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9
78화.
동굴 안에 기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리타나는 케일을 보던 시선을 돌려 수하들을 바라봤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싶어서였다.
수하들도 그녀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케일 씨, 무슨 말씀이신지 제대로 들어볼 수 있을까요?”
동굴 벽에 기대듯 앉아 있던 리타나가 몸을 바로 했다. 가죽 갑옷이 어느새 모닥불에 말라, 전사로서의 그녀를 잘 보여주었다.
“저는 로운 왕국 사람입니다.”
“동북쪽 분이시네요. 저희는 정글에서 전사로 일하던 이들입니다.”
“그러시군요. 전 로운 왕국 구석의 작은 영지 사람입니다, 음.”
케일은 단지 ‘전사’라고 정체를 숨기는 리타나에게 살짝 난감하다는 듯 볼을 긁적이며 조심스레 말했다.
“작은 귀족 가문의 사람입니다. 그 덕에 어디 여행 다니기에 돈이 부족하지는 않죠. 일행도 있고.”
“일행이요?”
“네. 숲은 온과 둘이서 들어왔지만, 저를 믿어주고 따라주는 이들이 있지요.”
우두머리와 무리의 개념을 중시하는 리타나와 수하들의 눈빛이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
“아무튼,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운 좋게 기연을 얻을 일이 있었습니다.”
“기연이요?”
케일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힘겨운 기억을 떠올리듯 눈가가 찡그려졌다.
“네. 바다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가 간신히 빠져나온 뒤 한 동굴에서 발견한 기연이지요. 그때, 상처 입은 이를 발견해서 구할 수 있었는데. 그게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유인 것 같아 얼마나 다행이던지, 아.”
그는 말을 잇다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하려던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는데.”
“케일 씨는 많은 분을 구하신 것 같습니다.”
리타나는 얌전한 묘족 아이 온을 보다가 케일을 바라봤다. 이 정중하고 예의 바른 귀족은, 귀족이라 뻗대지도 않았다.
“아닙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참으로 겸손하고 선했다.
“아무튼 그때 제가 얻은 힘이 있습니다.”
“무슨 힘이죠?”
리타나는 본론이 나올 것임을 깨닫고 케일의 입을 주시했다.
“불을 제압하는 물. 어떤 불이든 제압하는 성질이죠.”
그녀와 수하들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확실히 일반적인 힘과 달라 보였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정확했다.
이 물은 일반 물과는 달랐다.
연금술이든 뭐든 어떠한 성질을 지녀도 ‘불’이면 제압할 수 있었다.
본래는 툰카가 발견했던 그 기연. 그는 그 물을 마심으로써 불 속에서도 말짱한 신체를 얻었다.
그러나 케일은 ‘심장의 활력’이 있었기에 화상 따위는 겁도 안 났다. 조금 아프겠지만, 바로 회복되는데 굳이 쓸 필요가 있겠나.
대신 그는 그 물의 속성을 그대로 라크가 구해온 고대의 힘 ‘스며드는 목걸이’에 부여했다.
케일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하지만 사용하는 힘의 총량이 정해져 있어 얼마나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
리타나가 탄식을 흘렸다. 그녀는 몇 번 입술을 달싹이다가 물었다.
“귀한 힘일 텐데, 그걸 저희에게 써도 됩니까?”
케일은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꾹 눌렀다.
힘의 총량이 있기는 했다.
‘대략 서대륙 전체에 불바다가 났을 때, 그 불을 제압할 정도?’
서대륙 전체에 나는 불을 케일 자신이 제압할 게 아니면 평생 써도 부족하지 않을 총량이었다.
어쨌든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리나라고 불러주세요.”
수하 중 한 명이 살짝 멈칫했다. 케일은 이를 모른 척하며 리타나의 애칭을 불렀다.
“리나 씨.”
“네.”
“힘에 귀하고 천하고는 없습니다. 그 힘을 어디에 사용하냐.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리타나와 수하들은 어느 때보다도 또렷한 케일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제가 가진 힘으로 자연을 지키고 동식물, 그리고 사람들 목숨과 그들의 터전을 지킬 수 있다면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타나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손아귀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심장이 찌르르 울렸다.
“물론 제가 주인으로 인식된 힘이라 직접 가서 사용해야 하는지라, 조금 시간이 걸리고 번거로우시겠지만.”
“…불길 속에 들어가서 사용하셔야 합니까?”
“불길 속은 힘들 것 같고. 가까이에는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케일은 리타나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고마움과 미안함 모든 것들이 소용돌이 쳤다. 그리고 리타나의 수하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중에 두어 명은 케일을 아직 경계했지만, 그 경계 안에도 고마움이 있었다.
케일은 마지막 한 방을 날렸다.
“제 힘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모두를 구하고 돕고 싶네요.”
-내가 알던 약한 인간이 아닌데. 아니지, 착하긴 한데. 그래도 이건 아닌데. 아무튼 구하는 건 위대한 일이다!
네 살의 혼란이 증폭되었다가 결론을 내려 버렸다. 온은 이제 아예 하품을 하며 케일을 외면했다.
“정말, 정말 고마워요.”
케일은 그 고마워하는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는 냉철하게 리타나와 수하들을 살폈다.
2주. 보살펴야 하는 사람들과 정글을 놔두고, 단 하나의 희망만을 품고 온 리타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저 헤매기만 하며 한계에 치달아 갔을 터.
그들에겐 케일이 용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할지.”
“아닙니다, 은혜라뇨. 아직 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가 이 일을 하기 위해 이 숲에 들어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리타나는 욕심 하나 보이지 않고, 오로지 선한 마음만이 가득한 케일의 모습이 감동스러웠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신념으로 여겨온 것이 있었다.
복수는 열 배로, 은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케일 씨, 그래도 이 은혜를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어요. 저희에게 길을 안내해 주고 불길에 가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그리고 한계가 있는 힘을 써주시는데, 이렇게 그냥 받을 순 없어요.”
“이거 참. 괜찮은데.”
케일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작게 손바닥을 부딪쳤다.
“아!”
그는 쑥스럽다는 듯 리타나와 수하들에게 말했다.
“정글과 관련된 책에서 1구역에 대한 글을 봤습니다. 그곳이 해안가로 울창한 정글과 어울려 참 아름답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석양이 아름답다고요. 그래서 그때 책을 읽으며 그런 곳에 별장이 하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지금 불이 난 1구역.
그곳의 동쪽 끝에 있는 해안가에는 금광에 버금가는 물질이 묻힌 곳이 있었다.
한 달 뒤, 동대륙에서 건너온 주술사를 통해 불길은 겨우 잡힌다. 그 주술사는 해안가의 바닷물을 끌어들이러 갔다가 우연히 금덩어리를 발견한다.
그 금덩어리는 ‘마정석’ 동산.
진짜 광산은 아니고, 최상급 마정석이 무더기로 묻혀 있을 뿐인 곳. 주술사는 이를 혼자 몰래 알고 있다가 다 캐서 도망쳐 버린다.
“불을 모두 다 끄고 나면 그곳에 석양을 보러 한번 가보아도 되겠습니까?”
리타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아름다운 1구역 해안가. 하지만 그곳도 불타올랐다. 그래서 흉한 풍경일 것을 눈앞의 남자는 알 것이다. 그럼에도 땅이나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곳을 보고 싶다고 말하는 심성이, 그녀는 놀라웠다.
그래서 그녀는 먼저 말을 꺼냈다.
“구경으론 부족할 것 같아요.”
“네?”
“별장을 지어드리겠습니다. 1구역이 싫으시면 다른 곳에라도 지어드릴게요.”
“아, 아닙니다! 무슨 그런, 과한! 괜찮습니다.”
케일은 위로 씰룩이며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제어했다.
“아뇨. 별장 지어드리겠습니다.”
“아, 그러시면.”
난감한 표정으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케일은 말했다.
“후에 제가 불을 끄는 데 도움이 되었다면, 별장은 너무 크고, 별장을 지을 만한 작은 터를 얻을 수 있을까요?”
리타나는 케일이 작은 귀족 가문이라고 했지만 보면 볼수록 그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옷 재질이나, 착용하고 있는 마법 주머니의 외양, 그리고 그가 가진 기품.
분명 별장이나 땅 따위는 쉬이 살 수 있는 자일 것이다.
“네, 얼마든지요. 케일 씨가 원하는 만큼 터를 잡으세요. 꼭 그래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됐다.
케일은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를 참으며,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겠습니다.”
물욕에 전혀 관심 없지만, 워낙 그러니 알겠다고 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리타나는 이 모든 일이 잘 해결되면 더욱더 은혜를 갚아서, 케일이 원하는 이상의 것을 해줘야겠다 다짐했다.
그런 리타나를 케일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케일은 온을 쓰다듬다가 눈이 마주쳤다.
‘목표는 땅인데! 그렇죠?’
그렇게 온의 눈동자가 한가득 물어왔지만 케일은 모른 척하며 마법 주머니를 펼쳤다.
“일단 뭐라도 드시겠습니까? 다들 많이 수척해 보이시는데.”
“아, 그게.”
케일은 마법 주머니에서 비크로스를 닦달해 만든 음식들을 꺼냈다. 그는 자신의 편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법을 알고 있었다.
밥 주는 놈이 착한 놈이다.
최한도 그렇게 꼬이지 않았던가. 케일은 리타나의 수하가 준 담요를 매만지며 부드러이 말했다.
“이 담요 값입니다. 같이 나눠 먹고 내일 움직입시다.”
분위기는 훈훈을 넘어 뜨끈뜨끈해져 갔다.
“일단 제 일행이 있는 마을로 먼저 돌아가고, 그다음에 이 숲을 가로질러 정글에 가는 것으로 하죠. 어서 드세요.”
케일은 리타나와 수하들을 더 구워삶았다.
“그래야 힘을 내어 다 구하러 갈 것 아닙니까?”
의지와 단호함이 담긴 목소리에 리타나와 수하들 머릿속에 기다리고 있을 이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정석이 케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리타나는 마법 주머니에 있어서 신선하고 따뜻한 음식들을 보며 케일이 내민 포크를 잡았다. 그녀는 중얼거렸다.
“전설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었어.”
“네?”
케일은 다 들었지만 못 들은 척 되물었다.
“아닙니다. 맛있네요, 케일 씨.”
“다행입니다.”
리타나와 수하들은 2주 만에 마음은 편안하고 배부른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온은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케일을 힐끗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
“케일 씨, 신기하네요.”
“그렇죠? 온이 대단한 거죠.”
케일은 제 뒤를 따르는 리타나와 수하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아침이 되어 한층 밝아진 곳에서 마주한 여섯 사람은 확실히 무사로서의 기운이 그대로 풍겨져 왔다.
서대륙에서 무사와 전사는 조금 달랐다.
툰카는 전형적인 전사였고, 북쪽의 기사들은 무사에 가까웠다. 그리고 정글인들은 이 둘의 결합이었다. 무를 숭상하고 그들 나름의 무술에 전진하면서도 변칙적인 전투를 곧잘 해내었다.
“리나 씨, 조금만 더 가면 호이크 마을이 나올 겁니다.”
케일은 자신의 말에 우비를 깊이 눌러쓰는 리타나와 수하들을 볼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국경을 넘게 되었다. 그들은 남색의 우비로 최대한 외양을 가렸다.
특히 리나타는 자신의 검은 머리칼을 숨겼다. 왕족의 머리칼은 완전한 검은색이었다.
남부인 중 체격도 작은 편인 데다 신분을 숨기는 리타나에게서 강자의 모습은 알아채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는 안다.
‘최한 한 수 아래.’
툰카와는 차원이 다른 강자였다. 최한 한 수 아래란 소리는 아주 강하다는 소리였다. 특히 흑표범을 탄 그녀가 정글에서 펼치는 창술은 도저히 어느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다 들었다.
특히 환한 대낮에도 숲 그림자로 어두운 정글에서 그녀는 적들에게 죽음의 사자와 같았다. 그러니 정글을 통제하는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우두머리는 포용심과 더불어 강해야 했다. 자신의 무리를 지켜야 하니까.
“이제 곧 마을입니다.”
케일은 조용히 뒤를 따르는 리타나 일행을 느끼며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온이 안개를 조종해 길을 열어주었다.
점점 안개가 옅어져 갔다.
“아.”
뒤에서 수하들의 탄성이 들려왔다. 나올 수 없는 길을 점점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 것이다. 케일은 묵묵히 걸었다.
느긋하게 걷는 그의 뒤를 수하들과 리타나는 더 믿음을 가지고 따랐다.
투둑. 투둑. 케일이 리타나에게서 받아 새로 입은 우비를 빗방울이 두드렸다.
-다 왔다.
그리고 마침내 안개가 걷히며 호이크 마을의 입구가 보였다. 그는 입구로 다시 돌아왔다.
“하.”
케일의 입에서 탄식과도 같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냐아아옹!
온이 케일의 품을 벗어나 바닥에 내려서서 뛰어갔다.
냐아옹!
홍이 뛰어왔다. 남매는 서로에게 볼을 비벼댔다. 그리고 케일은 팔짱을 끼며 그 광경을 보다가 입구의 비석 옆에 서 있는 이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다들 비 오는데 뭐 하는 거야?”
한스와 최한, 로잘린. 그들이 케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케일의 타박에도 저마다 다른 반응으로 못 들은 척했다.
“공자님, 부집사로서 잠이 안 오더라고요.”
“케일 님, 춥습니다. 뒤에 분들은 누구시죠?”
“공자, 잘 다녀왔어요?”
케일은 팔짱을 풀며 그들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들 앞에 서서 말했다.
“돌아왔어.”
케일은 일행이 짓는 미소를 썩 보고 싶지 않아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그를 쳐다보는 이들이 있었다. 돌아오지 않을 이들을 기다리는 사람들.
케일은 비석 옆에 앉아, 숲으로 들어가는 자신을 말리던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노인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노인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리고 있었다.
케일은 노인에게 담담히 말했다.
“노인장.”
기다리는 것.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들을 그리워하는 것을 케일은, 김록수는 해보았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는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기다려 본 적이 있었다. 그는 노인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용은 없었어.”
전설은 깨졌다.
노인의 눈동자에 서서히 물기가 차올랐다. 노인은 아무 말도 못하고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노인과 사람들을 지나치며 무심히 덧붙였다.
“숲 안에 옷가지들과 유골들이 있더군. 원하면 챙겨오도록 하지.”
그것이 케일이 해줄 수 있는 바였다.
그는 일행 앞에 섰다. 그러고는 다른 외양의 리타나 일행과 자신을 번갈아 바라보는 최한을 비롯한 일행에게 말했다.
“짐 싸.”
그는 숲을 가리켰다.
“정글에 간다.”
정글 1구역을 통째로 태우는 불길. 그 불길을 케일이 홀로 제압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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