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4
93화.
케일은 최한의 대답을 듣지 않고 피 칠갑을 한 고래 앞에 섰다.
‘일부러 낸 상처네.’
큰 상처 없이 자잘한 상처가 고래의 피부에 가득했다. 이 정도는 포션을 쓰면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없앨 수 있었다.
“피를 썼나 봐?
조금의 걱정도 없는 평온한 물음에 위티라는 눈꼬리를 휘었다.
“조금이요. 제가 선두니, 그게 더 나을 것 같아서요.”
위티라는 가장 호전적인 범고래들보다 앞에서 싸우는 이였다. 거기에다 몸에 상처가 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성정이었다.
그런 마음 자세가 어쩔 때는 전쟁에서는 필요했다.
전장에서 고래족과 그들 편의 수인과 바다 생물이 싸울 때, 후계자인 그녀가 앞장서서 바다에 피를 풀며 죽은 마나를 섭취한 인어족을 뒤로 물린다면.
그 얼마나 감동이겠는가. 사기 하나는 증폭될 것이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지만.’
케일은 사기고 나발이고 안 다치는 게 중요했다.
“일단 천막에 가서 얘기를 좀 들어볼까?”
“좋아요.”
취이이익.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곧 위티라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해안가에 내려섰다.
‘무서운데.’
피 칠갑을 한 모습 그대로 사람이 되니 상당히 무서웠다. 케일은 슬그머니 위티라에게서 한 걸음 옆으로 떨어져 천막으로 걸어갔다.
“따라와.”
“네.”
론이 있는 천막이 아닌 다른 천막에 들어선 케일은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파세톤에게 대충 들었지?”
“네. 인어족을 돕는 이들이 심상치 않길래 조금 머리가 아팠는데. 그렇게 큰 단체일 줄은 몰랐네요.”
위티라는 포션을 꺼내 마시고는 덧붙였다. 포션을 마시자 그녀 몸의 상처가 급격하게 나아져 갔다.
“며칠 전부터 배를 탄 검사와 창술사가 해수면 위에서 아래로 공격을 해대니 영 거슬렸거든요. 저희 고래족과 고래들은 어쩔 수 없이 수면 위로 한 번씩 올라와야 하니까요.”
음? 며칠 전?
케일은 멈칫했다.
위티라는 말을 이었다.
“불 마법을 주로 쓰는 마법사도 골치 아프지만, 특히 검사 한 명이 해수면 위로 올라섰을 때는 해수면 아래로 오러를 쏘아 보내니 영 걸리적거려요.”
오러?
오러를 쏘아 보내?
그건 소드 마스터 수준 아닌가?
…이거 예상과 조금 다른데?
“그리고 창술사도 여간 거치적거리는 게 아니어서. 동대륙의 창술을 익힌 자 같아요. 오러의 강도는 소드 마스터 아래 수준이지만 굉장히 정교하게 오러를 사용하더군요. 곧 스피어 마스터가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것도 거의 소드 마스터 근접한 수준 아닌가?
예상과 많이 다른데?
케일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생각보다 적들이 더 셌다.
케일은 태연한 고래족 위티라를 바라봤다.
하긴 고래족은 개체가 적어서 그렇지, 고래왕의 혈통인 혹등고래는 최한보다 강했고 호전적인 범고래가 최한 정도였으며 나머지는 그 아래였다.
“상당한 자들이 지원을 나섰네.”
“그렇죠. 그래도 전투 인어들만 어느 정도 처리하고 나면 편할 것 같아요.”
죽은 마나를 섭취한 전투 인어들은 고래족을 피해 다닌다고 했다. 대신 다른 해양 생물과 바다 수인족들을 기습한다고 한다.
케일은 위티라에게 현재 전투 상황에 대한 간략한 내용을 전해 들었다.
“검사와 창술사, 마법사는 그럼 주로 고래들을 공격하는 건가?”
“네.”
고래와 고래족은 전투 중이라도 수면 위로 솟아올라야 하는 순간이 필수적으로 생긴다. 비밀 단체에서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공격을 감행한다고 한다.
“고래족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고래들 중에 다친 아이들이 많아요.”
태연하던 위티라의 얼굴에 분노가 서렸다. 수인족은 아니지만 고래는 똑똑하고 강한 생물이었다. 그들은 고래족과 함께 각각 전투 지역 최전방에서 인어와 부딪쳤다.
“…세상을 떠난 아이들도 많고요.”
그래서 위티라는 그 조력자들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인어족들이 자꾸 약한 해양 생물과 수인족들을 공격하는 바람에, 일부러 그러는 것임을 알면서도 함부로 하이스 섬 5까지 갈 수가 없었다.
현재 고래왕 시켈러는 조력자들이 있는 하이스 섬 5에 언제 쳐들어갈지에 대해 고민 중이었다.
“그렇군.”
그런 와중에 케일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단체에 대한 정보와 자신들을 조금이라도 돕고 싶다는 말. 그 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랐다.
적어도 해수면 위에서 그놈들과 케일 일행이 싸운다면 자신들의 운신이 더 쉬울 것 같았다.
“네. 그래서 염치없지만, 공자가 조금만 도와주면 저희들 운신이 편해질 것 같아요.”
위티라가 생각하는 케일의 도움은 그것이었다. 함께 싸워주는 것.
그러나 케일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가만히 생각에 빠져 있던 케일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위티라.”
“네.”
“섬을 부술까 하는데.”
“…뭘 부숴요?”
아직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묻는 위티라의 앞에 지도가 펼쳐졌다.
촤라락. 검은 용의 앞발로 펼쳐진 지도.
라온의 앞발이 한 곳을 가리켰다.
“하이스 섬 5를 지도에서 없앨까 해.”
케일은 꽤 진지하게 말했다.
하이스 섬 1~15까지는 대부분 두 세시간 거리 안에 서로 인접해 있는 기암괴석 형태의 섬들이었다.
론의 말에 따르면 하이스 섬 5에는 비밀 단체를 제외하고는 생물체가 없다고 했다.
“어차피 배는 조금 더 몰아서 하이스 섬 7에 정박하면 되니까.”
해상로를 이용하는 이들에게는 하이스 섬 7이 대안이 될 것이다.
“아니, 그게 가능- 아.”
위티라는 말을 하다 말고 떠오른 생각에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검은 용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가능하다, 고래야!”
“네, 드래곤 님 말씀대로 가능하겠네요.”
불가능할 수가 없었다. 검은 늪보다는 하이스 섬 5가 몇 배 더 크지만, 부수는 것이니 컨트롤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 대신 두 가지가 필요해.”
“뭔가요?”
위티라의 자세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 케일은 그 모습에 위티라가 역시 바다의 종족임을 느낄 수 있었다.
섬. 땅이 부서지는 것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반대로 케일은 그 섬에 비밀 단체 외의 생물이 살았다면 오랜 고민 끝에 포기했을 것이다.
“일단 그 두 가지에 앞서 전제가 하나 필요해.”
“전제요?”
“그래. 우리는 최대한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싸울 생각이다. 특히 그 조력 단체를 대상으로 할 때는 말이야.”
위티라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도와주다가 괜히 조력 단체와 엮어서 나중에 곤란한 일을 겪으면, 그건 그것대로 좋지 않은 결말이었다.
그리고 섬을 부숴주겠다는데 정체가 무슨 상관인가.
“네, 알겠습니다.”
“그래. 첫 번째로 우리는 탈것이 필요해.”
“고래를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작은 애들로.”
“네. 기동성에 은신도 염두에 둘게요.”
늑대족 아이들이 탈 만한 작은 고래면 되었다.
“두 번째는.”
케일과 위티라의 시선이 부딪쳤다.
“날뛰어줘야겠어.”
“…날뛰어요?”
“고래족들이 날뛰어서 시선을 끌어주었으면 해.”
케일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면 그사이에 하이스 섬과 그 섬 아래 인어들의 기지를 모두 날려주지.”
“시선을 끌어달라는 말씀이시군요. 검사와 창술사, 마법사를 모두 끌어내면 될까요?”
“그래.”
“아!”
위티라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마법사는 검사와 창술사가 온 뒤로 섬 근처에만 있는 것 같아요. 섬 근처로 다가갈 때 빼고는 나오지 않더군요.”
“그래?”
잘됐다.
섬과 함께 그 피에 미친 레디카를 날려 버린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네. 조금… 정신이 이상한 자 같더군요.”
위티라의 표정이 말 그대로 썩어들어 갔다. 케일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네가 피를 뿌리면서 싸우니까 미친 듯이 웃으면서 달려들었지?”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가 알아낸 정보로, 걔는 빨간색에 환장하거든.”
“아.”
위티라가 염려 가득한 표정으로 케일을 바라봤다. 검은 용이 휙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돌려 케일을 응시했다.
그 시선을 받으며 케일이 제 붉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는 태연히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들키면 곤란하다는 거지.”
“그러하구나, 인간!”
“그렇군요.”
고래와 용이 납득했다.
위티라가 중얼거렸다.
“그 검사도 이상하던데.”
“검사?”
“네. 그 여자는 마법사랑 비슷한 성향 같더군요. 뭐, 그래도 마주칠 일이 없을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위티라가 싱긋 웃었고 검은 용이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뭐, 그렇겠지.”
그리고 케일은 대충 넘겼다.
그는 위티라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일정을 간단히 논의한 후 헤어졌고, 다음 날이 되자 늑대족 아이들과 힐스만을 배웅했다.
“고래가 잘 안내해 줄 테니까 하이스 섬 12에서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어. 내가 준 옷도 잘 챙겼지?”
“네! 공자님! 챙겼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잘 인솔하겠습니다!”
케일은 부단장 힐스만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며 라크와 메스를 바라봤다. 두 소년은 믿음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라크는 조금 소심한 편이었지만 제 동생들과 있을 때는 의젓해졌다. 아무래도 책임감 때문인 듯했다.
“그럼 가 있어. 문제 생기면 신호탄 쏘아 올려.”
“네.”
4m 내외의 청소년 고래와 아기 고래를 탄 12명의 무리가 각자의 무기를 챙겨 들고서 하이스 섬 12로 향했다. 이를 지켜보던 케일은 옆에 서 있는 비크로스에게 말했다.
“속상해도 참아. 아버지 곁에는 네가 있어야 돼.”
“압니다, 공자님.”
“어.”
“부탁드립니다.”
케일은 본인이 싸우고 싶지만 참고 있는 비크로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걱정 마라.”
그는 비크로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머지 일행들을 바라봤다.
로잘린, 최한, 온, 홍, 그리고 라온. 케일과 함께할 이들이었다.
케일은 마법 주머니에서 여러 개의 검은 옷을 꺼내 들었다.
“자, 입자고.”
최한의 표정이 요상해졌다.
“…이걸 또 입습니까?”
붉은 별 하나에 하얀색 별 다섯 개가 심장 근처에 새겨진 검은색 전투복과 검은색 복면.
과거 라온을 구하러 갈 때 입었던 비밀 단체 복장이었다.
물론 진짜와 다른 조잡한 옷이었다.
“어.”
간단한 대답에 최한은 옷을 갈아입었다. 인간 셋만 옷을 갈아입었고 라온과 로잘린이 마나를 모았다.
“자, 비행한다.”
라온의 말을 신호로 케일 일행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들은 하이스 섬 5로 향했다.
빠르게 비행하여 하이스 섬 5 근처에 당도한 케일의 귓가로 거대한 울음소리와 명령이 들려왔다.
우워어어어!
싸워라!
케일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바다가 거칠게 일렁였다.
촤아아악!
등에 엑스 자 흉터가 있는 혹등고래 하나가 해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다가 다시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해수면이 크게 요동쳤다.
고래족과 고래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어우, 장난 아닌데?”
아주 바다 한가운데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우워어어!
고래 한 마리가 해수면 위로 솟구쳤다. 범고래의 입에는 인어족이 물려 있었다. 인어족은 이미 죽어 있었다.
“인간, 너는 절대 저기로 가지 마라.”
“맞습니다, 케일 님. 가지 마십시오.”
“막내 말이 맞은데! 가도 혼자 가면 안 되는데.”
케일은 일행들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내가 미쳤다고 가겠어?”
그때였다.
“음?”
최한이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그 행동에 케일도 따라 아래를 내려다봤다. 저 아래, 아주 아래쪽에 위치한 바다가 보였다.
‘절대 가면 안 되겠네.’
배 두 대가 고래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마법 실드가 둘러진 배의 선미에는 각각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중 검사로 보이는 금발의 여성은 검을 바다로 겨누고 있었다.
그 검에는 황금빛 오러가 둘러져 있었다.
검사는 검을 허공에 휘두르며 뭐라 외쳤다.
“뭐라는 거지?”
케일의 물음에 역시나 라온이 답해주었다.
“피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라고 했다.”
미친.
케일은 제 검은 복면을 깊이 눌러썼다.
‘위티라가 비밀 단체 일원을 하이스 섬 5에서 바다로 최대한 끌어들여야 할 텐데.’
그래야 안전히, 편하게 도망칠 수 있었다.
고래들이 날뛰며 인어와 비밀 단체 일당을 데리고 가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보던 케일이 멈칫했다.
콰아아앙!
검사의 검에서 쏟아져 나온 황금빛 오러가 바다와 부딪치며, 바다가 몇 미터 갈라졌다.
“라온.”
“왜 그러나, 인간?”
“빨리 가자.”
케일은 심장이 후들거렸다. 적의 저런 힘을 보는 것은 꽤나 심신에 좋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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