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of the Alter Lands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기계공학의 천재인 영주님 (2)
그렇게 대형 훈증기를 복사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엘라힘. 너는 왜 여기 있는 거지?”
“이렇게 커다란 기계를 연구하시려면 조수도 필요하시지 않나요?”
작업의 첫 번째는 지하실을 꽉 채운 훈증기의 설계도를 그리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억을 읽는 능력에 마냥 의존할 수만은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고장 난 부분이 제대로 돌아가던 시기를 확인하며 체크하는 용도.
그 외의 부분은 직접 분해해서 수치를 재고, 다시 조립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했다.
그러려면 사다리도 타야 하고….
확실히 도구를 전달해 줄 조수가 있으면 편하긴 하겠지.
조수라고 아무나 데려다 쓰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대장장이가 아니면 보통 도구의 이름도 알지 못하니까.
그런 점에서 엘라힘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되는 건 맞았다.
“그렇긴 하다만.”
“그리고 스승님께서 영주님 곁에서 보고 배우라고 하셔서요. 아시다시피 스승님께서는 무구 전문, 제 전문은 마법 아이템이에요. 그렇지만 영주님께서는 기계학에 정통하시다고 들었어요.”
“음? 아아.”
게헤른이 내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바로 결계 장치의 기어의 설계도를 그려서 제작을 맡겼기 때문이었지.
“그럼 슬슬 시작하도록 하지.”
***
사실 카민 앞에서는 공손한 태도로 있었지만, 엘라힘은 내심 자존심이 상한 상태였다.
?그 훈증기는 50년도 전, 왕국 최고의 장인 중 한 명이 만든 아주 복잡한 물건이다. 마법 아이템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의 것이라 구조가 아주 복잡하지. 기계학에 서툰 네게는 아주 큰 공부가 될 것이다.
스승인 게헤른의 말에 틀린 건 없었다.
다만 이제는 엘라힘도 카민의 이력에 대해 대충 알고 있었다.
‘영주님은 그냥 전장을 떠돌며 알음알음 대장 기술에 대해 공부한 것에 불과하잖아.’
카민은 기사다.
즉, 게헤른과 다름없이 무구 중심의 대장 기술을 연습했을 터였다.
자신이 아무리 기계학에 서툴다고 해도 그런 카민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물론 카민이 기계학에 대해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건 엘라힘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기계를 대충대충 보면서 해석해 낼 정도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게 뭐지?’
그래서 엘라힘은 카민의 작업을 지켜보면서 큰 충격을 느꼈다.
“음. 여긴 이렇게 되어 있고… 이쪽으로 증기가 배출되는 구조로군. 와인 훈증기다 보니 불순물을 거르는 필터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으윽. 필터가 이렇게 더럽다니. 어쩌면 이것도 문제 중 하나일지 모르겠군. 엘라힘!”
“…예?”
“혹시 이 금속 필터를 똑같이 만들 수 있겠나?”
“음. 예. 구조 자체는 간단하니까요.”
“녹이 안 스는 합금으로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종이에 막힘없이 설계도를 그려 나가던 카민은 복잡한 구조가 나오자 주저 없이 명령했다.
“이쪽은 내부를 확인해 봐야겠군.”
“네.”
겉의 판을 뜯어보니 안은 복잡한 기어장치로 되어 있었다.
“우와. 엄청 복잡하네요.”
실제로 이런 오래된 장치의 수리 주문도 공방에 가끔 들어오곤 했다.
무구를 다루는 데는 주저함이 없던 게헤른도 그때는 도제들을 모아 놓고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며 수리를 진행하곤 했다.
물론 이렇게 오래된 물건은 예외였다.
설계도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니, 웬만한 공방에서는 수리를 맡지 않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카민은 별거 아닌 듯 말했다.
“규모가 커서 그래 보이지만 복잡한 구조는 아니야.”
“네?”
“잘 봐. 결국 이건 훈증기니까 연기를 이용해 실내의 온도를 높이고, 살균하는 게 목적이지. 목적을 잊지 않고 기계 내부 기체의 흐름을 상상해야 해.”
“아, 네.”
“이쪽부터 흘러간다고 생각하면….”
카민의 강의를 포함한 작업은 사흘 동안 진행되었다.
‘으윽….’
아무리 힘든 일에 익숙한 엘라힘이라 해도 이런 강행군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민은 웃음기를 잃지 않았다.
“이거 참. 대단한 작품이군. 왕국에서 이름난 장인이 만든 물건이라더니, 확실히 얕볼 만한 장치가 아니야.”
그 말을 듣는 엘라힘은 어이가 없었다.
‘영주님은 대체 뭐라고 하시는 거야?’
장치의 분석에 집중한 카민은 마치 훈증기를 만든 대단한 장인을 한 수 아래처럼 말하고 있었다.
‘허세인가? 설마 다 허세인 거야?’
[엘라힘의 신뢰도가 하락했습니다.] [ (50) → (40)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밖에 결론이 나지 않았다.
기계학은 단어 그대로 대장 기술 중에서도 상위의 학문.
그 콧대 높은 마법사들도 기계학에 통달한 대장장이들은 인정하고 도움을 구했다.
“어쩌면 체르발토 경의 말대로 똑같이 만든다고 하더라도 구현에 실패할지도 모르겠군….”
“그렇겠죠. 유체의 흐름은 신이 아닌 이상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이니.”
“맞아. 하지만 일단 해 보는 수밖엔 없겠지.”
그렇게 하루를 꼬박 더 투자한 끝에 둘은 설계도를 완성할 수 있었다.
***
게헤른은 생각보다 빠른 내 작업 속도에 놀랐다.
그야 복잡하다곤 해도 이런 훈증기의 구조는 뻔하니까.
작동 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없는 만큼 단순히 작업 시간만 오래 걸릴 뿐이었다.
“설계도를 완성했다고?”
“예. 고장 난 부분이 어딘지도 알아냈습니다. 일단은 그 부분만 수리를 해서 작동시켜 봐야겠어요.”
“그렇군. 하지만 내기는 단순하게 고장 난 기계가 작동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란 것은 알겠지?”
“예. 새 기계를 만들어서 정상적으로 와인을 생산하는 데 성공해야 제 승리가 되는 거겠죠.”
“그런데 엘라힘, 너는 왜 그런 표정으로 서 있느냐?”
“…아닙니다.”
엘라힘을 슬쩍 보니 전과 다른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그야 50이었던 신뢰도가 단계적으로 계속 떨어져서 이젠 30까지 도달했으니까….’
처음에는 왜 신뢰도가 떨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나야 전생의 지식이 있기 때문에 그걸 활용하는 것뿐이지만, 환생 후의 이력을 생각하면 나는 그저 전장을 떠돈 기사일 뿐이다.
엘리트 대장장이 코스를 밟은 엘라힘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테지.
그나마 다른 도제들과 달리 온순한 성격이라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나에 대한 신뢰는 계속 떨어졌던 것이다.
‘마법 아이템 장인은 굉장히 고급 인력인데 말이야.’
엘라힘의 신뢰도 또한 올려 둘 필요가 있었다.
하알룬 마탑이 완성되면 본격적으로 공방과의 시너지도 나오기 시작할 테니까.
마법 아이템은 게임 중반 이후부터는 놓칠 수 없는 고부가가치 산업이었다.
‘배드 엔딩 루트를 탔을 때는 더더욱 필수이고.’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인구의 소모를 최소화하려면 마법 아이템이 필수였다.
“그럼 일단 수리를 시작해 보도록 하죠.”
***
수리를 진행하는 과정은 간단했다.
고장 난 부품과 녹슨 필터를 다시 만들고 교체한다.
그렇게 작업을 끝낸 후, 나는 게헤른과 엘라힘 그리고 훈증기의 주인인 쟈네를 불러 모았다.
1차적으로 고친 훈증기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이건 어떻게 사용하는 거죠?”
“일단 씻은 포도를 껍질째 이 통에 넣고, 연료가 될 나무를 넣고 불을 붙이면 끝이에요.”
쟈네는 미리 준비해 둔 나무에 불을 붙여 훈증기를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하실 내에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상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려면 발효가 다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아뇨. 그럴 필요는 없어요. 포도가 다 으깨질 때까지만 지켜보면 돼요. 한 시간 정도? 그때 나온 포도즙의 상태를 보면 기계가 정상인지 아닌지 알 수 있어요. 2차 발효까지는 훈증기를 사용하더라도 3주는 걸리거든요. 기계의 고장이 잦다 보니 찾아낸 방편이죠.”
“경험의 산물이로군요.”
“네.”
그렇게 우리는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결과를 받아들 수 있었다.
“영주님, 성공이에요!”
“으음. 이 복잡한 물건을 정말로 고쳐 낼 줄이야.”
엘라힘은 크게 반응이 없었지만 부끄러워하는 표정과 신뢰도 메시지가 그의 마음을 대변했다.
일단 1단계는 성공한 건가.
“카민. 하지만 아직 내기는 끝난 것이 아니다.”
“예, 뭐.”
하지만 1단계를 성공한 이상, 2단계도 성공했다고 봐도 좋았다.
***
나는 곧바로 로몬산 포도를 한 번에 발효시킬 수 있는 크기의 훈증기의 제작에 돌입했다.
설치 장소는 로몬의 포도밭 근처였다.
굳이 포도를 수확해서 하알룬까지 옮기는 것보다는 여기서 작업을 끝내는 게 나았으니까.
물론 쟈네는 이 선택에 큰 우려를 표했다.
“외부 환경의 영향도 있을 텐데요. 게다가 훈증기를 똑같이 만들어도 확실치 않은 상황에 크기를 더 키우시겠다고요?”
“괜찮아. 정상 작동한 데이터를 확보했으니 똑같이 구현해 낼 수 있네.”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이건 포도를 넣어 으깨는 기능과 그 안에 연기를 불어 넣어 고온 발효하는 게 전부인 기계였으니까.
즉, 이 기계를 만든 장인은 일부러 기계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유는 짐작이 갔다.
‘다른 장인이 쉽게 베끼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겠지.’
여긴 저작권이 보호되는 세상이 아니니까.
마법도 마찬가지라서 비슷한 마법도 가문이나 학파별로 다 나뉘어 있는 것이고.
시간만 있으면 더 단순한 구조로 만들어 소형화할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남는 게 땅이고, 할 일도 많은데 굳이 그렇게까지 시간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그럼 여기다가 설치하면 됩니까?”
“그래. 수고해 주게.”
기계의 사이즈를 키우는 작업, 설계도를 다시 그리는 것은 내가 했지만 장치의 제작은 알보트와 엘라힘 그리고 게헤른이 맡기로 했다.
왜냐면 나는 영주이고, 안 그래도 그사이에 할 일이 하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학회에 낼 마법진 모형을 만드는 것.
“오랜만에 비전 검술을 원 없이 써 보겠군….”
나는 짬짬이 제련한 금속을 가지고 마주크와 함께 쿠멜라 숲으로 향해 작업에 돌입했다.
***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휴. 이제 된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이거 엄청 무겁군요.”
“사람을 써서 옮겨야지, 별수 있나.”
소형 마법진이라곤 하지만 만들고 보니 개당 100kg짜리로 여섯 조각이나 되었다.
“그래도 단단한 금속으로 만들었으니 재사용이 가능하겠군.”
“확실히 만드는 데는 힘들었지만 실용성은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마주크가 질린 표정으로 날 보았다.
“영주님 외에는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겠지요.”
“…그건 그렇군.”
금속으로 마법진 모형을 만드는 것은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일단 마법진 모형을 만드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류 대장장이나, 건축기술자나 되어야 가능한 수준.
게다가 정밀 기계가 없는 세계다 보니 금속을 정밀하게 깎아 내려면, 비전 검술이 아니면 마법 절삭기를 사용해야 했다.
그런데 마법 절삭기를 쓰면 오히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나왔다.
마법진 모형이 워낙 거대하다 보니 만드는 것보다 코어값이 더 나온다고 해야 하나?
워낙 정교하고 복잡해서 주물로 찍어 낼 수가 없으니까 일일이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
“뭐, 그럼 더 좋은 거 아닌가?”
내 말에 마주크도 실실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요. 완전한 독점인 셈이니까요.”
그렇게 마주크와 나는 마주 보며 한참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10만 길을 놓칠 수는 없지. 꼭 실용화 부문의 수상을 할 수 있게 힘쓰도록.”
“알겠습니다.”
“케이서스 상을 수상한 마법사라면 쟈네에게 어필하기도 쉽겠지.”
마지막으로 덧붙인 말에 웃고 있던 마주크가 인상을 팍 썼다.
“그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영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