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63
2부 5화
케일은 쓰러진 아이를 침대에 눕혔고, 신관이 뒤따라 아이를 살펴보았다.
“…어… 백마법이라니-”
그리고 이 순간, 가장 당황한 이는 함께 있던 마법사였다.
“자네, 소속은?”
“아! 저는 3마법병단 소속으로, 보조 계열입니다, 사령관님!”
“백마법이 정확히 무슨 뜻이지?”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소속을 밝히던 마법사는 케일의 물음에 곧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일반적으로 흑마법이 아닌 마법들을 백마법이라고 하지만. 굳이 콕 집어서 백마법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일반적으로는 그냥 마법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세계는 흑마법을 터부시하고 꺼리는 기색이 강하다.
아마 이 기조는 하얀 별의 수하로 활동하던 흑마법사로 인해 더 강해진 건지도 몰랐다.
다크엘프와 네크로맨서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음, 막내 공녀님께서 말씀하신 백마법은 아무래도 저희가 아는 일반적인 마법을 칭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마법사가 신중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알렸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나, 단정 지어선 안 됩니다.”
현장 책임을 맡고 있던 기사가 건넨 말에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보고서는 있는 그대로 사실만 쓸 겁니다.”
케일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바쁘게 움직였다.
‘마법사의 말이 맞을 확률이 더 높다.’
오르세나 공작가.
이곳이 사냥꾼과 관련이 되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소수였고, 그 소수 중에 케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사냥꾼들의 특징을 하나 알고 있었다.
‘그놈들은 차원을 넘나들고 독특한 힘을 많이 쓴다.’
그런 만큼 백마법도 케일이 지금껏 알지 못한 어떤 마법의 형태일 확률이 높았다.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막내 공녀의 상태를 계속 살펴보도록.”
“네, 사령관님.”
케일은 천막 밖으로 나서며 기사에게 말했다.
“나는 본채 쪽으로 가보도록 하지.”
“아, 아직 위험-”
불이 모두 꺼졌지만, 본채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상태가 좋지 못했다.
때문에 케일을 막으려던 기사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네, 알겠습니다.”
사령관이 해온 일을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이 정도는 위험하지 않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저는 시신에 남겨진 흔적들을 한 번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케일이 답한 순간, 영상통신을 하러 갔던 라온이 돌아왔다.
-인간아! 내가 다 연락했다! 다 온다고 한다!
기쁜 소식을 하나 들고 왔다.
-그리고 빌로스도 정신 차렸다고 한다! 같이 온다고 한다! 인간, 너를 만날 거라고 한다!
빌로스가 정신을 차리고 수도로 온다는 소식에 케일은 입가에 미소를 살짝 띠우면서도 상단주의 죽음을 떠올렸다.
“…빌로스 씨는 힘들겠군요.”
최한이 나직이 건넨 말에 케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서자라고 배척을 받아왔다고 해도, 아버지의 죽음이 빌로스에게 어떤 의미일지는 어느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법이었으니까.
“케일 님.”
케일의 뒤에 따라붙은 최한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음?’
왠지 모를 서늘한 기운에 케일은 고개를 살짝 뒤로 돌렸다.
“…이 화재 사건 배후로 사냥꾼을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배제할 수는 없어.”
최한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불에 탄 공작가를 바라보며 한마디를 남겼다.
“…쓰레기들이군요.”
케일은 흠칫 어깨를 떨며 최한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천막과 공작가를 바라보는 최한의 표정은 차분했으나-.
‘눈이 조금… 이상한데?’
약간 눈이 훼까닥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상당히 살벌한 분위기가 최한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긴 그럴만한 일이지.’
케일도 지금 상당히 화가 났다. 스스로 유독 많이 화가 났음을 인정할 정도로, 그의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저 차분함을 유지하려, 냉정하려 노력할 뿐.
‘나도 그런데, 최한이면 더 하겠지.’
그의 성정상, 더 극심한 분노를 느낄 터.
케일은 별다른 말을 더 최한에게 건네지 않고, 공작가 본채로 들어섰다.
문은 이미 불에 탄 것인지 아니면 부서진 것인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퍼석.
잿가루를 밟으며 케일은 앙상하고 처참한 공작가 안으로 들어섰다.
최한은 그 뒤를 따르며 검은 재들을 눈에 담았다.
‘…사냥꾼은 상상 이상으로 강한 집단이다.’
국왕궁과 공작가, 거대 상단을 순식간에 망가뜨렸다.
그로 인해 죽은 이들이 많았다. 그 사실에 최한은 분노하면서도, 슬퍼하면서도, 걱정이 들었다.
‘이렇게 강한 집단과 싸운다고?’
최한은 고개를 들어 케일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하얀 별 때와는 다르다.’
하얀 별 때는 케일 쪽이 한발 앞선 느낌을 항상 주었다. 하지만 이번 사냥꾼과 관련된 일에는 불시에 당한 급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런 급습이 우리에게 생긴다면-’
국왕궁이 왕세자 궁이 되고.
오르세나 공작가가 헤니투스 공작가가 되고.
플린 상단주가 죽은 것이 아니라 빌로스가 죽은 것이고.
나아가-
최한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더 강해져야 한다.’
생각에 빠져 있던 그에게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르세나 공녀의 침실과 서재에 먼저 가자. 라온.”
-알았다, 인간!
케일과 최한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계단으로 이동하기에는 계단이 부서질 수 있어, 그들은 비행 마법으로 3층으로 향했다.
3층은 통째로 오르세나 공녀가 사용한다고 했다.
명실상부, 오르세나 공작가의 강력한 후계자를 위한 공간이었다.
“허.”
케일은 탄식을 흘렸다.
-인간아, 이건 탄 게 아니라-
“그래, 아무것도 없네.”
3층 복도를 따라 존재하는 공간 어디에도 물건이 없었다.
“최소한의 가구를 제외하면 무엇도 없군요.”
“그래.”
서재에는 책상과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책장이나 책의 흔적은 없었다.
“이번 화재 사건 전에 오르세나 공녀가 흔적을 모두 지운 것일까요?”
“…글쎄.”
그런 것이라면, 분명 기사가 보고했을 것이다.
특이점이라고.
하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말은 원래 오르세나 공녀가 이렇게 살았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최한, 가서 알아보도록.”
“네.”
최한은 곧장 부서진 창틀을 넘어 아래로 낙하했다.
“음.”
케일은 최한이 저택을 내려가는 법을 묘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이내 다른 방으로 향했다.
“…침대뿐이군.”
침실에는 침대와 작은 테이블, 의자뿐이었다. 이마저도 거의 타버려 형체를 간신히 파악할 수 있는 정도였다.
“위로 올라가자.”
4층은 공작가 남매들이 사는 곳이었고, 5층은 공작 부부의 공간이었다.
“…여긴 다 탔군.”
심각할 정도의 불길이 4, 5층을 뒤덮은 것인지. 그나마 형체를 알아볼 수 있던 3층과 달리 엉망이었다.
위층으로 올라올수록 불의 여파가 강했다.
“라온, 마정석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불길을 일으키려면 어느 정도 실력이어야 하지?”
둘만이 있는 공간이라, 라온은 입을 열었다.
“음. 로잘린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실력이 되어야 한다! 으음.”
라온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인간아! 이거, 좀 마나가 익숙하지 않다.”
“그게 무슨 뜻이야?”
“그러니까. 대부분의 마나는 나한테 익숙한 마나다! 하지만 이 4, 5층으로 올라오니까, 아주 희미하게 다른 마나가 느껴진다. 약간-”
라온이 망설이다가 답했다.
“약간, 다른 세상의 마나 같은 느낌이다. 그, 다 똑같은 사과파이지만, 헤니투스 영지에서 파는 사과파이랑 왕궁에서 만든 사과파이 맛이 다르지 않나! 그런 느낌이다!”
아.
케일은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들었다.
“정말 아주 희미하게, 다른 마나가 이곳에 있다. 하지만 곧 사라질 것 같기는 하다. 이곳의 마나가 이 다른 마나를 밀어내려고 해서.”
케일은 이어진 부가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세계 마나인가 보네.”
사냥꾼은 차원을 넘나든다.
다른 세계의 마법사인 사냥꾼이 그 마나를 가져와 이런 짓을 꾸몄다면, 충분히 현재의 상황이 가능했다.
“…골치 아프군.”
케일은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차원이라.’
만약 오르세나 공녀나 이번 일을 벌인 사냥꾼 집단이 이 세계에 있지 않고 다른 세계로 갔다면?
그걸 어떻게 잡지?
케일은 차원을 넘나들 만한 힘이 없었다.
“…음.”
그의 생각이 깊어져 가던 그때였다.
“어? 인간아!”
라온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아, 저기 정문을 봐라!”
“응?”
케일은 라온이 보채는 목소리에 공작가 정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음?”
그의 미간에 더 깊은 주름이 파였다.
“뭐야? 저것들이 여길 왜 와?”
품이 넓은 소맷자락과 치렁치렁한 옷자락을 펄럭이며 정문의 기사들과 대치하는 사람들.
“죽음의 신 신관들 아냐?”
죽음의 신 신관들이, 그것도 한 스무 명 남짓의 꽤 많은 인원수가 공작가 정문 앞에서 무리 지어 서 있었다.
그 모습이 꽤 비장해 보였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온 저 할배는 누군가?”
그리고 총책임을 맡은 기사가 유일하게 공작가 안으로 들어선 한 노신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노신관을 밖으로 데려가려는 모습이었다. 현재 공작가는 외부인 출입 금지였으니까.
하지만 기사의 모습은 엄격하면서도 정중했다.
저런 모습을 기사가 보일 정도의 노신관이라면.
“주교라도 되나?”
주교급은 되어야 왕궁의 기사가 함부로 행동한 신관에게 저런 자세를 보일 터.
“인간아, 최한이 달려오고 있다!”
케일은 황급히 저택으로 달려오는 최한을 볼 수 있었다.
“음.”
왠지 골치 아픈데.
케일은 죽음의 신 신관들을 보자 알 수 없는 찜찜함이 밀려왔다.
‘케일 님께 알려야 한다.’
달려오는 최한 역시도 상당히 찜찜한 상태였다.
그는 조금 전 홀로 병사와 기사로 이루어진 벽을 넘어 저택 안으로 들어선 노신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우리는 우리 교단의 선지자가 될 분을 뵈어야 합니다.’
그는 스스로가 주교라고 하였다.
‘그대가 최한이군요.’
‘그대가 선지자, 아니, 사령관님께 우리의 뜻을 전해주겠습니까?’
무슨 뜻이냐고 최한이 묻기도 전에, 주교는 말했다.
‘죽음의 신께서 사령관님께 신물을 내리셨습니다. 이는 우리 교단에서 처음으로 생긴 일. 온 교단을 기쁘게 할 이 영광스러운 소식을 알려드려야 되어 이리 무례하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양해해주세요.’
그리고 최한과 기사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최한은 주교의 눈동자에 들어찬 속을 알 수 없는 음흉함을 알아챘다.
‘사실 그 음흉함 따위는 중요치 않아.’
주교의 음흉함이나 꿍꿍이 따위, 케일의 앞에서는 별것 아니다.
‘죽음의 신이라니!’
또 그 신과 연관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최한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인간아, 최한 하는 걸로 봐서 급한 일 같다.”
“…그러게.”
케일과 라온은 최한이 폐허가 된 저택 외관 구조물을 박차고 5층으로 황급히 올라오는 모습에 어색하게 대화를 나눴다.
“케일 님!”
최한이 숨이 가쁘지도 않은지, 가볍게 창문틀을 넘어 5층에 도달했다.
“어, 무슨 일이야?”
케일이 불안감을 애써 감추고 물었을 때, 그는 최한의 떨떠름한 표정을 보았다.
“죽음의 신 교단 주교가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죽음의 신이 케일 님께 성물을 보냈다고 합니다.”
케일은 듣지 못한 정보였다.
“아.”
떠오르는 것은 있었다.
죽음의 신을 만났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여의주를 대신할 만한 물건이 곧 너에게 배달될 거다.’
…그걸 교단에 성물로 내렸다고?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후에 이 일로 알베르가 ‘말하려고 했는데, 빌로스가 찾아오고 국왕궁이 무너지는 바람에 전하지 못했다.’라고 말하며 사과하는 일이 생겼으나,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케일은 나직이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 주교가 케일 님이 선지자라고… 온 교단이 기뻐하는 일이라고…….”
최한은 실시간으로 구겨져 가는 케일의 표정을 보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고, 케일은 고개를 숙였다.
“하아.”
깊은 한숨과 함께 케일은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할 말이 있긴 있는-,”
“어?!”
그 순간이었다.
둘을 지켜보던 라온이 고개를 어딘가로 홱 돌렸다.
채앵-!
동시에 최한이 검을 뽑아 들며 몸을 움직였다.
“역시!”
그의 눈동자는 5층 공작 부부 침실에 놓인 부서진 창틀 중 하나로 향했다.
‘매였군.’
검은 매가 이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플린 상단에서 본 그 존재가 맞으리라.
“응?”
케일도 그제야 그 매를 발견했다.
매의 빨간 눈과 케일의 눈이 마주친 순간.
펄럭.
매는 그 날개를 펼쳤다.
그 순간, 최한은 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적을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검부터 휘두르다니.”
매는 가볍게 최한의 검을 피했다.
그리고 시야를 가리는 하얀 회오리바람이 검은 매를 감싼 순간, 케일은 다시 달려들려는 최한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잠시.”
“네?”
“잠시, 멈춰봐.”
목소리는 분명 케일이 처음 듣는 목소리다.
하지만 저 늘어진 듯한 어조와 말투.
익숙하다.
휘이이–
순식간에 회오리바람이 사라지고, 한 소년이 바닥에 내려섰다.
타닥.
백발에 적안을 가진 소년이 입을 열었다.
“한이는 아직 배울 게 많구나.”
소년은 케일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누군가를 꼭 닮아 있었다.
“록수야, 아니. 케일아. 오랜만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