕자랑······. 중국 주석이었나? 하여간 돈들도 무식하게 많아요.”
세 개는 불로초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분석을 목적으로 사 갔지만, 나머지 두 개는 직접 사용하기 위해 개인이 사들인 물건이었다. 수조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을 치르면서까지 기꺼이 자신의 잃어버린 머리털을 되살리겠다는 그 중동의 왕자랑 중국 주석의 열망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요즘 TV 뉴스에 간간이 얼굴을 비추는 중국 주석의 머리에 자라나는 검은빛 털들을 보면서 새삼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너······. 그렇게 천문학적인 돈을 받아 팔아먹은 지 일주일도 안 돼서 불로초 기술 자체를 대중에게 공개해버리겠다고 선언하면 무슨 상황이 일어나는지 알아?”
“당연히 알지! 먼저 산 놈이 병신 되는 거지!”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예약 판매로 먼저 비싼 값을 주고 산 물건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엄청난 할인율에 초저가로 시장에 풀리게 되는 억울한 일이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판매사를 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먼저 산 사람만 병신 호구 취급받는 것은 이 가혹한 세상의 준엄한 현실이었다.
“넌 진짜······. 아무리 봐도 치료 불가능한 미친 새끼야······.”
너무 당당하게 외치는 나를 보며 제니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뭐 어때? 내가 사기 친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먼저 사 가겠다고 달려든 건데. 그냥 비싼 값 주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물품을 구매했다 병신되는 건 얼리 어답터들의 숙명일 뿐이야.”
“넌 고작 일주일 빨리 사겠다고 몇조 원을 그냥 날렸는데 잘도 가만히 있겠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너무 당당하게 지껄이는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제니카는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나는 남아있는 핫초코를 한 번에 들이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피어슨에게는 내가 말해둘 테니까 불로초 대량 생산 준비해 두고 이참에 자라나라 머리머리도 같이 판매해 버려. 어차피 FDA도 피어슨이 직접 나서면 공식 의약품 승인 때리는 건 일도 아니잖아?”
“진짜 할 셈이야? 그랬다가는 꽤 심한 보복이 들어올지도 모르는데?”
제니카는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그 암시장에서 수조 원에 달하는 돈을 지불하고 그 물건을 사 간 국가가 하나같이 무시할 수 없는 곳들이었다.
“만약 대중에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가는 다섯 국가가 모두 나서서 노발대발하는 건 기본이고, 심하면 악의적인 사기에 당했다며 도리어 우리 쪽에다 화풀이할지도 몰라.”
“뭐 어때? 어차피 암시장에 풀린 장물을 국가가 주도해서 사들인 건데 쪽팔려서 우리가 그 물건 샀으니 돈 돌려달라고 요청할 수나 있겠어? 판매자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야.”
나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누가 얼마에 주고 샀든 간에, 이미 내 주머니 속에 돈이 들어온 이상 끝이었다. 원래 남자의 쿨 거래에는 환불이나 교환이란 단어는 사전에도 없는 법이다.
“이른 시일 내로 전 세계에다가 공개하라고······. 그들이 사들인 불로초와 자라나라 머리머리가 저렴한 가격으로 실리코프가 대중들에게 공식판매를 시작할 거라고 말이야.”
그때 그 상황이 기대된다는 듯이 사악한 눈빛으로 음흉한 웃음을 내뱉자 제니카는 마치 변태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이 새끼는 정말이지······.”
제니카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 죽겠다는 듯이 히죽거리며 이상한 웃음을 내뱉는 미친놈을 보면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끝
ⓒ 군만두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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