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30
229화.
순간 산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 정적은 곧 한 사람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깨졌다.
“하하하! 나를 잡아서 팬다고? 으하하하, 아, 정말 재밌는 녀석들이구나.”
쿠웅. 어깨에 걸쳐 있던 거대한 도끼가 바닥을 내려쳤다. 채주는 케일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나는 제일 약한 놈이 말로만 틱틱거리는 꼴을 제일 싫어하지.”
노예들을 가둬두고 피를 보게 만드는 장소.
검투사 경기장.
의형제를 맺었던 동생과 서로 싸워야 했던 장소. 동생은 싸움 전날까지도 노예였던 그를 웃게 해주던 놈이었다.
채주는 그곳에서 12살 때부터 살아남아야 했다.
그 장소에서 자신과 의동생을 싸우게 만들었던 놈들은 저놈처럼 강한 냄새는 하나도 나지 않으면서 손가락으로 지시만 하는 약해빠진 놈들이었다.
“나는 그런 놈들을 죽여야 속이 편하고!”
거대한 체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억!”
케일이 위로하던 산적은 이쪽으로 오는 채주와 그 손에 들린 거대한 도끼에 숨을 들이마셨다. 웬만한 성인 체격만 한 크기의 도끼.
채주의 어마어마한 신력을 나타내는 증표이자 공포의 존재였다. 상단 사람들도 이 도끼만 보면, 웬만하면 겁을 집어먹고 피했다.
‘주, 죽는 건가? 나도 피해야 하나?’
산적은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휘몰아쳤으나 반대로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런 그에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산적은 고개를 돌렸다.
붉은 머리칼 남자의 억울한 표정이 보였다.
‘억울해해?’
산적은 의아했지만 케일은 진심으로 억울했다.
‘말로만 틱틱거린다고?’
케일은 제발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렇게 살 수 있었다면 뭐 하러 동대륙에 오겠나? 집에 드러누워서 꼼짝도 안 하지.
기가 찬 마음과 억울함에 케일은 어느 때보다도 감정을 담아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콰아앙!
한적한 산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산적은 입을 벌리고 제 옆을 쳐다봤다. 케일이 보였다. 그리고 그에게서 뻗어져 나온 방패가 보였다.
도끼는 방패에 막혔다.
도끼는 조금의 흠집도 내지 못하고 방패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채주는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
방패 너머 저를 쳐다보는 붉은 머리칼의 남자. 마법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방패를 막는 순간 손바닥이 저려왔다.
타고난 신력. 그 덕에 아픔을, 힘의 부족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웬만한 중급 기사도 이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힘의 부족함이 느껴졌다.
그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흐흐흐.”
방패 너머 저를 쳐다보는 남자의 서늘한 눈빛.
이 감각이다.
검투사.
검 하나 들지 못하고 어렸던 자신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갈 수 있었던 원동력.
그건 신력이 아니라 이 감각이었다.
외줄타기에서 느껴지는 쾌락.
자신은 결국 의동생을 죽였다. 그 순간, 슬픔과 동시에 쾌락을 느꼈다. 나만 살아남았다는 슬픔. 동시에 나보다 강했던 의동생을 이겼다는 쾌락.
자신은 미친놈이다.
“흐흐흐.”
그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약자가 아니군. 너도 강자였어.”
그 순간 그는 방패 너머 붉은 머리칼 남자의 입이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
“발끝에도 못 미치는구나.”
뭐?
채주의 눈동자에 의문이 서렸을 때, 케일이 말했다.
“툰카에게 미안하군.”
누구?
채주는 저를 앞에 두고 다른 이를 말하는 적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다시 도끼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등 뒤.
등 뒤가 서늘해져 왔다.
채주는 멈칫하며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크윽!”
그의 거대한 몸이 뒤로 기울어졌다. 그의 목덜미 뒤를 움켜쥔 하얀 장갑. 장갑은 가뿐히 거대한 그의 몸을 끌어당겼고 채주는 몸을 비틀었지만 이미 몸은 기운 상태였다.
채주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뒤로 넘어지는 자신을 향한 한 남자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서늘함과 짜증이 뒤섞인 눈빛.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한 옷차림에 흰 장갑을 끼고서 손에 대검을 틀어쥔 남자.
그는 담담하게 채주에게 물었다.
“요 근래 씻었나?”
“뭔 개소리- 커헉!”
퍽!
넘어지던 채주의 몸이 저 옆으로 튕겨져 나갔다. 대검의 옆면이 그대로 채주의 옆구리를 쳤고, 타격은 고스란히 채주의 몸으로 전해졌다.
콰앙!
채주의 몸이 목책과 부딪쳤다.
“으아악! 바닥이! 잡아!”
“야, 내 몸 잡아!”
목책 난간에 몸을 내밀고 있던 산적들은 흔들리는 목책을 잡고서 저마다 드러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당황스러움, 놀람, 두려움.
여러 감정들이 온전히 산적들 얼굴 위에 드러났을 때, 비크로스는 케일을 쳐다봤다. 케일은 입을 열었다.
“두 대 더.”
그 말에, 비크로스는 한숨과 함께 새 흰 장갑을 끼며 채주에게 다가갔다.
“크으윽.”
채주는 목책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목책은 그의 몸 형태대로 움푹 파여 있었다. 평범한 인간을 넘어선 타고난 건강함으로 그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다만 그 내부는 충격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무슨 이런.”
채주의 얼굴 위로 당혹스러움이 서렸다.
그는 지금 충격으로 진동하는 내부보다 마음이 더 강하게 뒤흔들리고 있었다.
적이 강한 것은 대충 느낌이 왔다. 하지만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그는 다가오는 비크로스를 보며 도끼를 다시 움켜쥐었다. 손이 잘게 떨려왔다.
이렇게 강한 사람들이 이 리브 산에 올 일은 없을 텐데?
의문과 함께 그는 잘게 떨리는 손에 힘을 주며 미소를 그렸다. 그래도 강자니까, 싸워서 이기면 된다. 그러면 쾌락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케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툰카가 확실히 더 강한 놈이야.”
비슷한 과라서 비슷한 줄 알았더니, 툰카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놈이다.
하긴 그러니 산적이겠지.
“도련님, 비크로스도 강하지 않습니까?”
“당연한 걸 왜 물어?”
케일은 론의 당연한 물음에 대충 답하며 비크로스를 지켜보았다.
단검 위주로 암살 기술이 뛰어난 론.
그의 아들이지만 대검을 다루는 비크로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방식을 제 식으로 습득하였다.
대검을 들었지만 소리 없이 싸우는 자.
외양만큼이나 깔끔하고 흠집 없는 검술의 소유자가 비크로스였다. 웬만한 기사보다 유려한 검술의 자태.
맛있는 음식을 아름답게 장식하듯이.
사람의 가장 아픈 부위를 철저하게 꿰뚫고 있듯이.
그 모든 것들이 담긴 섬세한 검이 비크로스의 대검이었다.
콰앙!
다시 한번 부딪침이 일어났다. 케일은 도끼가 저 하늘로 날아가며 비크로스의 손바닥이 채주의 뒤통수로 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퍽!
“두 대다.”
“커헉!”
채주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힘에 그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의 눈빛에 머리가 갈라질 것 같은 고통과 더불어 분함이 나타났다.
무력하다. 자신이 너무나도 무력했다.
그랬기에 그는 아직 어린 검투사였을 적,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했던 일 중 하나를 떠올렸다.
그의 몸이 땅에 닿기 전, 채주는 손을 뻗어 흙을 움켜쥐었다.
비겁해도 어쩔 수 없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그의 몸이 방향을 바꿨다. 채주와 비크로스의 눈이 마주치고, 채주의 손이 움직였다. 그의 귓가로 붉은 머리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놀람이 섞인 소리.
채주는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그래, 한 대 못 때리면 이렇게라도 해야 이 불굴의 지배자님이지!’
그는 손안의 흙을 비크로스의 눈을 향해 던졌다. 이렇게라도 해야 분이 풀릴 것 같았다.
흙이 공중에 던져졌고, 채주의 몸은 그대로 땅바닥에 넘어졌다.
쿠웅.
큰 소리와 함께 쓰러졌지만 채주는 누운 채로 낄낄거리며 흙을 뒤집어쓴 비크로스를 쳐다봤다. 귀족처럼 깔끔하던 꼴이 흙을 뒤집어쓰니 자신처럼 영 추레해 보였다.
그때 그의 귓가로 붉은 머리칼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쟤 불쌍하게 됐네.”
뭐?
채주가 이상함을 느꼈을 때였다.
“죽고 싶나?”
흙을 뒤집어쓴 비크로스의 살벌한 눈동자가 채주를 향했다.
“뭐, 뭐야!”
채주는 이전과 달리 살벌하게 변한 눈동자에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런 그의 옆에 거대한 검이 꽂혔다.
푸욱.
대검은 땅에 깊숙이 박혔고 흙을 뒤집어쓴 비크로스의 분노 어린 눈동자가 채주를 향했다.
비크로스는 흰 장갑을 벗었다.
투욱. 툭.
흰 장갑은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이를 보던 채주에게 비크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이거나 피를 보진 않으마. 고문도 안 하마.”
뭐? 고문?
채주가 놀라 다시 비크로스를 쳐다봤을 때, 비크로스는 손가락을 폈다.
하나.
아직 때려야 할 한 대를 뜻할 수도 있었으나, 비크로스의 언어는 조금 달랐다.
“백 대. 딱 백 대만 더 맞자.”
케일은 비크로스의 목소리를 들으며 저 먼 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퍼억, 퍽, 퍽!
매타작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아름다운 산 풍경과 함께 어울려져 들려왔다.
“으악! 제발! 그만! 잘못, 커헉!”
케일은 채주의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제 옆에 있던 산적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게, 그냥 덤비지를 말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케일은 산적의 어깨를 두드렸다. 산적의 얼굴이 하얀 것을 넘어 퍼렇게 변해갔지만 케일은 신경 쓰지 않고 목책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에 산적들은 움찔하며 목책 난간과 무기를 움켜쥐었다. 공포와 절박함이 보였다.
그러나 산적들은 채주가 50대 이상 맞는 것을 보고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
***
곧 불굴 산채에서 가장 좋은 집, 채주가 지내는 그 집의 비싼 가죽 의자의 주인은 케일이 되었다.
“야.”
“넵!”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채주는 납작 몸을 숙이며 케일의 말에 답했다. 얼굴 곳곳이 얻어맞아서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어디 긁히거나 피가 나고 부러진 곳은 하나도 없었다.
케일은 조각상을 만들던 산적 중 하나가 가져다준 과일을 톡톡 떼먹으며 입을 열었다.
“너네가 리브 산 일대를 주름잡는다고?”
“그렇습죠!”
“말투 똑바로.”
“그렇습니다! 행님!”
“내가 왜 네 형이야?”
“죄송합니다! 채주님!”
아이고야, 내가 왜 채주야?
케일은 기가 찼지만 귀찮아서 일단 내버려 두며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너네들이 할 일이 있다.”
채주는 침을 삼키며 케일을 바라봤다. 하지만 케일은 다른 사람을 바라봤다. 전직 채주도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바라봤다.
인자한 미소를 띤 노인.
노인치고는 체격이 좋았지만, 꼭 검을 곁에 둔 학사의 느낌을 풍겼다.
비크로스나 하나를 보면 기세에서부터 강자의 향기가 풍겼다.
하지만 이 노인은 영 강해 보이지 않았다.
‘책사 같은 건가? 이 비리비리한 노인네는 또 뭐야?’
전직 채주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고, 그 순간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비크로스의 아버지이지.”
“아버님! 안녕하십니까!”
채주는 냅다 히죽 웃으며 넙죽 론에게 인사했다. 그런 그에게 케일의 담담한 목소리가 지나가듯 들려왔다.
“동대륙 뒷세계를 장악한 단체가 있다고 들었다.”
“그, 그렇죠?”
산에 사는 사람들이었으나 장물을 팔려면 알아야 하는 곳이 뒷세계였다. 최근 십여 년 전부터 동대륙의 뒷세계는 보이지 않는 한 곳에 의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물론 그 보이지 않는 단체의 힘을 느낀 이들은 모두 쉬쉬하며 제 몸을 보전하기 바빴다. 그렇지만 뒷세계는 그 이름 그대로 뒤에 존재하는 세계라, 꽤 자유롭게 거래가 오고가며 제 이득을 찾는 이들이 많은 곳이기도 했다.
한 곳이 장악했다고 하지만 일통했다고 말하기 쉽지 않은 세계.
그곳이 뒷세계였다.
“넌 불굴의 지배자라고 불린다고?”
“그렇습니다만?”
전직 채주이자 다년간 노예 검투사로 지내온 감이 말해주었다.
이거 뭔가 불길하다.
채주가 그렇게 느꼈을 때, 그는 환하게 웃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그, 그걸 왜 물으십니까?”
채주는 제 물음에 답하는 케일의 환한 입꼬리를 보았다.
“네가 오늘부터 또 다른 뒷세계의 지배자가 될 거다.”
“…네?”
“그리고 네 지배자가 될 분이 이분이시다.”
전직 채주는 인자하게 웃어 보이는 론의 서늘한 눈빛을 볼 수 있었다.
론 몰란.
‘암’에 의해 멸문당한 동대륙 5대 암살 정보 가문 중 하나인 몰란 가문의 마지막 수장.
케일은 그를 다시 동대륙으로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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