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30
광마전생 (30)
8장
죽음에서 되돌아온 후 창천신검을 수련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천기린은 사실 실패한 인생을 살았던 것이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식으로 넘어가긴 했지만, 타인의 손에 죽은 삶이 성공한 삶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게다가 사방이 모두 적이었으니…….
그래서 이번 생에는 실패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나를 뒷받침해 줄 나만의 ‘세력’을 만들기로 했다.
아무리 내가 한 마리의 용이라고 해도 외톨이의 말로를 직접 겪어 봤으니까.
“후웁…….”
한 호흡 들이켤 때마다 온몸에 충만해지는 자연의 기운.
지금 내 나이는 대략 십팔 세.
아직 약관(弱冠)도 되지 않았지만 나는 한 마리의 용이 되어 있었다.
두 마리의 독각사에게 얻은 내단과 그들의 피와 살.
그리고 수많은 독사들의 독은 나에게 커다란 내공을 안겨다 주었고 나는 이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성장을 겪었다.
보통은 깨달음의 벽 앞에서 막혀 오랜 시간을 지체해야 했지만 인생 이 회차인 천기린에게 벽 따윈 존재하지 않았고, 순식간에 화경의 경지까지 올라섰다.
다만 살짝 화경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점이 있긴 했다.
깨달음에 있어 화경에 이르러야 사용할 수 있는 능력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뿐 내공과 육체적인 단련은 화경이라고 하기엔 많이 모자란 편이었다.
그래서 지난 육 개월간 나는 죽기 살기로 내공을 끌어모았다.
원래라면 천야심결로 딱히 운기조식을 하지 않았어도 됐지만 더 빠르게 내공을 모으기 위해 천야심결에 다른 내공심법을 섞어 발전시켰다.
새로워진 천야심결에 딱히 이름을 만들진 않았다.
그냥 새로운 운기조식의 한 방법일 뿐.
내 심법의 주체를 흔들기는 싫었으니까.
그렇게 육 개월을 단련하다 보니 삼 갑자라는, 대충 화경에 오를 수 있는 최소 조건 정도는 될 내공을 모을 수 있었다.
삼 갑자는 말이 쉬워 삼 갑자이지, 무려 백팔십 년어치의 내공이었다.
몇백 년 전만 해도 일 갑자의 내공을 가지면 절세의 고수였다.
삼 갑자라고 하면 거의 신과 다름없었을 테지…….
하지만 요즘은 무림의 후기지수들도 기본적으로 일 갑자의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백리강과 가야허.
그들만 봐도 가볍게 일 갑자를 넘는 내공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만큼 무림의 무공이 많이 발전했다는 뜻이었다.
“후우…….”
잡다한 생각을 끝마치며 운기조식을 마무리했다.
“하아하아…….”
눈을 뜨자마자 들려오는 가냘픈 숨소리.
그 숨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백리강이었다.
“일 등이군.”
“예, 사부님…….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포권을 취하는 그녀의 허리에는 밧줄이 매어져 있었고 그 밧줄은 커다란 바위에 꽁꽁 감겨 있었다.
내가 있던 곳은 바로 절벽이었다.
왜 또 절벽이냐고?
뭐, 큰 이유는 없다. 그냥 내가 절벽에서 하는 수련을 좋아하기 때문이지.
마보와 절벽.
체력 단련은 그 두 개만 있으면 된다는 게 내 철학이었다.
“다 올라올 때까지 잠시 쉬고 있어도 좋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거친 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백리강.
그녀는 상상 이상의 무재였다.
가르쳐 주는 족족 흡수를 잘했고, 그만큼 본인도 노력하며 자신의 몸에 맞게 ‘개량’할 줄도 아는 무재.
그런 백리강이 가야허에게도 질 정도로 약했던 이유는 그녀가 익힌 백리강검이 그녀에게 전혀 맞지 않는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열화신공, 열악도를 익히기 시작한 그녀는 육 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광천악과 가야허를 뛰어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흑천파에서 그녀가 가장 강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쿵!
쿵!
“멍…… 멍…….”
“끄아아…… 죽겠네! 으어…….”
거대한 바위와 함께 허공에서 떨어져 내린 두 인영.
호태산과 홍송도.
그들은 녹림왕과 녹림채주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른 이들과는 차별적으로 강했다.
호태산은 화경의 초입에 달한 초고수.
홍송도 역시 이룬 경지는 높지 않았지만 뭘 많이 먹었는지 높은 수준의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한 순위로 따지자면 호태산, 광천악, 홍송도 그리고 백리강 순이려나.
그리고 의외로 가장 떨어지는 것은…….
“흐악…….”
꼴찌로 도착한 가야허였다.
그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오랜 기간 굳어진 습관부터 해서 잘못된 호흡법 그리고 구부정한 자세까지.
오랜 시간 동안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주 잘 알 수 있었던 문제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고치는 것도 사부가 해야 할 의무.
가야허는 내 곁에 있어야 할 훌륭한 책사(策士)였으니까.
책사가 꼭 강할 필요가 있냐고 묻는 자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건 순전히 내 맘이다.
다른 건 몰라도 내 밑에 있는 놈들이 약한 건 용납할 수 없으니까 말이지.
그리고 그게 내 제자들이라면…….
절대로 약해선 안 된다.
“오늘은 한 명의 낙오자도 발생하지 않았군. 다행이야.”
내 말에 눈에 띄게 밝아지는 제자들의 안색.
그들이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이리 기뻐하는 이유는 낙오자가 발생할 때마다 주었던 벌칙 때문이었다.
오늘은 벌칙 없이 편안하게 집으로 돌아가겠구나 싶었던 그들의 얼굴이 이어진 내 말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럼 만들면 그만이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을 날기 시작한 백리강.
그녀를 시작으로 나는 제자들을 가차 없이 절벽 밖으로 집어 던졌다.
“오늘 낙오자는 마보 네 시진. 당연히 수면 시간 따위는 없다.”
그놈의 마보.
마보 네 시진이라는 소리에 치를 떨며 모용진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눈에는 절망만이 가득했다.
“살고 싶으면 빨리 기어서 올라와.”
* * *
“사형들, 괜찮습니까?”
“끄윽. 말시키지 마라…… 죽을 것 같으니까…….”
“으어억…….”
늦은 밤 연무장.
그곳엔 호태산과 홍송도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모여 있었다.
물론 자의적으로 모인 것은 아니었다.
모두 모용진의 벌칙을 수행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모용진은 끝끝내 두 명을 제외한 모두가 낙오할 때까지 절벽 아래로 집어 던졌던 것이다.
“주화자 사제는 괜찮나? 아까 바위에 깔렸던 것 같은데.”
“괘, 괜찮습니다. 한두 번 겪은 것도 아니니까요.”
“하긴 나도 처음엔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이젠 바위에 깔려도 별로 안 아픈 것 같아.”
주화자를 걱정하는 광천악.
놀랍게도 그들은 진짜 사형제 관계가 되어 있었다.
육 개월 동안 함께 모용진의 아래에서 구르며 끈끈한 정이 생겨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백리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오랜 시간의 마보로 힘들어하는 가야허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대더니 살짝 내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사매……?”
“이 정도는 별거 아닙니다. 조금만 더 힘내시죠, 사형. 앞으로 한 시진만 버티면 끝납니다.”
“그래. 고맙다, 사매…….”
평소 말도 잘 안 꺼내는 백리강의 호의에 모두가 놀란 듯 그녀를 쳐다보자 백리강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고 보니 사저는 백리세가로 돌아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에이, 이제 여기에 정이 들어 버리신 거지. 원래 우리랑은 말도 섞지 않았는데 이젠 가야허 사형에게 내기까지 불어넣어 주질 않는가.”
“소문엔 사부님이 직접 움직였다고 하시던데…….”
“큼큼.”
백리강의 헛기침 한 번에 조용해지는 연무장.
이는 그 헛기침 속에 백리강의 조용히 하라는 압박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허물없는 사형제처럼 보였지만 위계질서만큼은 철저하다 못해 끔찍할 정도로 잡혀 있었다.
그것도 모용진에 의해서 직접.
육 개월 동안 딱 한 번 홍송도가 죽을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건 아주 사소한 말실수 때문이었다.
습관처럼 가야허를 하대한 것이었는데 우연히 그걸 들은 모용진은 노발대발하여 홍송도를 피떡으로 만들어 녹수각 꼭대기에 걸어 두었고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대지를 밟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론 제자들은 사소한 것 하나라도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형과 사저들에게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였고 사제와 사매들에게는 자연스러운 하대가 자리 잡혔다.
가야허가 아무리 낙오를 해도 그 누구도 불만을 내비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달아오른 것도 있으니 그것은 바로 신분 상승의 의지였다.
오직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흑천파(黑天派)였기에 다들 ‘사형제 대전’을 학수고대하며 칼을 갈고 있었다.
“내 집안일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으니 다들 함구해 줬으면 좋겠군.”
“아…… 옙. 죄송합니다, 사저.”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순식간에 꼬리를 내리는 광천악과 철풍견.
상당히 거친 산적이었던 그들도 이젠 백리강을 아주 자연스럽게 사저로 모시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제 더 이상 이곳은 녹림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녹림의 탈을 쓰고 있는 새로운 문파 흑천파였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는 백리강.
사실 그녀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가문인 백리세가는 아주 개박살이 났다.
모용진에게?
아니, 호태산에게.
대략 네 달 전 모용진은 백리강을 통해 백리세가 가주와의 만남을 요구했고 그렇게 모용진과 백리청이 만났다.
그때 백리강이 본 모용진의 모습은 그렇게 예의 바를 수가 없었다.
백리세가에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를 제안했고 모용진은 그 대가로 백리강을 받으려 했으나 백리세가의 가주 백리청이 보인 것은 괄시와 혐오가 잔뜩 담긴 눈빛뿐이었다.
“어디 흑도 따위가 우리 백리세가와 거래를 하려고 드는 것이냐? 개잡놈 같으니. 우리 강이를 돌려받고 내 직접 녹림도 박살 내 주마!”
대화 도중 검을 뽑아 들며 테이블을 갈라 버린 백리청.
그 이후 벌어진 일은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백리강의 중재에도 백리청은 모용진과 호태산을 죽일 것을 명했고 기다렸다는 듯 백리세가의 무사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모용진은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마치 이렇게 될 거란 것을 알고 있던 사람처럼.
그는 백리강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난 최대한 노력했다. 너도 알겠지?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린 정당방위를 행할 뿐이라는 걸.”
백리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모용진은 백리세가에서 정 거래에 응하기 싫다면 백리강의 함구(緘口)를 조건으로 그냥 돌려보내 줄 수도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백리청은 검을 뽑아 들었고 모용진은 당연히 참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 움직이지는 않았고 옆에 있던 호태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멍멍아, 알지? 단, 죽이지는 마라.”
모용진의 한마디에 얌전한 개처럼 숙이고 있던 호태산의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고 그렇게 호태산 한 명의 손에 의해 백리세가는 개박살이 났다.
명문세가라고 중원에 이름을 떨치던 백리세가가 짐승만도 못하다고 생각하던 녹림에게 박살이 난 것이다.
그것도 단 한 명에게.
가족들이 당하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백리강도 백리청을 지키기 위해 뛰어들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호태산의 압도적인 강함에 단 한 수도 막아 내지 못하고 기절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백리강은 보고 말았다.
쓰러진 자신의 아버지 입으로 들어가는 ‘고독(蠱毒)’을.
그렇게 한 차례 시연을 거친 백리세가는 순식간에 흑천파의 아래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렇게 세가가 인질로 잡혀 버린 백리강.
그녀는 결국 흑천파 이인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했고 이젠 모용진의 등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팁시다. 사형들!”
“그래. 우리 모두 조금만 더 힘내자!”
막내인 철풍견의 기합에 다시 힘을 불어넣는 사형제들.
이제 그들은 진정한 흑천파의 일원이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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