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266
00265 미치광이 마법사와 망가져 버린 이들 =========================================================================
조금 이른 감이 있기는 했지만 과단성 있는 결정이었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방금 전의 격돌로, 내가 마볼로보다 우위에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으니까.
어쨌든 상대방이 먼저 숨겨진 패를 꺼내 들었다. 지금까지는 예정대로 진행됐지만, 그만큼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었다. 한쪽이 사소한 실수라도 하는 순간 그대로 골로 갈 터이니.
‘그러고 보니 클랜원들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당황했을까 걱정이 들어 고개를 돌아보려는 순간이었다.
핑!
공기를 찢는 미약한 파공음이 들린다. 나는 곧바로 무검을 들어올려, 쏘아져 들어오는 자그마한 마력 화살을 걷어내었다.
“워워, 고개 돌리지 말게. 친구여.”
“누구 멋대로 내가 네 친구냐?”
“홀홀. 자네도 규격 외의 힘을 지닌 자라면 알고 있을 걸세. 이 힘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몸에 커다란 부담을 주는지를. 그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드러냈는데, 다른데 신경 쓰지 말아주게.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모든 신경을 내게 쏟아달라고.”
“미친놈.”
욕을 했음에도 마볼로는 낄낄 웃으며 진심으로 기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힘을 발휘하면 발휘할수록 처음의 온화했던 표정은 급속하게 바뀌고 있었다. 부드러웠다가, 날카로웠다가. 기뻐하다가, 화를 낸다. 말 그대로 미친놈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긴, 거의 300년동안 제정신을 유지했다고 보기는 어려운가.’
생각은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공중을 부유하는 마볼로의 등 뒤로 물가에 파문이 일 듯 허공이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그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지팡이에서 강렬한 빛이 깜박거리듯 터져 나오더니 이내 명멸하는 동그란 구체 하나가 두둥실 떠올랐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렇게 물량으로 처리하는 방법은 원래 내 취향이 아니지만….”
그의 지팡이가 한번씩 흔들릴 때마다 수많은 마법진들이 반응한다. 마치 하나의 수식을 짜듯 진 하나를 배열할 때마다, 파문은 점점 커지며 동시다발적으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현재 자네를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을 것 같아서 말일세. 좋아…. 됐다.”
번쩍! 우우웅!
마볼로의 말이 끝난 순간이었다. 허공에 일렁이던 파문은 이곳 저곳에서 동그란 구체들을 하나씩 토해내었다. 그리고 빛의 구체는 순식간에 수십, 아니 수백 개로 분열하는가 싶더니 곧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가히 어마어마한 물량이었다. 그는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고대 마법 증폭, 복사, 분열을 섞었네. 어때, 막을 수 있겠는가?”
“…….”
“대답이 없군. 혹여나 피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걸세. 안 그러면 이 빛의 구체들이 저~기 뒤에 있는, 아주 아주 열심히 싸우고 있는 동료들을 덮치게 될 테니까 말이야. 킬킬!”
섬뜩한 웃음 소리와 함께, 마볼로는 나를 향해 힘껏 지팡이를 내리쳤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명멸하는 수백의 섬광들이 일제히 사방에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내가 있는 지점을 향해서.
‘옛날 생각 나게 만드네.’
내려온다. 천천히 내려온다. 천천히 내려오다가 허공으로 떠오른 마법진을 통과하는 순간, 내려오는 속도에 점점 가속이 붙어 내려온다. 그것은 하나의 폭우였다.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불 붙어 곤두박질치는 유성우처럼. 무수한 빛의 빗방울들이, 섬광과 같은 속도로 나를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수웅! 수웅! 수웅! 수웅! 수웅! 수웅! 수웅! 수웅!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양 발로 바닥을 단단히 딛고 무검을 오른손에, 일월신검을 왼손으로 나누어 들었다. 그것들이 들어오는 궤도를 하나하나 예측하고 모조리 다 쳐내야 한다. 아니, 솔직히 모두 쳐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대한 쳐낼 수 있을 만큼 쳐내고 남은 것은 내 항마력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홀홀!”
노인네의 주접스러운 웃음 소리를 뒤로한 채, 나는 몸을 살짝 구부렸다. 그리고 섬광이 지근거리로 다가온 순간, 눈을 부릅뜸과 동시에 있는 힘껏 쌍칼을 휘둘렀다.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무검과 일월신검을 풍차처럼 휘두르며 섬광의 접근을 차단한다. 사위로 수십의 검광이 번쩍이고, 그것은 종래에 하나의 정교한 검막을 만들 정도였다. 검광이 번뜩일수록 그에 비례하여 폭발음도 늘어갔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가끔씩 몸에 미약한 진동이 느껴지고 태양의 영광이 필요 이상으로 뜨거워짐이 느껴졌다. 그것은 한두 개 놓친 것들이 내 항마력을 두들기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신들렸군 신들렸어. 정말 대단한 광경이야.”
다시 한번 조롱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신경 쓸 여유는 없다. 구체가 내 마지막 보루인 전장의 가호를 뚫고 한번이라도 신체를 곧바로 칠 경우, 몸이 크게 흔들리고 말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검이 어지러워지고 틈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일월신검을 들고 있는 손아귀에서 이따금 강렬한 진동이 울리는 게 느껴졌다. 온 몸으로 흘러 들어오는 진동이 팔은 물론 머리까지 울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펑! 펑! 펑! 펑!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볼로 말대로 한동안 신들린 듯 춤이라도 춘 기분이었다. 그리고 공세가 처음에 비해서 조금 뜸해졌다 싶을 즈음, 뭔가 미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이놈이 조용하다?’
아주 조금 생겨난 여유에 간신히 고개를 올리자, 마침 나를 보고 있었는지 마볼로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섬뜩하리만치 흐뭇해 보이는, 정신병자 같은 미소와 함께 쉴 새 없이 주문을 웅얼거리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후속타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어차피 나도 자네도 이 정도로 끝나리라고는 생각지 않고 있었네. 그렇잖은가?”
“…….”
“킬킬킬킬! 그건 시간 끌기 용이었고, 진짜는 이거지…!”
조금 줄어들었을 뿐이지 빛의 구체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마볼로는 어느새 주문을 모두 외운 듯 나를 향해 오르도를 겨누는 것을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일말의 틈도 주지 않고 오르도의 빛이 번쩍 내뿜어진 순간, 양 옆으로 서로 상반된 기운이 물씬 피어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마법진이였다. 내가 확인한 것은 딱 그 정도였다. 그저 느낀 것이라고는, 한쪽에는 전신을 얼릴듯한 냉기가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글거리는 열기가 맺혀있었다는 것.
“이번 마법은 나로서도 꽤 힘들었네. 소환 그리고 합일이지. 그럼 이것을 받아내고, 바닥에 널브러져 목숨을 구걸하는 자네를 기대하겠네.”
딱!
마볼로의 유들유들한 목소리와 함께, 마법진이 좌우 방면으로 쇄도한다. 그 속도는 너무도 빨라, 눈 한번 깜빡 하는 사이에 내 항마력을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이건…. 위험하다.’
그렇게 인지하자마자, 나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심장에 잠재되어있는 힘을 폭발시키며 바닥을 한번 강하게 굴렀다. 그리고 대지가 일렁이는 순간, 거대한 굉음과 함께 눈 앞에 불이 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꽝! 쿠오오오오오오오!
“끝났군. 홀홀. 음, 그런데 너무 심했나?”
거대한 굉음과 함께 눈 앞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마볼로는 기꺼운 얼굴로 그곳을 바라보다가 이내 쯧쯧 혀를 찼다. 간만에 발견한 좋은 재목인데 죽어버리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그 괴물 같은 저항 능력을 뚫으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암.”
마볼로가 사용한 마법은 상극의 기운을 억지로 합일시켜, 그에 따라 나오는 폭발력을 이용하는 마법이었다. 더구나 이번에 소환한 기운은 중간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른 세계의 기운이었다. 따로 놓고 봐도 매우 강력한 기운인데, 그것을 억지로 합일시켰으니 위력은 딱히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마볼로는 온 몸이 찌뿌듯한지 크게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에잉, 가뜩이나 요즘 몸도 안 좋은데 너무 무리했군. 어서 결과를 확인하고 해제를….”
방금 전 김수현이 있던 장소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 오르고 있었다. 마볼로는 가볍게 투덜거리며 오르도를 한번 휘저었다. 아니, 휘저으려는 순간이었다.
화륵, 화르륵!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에 마볼로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계산대로라면 두 기운은 맞부딪친 순간 동시에 소멸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아직 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린다면 마볼로가 계산을 잘못했다는 소리였다. 오랜만에 발휘한 능력이기는 했지만 약간의 오차가 생겼다는 사실에 대마법사의 얼굴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역시 나이는 속이기 힘들어…. 응?”
그때였다.
화륵, 화르륵!
자욱한 연기를 뚫고 맑게 타오르는 검 하나가 비죽 빠져 나왔다. 그것들은 연기를 뚫고 속속히 모습을 드러내더니, 곧 마볼로를 향해 쏜살같이 쏘아져 들어왔다.
허공을 가득 메우는 수십 개의 열화검에 마볼로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도 경험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라 그 동안 쌓아온 노련함으로 곧장 오르도를 들어올리자, 그에 대응하는 수십의 마법진이 차곡차곡 앞으로 쌓이기 시작한다. 마볼로는 우선 안도했다. 그리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시선을 아래로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어….”
자신의 몸에 박힌 이글이글 타오르는 검들을 보자, 마볼로는 반사적으로 침음을 내뱉었다. 곧이어 그의 얼굴이 멍하니 전방을 향했다. 겹겹이 쌓여있던 마법진은 아주 깔끔하게 녹아내려 군데군데 구멍이 나있는 상태였다. 그 순간 하나의 생각이 마볼로의 머리를 스치듯 지나가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닥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설마….”
쿵!
“흐아아아아아아아!”
내부로 침투한 불이 폭발하듯 온 몸을 만신창이로 헤집는다. 뒤늦게 통증이 찾아왔는지 마볼로는 고통에 찬 비명을 울부짖으며 바닥을 굴렀다. 어떻게든 마력을 끌어올려 진화해보려고 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불은 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마력이 들어가는 족족 태워 없어지고 있었다.
“하, 씨발.”
그리고 그때. 마법진의 폭발로 연기가 자욱한 중앙에서, 한 명의 남성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바로 김수현이었다. 양 손에 하나씩 검을 든 채로, 낭패한 얼굴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모습도 정상은 아니었다. 옷의 군데군데가 찢어지고 그을린 게, 확실히 어느 정도의 타격은 입은 게 분명했다.
“이 새끼 진짜 사람 열 받게 만드네. 깜짝 놀랐다 정말. 설마 지옥의 여섯 번째 불, 초열이랑 만년설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개 같은 새끼.”
아까의 담담한 목소리는 어디 갔는지, 지금은 분노로 가득 찬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만이 가득했다. 평소의 마볼로라면 드디어 화를 내게 만들었다고 기뻐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왜냐하면 대마법사는 정말 오랜만에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 그걸 어떻게…. 큭! 아, 아니 애초에 어떻게 거기서….”
“어떻게 긴. 나도 밑천을 드러냈지.”
“놈! 크윽, 이런 힘을 숨기고 있었구나…!”
“알고 있었잖아. 결계 찢을 때 사용했다고 알려줬는데.”
내부를 진창으로 만드는 고통을 참으며 마볼로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까지 능력은 유지되고 있다. 이대로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지금껏 살아온 대마법사로서의 자부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한 마볼로는 겨우, 천천히 오르도를 겨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거 내려라.”
화륵, 화르륵!
김수현이 차가운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맑은 불꽃 수십 개가 다시금 그를 향해 엄습해 들어왔다. 마볼로는 이를 악물며 마력을 일으켰다.
우웅! 쾅!
불꽃들과 오르도의 마법진이 격돌했다. 불꽃에 대응하는 마법진이 순식간에 수십 개가 떠올랐다가, 순식간에 녹아 내린다. 이윽고 마볼로는 두 눈을 버젓이 뜬 채 허무하리만치 열화검의 접근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푹! 푹! 푹! 푹!
“흐아아! 흐아아아!”
온 몸에 주렁주렁 타오르는 검을 박은 상태서, 마볼로는 용케도 다시 쓰러지지 않았다. 남은 한 손으로 오르도를 으스러져라 쥐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크게 울부짖었다. 그것을 묵묵히 보던 김수현이 한 순간 자세를 잡는가 싶더니, 가볍게 땅을 한번 박차 올랐다.
퉁!
마볼로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두 발짝 주춤주춤 물러섰다. 머리는 피하라고, 이성은 얼른 피하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몸이 말을 따라주지 않는다. 새로 꽂힌 열화검들이 다시금 새로운 불꽃을 내뿜으며, 전신을 불태우고 있었다. 마볼로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를 악물며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오르도를 들어올릴 뿐이었다.
한 순간 거리를 줄인 김수현은, 자신에게 내밀어진 오르도의 빛이 번쩍이기 전 칼등으로 크게 후려쳤다.
“컥!”
곧이어 퍽, 소리와 함께 오르도는 핑글핑글 돌며 허공으로 솟구쳤고, 마볼로의 몸도 허공을 붕 날았다.
쿠당탕탕, 쿵탕!
“쿨럭!”
이윽고 바닥을 나뒹구는 마볼로는, 한 됫박은 됨직한 피를 울컥 쏟아내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김수현은 비틀거리듯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다가갔다.
저벅저벅.
그리고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들은 순간, 비로소 마볼로의 눈에 공포라는 감정이 찾아 들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입니다.
밤 꼴딱 샜어요. ㅜ.ㅠ 일단 먼저 올리고 자러 갈게요. 리리플은 다음 회에 합쳐서 할게요! 너무 힘들어요. 흑흑. 그, 그래도 머, 머리를 쓰다듬어주신다면 내일도 연참을….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