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43
642화.
하지만 최정상으로 향하는 길, 방해물이 없지는 않았다.
“저놈들을 막아라!”
“반드시 여기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묘족 족장과 사자족 왕 도르프. 두 우두머리를 따라 최정예가 산 중턱으로 내려갔지만, 이곳에도 상당수의 강자들이 남아 산의 정상 부근을 지키고 있었다.
“멈춰라!”
“일단 달려들어!”
각각 묘족과 사자족을 이끄는 이들의 외침을 듣던 케일은 뚱한 얼굴로 툭 내뱉었다.
“떨거지들 상대할 시간 없다.”
그는 고개를 돌려 도도리를 바라봤다.
“도도리 님.”
“응?”
케일은 잠시 망설였다. 스스로의 입으로 내뱉기에는 참 민망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빠른 처리를 위해선 이 순간 도도리에게 그 이야기를 해야 했다.
“제, 크흠. 제 책에 있던 죽음의 협곡 전쟁 내용을 기억하십니까?”
“당연하지! 나 엄청 잘 기억해!”
케일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에게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정면의 적들을 가리켰다.
“그대로 해보시죠. 한번 도도리 님 손으로 재현을 해보는 겁니다.”
“…지, 진짜?”
도도리의 눈이 떨렸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닌 과도한 설렘이었다. 도도리는 후배 용이 두 앞발을 꼭 쥐며 힘차게 외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도도리야! 할 수 있다! 바위는 위대하다! 왕 인질은 내가 잡고 있겠다!”
도도리의 눈동자에 과도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죽음의 협곡 전투.
케일 헤니투스 위인전에서, 방패 공자로 이름을 떨쳤던 로운 왕국 수도 테러 사건과 더불어 절대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였다.
자신은 그 이야기를 보고 얼마나 전율했던가!
‘그걸 내가 해본다고?’
도도리의 코에서 뜨거운 콧김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케일을 보며 말했다.
“나만 믿어! 나는 영웅의 동료! 반드시 증명!”
케일은 그 뜨거운 모습에 애써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며 미소와 함께 응원의 말을 건넸다.
“믿어요. 증명할 겁니다.”
“그래!”
도도리가 발을 굴렀다.
쿠웅!
순간 바위산 전체가 울리는 듯했다. 아니, 바위산이기에 도도리의 발 굴림 한 번에 이런 울림을 낼 수 있었다.
그는 앞으로 화살처럼 쏘아지듯이 적들에게로 향했다.
“저건 누구야!”
“궁사인가? 왜 원거리 궁사가 앞으로 나와?!”
적들은 겁도 없이 달려드는 도도리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또한 도도리의 정체를 모르는 용병 길드 레인저 부대원들이 걱정과 염려를 얼굴에 드러냈다.
도도리는 어려 보였고, 원거리 딜러로 보였으니까.
“저기, 사령관님-”
“믿고 있으면 돼.”
전직 사령관이지만 영원한 사령관이기도 한 남자가 웃고 있었다.
“죽음의 협곡 전투를 기억하나?”
동대륙의 레인저 부대원이었지만, 서대륙에서 펼쳐진 그 유명한 대전투 내용을 부대원 중 한 명이 저도 모르게 읊었다.
“…빛 속성으로 공격하는 적을-”
그 적을 케일이 어떻게 상대했더라?
그 적을 어떻게 없앴더라?
그 답은 바로 나왔다.
“…석창으로-”
석창.
돌.
바위.
차례로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에 레인저 부대원들의 눈동자가 커지는 그때. 그들은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발을 디디고 있는 바위들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레인저들의 시선이 도도리에게로 향한 그때.
“제가 먼저 나서겠습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사자족 전사 한 명과 묘족 정예 한 명이 땅의 진동에 얼굴을 굳히며 도도리에게 협공을 시도하였다.
마주 달려오던 도도리를 향해 각자의 무기를 들이밀며 그들이 발을 내디딘 순간, 그들은 아주 행복하다는 듯 웃고 있는 적을 볼 수 있었다.
“역시 난 제대로 된 선택을 한 거야.”
도도리가 중얼거림을 내뱉은 그때. 달려오던 적도, 그 뒤를 이어 공격하려던 자들도 모두 몸이 기울어졌다.
쿠구구구구-
바위가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족히 이백여 개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바윗덩어리들.
그 바위들의 모습에 적들이 당황하기도 전.
“…이런……!”
“밑을 보십시오!”
적들은 산 정상 부근을 뒤덮은 분홍빛을 볼 수 있었다.
바위들이 분홍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누가 보면 동화책에서나 나올 것 같은 아름다운 광경이었으나, 이들에게는 죽음을 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적이 웃으며 말했으니까.
“앞길을 막지 마.”
동시에 바위들이 마치 유성우처럼 사자족과 묘족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이깟 바위!”
사자족 하나가 광폭화하며 분홍빛을 머금은 바위를 하나 주먹으로 쳐내려고 했다. 바위쯤은 부술 수 있는 악력을 지닌 신체였기 때문이었다.
콰아아앙!
손과 바위가 부딪쳤다.
“크아아악!”
사자족은 제 손을 다른 손으로 부여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손가락이 다 부서졌다.
“미친…! 돌이 뭐 이렇게 단단-!”
그러나 그는 계속 제 손에 시선을 둘 수가 없었다. 자신의 손은 부서졌지만,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은 분홍빛 바위가 그를 덮쳤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악!”
“크아악!”
“도망쳐, 저 바위는 피해!”
“이건, 일반적인 바위가 아니다! 다들 후퇴, 후퇴!”
곳곳에서 비명과 신음, 그리고 도망치라는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저절로 케일의 앞길을 막는 적들이 바위들을 피해 각기 다른 곳으로 물러났다.
“…가자.”
케일은 일단 도도리가 만들어준 길을 빠른 속도로 지나치며 큰 소모 없이 최정상으로 향할 수 있었다.
짱돌이 속삭였다.
-케일. 저 바위 말이다. 분홍빛을 머금으니 강도가 50배 증가하는구나.
짱돌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저것은 바위가 아냐…. 새로운 무기지.
케일도 동감하는 바였다.
그런 그의 곁으로 다가온 도도리가 아쉬운 마음을 얼굴에 드러내고 있었다.
“…아쉬워…. 난 아직 컨트롤도 특성 사용 범위도 좁아…. 석창도 못 만들었어…….”
그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 도도리가 적들을 향해 던지고 있는 바위는 죽음의 협곡에서 케일이 만들었던 석창의 형태가 아닌 그냥 바윗덩어리에 불과했다.
동시에 적들을 정확하게 노리는 컨트롤이 부족했으며, 바위를 사용할 수 있는 범위도 이 산 정상 부근 일부 정도가 한계였다.
“대단합니다.”
“…응?”
위대한 죽음의 협곡 전투를 재현해내지 못해 아쉬워하던 도도리는 케일의 목소리에 그를 바라봤다.
케일은 도도리가 아닌 바위를 피하려는 적들을 눈에 담으며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분명 도도리를 향해 있었다.
“아군에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고, 훌륭하게 길을 뚫으셨군요. 덕분에 아군이 아무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진 특성도 대단합니다.”
저리 단단한 바위라니!
케일은 자신과 도도리가 힘을 합치면 무엇을 만들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수틀리면 그냥 다 때려 부수면 되겠는데?’
히죽.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도도리는 그 속내를 모른 채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군이 아무도 다치지 않았대!’
그 말이 왠지 모르게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도도리였다.
“대단하다! 도도리야!”
거기다가 라온까지 칭찬하자 절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이 정도쯤이야! 영웅의 동료면 이 정도는 해야지!”
들뜬 마음을 감추며 아무렇지 않아 하는 도도리였지만, 모두에게 티가 났다. 이를 지켜보던 라온이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특성 쓰고 싶다.”
도도리도, 엄마 쉐리트도, 금 용 할배도. 모두 특성을 사용하며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데 라온은 아직 자신의 특성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
라온의 속성은 ‘현재’였다. 그것만 알 뿐, 그 속성을 어떻게 발현하는 것이며 무엇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때, 케일의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래 늦게 깨우치는 힘도 있어.”
라온의 시선이 케일의 등으로 향했다.
케일은 그 시선을 모른 채, 자신의 또 다른 힘에 대해 생각했다.
김록수가 가진 또 다른 힘.
‘기록’과 함께 그를 다중 능력자로 만든 능력이자 기록보다 늦게 발현된 힘이었다. 그 힘을 사용하면 과부하가 심해, 케일 몸에 상당한 무리를 주었다.
‘그것도 라온처럼 시간과 관련되었지.’
그렇기에 케일은 제 생각을 가감 없이 툭 내뱉었다.
“어쩌면 네 속성은 네가 그 힘을 사용해도 괜찮을 만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자랄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그런가?”
“그래. 그러니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면 돼.”
케일은 그 말을 끝으로 걸음을 멈췄다.
쿠웅! 쿵! 쿠우웅!
아직도 뒤에서 바위가 산발적으로 떨어지는 와중에 케일의 앞에 거대한 구멍이 나타났다.
산 최정상. 그곳에 자리한 구멍은 마치 엔더블 왕국이 있는 싱크홀의 축소판 같았다.
“…하! 어떻게 저렇게 사람을-!”
“빌어먹을 놈들!”
그리고 그 구멍 밑바닥으로 향하는 절벽에는 계단이 존재했다.
그 계단을 따라 마치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감옥들이 보였다. 사람 한 명 겨우 들어가서 제대로 발을 뻗고 누울 수 있을까 싶은 공간이었다.
“고, 공자님! 공자님이시죠?”
“뭐? 공자님?”
그때였다.
누군가 감옥 창살 밖으로 손을 뻗었다.
그 손의 주인공은 케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색으로 염색했지만,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뱀파이어들의 미래인 나르 공자였으니까.
곧 감옥 곳곳이 소란스러워지며 뱀파이어들의 시선이 모두 밖으로 향했다.
케일은 그 모습을 하나하나 살폈다.
제대로 못 먹었는지 삐쩍 말라 있었고, 어떤 이들은 저항을 격렬하게 했는지 부상을 입은 채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다른 곳이었다.
“…저건 뭐지?”
뭐냐고 묻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답을 내린 상태였다.
“인간아. 저거 그거다! 어둠 정령 힘!”
라온의 말이 정답이었다.
언젠가 사자족 왕 도르프. 어둠의 정령을 집어삼킨 그놈이 사용했던 그 어둠이 구멍 아래에 도사린 채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마치 검은 안개와 같은 그 힘에 가려져 구멍의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도르프가 여기 온 이유가 있군.”
아마 저 어둠은 구멍 바닥을 가리기 위함이었으리라.
그리고 저 어둠이 사라지면 무엇이 있을지 케일은 알 것 같았다.
세즈 왕국에 대한 자료를 보자마자 과거의 기록을 하나 떠올렸으니까.
“공자님!”
“공자님이 구하러 오셨다!”
“크흐흑. 흐흑!”
“사, 살려주세요!”
뱀파이어들의 외침 사이로, 케일은 손목에 낀 밴드를 뺐다.
그 밴드는 프레도 공작의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로, 그가 나르 공자 모습을 할 수 있게 만든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 물건을 벗자, 모든 것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 저자는-!”
“어째서 나르 공자님이-”
마침내 아카데미 졸업반 교복을 입은 케일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명령했다.
“인질들을 구해라!”
그리고 덧붙였다.
“나는 아래로 간다.”
그는 레인저 부대원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바로 아래로 뛰어들었다.
레인저들이 그 모습에 흠칫하려는 찰나, 그들의 눈동자에는 적금빛의 전류에 감싸인 케일이 담겼다.
어둠의 정령 힘.
케일은 그 어둠을 밝힐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나에게 맡겨.
파괴하는 불.
그가 오랜만에 제 목소리를 내었다.
화르르르-
시뻘건 불길이 타오르며 어둠을 집어삼켰다.
끼이이이- 끼이이–
소름 끼치는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그를 중심으로 피어오른 적금빛 전류에 어둠이 잡아 먹혀갔다.
마치 어둠을 밝히는 최초의 횃불처럼, 케일이 아래로, 구멍의 밑바닥으로 향할수록 어둠이 사라져갔다.
이를 혼란에 가득 찬 뱀파이어들도, 빠르게 움직이려던 레인저 부대원들도 넋을 놓고 바라봤다.
특히 도도리는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런 케일의 옆에 자리한 라온이 보였다. 항상 라온은 케일의 옆에 있었고, 그것이 당연해 보였다.
“나도 가야지.”
도도리도 얼른 그 뒤를 따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하지만 그는 석상처럼 몸이 굳어버렸다.
“저, 저게 뭐야-”
목소리가 떨려왔다.
어둠이 사라지고 드러난 구멍의 밑바닥.
그곳에 자리한 것들을 본 순간, 도도리는 다리가 굳어졌다.
위인전에서, 영웅 설화에서 많은 장면들을 읽었고 상상했지만. 현실로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도 달랐다.
“…왜, 왜 이렇게 뼈들이-”
어둠이 걷히자, 수많은 뼈들이 곳곳에 언덕처럼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 뼈들의 중심에는 거대한 원형의 유리관이 존재했다.
“우욱!”
도도리는 입을 막았다.
어둠 정령의 힘이 간신히 막고 있던 것들이 사라지자 원형의 유리관에서 역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실제 냄새는 아니었다. 오로지 마나에 민감한 용이기에 느낄 수 있는 냄새였다.
“라온.”
바닥으로, 수많은 뼈 무덤들의 중심에 내려선 케일은 거대한 네 개의 유리관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게 라온 네가 말하던 죽은 마나를 응용한 액체냐?”
“맞다! 인간! 그거 맞다! 이 냄새, 저 기운 모두 그거다!”
네 개의 거대한 원형 유리관. 그 유리관의 주위로 회색 신관복을 입은 자들이 저마다 무기를 챙겨 들며 케일과 라온을 노려보고 있었다.
“케일 헤니투스!”
“…빌어먹을! 사자족이랑 묘족은 뭘 한 거야!”
하지만 케일은 그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흐.”
네 개의 원형 유리관들이 둘러싸고 있는 중심.
그곳엔 제단이 하나 있었다.
그 제단 위에는 케일의 눈에 익숙한 네 개의 조각상이 존재했다.
“…등급 외 괴물이 여기 절반이 있었군.”
황금 팽이채를 든 케일에게 바람 정령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돈, 파괴! 분명 엔더블 왕국에 다 있는 줄 알았는데!’
‘언제 옮겼지? 어둠 정령 힘 때문에 몰랐던 건가!’
‘그런가 봐. 케일, 미안해. 그런데 분명 엔더블 왕국에도 저 조각상과 액체들이 있어! 그건 확실해!’
케일은 무심한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그런 건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감정 하나 없는 목소리에, 바람 정령들은 더 다급하게 말했다.
‘혼돈, 파괴, 사과! 매우 미안하다! 몰랐다!’
‘미안해, 케일. 우리가 놓쳤어. 어떡해.’
‘다음엔 반드시 만회할게!’
하지만 케일은 바람 정령 목소리를 지금 자세히 듣지 않고 있었다.
그는 손을 움직였다.
“크읍! 읍!”
라온에 의해 둥둥 떠 있던 바케헤.
그는 케일에게 멱살이 잡혔고.
“커헉!”
그대로 바닥으로 내던져졌다. 온몸이 꽁꽁 묶인 채 바닥을 나뒹굴던 바케헤 왕.
“크윽!”
그의 머리를 케일의 신발이 내리눌렀다.
바케헤는 저를 내려다보는 서늘한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케일은 무심한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여기 아딘 같은 새끼가 또 있었네.”
모고르 제국 연금술 종탑의 지하.
그곳에 자리했던 거대한 뼈 무덤.
죽은 마나를 만들기 위해 죽어야 했던 수많은 이들.
그중 상당수가 연금술사가 될 수 있단 말에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인신매매를 하는 이들에게 잡혀 노예로 끌려온 이들이었다.
케일이 처음 세즈 왕국의 검술 훈련소에 대해서 들었을 때, 묘한 불안감을 느꼈던 이유이기도 했다.
“인간아! 여, 여긴 모고르 뼈 무덤보다 더 많다!”
라온의 목소리가 떨렸다. 연금술 종탑 지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뼈 잔해들이 이곳에 들어차 있었으니까.
“하나는 연금술사고 하나는 기사네.”
흐.
케일의 입에서 짧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크헉. 억. 읍, 읍!”
그는 여전히 입이 막힌 바케헤 왕을 잘근잘근 밟으며 입을 열었다.
“라온.”
그는 뼈 무덤의 중심에 있는 제단을 가리켰다.
“저 조각상들 부숴.”
“알았다, 인간! 이번엔 내가 부순다! 이런 짓 한 놈들 용서 못 한다!”
엔더블 왕국에서 마족, 마신을 모시던 신관들이 그 말에 발작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이 조각상을 부수면! 이 액체들이 흘러나와서 다 죽을 거다!”
“어디 한번 부숴보던가! 스며든 액체에 의해서 이 세즈 왕국은 죽은 땅이 될 것이다!”
라온이 그 말에 멈칫했다.
저번에도 엔더블 왕국에서 라온은 조각상 8개를 훔치지 못했다. 이는 그 조각상과 연결된 저 죽은 마나 변형 액체 때문이었다.
저것이 잘못해서 터지면 큰일이었다.
“라온.”
그때,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 해결할 테니까.”
가장 든든한 목소리였다.
저번 엔더블 왕국에서 조각상을 부수려고 할 때는 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였지만, 이제는 제 곁에 있는 목소리였다.
“알았다, 인간!”
라온은 걱정이 모두 사라졌다.
그런 라온의 뒤로 케일은 서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금 전부터, 그의 머릿속에 한 존재가 말하고 있었다.
-어차피 본질은 같다.
고대에 펼쳐진 어둠의 시대.
홀로 사방을 불바다로 만들며 죽은 마나를 태웠던 전사.
파괴하는 불이 케일에게 알려주었다.
-죽은 마나나 저거나 태우면 돼.
정화.
그 힘을 쓰라고.
적금빛 벼락은 저 액체를 정화할 수 있다고.
***
그 시각.
“…들켰군.”
사자족 왕 도르프가 산 정상부를 힐끗 쳐다보고는 이내 삐뚜름한 미소를 지은 채 적들을 바라봤다.
“어둠 아래에서 제대로 된 힘을 못 쓰겠지?”
넥스 산은 어느새 안개보다 더 짙은 어둠에 뒤덮여 있었다.
검은 장막이 드리운 채, 햇살 하나 허용하지 않았다.
도르프의 어둠 정령 힘. 이 검은 장막 아래에서 어둠 속성을 지닌 이는 힘을 얻었고, 그 반대의 이들은 힘이 약해졌다.
“크윽.”
비크로스가 제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손에 힘이 줄어들었다.
“갑자기!”
“몸이 느려졌습니다!”
레인저 부대원들도, 용병왕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나타난 검은 장막 아래에서 갑자기 몸 안의 힘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았다.
‘적응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
소드 마스터 버드가 그리 생각한 그때, 도르프가 입꼬리를 올렸다.
로잘린, 에르하벤조차도 처음에 평소의 1/4밖에 마나를 사용하지 못했던 그 검은 장막.
“저번에 고룡도 이 검은 장막 아래서 마나를 제대로 쓰지 못하더군. 너도 마찬가지겠지?”
도르프의 시선이 닿은 곳엔 굳은 얼굴의 라쉴이 있었다.
그 순간 라쉴은 케일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라쉴 님은 일단 가장 먼저 한 놈만 패시면 됩니다.’
‘에이. 하나? 더 해도 되는데?’
‘일단 하나요.’
‘그 한 놈이 누군데?’
‘사자족 왕.’
라쉴은 지금 생각해보면 케일이 이 순간을 예견한 듯싶었다.
‘광폭화를 하면 덩치가 아주 큽니다.’
‘오. 패는 맛이 있겠군. 좋아. 그놈은 이 위대한 몸이 잡지.’
어떻게 팰까.
과한 설렘에 라쉴의 얼굴이 절로 굳어져 갔다.
그 속내를 이곳의 아무도 몰랐다.
‘라쉴 님, 마음대로 패세요.’
케일의 허락도 떨어졌겠다, 거칠 것이 없는 라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