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54
광마전생 (54)
사실 나도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청화를 아래에 두고 난 뒤에 그녀에게서 얻어 낸 정보였으니까.
내가 생각한 것보다 청화는 많이 유용했고 그녀를 아래에 두고 나서 정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녹림과 백리세가를 통해 얻는 정보는 애들 장난인 수준이었으니까.
하오문의 정보 전체를 얻고 나니 바라보는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한마디로 청화를 손에 넣은 것은 행운이었다.
학관에 있는 지금도 나는 그녀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청화는 통합무림에 관련된 것이라면 아주 성실하게 정보를 보내왔고 그 정보에 거짓은 없었다.
물론 지금은 문제가 좀 발생하긴 했지만, 조만간 내가 직접 처리해 주기로 했다.
하여튼 지금은 여기의 진가은이 우선이지.
그는 과도한 정보 때문인지 아니면 정보의 매콤함 때문인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무림맹이…… 곤륜을 마교에 팔아넘겼다고?”
“아니, 무림맹이 아니라 통합무림. 곤륜처럼 무림맹 전체가 통합무림에 가입되어 있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면 그 통합무림에 속한 곳은 어디지?”
“음, 일단 내가 알기론 구파일방 중엔 소림, 무당파, 화산파, 아미파, 공동파, 개방 정도고.”
“그렇게나 많……!”
“세가에는 남궁세가와 사천당가. 사파에는 마교, 혈교, 배교, 명교, 사월교파 정도?”
“말도 안…….”
“그리고 아마 지금 흑도들을 통합한 흑천이라는 놈들도 통합무림 소속일 거야. 그 외에도 석가장과 열다섯 개가 넘는 표국들이 있고 속가 문파와 여러 방파들까지 치면 그 숫자는 어마어마하지.”
내 말에 진가은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가리더니 고개를 떨구고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놀랄 거였나? 괜찮아?”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손을 가져다 대려고 했지만 진가은은 내 손을 쳐 내며 매몰차게 거절했다.
“이제 더는 없는 거겠지?”
“더는 없다? 모르지. 지금도 세를 불려 나가고 있을지도 몰라. 알고 보면 곤륜 이외의 모든 문파들이 암묵적으로 가입했을지도 모르고. 아마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았을걸?”
“그런……. 그런데 넌 어떻게 모든 것을 알고 있지? 평범한 백호학관의 입학생이 그 모든 걸 알 리가 없지 않나. 네 말이 거짓이 아님을 내가 어떻게 알지?”
“진가은, 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뭐?”
그 순간 진가은의 몸이 허공을 날아 벽에 부딪쳤고 보이지 않는 기세가 그를 마구 짓눌러 벽에서 떨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내기는 많이 들지만 이만한 방법이 없지.
“네가 곤륜에서 어떤 위치에 올라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네 앞에 서 있는 나는 네 아래가 아냐. 나는 지금 네 생사를…… 아니, 더 나아가선 곤륜의 생사를 손에 잡고 휘두르는 중이라고? 그런 나에게 네가 이런 태도를 보이면 과연 너에게 좋은 일이 생길까? 나는 아니라고 보는데.”
벽에 개구리처럼 찰싹 달라붙은 진가은을 향해 다가간 나는 손으로 그의 하관을 거머쥐었다.
“내가 이런 귀한 정보를 알려 주는 건 네가 내 동기이자 친구였고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난 널 도울 생각으로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이지. 그러니까 앞으로 내 심기를 나쁘게 만들진 않았으면 하는데……. 내 성격 알지? 나 이것도 많이 참고 있는 거다?”
많이 참고 있다는 것에 진가은이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으면 됐어.”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운을 갈무리했고 기의 압박이 사라지자 진가은은 다시 한 번 바닥에 주저앉았다.
“커헉. 그럼 내…… 아니, 제게 원하시는 게 뭡니까. 어째서 저에게 그런 정보를 알려 주시고…….”
“이제 와서 높임말은 됐어. 친군데, 뭘. 원하는 것도 딱히 없어. 그저 나는 널 돕고 싶었을 뿐이야. 친구의 문파가 위기에 놓여 있고 딱 봐도 그 때문에 이 백호학관에 입학한 것 같은데, 내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 좋은 아군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좋은 아군……?”
“음…….”
왠지 또 말이 길어질 것 같았기에 창밖을 잠시 쳐다본 나는 어둠이 내려앉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진가은을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가자.”
“응? 이 시간에 어딜…….”
“내가 이야기해 줄 게 더 있거든. 그런데 거기에 술이 빠질 순 없어서 말이야.”
* * *
나는 분명 평범하게 기루에 도착했고 방을 잡았다.
그런데 왜 저놈의 표정이 저럴까.
마치 기루에 강제로 납치당해서 온 여자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니.
쳇. 쟤는 이럴 때도 쓸데없이 잘생겼군.
“거기서 왜 그러고 있는데. 일로 안 와?”
구석에서 쭈그리고 있는 진가은을 보며 술상으로 오라 하니 놈은 뭔가 잔뜩 경계하는 표정으로 나를 훑어본 뒤 마지못해 가까이 다가왔다.
“왜 그래? 기루 처음 와 봐?”
“왜 그러긴! 사람을 납치하다시피 끌고 나가더니 하늘을 날아서 학관의 담장을 넘고 이런 기루에 데리고 오다니 대체 무슨 꿍꿍이지?”
“무슨 꿍꿍이긴. 술 마시려는 꿍꿍이지. 학관 내에선 술을 안 팔잖아? 그리고 기루가 어때서?”
“여, 여긴 여자가 몸을 파는 적색 기루잖아!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하려고……!”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왜 해? 나 남자한테는 관심 없거든? 너 설마…… 그쪽이야?”
내가 진가은과 나를 손가락으로 번갈아 가며 고개를 젖히자 진가은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미쳤어?!”
“그래. 나 안 미쳤으니까 이야기나 하자고. 혹시 학관에 들킬까 봐 그러는 거면 걱정 마. 안 들키게 돌아가면 그만이니까.”
이렇게 말해도 진가은은 이상하게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아마 아직도 내 정체가 의심스러운 거겠지.
확실히 내가 진가은이라고 해도 갑자기 곤륜의 생사니 뭐니 하면 당황스럽긴 하겠군.
그래서 나는 진가은이 듣든 말든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태까지 있었던 일들을.
다 말하면 너무 기니까 어느 정도 생략해 가면서 중요한 내용만 알려 줬다.
응? 내가 왜 진가은에게 이렇게까지 하냐고?
뭐,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같이 지내 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이기도 했고 내 생에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으니까.
부끄럽지만 난 여태까지 이렇다 할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좀 더 각별한 느낌이랄까.
게다가 그가 속한 문파는 곤륜.
지금 상황에서 곤륜파라는 문파는 구파일방 중에서 유일하게 나와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문파였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딱 그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내가 곤륜을 구해 주고 그 힘을 얻는다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통합무림이 세를 불려 나가는 지금 그곳을 무너뜨릴 계획인 나도 세를 확장해 나가야만 했다.
“뭐, 대충 그런 이야기인데…… 너 얼굴이 왜 그래?”
죽엽청에 취해 열심히 이야기를 끝마친 내 눈앞에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진가은이 있었다.
“그, 그런…… 너무해! 어떻게 그런 짓을! 고얀 무림맹 놈들…… 다 불태워 버릴 거야! 으허허헝.”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진가은.
아까 전, 이야기 도중 갑자기 술을 조금씩 홀짝이더니 그의 얼굴은 폭발할 것처럼 시뻘게져 있었고 혓바닥은 꼬일 대로 꼬여 있었다.
지금 그가 우는 건 아무래도 이게 그의 주사라서인 듯했다.
그런데 그는 고작 한 잔밖에 마시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의 잔에 따라 준 건 딱 한 번뿐이었으니까.
그 작은 잔에 담긴 한 잔의 술에 사람이 저렇게 취할 수가 있다니…….
최소 네 병은 마셔야 취기가 도는 나에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누군가의 비명 소리에 잠에서 깼고 그 비명 소리의 주인은 바로 진가은이었다.
“뭐, 뭐야! 내가 언제 기숙사로……”
“으…… 아침부터 시끄럽게. 내가 옮겼어. 술 한 잔에 뻗어 아주 진상을 부리길래 내가 기절시켜서 옮겨 놨다.”
내 말에 진가은은 황급히 방을 반으로 나눈 모포를 걷어 나를 쳐다보더니 불그스름한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무……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뭔 소리야.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하냐?”
내 말에 진가은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듯이 우물쭈물거리더니 모포를 내리고 모습을 감췄다.
저놈은 절대 술을 먹여선 안 되겠군.
한 잔에 그렇게 난리를 피우더니 아직도 잠이 덜 깼나. 제정신이 아니구만…….
얼굴까지 불그스름한 걸 보면 확실하다.
세상엔 별의별 사람이 다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잠을 청하려는 그때. 모포 너머로 진가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어제 이야기는 그게 끝이야?”
“그게 끝이라니?”
“너의 과거만 이야기해 줬지. 미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잖아.”
역시 남자는 함께 술을 마시고 나야 진정한 친구가 된다고 했던가.
진가은의 목소리와 말투는 정말로 친한 친구처럼 평소보다 더 편하게 바뀌어 있었다.
“미래라……. 쉽게 말하자면 내가 너를 도와 위기에 빠진 곤륜을 통합무림의 손에서 구하려고 노력하겠지?”
“나에 대한 것 말고. 너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서 묻는 거야.”
“나? 음,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지 않아? 내 최종 목표는 통합무림을 박살 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사신무에서 우승해서 통합무림에 잠입하려고 이 백호학관에 입학한 거야.”
“내부에서부터 박살 낼 생각이야?”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원래 뒤통수만큼 맞으면 아픈 데가 없거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을 가르던 모포가 펄럭이더니 그 사이로 진가은이 넘어왔다.
아까 전 술에 취한 듯한 홍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그는 누워 있는 내 앞에 다가와 허리를 곧게 폈다.
“어젯밤. 그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몰라. 하지만 지금 우리 곤륜의 상황과 네 말이 맞아떨어지는 건 인정해.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놀랍게도 술에 그렇게 취했는데도 진가은은 어젯밤에 나눈 이야기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어젯밤 내가 이야기한 것에 대하여 어떻게든 빈틈이나 거짓을 찾아보기 위해 꼬투리를 잡았지만 나는 그때마다 철저한 진실로 그를 입 다물게 했다.
“난…… 솔직히 아직 어려. 그리고 그만한 판단을 내릴 권한이 없어.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말해 줄 수 있어. 네 말이 정말로 진실이고. 네가 정말로 곤륜을 구해 준다면…… 내 남은 일생 동안 너에게 충성을 다 바치도록 하겠어. 곤륜파 소문주의 명예를 걸고.”
곤륜파 소문주.
역시 내가 생각한 대로 진가은은 평범한 이가 아니었다.
운룡대팔식과 태허도룡검법은 아무나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내가 자세를 고쳐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진가은은 뻣뻣이 세운 고개를 숙이더니 내 앞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렇게 먼저 손을 내미는 진가은.
쳇.
더럽게 잘생긴 주제에 손까지 곱다니.
살면서 이렇게 굳은살이 박여 있어도 예쁜 손은 처음 보는구만.
나는 그 손을 잡고 살며시 힘을 주었다.
“그럼 계약 성립이다. 내가 곤륜파를 도와줄 테니 넌 곤륜파가 나와 손을 잡도록 노력해야 할 거야.”
그때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진가은과 손을 잡은 이 순간으로 인해 무림에 엄청난 혈풍을 일으키게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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