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55
광마전생 (55)
13장
진가은을 동료로 받아들인 지 벌써 오 개월.
날이 쌀쌀해져 가는 어느 날에 나는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비무를 걸어오는 이가 없음을.
다 이겨 버린 것이었다.
백호학관 백대고수의 교두보였던 나는 어느새 이렇게 불리고 있었다.
최강최악(最强最惡)의 일학년.
만일 내가 이학년이 된다면 곧바로 십대고수 이내에 들 거라는 말도 왕왕 나돌고 있었다.
근데 최강은 이해하겠다만 최악은 뭐냐.
나처럼 착한 사람이 어딨다고 말이지.
“오늘도 조용하네요.”
왕세진의 말에 진가은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우리는 세 명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괴인삼방(怪人三彷)이라는 별호는 여전했고 나는 개에서 호랑이로 승격해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광견(狂犬)에서 광호(狂虎)가 되었다는 뜻이지.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건지는 굉장히 애매하지만 확실해진 것은 하나 있었다.
확실히 나는 천기린인 듯했다.
요즘 학관 생활에 잠시 잊고 있기도 했지만 요즘 간간이 들려오는 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광마(狂魔)라는 단어.
평소에는 온순하나 소매를 걷으면 백호학관의 광마가 된다는 소문.
그리고 그 소문의 주인공은 나였다.
그래도 정파라서 그런지 아직 ‘광호’라는 호칭으로 불리지만 물밑에선 이미 광마라고 부르는 듯했다.
백호학관의 광마 이여립이라니.
아 참. 그러고 보니 드디어 진가은에게도 별호가 생겼다.
광견(狂犬) 이여립과 폭풍다변(暴風多辯) 왕세진.
그것과도 너무나도 대비되는 ‘백일미(白一美)’ 진가은.
뭘 숨기랴. 여기서 ‘백일미(白一美)’는 바로 ‘백호 제일의 미남’의 줄임말이었다.
사실 이러한 별호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약간 늦은 감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 정도로 진가은은 잘생겼으니까.
오죽하면 가끔 그를 훔쳐보는 남자 놈들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있고.
가벼운 살기로 내쫓아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드는 그때.
바로 앞에서 관도들의 인사를 받는 한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이학년의 검술 담당 선생이자 내 부하가 된 남궁도.
그는 나랑 눈이 마주치자 살짝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더니 이내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다른 관도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인님.] [응?] [부탁하신 것에 대해서 조사가 끝났습니다. 언제쯤 찾아뵈면 될까요.] [오늘 밤 해시(亥時), ‘홍혜아(紅暳娥)’로 와.]내 대답에 남궁도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그를 스쳐 지나갔다.
“저분이 남궁도라는 분이죠? 이학년 검술 선생이신……. 엄청 무섭다더니 표정이 장난이 아니네요. 아 참, 무섭다고 하니 생각났는데 예전에 제가 무한에 있을 때……”
왕세진의 수다도 오 개월 동안 듣다 보니 이젠 완전히 익숙해져 있었다.
고막이 단련된 것인지 더 이상 귀도 아프지 않았고 한쪽으로 듣고 한쪽으로 흘리는 기술도 제법 좋아졌다.
이런 귀찮은 놈을 왜 달고 다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는 생각보다 여러모로 쓸 만했다.
일단 가장 좋은 점은 더 이상 인원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괴인삼방(怪人三彷)이 학관 내에 이름을 떨치고 다니자 어떻게든 우리랑 함께 다니려는 애들도 자연스레 생겨났는데 그들은 왕세진으로 자동 퇴치가 가능했다.
왕세진의 그 엄청난 수다의 폭풍을 이겨 내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음…….
음?
장점이 있나?
뭐, 아무튼 같이 다니다 보니 정이 들어 버린 것 같았다.
시끄럽지만 말 잘 듣는 앵무새 같은 놈이랄까.
아, 학관 내의 소식도 주로 이놈이 알려 주는군.
이건 장점이라고 하기엔 애매하긴 하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정보나 소식도 마구 물어 오니까 말이야.
“아. 그러고 보니까 형님들, 들으셨어요?”
“응? 뭘?”
“다음 주부터 칠 일간 일학년들 모두 견학을 간다고 하더라고요?”
“견학?”
“예. 견학지는 여러 곳이라고 하던데, 아마 저희 학관과 가까운 화산파나 종남파 같은 곳을 골라서 다녀올 수 있다고 해요.”
왕세진이 알려 준 정보는 사실이었고 그날 마지막 수업에 다음 주까지 어디로 갈지 정해 달라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견학지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었다.
화산파와 종남파는 물론 섬서를 벗어난 무당파와 소림 그리고 호북의 제갈세가까지.
그 외에도 자잘한 문파들과 관청 등이 있긴 했지만 큰 관심은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홍혜아.
홍혜아는 저번에 진가은을 끌고 온 그 기루였다.
후룩.
처음에 여기 왔을 땐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이젠 마음이 편한 듯 차까지 우려 마시고 있는 진가은이었다.
“여립 너도 한 잔 줄까?”
“됐네요. 너나 실컷 마셔. 내 취향은 아냐.”
나는 술을 즐기지 차를 즐기진 않았다.
오히려 싫어하는 편이지.
왜 싫어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해 줄 수 있다.
나는 찻잔에 따라진 찻물보다 독물을 더 많이 마셨으니까.
물론 만독불침인 천기린이 그 독 때문에 죽을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일도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독은 맛이 없으니까.
하지만 술은 달랐다.
달달한 술에 독이 들어가 있으면 왠지 모르게 그 독의 씁쓸한 맛이 술의 달달한 맛과 풍미를 살려 줬단 말이지.
그래서 한 번은 나에게 독이 든 술을 내민 녀석을 살려 준 적도 있었다.
그 독이 든 술이 너무 맛있어서 용서해 줄 수밖에 없었으니까.
한때 그 술맛을 못 이겨 누군가가 나에게 독이 든 술로 암살을 꾀하지 않으려나 기대한 적도 있었다.
내가 직접 술에 독을 타 먹어도 됐었지만 당시에 나는 무림맹주라 독을 함부로 다루긴 힘든 위치였다.
드르륵.
잠시 후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남궁도가 거만한 표정으로 들어왔고 안내해 준 시비가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그는 진가은과 나를 향해 구십 도로 고개를 숙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 오느라고 수고했어.”
“옙.”
남궁도는 나랑 진가은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진가은이 내미는 찻잔을 양손으로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진가은은 내 벗이라는 위치였기에 자연스럽게 남궁도의 위에 서 있었다.
나는 남궁도에게 나와 함께할 사람이라고 진가은을 소개했고 앞으로 잘 보이는 게 좋을 거라고 말했다.
물론 진가은에게도 남궁도와 어떤 인연이 있는지 미리 설명을 해 두었기에 진가은도 별 무리 없이 그를 받아들였고 지금은 남궁도가 자연스럽게 진가은을 받들어 모시는 듯한 형태로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래서. 조사에 진전이 있었다고?”
“아! 예. 주인님이 찾으시던 제갈영 선생은 지금 제갈세가에 있다고 합니다.”
내가 남궁도에게 조사를 맡긴 것은 바로 그날, 시험 이후로 연기처럼 사라진 제갈영에 관한 것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제갈영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기에 나는 직접 제갈영을 찾으러 갔는데 놀랍게도 그녀는 이미 학관을 나간 뒤였다.
그 후로 나는 수소문을 통해 그녀를 찾으려 했지만 내 최고의 정보통인 청화마저도 그녀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찾은 것이 바로 남궁도.
통합무림이라면 찾지 않을까 싶어 그에게 그쪽을 통해 알아보라고 한 것인데 무려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만에 그 성과를 본 것이었다.
“제갈세가? 뭐, 당연히 제갈영이 제갈세가의 사람이라서 충분히 있을 법도 하지만…… 내가 알아본 바로는 제갈세가에서도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게…… 아무래도 그녀는 지금 벽옥(璧獄)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벽옥?”
“예. 벽옥은 세가나 문파에서 주로 사용하는 일종의 감옥 같은 곳으로…….”
“설명은 필요 없어 나도 그 정도는 아니까. 그래서 제갈영이 벽옥에 갇힌 이유는?”
“정확한 건 아니지만 그쪽 소문에 의하면 가주의 결정에 반기를 든 것 같습니다. 이번에 통합무림에서 제갈세가를 회유했고 현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궁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통보 과정에서 제갈영이 이에 반박하며 가주의 결정을 따르지 않겠다고 했고, 그 때문에 벽옥에 수감되었다고 합니다.”
“흐음?”
상황은 대충 이해가 갔다.
그런데 내가 지금 이해가 안 간 것은 바로 제갈영의 행동이었다.
지금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궁은 제갈벽운에게 있어서는 막냇동생이었고 제갈영에게는 계부(季父)가 되는 셈이었다.
보통 세가는 가주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기본이었고 이는 엄격하게 지켜 온 관습이었기에 제갈영이 반발을 한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인 것이다.
게다가 통합무림은 겉보기엔 아주 좋은 단체로 포장되어 있고 실제로 그곳에 마교나 사파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극비에 가까운 것이었다.
고로 제갈영은 이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제갈영이 반박을 했다?
이해할 수 없군.
대체 이유가 뭐지?
“아무튼 제갈영이라는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제갈세가는 통합무림에 가입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통합무림은 중원 최고의 머리를 손에 넣은 것이죠.”
뭔가 뿌듯해하는 듯한 남궁도의 뒤통수를 한 대 갈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진가은과 나는 표면적으로는 출세를 위해 통합무림에 엄청나게 들어가고 싶어 하는 인물이니까.
“그렇군. 제갈세가까지. 이거 원, 경쟁자가 점점 늘어나니 통합무림에 하루라도 빨리 들어가야겠는걸?”
내가 은근슬쩍 진가은을 바라보며 신호를 주자 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남궁도에게 고생했다며 술상을 대접했고 어느 정도 취한 남궁도는 내일 수업이 있다며 먼저 돌아갔다.
다시 진가은과 둘만 남은 방안.
먼저 입을 연 것은 진가은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다니?”
“제갈영 선생. 네가 아무 이유도 없이 그녀를 찾았을 리는 없잖아?”
뭐, 진가은의 말대로 이유는 있었다.
그 제갈벽운의 딸이니까.
갑자기 사라지니까 궁금하기도 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벽옥에 갇힌 그녀를 구하러 가자니 뭔가 굉장히 애매했다.
분명히 제갈벽운의 딸이긴 하지만 나랑 큰 접점은 없었고 어쩌면 계획에 있어서 큰 변수나 위험이 될지도 모르는 일을 고작 제갈벽운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내 복수를 위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일로 인해 발생한 차질이 내 복수를 돕는 이들까지 허무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으니까.
지금 내 맘에 걸리는 것은 그녀가 제갈벽운의 딸이라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통합무림을 거부했다는 것.
그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고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세가에서 받아들인 통합무림을 홀로 거절한 제갈영 선생. 뭔가 느껴지지 않아? 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고민하고 있는 걸 눈치챈 것인지 진가은은 나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고 나는 그를 쳐다봤다.
“그래서?”
“제갈영 선생은 제갈세가에서도 엄청난 수재로 알려져 있었대. 그도 그럴 것이 그 제갈벽운의 외동딸이라고 하니까. 그런데 그런 머리가 우릴 도와준다면 계획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만일 아니라면? 역으로 우리를 드러내게 하려는 함정이라면?”
“그땐 네가 어떻게든 하겠지. 아님 네 옛 친우의 딸을 그렇게 버려 두고 싶은 거야? 과거 정파의 무림맹주라는 사람이?”
뻔뻔스러운 진가은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참 나…….”
이미 그는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속으로도 부정했던 내 속마음을 말이다.
학관에서 매일같이 몸을 부대끼며 산 지 어언 육 개월.
잠도 매일 같이 들고 모든 걸 같이 하다 보니 친해져도 너무 많이 친해져 버린 듯했다.
“이거 원. 너무 친해져도 곤란하다는 게 이런 뜻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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