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0
69화.
케일은 빌로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빌로스의 눈빛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그는 케일이 건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 보물이 필요하면 일해.”
무심한 지시였다. 그럼에도 빌로스는 명쾌하게 답했다.
“얼마든지요. 흐흐.”
딱 봐도 신이 난 간신 같은 모습에 케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일부러 저리 행동하는 것이지 지금 빌로스의 머릿속은 복잡할 것이다.
‘내가 자세히 말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한 단어를 전했을 뿐이었다.
마법 장치. 그 단어에 빌로스는 알겠다고 답했을 뿐이었다. 케일은 빌로스가 일하러 가는 것을 쳐다보다가 한 사람을 찾았다.
일행 중 지금 이 위퍼 왕국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사람.
로잘린.
마법사는 다치기 싫으면, 죽기 싫으면 조심해야 했다. 케일은 갑판에 서 있는 그녀를 발견했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주의를 주기 위해서였다.
“…로잘린 씨.”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케일은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생각했다.
“케일 공자, 왜 그러시죠?”
차분한 그녀의 음성에 케일은 이내 로잘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물었다.
“손에 그건 몽둥이입니까?”
로잘린의 손에 들린 몽둥이가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휘둘러지고 있었다. 그 모습이 꽤 익숙해보였고 절도까지 있었다. 그녀의 로브 안으로 가벼운 가죽 갑옷이 보였다. 그녀는 케일에게 상큼하게 답했다.
“네, 몽둥이죠. 마법 스태프 휘두르는 거나 몽둥이나 그게 그거죠. 때리는 건 같더라고요.”
“현명하십니다.”
케일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그녀에게 엄지를 척 올려 보였다. 굳이 케일이 그녀에게 위퍼 왕국에서 마법사로 돌아다니는 위험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현명은요. 저 때문에 모두가 곤란해지는 일은 없어야죠. 이래 봬도 어릴 때 기본적인 무투술은 다 배웠어요.”
툭. 툭. 로잘린은 손에 들린 몽둥이로 가볍게 자신의 다른 손바닥을 두드렸다. 왕족으로서, 그것도 계승 서열 제1왕족으로서 그녀는 호신술을 비롯한 몇 가지 기본 무술을 배웠다.
몽둥이를 잡고 있는 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여길 제대로 한번 보고 싶거든요.”
케일의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미래에 새로이 생겨날 마탑의 주인으로 가장 오르내리던 인물, 로잘린. 그녀는 최한과 가장 비슷하게 선한 이였다. 그러니 동료로 함께 성장했겠지.
하지만 기본적으로 명확한 꿈과 냉정한 이성을 지녔다. 위퍼 왕국은 그녀에게 복잡한 마음과 배울 기회를 주리라.
케일은 로잘린을 따라 항구를 바라봤다.
가장 작은 항구여서 가장 덜 망가졌다. 그리고 여기는 부족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항구여서 그나마 안전했다. 그러나 오가는 배가 적었고, 배에서 내리는 이들의 얼굴이 어두웠다. 다만 항구에 사는 이들의 표정은 꽤 밝았다.
‘마탑에서 노예처럼 부리던 부족민들이 많았던 곳이었으니까.’
저 멀리 검은 연기들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내전이 끝난 자리에는 부서진 것들만이 남게 마련이었다.
“공자님, 이제 이동하시면 됩니다. 마차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래.”
케일은 빌로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배에서 내렸다. 위퍼 왕국의 땅을 처음 밟은 케일은 입을 열었다.
“썩 좋은 냄새가 나지는 않네.”
다 타고 망가진 곳에서만 나는 매캐한 냄새를 맡으며 케일은 빌로스가 준비해 둔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도착한 케일은 자신의 방에서 빌로스와 대면했다.
“꽤 준비를 잘했는데?”
케일은 항구 근처의 가장 조용한 숙소에, 그리고 플린 상단의 표식을 새겨 위장한 마차, 그 외의 자잘한 모든 것들을 준비한 빌로스에게 칭찬의 말을 건넸다.
빌로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그에게 케일은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소문 안 나게 조용히 준비했나?”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빌로스는 정색을 하며 답했다.
“제 이득을 왜 나눕니까?”
탐욕이 가득한 눈빛에 케일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역시 넌 마음에 들어.”
“공자님도요.”
케일은 소파에 몸을 기대며 툭 던지듯 물었다.
“승리지?”
빌로스는 신중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공자님 말씀대로입니다.”
“그렇군.”
결국, 아니, 예상대로 비마법사 연맹이 승리했다. 케일은 내전이 끝나는 시기에 딱 맞춰서 도착했다.
그리고 내전의 끝을 알리는 기준은 단 하나였다.
부서진 마탑.
마법사들 최후의 보루인 마탑이 무너지는 것이 내전의 끝이었다. 물론 아직 자잘한 일 처리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비마법사 연맹이 생각보다 더 저돌적이더군요.”
빌로스는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내전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단 죽이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있던 것 같습니다.”
빌로스는 살짝 어깨를 떨었다. 그는 내전이 지나간 자리 혹은 내전이 시작되기 전의 광경만을 눈에 담았다. 그때가 물건을 사고팔기 좋았으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그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마법 내성이 있는 부족민들이 대거로 나타나 앞장서면, 참 무섭더군요.”
비마법사와 마법사 연맹. 그 싸움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변수가 ‘마법 내성’이었다.
부족민들은 마법 내성을 지닌 이들이 몇 대에 걸쳐 하나둘 탄생했다.
그들은 숫자도 적었지만 더불어 마법도 배울 수 없어, 더욱더 위퍼 왕국에서 탄압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 마법 내성을 지닌 부족민들이 이번 대에는 아주 많이 태어나 버렸고, 그 바람에 그것은 하나의 장점이 되고야 말았다.
부족민들은 이를 자연의 계시라 하였다. 마나로 자연을 다룰 수 있다 믿는 저 오만한 마법사들을 죽일 계시.
“특히나 비마법사 연맹 우두머리로 툰카라는 자가 있습니다.”
케일은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다.
“그자와 그자의 직속 부하들은 정말이지, 말 그대로 본능에 따라 움직이더군요. 딱 한 번 멀리서 그자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마법사의 목을 손으로 뽑아내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살벌하던지.”
어휴. 빌로스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그때 잠을 제대로 못 잤죠. 지금도 툰카와 그 직속 부하들을 떠올리면 속이 쓰리다니까요.”
빌로스는 그자들만큼은 무조건 피하고 조심해야겠다 다짐했다.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아 보였으니까. 그마나 툰카의 참모들이 똑똑해 말이 잘 통했지만.
“많이 잔인했나 보군.”
케일이 툭 건네는 말에 빌로스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주 잔인했습니다. 산 채로 찢여 죽인 마법사들 시체가 각 성 앞에 다 걸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빌로스는 그것이 나쁘다 말하지 않았다.
“뭐, 위퍼 왕국민들 입장에서야 그렇게 해도 부족하겠지만요.”
그 심정이 이해가 가는 빌로스였다. 그리고 내전의 여파로 돈을 벌고 있는 자신이 누가 더 나쁘다 착하다 말할 형편은 되지 못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공자님.”
빌로스는 다시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은근슬쩍 케일에게 말을 붙였다.
“왜?”
어찌 보면 차갑다 느껴 질만큼 케일이 툭 되물었지만, 빌로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는 겁니까?”
목적지가 무엇이며, 도대체 보물이 무엇인지. 빌로스는 아주 궁금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듣던 케일의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그 미소에 빌로스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그때 케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툰카 만나러.”
“…네? 누구요?”
빌로스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생각했다. 내전 내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헛소리를 들었나 싶었다.
케일은 처음 보는 빌로스의 어벙한 표정에 대고 제 할 말을 다 했다.
“마탑에 간다.”
“네?”
아주 작은 항구. 이곳을 케일이 택한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니었다. 마탑과 어정쩡하게 가까운 거리를 지닌 항구였다. 공격 범위 밖이면서도 부족민들이 많은 항구.
케일은 멍하면서도 복잡한 표정으로 마주 앉아 있는 빌로스에게 여유로이 말했다.
“나만 믿어.”
빌로스는 몇 번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더니, 이내 벌떡 일어나 케일의 숙소 찬장에 마련된 술병을 하나 꺼내 바로 뚜껑을 따 벌컥벌컥 마셨다. 병이 반쯤 비워졌을 때 그는 케일에게 답했다.
“제 감을 믿겠습니다.”
“네 감이 뭔데?”
빌로스는 새로운 술병을 케일에게 건네었다.
“제 감은 공자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케일은 그 술병을 받아 병째로 한 모금을 마셨다.
“자네는 꽤 훌륭한 상인의 재목을 지녔어.”
참으로 여유롭고 권태로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빌로스는 술병을 꼭 쥔 채 케일 어깨너머 창밖을 바라봤다.
공식적인 내전은 끝이 났지만 아직 모든 마법사 잔당들을 잡지 못해 위퍼 왕국은 곳곳에서 죽음의 비명이 오고 갔다. 광기와 절망, 슬픔. 그 모든 것들이 공존하는 공간이 이곳이었다.
“술맛이 좋네.”
빌로스는 무심한 케일의 목소리에 자신의 감을 더 믿기로 했다.
***
며칠 뒤, 케일은 플린 상단의 상징이 그려진 마차에서 내려섰다. 그의 마차 뒤로 총 세 대의 마차가 더 있었다.
“공자님, 이곳이 마차로 마탑과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지점입니다.”
케일의 눈에 저 멀리 부서진 마탑이 보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덜 부서져 있었다.
‘덜 부수란 말을 잘 지켰군.’
툰카가 꽤 말을 잘 들었다.
“아름다운 마탑이군.”
옆에서 말을 건네던 빌로스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 순간 케일은 품 안에서 살짝 무언가를 꺼내, 일부분만을 빌로스에게 보여주었다.
“헉!”
빌로스가 숨을 들이켰다.
황금패.
일부분이었지만 저건 분명 황금패였다. 상인 빌로스의 눈빛이 달라졌다.
“존경합니다, 공자님.”
케일은 그 말을 가벼이 무시했다. 부집사 한스가 그에게로 다가왔다.
“공자님, 이제 무엇을 할 예정이십니까?”
한스는 케일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물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마탑 앞에 세워진, 넓게 형성된 진지의 입구 부근이었다.
수많은 천막과 집들이 보였다. 진지라기보다는 마을이라고 보는 게 맞을 규모였다. 그리고 독특한 복색의 사람들도 보였다. 이들은 부족민들이었다.
그들 외에도 다양한 이들이 보였다. 이내 한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크읍!”
그는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막았다. 피칠갑을 한 전사로 보이는 이들이 시체를 토막 내고 있었다. 그 시체의 옷이 희미하게 보였다. 로브였다. 마법사이리라.
그 뒤로 마법사들이 머리가 잘려져 한데 모여 뒹굴고 있는 게 보였다.
순간 피 냄새와 썩은 내가 한스의 후각을 지배했고 귓가로 시체 태우는 소리가 났다.
“속 쓰리면 쉬어.”
그때, 한스는 담담한 음성에 케일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이 담담했다. 늑대족임을 알게 된 메스를 비롯한 아이들도 차분하게 서서 그 광경을 눈에 담고 있었다.
“한스.”
“…네, 공자님.”
“여긴 전쟁터다.”
한스는 그 단어가 실감 났다. 그리고 동시에 그 광경을 담담히 바라보는 케일의 눈동자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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