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52
00651 마성(魔性) Vs 겁화(劫火). =========================================================================
쿵!
등과 땅이 맞닿은 순간 충돌로 솟구친 흙먼지가 좌우로 교차하듯이 하늘을 가렸다. 시야가 흔들리고 공기도 흔들린다. 딱밤을 맞은 것치고는 엄청난 위력이었으나 몸에 커다란 이상은 느껴지지 않는다. 지옥 대공이 일부러 그 정도의 힘으로 나를 공격한 것이다.
“…….”
그래서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치밀어 오르는 굴욕감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조금 전 지옥 대공이 배시시 지은 미소가 마치 나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정도로 실력 차이가 난다면 상대방이 봐준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분한 마음이 앞섰다.
그러다 문득 등 뒤로 나를 부르는 여러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나는 있는 힘껏 손을 저었다. 오지 말라는 의미였다. 마음 같아서는 어깨라도 붙잡고 왜 도망치지 않느냐고, 지금 내가 안보이냐고 실랑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그럴만한 여유가 나지 않는다. 어느새 공중에서 내려온 지옥 대공이 약 10미터의 거리를 두고 착지한 상태였으니까.
“뭐, 인간치고는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구나. 설마 이 몸을 상대로 이 정도로 버틸 줄은 몰랐다.”
지옥 대공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회피 능력은 내가 알지 못했다손 치더라도…. 보아하니 그대는 1초에 최소 6번은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 같더구나. 상황 판단만큼은 거의 정점에 오른 수준이야.”
그렇게 말한 지옥 대공은 돌연 “다만.” 이라는 단어를 언급해 말의 반전을 알렸다. 그리고 한 손을 노출된 쇄골에 살며시 갖다 대더니 아까와 같은 미소를 짓는다.
“지금 상대가 이 몸이라는 게 너한테는 아쉽겠구나.”
그 말을 들은 순간 무언가 울컥하는 감정이 솟아올랐다. 안 그래도 열이 오를 대로 오른 상태인데 저렇게 부채질까지 해대니 짜증이 치솟는다. 도발이 목적이라면 그냥 웃어넘기면 그만이나, 진심으로 말하는걸 알고 있으니 자괴감마저 들 지경이었다.
“어쨌든, 이 정도면 안심할 수는 있겠어. 태고의 불을 그 정도 수준으로 다룰 수 있다면…. 최소한 죽지는 않겠지.”
그 순간 뜻 모를 말을 꺼낸 지옥 대공이 작게 한숨짓더니, 갑자기 하늘 높이 손을 들어올렸다.
“서운케 생각하지는 말거라. 이것도 버텨낼 수 있다면, 나 또한 너를 인정해주도록 할 테니까. 아무리 그 힘을 갖고 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돼지 목에 진주인지 아닌지는 판단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럼 태고의 불에 적합한 예를 갖추는 뜻에서…. 이제는 장난이 아닌, 진심으로 간다.”
그러나 무어라 채 물어보기도 전, 들어올린 손이 눈부신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아아아아악!
빛이, 울부짖었다.
이리저리 나부끼는 찬연한 신음을 울리면서, 삽시간에 허공에 엄청난 마력이 모여들었다.
우르르르르르르릉!
두두두두두두두두!
하늘이 열리고, 땅이 갈라진다. 공간이 찌그러질 정도의 마력이 모이더니, 이내 하나의 거대한 구체를 이루어내며 온 세상을 비추는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아름답게 마저 느껴지는 광경. 그러나 그것은 잠시간에 불과했다.
이어서 펼쳐진 장면은 한순간이나마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아래쪽부터 타오르기 시작한 시뻘건 불빛이 폭발적으로 거대한 구체를 잠식해 들어갔기 때문이다. 저것은 보이는 그대로, 순수한 지옥 겁화로 이루어낸 하나의 덩어리나 다름없다. 이렇게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주마등이 아른거릴 정도의 무시무시한 공격이다.
그리고 잠시 후.
콰르르르르르르르!
이글거리는 아지랑이를 피어 올리는 하나의 태양을 인지한 순간, 그리고 온 세상을 집어삼키며 서서히 들이닥치는 커다란 불덩이를 확인한 순간.
머릿속으로,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떠올랐다.
‘죽는다.’
그래, 말 그대로 죽는다.
유일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피하는 것. 그러나 지옥 대공은 내 회피를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딱히 구속이나 제한을 받은 건 아니다. 허나 내가 여기서 몸을 피해버리면 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태양에 휩쓸릴 것이다. 형과 한소영을 포함한 모두가.
‘그럴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양손으로 무검을 쥔 채 상단으로 세워 올렸다. 그리고 본능에 따라 온몸으로 화정의 힘을 있는 힘껏 불어넣었다.
지옥 대공이 발출한 태양이 맞닿은 것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펑펑펑펑펑펑펑펑!
화정과는 서로 극을 달리는 상성이라서 그런 걸까?
환한 빛을 발하는 구체는 화정과 부딪친 순간, 펄떡 요동치며 거센 폭발을 일으켰다. 생각보다 강한 반발력에 움찔하기는 했지만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곧 폭발로 흘러나온 염화가 내 몸을 감싸 안는 걸 마지막으로, 시야가 온통 하얗게 물들었다.
그러한 찰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상황을, 이 고통을 2회 차를 시작하면서 한 번 겪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그 다음 순간.
치지지지지지지직!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화정을 받아들일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에 나는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전신을 인두로 지지는 소리가 흘러나오며 체내의 피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파괴하려는 지옥 겁화와 지켜내려는 화정이 동시에 날뛰자, 나라는 존재 자체가 소멸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2회 차를 시작하면서 비명을 지른 적이 손에 꼽은 것 같으나, 이런 고통은 수천 수만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기절하는 게 편하지 않을까.
그렇게 마력 회로 하나하나가 녹아 내리는 기분을 느끼는 동안,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느덧 태양의 중앙을 지나쳤다는 기분을 느꼈다. 그럼 이제 절반만 더 견디면 된다는 소린데, 내 입장에서는 그 절반조차 구만 리 창천처럼 느껴졌다. 잠깐이라도 정신을 놓치는 순간, 이 미칠 듯한 폭발을 일으키는 태양에 그대로 먹힐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그냥 죽고 싶다는 생각이 연신 들었지만, 나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끌어내 두 다리로 버티고 섰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불타오르는 화정의 기운을 북돋우며, 여전히 새하얗게 작열하는 시야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입을 크게 벌렸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다시 한 번 비명을 질렀다. 아까와 같은 고통에 젖은 비명이 아닌, 고통에 대항하려는 뜻으로 지른 비명이었다. 이 비명이 끊기는 순간이 바로 내가 쓰러지는 순간이라 생각하며, 나는 악착같이 비명을 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비명을 지르고 서서히 소리가 잦아들어갈 즈음.
“…….”
갑자기 하얀색 일색이던 시야가 한순간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동시에 시원한 공기가 느껴지며 무언가 익는 듯한 냄새가 흘러들었다. 태양은 어떻게 된 걸까? 나는 버텨낸 걸까?
“…믿을 수가 없다. 그래도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로 견뎌냈구나.”
돌연 약간 상기된 듯한, 지옥 대공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들어올리려 했지만, 그 순간 갑자기 세상이 90도로 틀어지는 광경이 보였다.
“아…?”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기분이다. 시야도 초점이 잡힐 듯 말듯이 가물가물하다. 어떻게든 힘을 주려고 해도, 머리는 이미 점차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내 의지와는 반대로 지옥 대공이 아닌 땅이 눈에 들어온다.
이내 눈을 가리는 머리를 걷어내려는 찰나, 축 늘어진 팔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제야 몸의 통제권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결국에는 그대로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쿵.
보드라운 흙의 감촉이 느껴졌다. 이대로 잠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일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갑작스레 턱 아래로 무언가 쑥 밀치고 들어오더니 내 머리를 강제로 들어올렸기 때문이다. 곧 꼿꼿이 서 있는 지옥 대공이 눈에 들어오는걸 보니, 아마 발등으로 내 턱을 젖힌 모양이다.
“방금 공격은 전력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진심을 담았다고는 할 수 있다. 아마 보통 인간이라면 부딪친 지 5초도 안되어 존재 자체가 연소할 터. 헌데….”
지옥 대공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이를 갈았다.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묘하게 열이 받치는 기분이다. 적어도 한 번 제대로 타격을 먹이고는 싶었는데, 그럴 수 있는 힘이 부족한 게 천추의 한이었다.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지옥 대공을 뚫어져라 노려보는 것뿐.
“그 꼴을 하고서도 투지를 불태우는가….”
그러나 지옥 대공은 잠깐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리더니, 오히려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
“정말, 그러지 말거라. 자꾸 그러니까 반할 것 같지 않느냐.”
그리고 발을 빼더니 천천히 허리를 굽히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이제는 정말로 인정해야겠군. 네가 정녕 최후의 왕이 될 자질을….”
그때였다.
부웅!
지옥 대공이 무어라 말을 잇기도 전, 느닷없이 아랫배가 확 잡아당겨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잠깐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니 어느새 내 몸이 허공을 날고, 지옥 대공과는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 나는 그제야 내 몸을 움킨 모종의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기운에 이끌려 어딘가로 날아가는 것이다.
풀썩!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등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과 좋은 향기가 흘러들었다. 누군가 내 몸을 꼭 끌어안는다. 동시에, 주변으로 여러 아는 얼굴이 밀려들어 무어라 소리친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 듣지 않으며 여전히 지옥 대공에 시선을 고정했다. 정신이 없었던 것도 있지만, 굽혔던 허리를 도로 피는 지옥 대공의 얼굴에는 의외라는 낯빛이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서.
“이건 무엇이지…?”
의연하게 팔짱을 낀 지옥 대공이 주변을 천천히 둘러본다.
“뇌신은 아까 봤고…. 초월자와 수라…? 그리고 용…? 아, 영혼만 용인가? 이거 참, 이상한 조합이로구나.”
지옥 대공이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뇌신은 아마 형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초월자는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아마 수라와 연관 짓는걸 보니 공찬호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용은 두 말할 것도 없이 헬레나일 테고.
“그리고…. 너는 또 어떻게 된 거지?”
이윽고 지옥 대공이 시선이 도로 나를 향한다.
‘……?’
아니, 내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내 어깨 너머, 그러니까 나를 껴안고 있는 이를 향하고 있었다. 나 또한 힘겹게 시선을 돌리자 의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나를 안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표혜미, 아니 제갈 해솔이었으니까.
“신기한 일이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벌레가…. 어찌하여 갑자기 초월자가 된 것이냐?”
초월자.
그 순간 뇌리를 번뜩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어, 나는 딱딱히 굳어 있는 제갈 해솔을 바라보며 제 3의 눈을 활성화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1. 이름(Name) : 제갈 해솔(0년 차)
2. 클래스(Class) : 일반 마법사(Normal, Mage, Master)
3. 소속 국가(Nation) : 자유 용병(Free)
4. 소속 단체(Clan) : Mercenary(Clan Rank : S Zero)
5. 진명 • 국적 : 진리를 깨닫고 마도의 극에 다다른 자 • 대한민국
6. 성별(Sex) : 여성(29)
7. 신장 • 체중 : 168.7cm • 47.8kg
8. 성향 : 합리 • 관찰(Rationality • Observe)
제갈 해솔이 마력 능력치가 101포인트에 다다랐다.
그러나 미처 생각을 잇기도 전, 또 한 번 몸이 뒤로 끌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에 의해 몸이 땅에 눕혀지고 하얀 로브를 입은 사용자들이 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수 개의 지팡이에서 빛이 번쩍이자 약간은 눈이 부셨다.
“치료, 치료오오!”
“이, 이상해요! 치료가 듣지를 않아요!”
“그럼 물약! 아, 아니 물약 붓고 있어!”
“엘릭서 가져올게요!”
…내 상태가 그렇게 심각한 건가?
그러나 곧 온몸을 적셔오는 물약에 따끔따끔한 통증을 느껴 얼굴을 찌푸렸을 때였다.
『몸 내외로 일반적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축하합니다. 2슬롯 잠재 능력인 ‘쓰러질 수 없는(Rank : A Plus Plus Plus).’ 이 1단계 상승합니다.』
『‘쓰러질 수 없는(Rank : A Plus Plus Plus).’ 이 ‘쓰러질 수 없는(Rank : S Zero).’ 으로 진화합니다.』
『현재 남은 잔여 능력 포인트는 1(Special, Latent) 포인트입니다.』
허공에 네 개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 작품 후기 ============================
1. 저번 지옥 대공과 관련한 연참 약속은 지켰다고 생각해요.(그때 다음 회 코멘트에 의견을 밝혔는데 아마 못 읽으신 분들이 있으시리라 생각해요.) 불그스름한 형체가 지옥 대공이 아닌 게 아니라, 맞습니다. 그 표현은 포탈을 의미하는 게 아닌, 그 속에 지옥 대공이 이미 소환된 상태를 의미해요. 어느 분 말마따나 아슬아슬하게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자꾸 연참을 강요하시면 곤란해요. ㅜ.ㅠ
2. 어제와 같은 그린 라이트는 잠시 넣어두도록 할게요. 솔직히 조금 더 하고는 싶은데, 몇몇 분들이 그동안 제가 받아왔던 고통(?)을 조금은 이해해주신 것 같아서요. 하하하. 🙂
3. 이번 파트 하이라이트는 이번 회가 아니에요. 653회, 그러니까 2회 후에 예정돼있습니다. 물론 지옥 대공이 좋게 봐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김수현이니까요. 그런 만큼 하이라이트 또한 김수현한테 맞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655회 정도에는 이번 파트도 결말이 날 예정입니다.
4. 이 정도로 실력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주인공에 맞춘 하이라이트가 가능하냐고요? 하하하. 지금이 바로 뿌려둔 복선을 회수할 때죠. 음 그러니까…. (이하 단어는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제 나름대로 단어를 함축한 것이라 보시면 됩니다.) 으쌰, 1, 하아, 츤츤, 선물. 이 5가지 조건만 충족하면 김수현도 어느 정도는 지옥 대공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