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99 Princess of Black Flame RAW novel - Chapter 16
16. F급 헌터 이유라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 달리는 승용차 안에는 적막만이 가득했다.
[신수 ‘어둠을 방랑하는 고양이’가 우리 언니가 F급이라니, 우리 언니가…… 라며 땅을 칩니다.]고양이는 줄곧 저 상태였다.
“F급 헌터…….”
핸들을 잡고 있는 제휘도 어딘가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실,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다뿐이지 은하 역시도 F급 판정은 의외라고 여기고 있었다.
비록 30년 전에 랭크 시스템은 없었으나, 은하는 분대장을 맡을 정도로 윗선에서 인정받는 헌터였다. 전투적인 면에서 우월한 ‘화염’이라는 고유 능력 덕분이기도 했다. 하물며 당시와는 달리, 지금의 은하는 신수와 계약도 맺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F급이라니.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다.
‘그러고 보니 신수와의 계약 유무도 측정 결과에는 표시되지 않았지.’
그건 은하의 신수가 12신수에 포함되지 않는 고양이이기 때문일까? 어찌 됐든 다행이다. 제약상 고양이와 계약했다는 사실은 숨겨야 했으니 말이다.
‘설마.’
고양이와의 계약 유무가 측정기에 입력되지 않았기 때문에 F급으로 나온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은하는 자신이 약하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고양이와 계약하기 이전에도 말이다.
그렇게 세 사람이 각기 다른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저택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제휘가 차를 세웠다.
“도착했습니다.”
“수고했어. 잠시 차에서 기다려.”
먼저 차에서 내린 시우가 뒷문을 열었다. 은하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확인한 그는 문을 닫고 이번에는 트렁크를 열었다. 그러곤 박스 하나를 꺼냈다.
“이게 뭐지?”
“단말기입니다. 직접 뜯어 보시죠.”
박스 안에는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기계가 들어 있었다. 은하의 기억 속 삐삐와 꽤 닮은 형태였다.
“앞으로는 이 단말기가 게이트 내에서 선배의 파트너가 되어 줄 겁니다. 이 작은 녀석이 전투를 파악하고 데이터를 수집하죠.
일정 경험치가 쌓이면 그때 다시 측정기에 가서 랭크를 갱신할 수 있는 거예요.”
그는 단말기의 사용법에 대해 찬찬히 알려 주었다. 사용법이라고는 해도 조작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단말기를 살피던 은하가 고개를 들어 시우의 표정을 확인했다. 측정하기 전과 달라진 바 없는 태도였다.
의문을 가진 은하가 단도직입적으로 말문을 열었다.
“……계약 파기 안 해?”
그러자 함께 단말기를 살피고 있던 푸른 눈동자가 우뚝, 은하에게 멈추었다.
“파기라니요?”
“결과. F급이었잖아.”
그는 화제성을 가져다줄 헌터를 원하는 듯했다. 1세대 헌터라는 것을 숨기고 있는 와중에, 랭크까지 F급으로 나왔으니 더 이상 그가 은하를 고집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잠시간의 침묵 후, 그녀의 말의 요지를 파악한 시우가 픽 웃음을 터뜨렸다.
“상관없습니다. 선배가 F급이 아니란 것은 내가 아니까.”
“그럼 왜 측정 결과가 그렇게 나왔지?”
“그거야 저도 모를 일이죠.”
협회가 소유한 측정기는 세계 헌터 관리국에서 사용하는 최신식 측정기와 동일한 기계였다. 지구에서 가장 믿을 만한 측정기라는 소리였다.
단 한 번의 오류도, 오차도 없었던 공식 측정기가 은하에게만 오류를 보였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이상한 점에 대해 좀 더 알아볼 필요는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F급 헌터가 저와 호각으로, 혹은 그 이상의 실력으로 전투를 벌였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이래 봬도 저, S급이라니까요. 거기까지 말한 시우는 휙 등을 돌렸다. 휴대전화 액정으로 시간을 확인한 그는 서둘러 다시 차에 탔다.
“먼저 들어가세요. 저는 다음 일정이 있어서. 단말기에 대한 자세한 사용법은 내일 박 매니저가 알려 드릴 테니 오늘은 푹 쉬십시오. 계약 파기에 대한 점은 걱정하지 마시고요.”
시우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F급은 최하위 랭크이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작은 전투로도 많은 양의 경험치를 습득할 수 있어요. 앞으로의 성장이 그만큼 무궁무진하다는 소리죠.”
“결과지에 따르면 내 잠재력은 4%던데.”
“말씀드렸잖습니까. 저는 측정 결과를 믿지 않습니다.”
시우가 차 문을 열었다. 차에 올라타기 직전, 그가 마지막으로 옅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기계가 내린 결과 따위, 행동으로 부수면 될 일입니다.”
* * *
그러나 행동으로 부술 기회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면허증과 단말기도 분배받았겠다, 원래라면 헌터 활동을 진즉에 시작하고도 남았을 시기였으나 쉽지 않았다. 다 F급 헌터라는 낙인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이라고 할까. 은하는 현대 문물을 접하고 배울 시간을 충분히 마련하게 되었다.
은하는 한층 익숙해진 모습으로 마우스 휠을 내렸다.
한눈에 보아도 좋은 기사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은하는 마우스 휠을 내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고작 모니터에 떠오른 픽셀들에 상처받는 일은 없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바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차림새만 해도 눈에 띄는 신예 헌터가, 유명 길드 늑대를 등에 업고 나타났다. 더구나 측정 당시 주변에 많은 기자들이 와 있었다. F급 측정 결과가 나왔을 때, 유리창 너머까지 들려온 비웃음 소리가 아직도 선명했다.
은하는 다른 창을 열어 보았다.
딸깍.
마우스 버튼 소리가 고요한 방 안을 울렸다.
[제목] 늑대 길드 또 시작이네ㅋ 늑대가 늑대한 거지, 뭐ㅇㅇ [작성자]□□(121.204)│2031.5.29 PM 7:45│[조회] 473,886│[추천] 26,642 [내용] 이번에도 비리 냄새 풀풀 나네 ㅋㅋ 흑염의 프린세슨지 뭔지 이명도 개 오그라듬;;┖>□□: 아니 근대 대체 저런옷 입고 어케 싸우겠다는거임;;; 지 옷에 지가 밟고 넘어질 듯
┖>□□: http://hunterprofile.co.kr/main/12232643/?id=eFHSdc 여기 들어가 보셈ㅋㅋㅋㅋ F랭이라던데?
┖>□□: 늑대도 조빱이넼ㅋㅋㅋ 얼마나 지원자가 없으면 F랭을 용병으로 쓰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F급…… ㄴㅇㄱㄴㅇㄱㄴㅇㄱㄴㅇㄱ
┖>□□: 그래서 XX의 칼날 극장판 9기 언제 나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ㅁㅊ
-더보기-
…….
…….
쟤처럼 검은 드레스 입고 양산 들고 있다고 햇대
[댓글] 831┖>□□: 만약 그 몬스터 따라서 컨셉 잡은 거면 ㄹㅇ 정신병 수준 컨셉충인듯ㅋ
┖>□□: 111 나도 들은 적 있음!! 남자든 여자든 보이는 대로 유혹해서 불로 태운다던데 ㅋㅋㅋㅋㅋ
┖>□□: 오, 맞네. 쟤도 늑대 길드 윗선 홀려서 들어갔다던데 ㅋㅋ 나 아는 형이 늑대 길드 인사팀에 있어서 들었음
┖>□□: 옛날에 빨간마스크 컨셉 헌터도 잇지 않앗음?
┖>□□: 아 그 일반인 죽이고 잡혀드간 애? 걔 지금 교도소에 있자나 ㅇㅇ
┖>□□: 요즘 헌터가 인기많고 돈되는거 아니까 개나소나 헌터되겠다고 염병이네ㅋㅋㅋ 어휴 각성만하면 다 헌터 되는줄 아나 게이트 들어가서 팔이라도 잘려봐야 정신을 차리지;;;
똑똑.
마우스 휠을 내리던 손가락이 멈추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접니다, 헌터님.”
제휘였다. 문을 열자 양손에 커피 두 잔을 든 그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커피, 드실 수 있어요?”
“네.”
“다행이네요. 아메리카노로 사 오기는 했는데 혹시 시럽 필요하시면 말씀하시고요. 아, 노트북 사용은 좀 익숙해지셨습니까?”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자꾸 잊어서 그냥 거기 붙여 놨어요. 그 외에는 문제없었고.”
노트북 모니터 가장자리에 작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Wifi : K_GiGA_10G_NQFidg
패스워드 : 1tlstldn2CHLRH!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제휘의 눈빛에 묘한 의문이 서렸다. 지난번부터 생각한 건데, 이렇게 젊은 사람이 이 정도로 현대 문물과 친하지 않은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영 이상했다.
제휘는 그것에 관련해 시우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돌아온 대답은 그녀의 고향이 아주 굉장한 시골이라는 것이었다. 현대 문물에 까막눈인 이유는 증조부 밑에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대체 얼마나 시골이길래 와이파이 사용법을 모르죠?’
‘경상남도 만례읍 해을면 일숙리.’
‘예?’
‘선배의 고향.’
‘…….’
그 정도 시골이라면 모를 만도 하…… 나? 제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그렇고.
“뭘 보고 계셨습니까?”
포스트잇에서 시선을 뗀 그가 힐끗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어, 음.”
그리고 동시에 얼굴이 쩍 굳었다.
화면 위로 쏟아지는 무수한 댓글들. 언뜻 보아도 선의를 품고 있지는 않았다.
“이런 건 굳이 확인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시잖아요. 요즘 네티즌들 생각 없이 키보드 두드리는 거.”
어이쿠. 실수. 제휘는 노트북을 덮어 버렸다. 은하는 아무 말 없이 노트북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헌터계에서 랭크는 꽤 절대적입니다. 헌터계뿐만 아니라 협회 관계자들이나 일반인들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죠.”
현대인들은 협회가 가진 측정기를 맹신하는 경향이 있었다. B급보다 A급이 강하고, A급보다 S급이 강하다. 아주 간단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고위 랭크로 측정된 헌터를 묻고 따지지도 않은 채 칭송한다. 마치 출신 대학을 맹신하는 인사부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정한 기준이 언제나 절대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적어도 제휘는 그리 생각했다.
A급 헌터의 고유 능력이 치유에 치우쳐져 있다면, 근거리 전투가 특기인 B급 헌터보다 전투력이 부족할 수 있다.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헌터님께서 이런 구설수에 오르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비단 랭크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휘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 현대에서는 잘 보지 못하는 순도 높은 검정이다.
더군다나 마치 맞추기라도 한 듯 새까만 드레스, 시대에 맞지 않는 디자인의 양산까지.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오해할 여지가 충분한, 눈에 띄는 차림새였다.
“이것들은 내게 필요한 거예요.”
그 시선의 뜻을 알아차린 건지, 은하가 나지막이 말했다.
은하 본인 역시도 이 차림이 얼마나 눈에 띄는지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영향이 좋지는 않을 거라는 것도.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은하가 부리는 ‘흑염’은 세트 효과였다.
우아한 양산, 검은 장미 펜던트, 가시 구두, 흑요석 티아라, 그리고 칠흑 비단 드레스까지 모두 장착을 했을 때 비로소 발동한다는 소리였다.
그중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칭호 효과가 제거된다. 즉, 흑염을 쓸 수 없다는 말이다.
화염과 흑염은 파괴력 차이가 적지 않았다. 언제 어떤 사고가 벌어질지 모르는 게이트에 들어가려면, 최고 효율의 장비를 장착하는 것이 상책일 터.
“음. 그렇군요.”
제휘는 그녀의 드레스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강요할 필요는 없었고 강요할 권리도 없었으니.
“뭐 괜찮을 겁니다. 헌터님에게는 늑대와 실버문이라는 든든한 아군이 붙어 있지 않습니까?”
그는 빨대를 휘저으며 빙긋 웃었다.
“늑대의 이름 앞에 랭크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요.”
“예. 곧 알게 되실 겁니다.”
아주 자신만만한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