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066
01065 9. 비비앙 외전(현대) =========================================================================
별들의 전쟁.
AOS 장르면서 전략 요소가 가미된 이 게임은, 한 경기당 보통 사십 분이면 끝난다.
경기 종료까지 걸리는 시간은 물론 천차만별이지만, 아무리 길어져도 한 시간을 넘기는 경우는 드물다.
어쨌든 게임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는 만큼, 애초 적당한 시간 안에 끝나도록 개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비앙이 게임을 시작한 지 두 시간째에 가까워지는 지금, 경기는 진작 끝났어야 했다.
하다못해 거의 끝나가야 정상일 터.
그런데도 그녀는 아직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경기를 치르는 중이었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이를 악문 채 끊임없이 욕을 하며.
표정은 매우 진지하다.
흥건하게 얼룩진 옷은 살에 찰싹 달라붙어 각 부위의 굴곡을 여실히 드러낸다.
고운 눈꺼풀에서는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선취점을 얻었을 때만 해도 날아갈 듯이 기뻐했는데.
과연 두 시간 동안 뭔 일이 있었던 걸까?
“크으으으……!”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두 눈은 화면을 뚫어지라 응시하고 있다.
시선이 닿는 화면에는 거미 영웅 비비안이 필드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거기다 땅속에 처박혀 있는 게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몰골이었다.
암만 경기가 치열하다고 해도 게임이 두 시간이 다 돼 가는 건 확실히 비정상적인 일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건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었다.
가능성은 극히 적지만, 경기가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접전이라던가.
또는 즐기려는 마음에 일부러 끝내지 않는다던가.
아니면 반대로 농락당하고 있다던가.
현재 비비앙의 경우는 당연히 세 번째라고 할 수 있다.
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화면 오른쪽 상단에 출력된 그녀의 성적이 그 방증이다.
『1 / 154 / 0』
한 번 죽였고, 일백오십사 번 죽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수치다.
사망한 영웅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본진에서 다시 살아난다.
부활에 걸리는 시간은 죽은 횟수에 따라 각각 차이가 있는데, 열 번 죽었을 때부터는 무조건 삼십 초로 고정된다.
단순히 계산해보면 비비앙은 120분 중 77분에 가까운 시간을 부활 대기에만 소모했다.
즉 경기 중 게임을 한 시간보다 기다린 시간이 더 많았다는 뜻이다.
“어, 어, 어, 어……. 아! 아아아아아악! 진짜!”
그리고 방금 한 번 더 죽었다.
백오십오 데스.
이 경이로운 기록에 채팅창은 한층 더 떠들썩해졌다.
요피(OpOpLove) : 캬, 신 나게 죽는구나.
야미야미(YamyYamy) : 155 데스; 이제 타이인가요?
마로(TwoMaro) : 아니요. 저번 데스 최고 신기록은 156 데스입니다. 1 데스 더 해야 타이네요.
호호코코(HoHoKoKo2) : 비비앙 님 힘내세요 ㅠㅠ
힐끗거리던 비비앙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정신 차리려는 요량으로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자, 푹 절은 머리카락에서 땀방울이 흩날렸다.
“정신 차리자……. 할 수 있어……!”
스스로 최면을 걸 듯 중얼거리기까지.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경기는 어느새 극 후반이라고 보기도 무색할 만큼 길어졌다.
이쯤 되면 얼마나 죽었던 성장도 끝났고, 장비도 완전하게 맞췄을 시간이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와 실력 차이가 심해도 너무 극심하다는 것이었다.
“제발……. 제발…….”
되살아난 후, 주변을 조심스레 살피며 본진을 빠져나가려던 비비안은.
『영웅 용병 군주가 영웅 비비앙을 처단했습니다!』
“제브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악!”
밖으로 나가자마자, 숨어 있다가 짐승처럼 달려온 용병 군주에게 맞아 죽고 말았다.
저항은커녕, 찍소리도 못하고 땅에 누웠다.
비비앙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으아으아으아으아!”
쾅쾅쾅쾅!
키보드와 책상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진짜, 게임 한 번 좆 같이 하네!”
분에 찬 외침이었다.
실제로 비비앙은 거의 울기 일보 직전의 얼굴이었다.
火正(EternalFire) : 앜ㅋㅋㅋㅋㅋㅋㅋㅋ
KSH♡HSY(CEO – SY Group) : ㅋㅋㅋㅋ ㅋㅋㅋㅋ
나는야 섹스(Magician Hunter) : 섹슼ㅋㅋㅋㅋㅋㅋㅋㅋ
수라마창은 내 것(KongChanHo) : 이거 오늘 처음 보는데 개 웃기네 ㅋㅋㅋㅋ
반대로 시청자는 기뻐했다.
“지짜, 그마 좀, 개옵히라고, 조옴!(진짜, 그만 좀, 괴롭히라고, 좀!)”
간신히 울음을 참고 이를 바득바득 갈며 부활을 기다리던 비비앙은, 비비안이 나타나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나갔다.
그리고.
“꺄아아아아아아악!”
또 죽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부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나가는 순간 사망했다.
용병 군주가 인근에서 은신하고 있다가, 나오는 순간 죽인 것이다.
“아니이이!”
……어쨌든 또다시 살아나자마자 죽었다는 점은 같다.
“왜 게임도 못하게 하냐고오오오!”
목이 터지라 지르는 고함이 단말마의 비명처럼 멀리 울려 퍼졌다.
157 데스.
예전에 기록했었던 최고 데스 기록마저 마침내 넘어 버리니.
쿠마(Cuma85) : 왜 자꾸 죽어주냐; ㅄ인가?
비비앙은.
“야! 내가 죽고 싶어서 죽었냐!?”
결국, 정신 줄을 놓고 폭발해 버렸다
킬리만자로(FallLight) : 그게 아니라, 상대가 노리는 걸 알면 조심해야지.
“내가 죽고 싶어서 죽었냐고오오! 상성 다 집어치우고 아예 상대가 안 되는 걸 어쩌라는 건데! 아니면 네가 상대해보던가!”
Liverpool(NoBigClub) : 선취점 땄다고 까불더니 이제 와서 우리한테 화풀이하는 거 보소 ㅋㅋㅋㅋ
“안 닥쳐?”
상큼한 라면(Summer97) : 경축! 데스 신기록 달성!
“아니거든!? 나도 일 킬 땄으니까, 일 빼서 아직 신기록 아니거든?”
Fellan(dkssudgktpdy) : ㅇㅇ 알았으니까. 언제 울 거임?
“시끄러워!”
빽 고함친 비비앙은 숨을 힘껏 들이켰다.
비비앙은 원래 어지간해서는 시청자와 싸우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상황이 다르다.
“내가 왜 울어? 안 울어. 절대로. 절대로 안 울 거야.”
한동안 분을 쏟아내더니 약간 진정한 얼굴로 코를 들이켰다.
“진짜 존나 화나네…….”
손등으로 그렁그렁한 눈을 훔치면서 중얼거리더니 문득 화면을 노려봤다.
“야, 이 나쁜 놈아. 아니, 넌 놈도 아까워. 이 개새끼야. 알아?”
얼마나 분했으면 욕설도 거리낌 없이 뱉는다.
“그래, 어디 한 번 네 멋대로 해봐. 여기서 더 죽는다고 해봤자, 내가 울 것 같아?”
자못 의연하게 말한 비비앙은 신속히 모든 장비를 팔았다.
가장 비싼 방어구를 종류별로 구매하고, 부활 장소 내 가장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말하는 것과 달리 데스 신기록 갱신은 끔찍이도 싫은 모양이었다.
확실히 장갑으로 도배한 채 꼭꼭 숨으면 죽이기 어렵다.
특히 부활 공간은 애초 점령이 불가능한 장소로 설계된 터라, 무적으로 설정된 방어 시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령만 불가능할 뿐, 진입 자체는 불가능하지 않다.
짧은 시간이나마 똑같이 무적으로 변하는 능력은 몇몇 영웅도 가지고 있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용병 군주는 화신이라는 사기적인 무적 특성이 있는 영웅이다.
“내가 나가나 봐라……. 응?”
말인즉.
“뭐, 뭐, 뭐, 뭐야! 화신 쓰고 들어오는 게 어딨어어어어!”
굉장히 잘 큰 용병 군주는, 화신을 사용하면 해일처럼 쏟아지는 포격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는 소리였다.
어느 정도라 함은, 물론 비비안을 죽이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충분하고도 남는다.
실제로 비비안의 체력 칸이 기하급수로 줄어들기 시작했으니.
“악! 아악!”
한 대 맞을 때마다, 비비앙은 자신이 맞는 것처럼 악악 소리 질렀다.
방어구를 잔뜩 샀으니 방금처럼 한두 방에 죽지는 않았지만, 용병 군주의 공격 속도를 생각해봤을 때 고작 일이 초 더 사는 것에 불과했다.
창졸간 체력이 쫙쫙 사라지던 비비안은, 그녀가 어떻게 조종할 틈도 없이 구슬픈 교성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동시에 부활 장소에서 쏙 빠져나간 용병 군주는, 화신을 해제하고 비비안의 시체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하여, 158 데스.
빼도 박도 못하는, 최고 데스 기록이 경신되는 순간이었다.
“으아아앙-!”
결국에는 눈물이 터졌다.
차오르는 분함과 굴욕감을 이기지 못한 비비앙은, 체면도 잊고 목놓아 울어 버렸다.
데스 신기록 갱신은 어떻게든 허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또 하나의 흑역사가 생겨 버렸다.
드디어 터진 눈물에 시청자는 매우 흡족해하며 준비해둔 금화를 쏘기 시작했다.
덕분에 채팅창이 금빛으로 번쩍거렸지만, 비비앙은 숫제 엎어져서 꺼이꺼이 울어 젖히느라 미처 보지 못했다.
“어엉……. 어어어엉…….”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 동안 서럽게 퍼지던 울음이 돌연히 뚝 멎는다.
이내 가늘게 떨리던 양 어깨도 차차 잦아들었다.
비비앙은 고개를 푹 숙인 상태였다.
엎드리고 있어서인지 어떤 표정인지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평소와는 뭔가가 다르다.
그러니까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그때였다.
적잖은 시간 동안 침묵하던 비비앙은, 느닷없이 고개를 젖혔다.
퉁퉁 부어 붉게 충혈된 두 눈동자가 화면을 매섭게 노려본다.
경기는, 어느새 끝난 상황이었다.
“……야.”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쉰 음성.
“네가, 네가 이러고도 사람이야? 대답해. 보고 있는 거 알고 있으니까.”
치녀 거미 비비안(용병 군주) : ㅇㅇ ㅋ
“이렇게 사람 갖고 놀면 좋냐? 게임 좀 잘한다고, 남 괴롭히면 좋아?”
치녀 거미 비비안(용병 군주) : ㅇㅇ ㅋ
“네가 뭔데. 뭐하는 놈인데 맨날 저격하고, 내 방송 망치는데? 뭔 자격으로? 어?”
치녀 거미 비비안(용병 군주) : ㅇㅇ ㅋ
“씨이……. 내가 너한테 뭐 잘못했냐아아……?”
치녀 거미 비비안(용병 군주) : ㅇㅇ ㅋ
목소리는 끝에 가서 다시금 울먹울먹했다.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어?”
그리고 여기까지가 비비앙이 참는 한계였다.
장장 두 시간 동안 주야장천 죽으면서 경기, 아니.
경기라기보다는 게임을 한 시간보다 죽어 있는 시간이 더 많았던, 차라리 고문에 가까운 경기 내용.
온갖 굴욕을 당하고 치욕을 받으면서 악으로 깡으로 버텼으나,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전황.
편을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뭐라 하는 시청자.
게다가 진지하게 말을 꺼냈는데도, 조롱하는 게 분명한 상대의 단답형에 종래에는 울분이 터져 나온 것이다.
“야!”
쩌렁쩌렁한 고함이 방 안을 뒤흔들었다.
============================ 작품 후기 ============================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연재 재개하겠습니다.
이제 남은 3회는 빠르게 매듭 짓도록 할게요.
아, 메모라이즈 비주얼 노벨 시즌 2가 나왔습니다.
이미 많은 분이 알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현재 hallplain.com에 접속하시면 시즌 2 1, 2화를 무료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회원 가입하시면 3화까지 무료로 감상하실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