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171
“저기가 대전각입니다.”
“예.”
“저쪽이 장로들이 회의를 하는 장소고, 저쪽은 맹주님께서 머무는 곳입니다.”
“그리고 저 건물은 대략 십수 년 정도 된 건물로……”
각 건물의 용도와 역사에 대한 설명.
하나 안으로 들어가 보진 못했다. 아무리 손님이라도, 마교인에게 그 내부를 보여 줄 수는 없는 일이니까.
이른바 비밀 유지 때문이다.
하지만 능운비는 듣는 둥 마는 등 했고, 머릿속에는 진산에게 들었던 이야기만이 맴돌 뿐이었다.
이미 정무맹은 둘로 갈라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맹주의 세력과 장로들의 세력으로.
하나 장로들이 모를까?
그럴 리 없다. 자신들이 아는 놈들을 계승한 것이 그들이라면, 필시 놈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맹주 측이 그들을 파악하고 있듯, 그들 역시 맹주와 그 세력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명분이 생기기를, 가장 완벽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 모두 알고 있다.
단번에 목을 물어뜯어 목숨을 끊어놓지 못하면, 되레 당하게 될 것임을.
해서 웃음 속에 칼날을 감춘 채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며 서로를 지켜보는 것이다.
자신은 그 틈에 끼어든 셈이고…….
한데 ‘그분’이 어딘가에 살아 있다면 이러한 상황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황병찬의 설명을 듣는 내내, 능운비는 머릿속에 흐트러져 있는 수많은 조각들을 짜 맞춰 보았다.
가장 먼저 만났던 신예랑과 김산.
그들은 서화점에 조충도를 걸어 둔채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모습을 감춘 채 숨어 있는 상태지만, 그분께서 부리던 정보 조직은 건재하다는 뜻일 터였다.
더하여 김산이 무심코 했던 말.
-이상한 일이라서요. 저희도 십 년전 연락이 끊어진 뒤론…….
십 년 전.
담운천이 후대 양성을 이유로 봉문을 결정한 시점이다.
마교가 중원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은 이옥상이, 진산 등과 함께 자신들의 계획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긴 시점.
“황 장로님.”
“저 건물은…… 예?”
“장로가 되신 지 꽤 오래되신 모양입니다?”
“그게 무슨……?”
“각 전각의 이름이야 그렇다 치고, 언제 어떻게 지어졌는지까지 자세히 아시길래요.”
“헛헛, 갑자기 무슨 말씀인가 했습니다.”
“……”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남궁장로님의 천거로 장로가 된 지 이제 겨우 오년 정도 되었지요.”
“생각보다 오래되진 않으셨군요?”
“예. 남궁 장로님의 배려로 중책을 맡은 것뿐, 아직은 햇병아리나 다름없습니다.”
“햇병아리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제가 보기엔 일을 처리하시는 모습이 다른 장로분들에 비해 조금도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절로 감탄이 나오던 것을요?”
“그렇습니까?”
“암요. 식사도 잠자리도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어서 속으로 놀라고 있었습니다.”
“헛헛, 그럼 다행입니다. 남궁 장로께서 잘 모시라고 신신당부를 하셨거든요. 자, 그럼 저쪽으로 가 보실까요?”
황병찬이 환하게 웃으며 다음 전각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갔다.
그러나 굳이 새겨들을 필요는 없었다. 정작 중요한 것들은 모두 빠진 겉핥기식 설명이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그가 장로가 된 지 오년이라는 사실이다.
오년…….
정치수는 분명 이렇게 말했었다.
-……딱한번 뵈었었지.
-오 년전, 정주에서였다.
어째서인지 그분께서 자신들의 적이었던 자들과 함께 있었다고 했다.
정치수가 본 자들은 아마 지금의 장로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함정을 만들어 자신과 결사대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자들.
모진 고문을 통해 배후를 캐내고자 했던 자들.
지금의 구파와 오대세가를 이끌어가는 이들의 아비이거나 할아버지인 자들이었을 것이다.
진산이 말하지 않았던가?
진짜 적은 장로들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자들이라고.
황병찬이 남궁학의 천거를 받았고, 정치수가 그분께서 자신의 적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설마 그분도 변절한 것인가?
자신이 죽은 이후, 한계를 느끼고 놈들에게 동참하기로 한 것인가?
한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물론 아직 확실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분이 절대로 그럴 리 없다.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한, 시기가 너무 공교롭지 않은가?
정파의 자성(自省)에 대해 부르짖었던 황병찬이 자신의 죽음이후로 별안간 낙향했다가, 오 년 전에 남궁학의 천거로 장로가 되었다.
황병찬이 여전히 그분과 뜻을 같이한다면?
……거짓 변절.
생각이 거기에 이르는 순간, 그 추측이 머릿속을 장악했다.
만약 방법을 바꾼 것이라면?
능운비는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생각을 정리했다.
그분께서 이옥상 등의 움직임을 알고, 그들을 도우려고 일부러 적들의 틈새에 파고든 것이라면?
좋은 방책이다.
외부에서 움직이는 자들이 있으니, 내부에서 천천히 그들의 실체를 파악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등에 칼을 꽂는다.
그렇게 내외에서 공격당하면, 저들은 절대로 과거처럼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그래, 그런 것이다.
자신이 죽는 그 순간까지 함구했기에, 놈들은 그분의 정체에 대해서는 모르지 않던가?
하나 모든 것은 추측에 불과했다. 일단은 황병찬의 진짜 모습부터 확인해야 했다.
변절한 것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향이에게 부탁하긴 했지만, 그녀는 전후 사정을 모르지 않는가?
자신이 직접 봐야 한다.
그러자면 정무맹뿐 아니라, 왕천과 삭월대의 눈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자, 이쯤 하면 정무맹에 대한 소개는 대충 끝난 듯하군요.”
“이런, 아직 시간이 이르군요?”
“그렇군요. 따로 생각해 두신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말씀하시면 제가 성심성의껏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남궁장로께서도 그러라 하셨구요.”
“음…….”
황병찬의 물음에 능운비는 잠시 고민했다.
정무맹의 시선에서 벗어나 몸을 숨기기에 가장 좋은 곳이 어딜까?
왕천과 삭월대도 쫓아오지 못할 그런 곳이…….
한참을 고민하던 능운비의 머릿속에 딱 한 곳이 떠올랐다.
예전에도 자주 숨었던 곳.
중원을 수호해야 할 만큼 큰일이 아니면, 어떤 일에도 중립을 지켜 온 곳.
설사 살인자가 숨는다고 하더라도, 그를 쫓는 이가 정무맹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조사할 수 없는 중원 유일의 성역.
“구룡쟁투가 시작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지요?”
“닷새 남았습니다. 화산이 갑자기 불참을 결정하면서, 새로운 참가자로 선발된 팽가의 아들이 도착해야 해서요.”
“다행이군요. 그 정도면 다녀오기 충분하겠습니다.”
“예? 어딜 가시려고요?”
“기왕지사 정무맹까지 왔으니, 중원무학의 발원지에도 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중원 무학의…… 설마 승산에 다녀오시겠다고요?”
“예.”
“……”
빙긋이 웃으며 대답하자 황병찬의 얼굴에 황당함이 어렸다.
뒤에서 따라오던 왕천과 주승, 삭월대의 표정도 비슷해졌지만, 황병찬이 함께 있기에 말은 못 하고 눈만 동그랗게 뜰 뿐이었다.
물론 모두의 생각은 같았다.
마교가 소림에?
“진심이십니까?”
왜요? 안됩니까?”
“그게 아니라, 마기와 불기는 상극이라……”
“얼마 전에 불가만큼이나 상극인 도가의 성지, 화산파에도 다녀왔는걸요?”
“예?”
“아, 모르셨습니까?”
“……”
듣지 못했다. 능운비와 함께 왔던 진산은 그에 관해 장로부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탓할 명분은 없었다. 진산으로서는 묻지도 않은 것을 시시콜콜 말해줄 의무가 없으니까.
또한, 능운비가 구통쟁투 따윈 보지 않겠다며 당장에 떠난다고 한들 그의 걸음을 제재할 권한도 없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손님이니까.
“능 공자, 정주에서 숭산까지는 백리 길이 넘습니다.”
“부지런히 가면 반나절 정도 걸리겠네요.”
“예?”
“저희 애들이 잘 뜁니다. 또한 원체수련을 즐기는 편이라, 경공 수련 삼아 다녀오자고 하면 다들 좋아할 것입니다.”
“그래도 소림에 마교가 간다는 것이……”
“그게 왜요?”
“예?”
“무당은 해검지에 검을 놓고 오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산정에 오르는 것을 막지 아니하고, 소림은 찾아온 손님이 불의한 뜻을 품지만 않으면 이념과 가치에 상관없이 문을 활짝 열어 반긴다고 들었습니다. 혹 제가 잘못 알고있는 것인지요?”
“……”
황병찬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자신이 무슨말을 더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맹주께서도 어디든 다녀와도 좋다고 하시더군요.”
“맹주께서 그리 말씀하셨다구요?”
“예.”
능운비의 말에 황병찬이 당황한 표정으로 눈만 끔벅 거렸다.
물론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오직 둘만 만난 자리 였는데.
혹여 맹주에게 사실 확인을 해 본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으니, 흔쾌히 허락했다고 말해 줄 것이다.
“하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장로부에 고하고 모실 이들을 준비하라 하겠습니다.”
“굳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예?”
“제가 정무맹의 손님 이라는 것을 이미 전 무림이 다 알고 있을 텐데, 불미스러운 일이야 있겠습니까? 필요하면 소림에 전서구나 하나 보내주십시오.”
“……”
“자, 그럼 오늘 고마웠습니다. 소림에 간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홍분이 되어 참을 수가 없군요. 바로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분들에겐 대신 말을 전해 주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바로 가시는 것은……”
“마교가 원래 한번 마음을 먹으면 곧바로 행동하지 않곤 못 배기는 편이라서요.”
“느, 능 공자!”
황병찬이 애타게 불러 보지만, 능운비는 이미 손 인사와 함께 휘적휘적 걸어가고 있었다.
“주군! 잠깐만요!”
그 뒤로 왕천이 다급히 따라와 속삭였다.
“소림이라니요?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무슨 말은? 다들 들었잖아.”
“주군!”
“그냥 보러 가는 거야. 너희는 등봉현에서 기다리면 돼.”
“그게 말이 됩니까?”
“왜 말이 안 돼? 화산도 다녀와 놓고는…….”
“그러니까요!”
“……”
“도가에 불가에…… 대체 왜 그러시는 건데요?”
왕천이 울상을 짓자, 능운비가 깊은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리 멍청해서야.”
“예?”
“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도 몰라?”
“……예?”
“우리가 가장 껄끄러워하는 곳이 어디야?”
“그야 당연히……”
“도가와 불가. 항마력을 지닌 그들과 상대하는 것이 가장 힘들지?”
“그렇죠.”
“그러니까 가 봐야지.”
“그게 뭔 말이래요?”
“내가 누구야?”
“……마교의 삼공자?”
“멍청이.”
“……”
“나 보고 교주가 되라며?”
“그야……”
“교주가 되자면, 앞으로 내가 상대해야 할 적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알아야할 것 아냐?”
“……설마?”
“그래. 화산을 봤으니 도가를 알았고, 정무맹이라는 심장부를 봤으니 이제 불가도 봐야지.”
“아!”
능운비의 조리 있는 말에 설득당한 왕천이 탄성을 터트렸다.
“도가와 불가, 그리고 정무맹까지 본 제자가 누가 있겠어?”
“그, 그렇군요?”
“미래를 향해, 우린 한 발짝 앞서 나가는 거야.”
“과연!”
능운비의 말에 홀딱 넘어가 버린 왕천이 별안간 태도를 바꿨다.
“모두 주군의 말씀 잘 들었지?”
“예!”
“주군을 따라 등봉현까지 전력을 다해 달린다. 뒤처지면 각오해라!”
“옙!”
이젠 본인이 나서서 삭월대를 독려하는 왕천이었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녀석이 알 리는 없었다.
내가 너랑 몇 년짼데…….
이젠 너 하나 속이는 건 일도 아니다.
“참! 왕천.”
“예, 주군.”
“삭월대 무인 하나 남겨 둬.”
“예?”
“향이를 기다릴 사람 하난 있어야 하니까.”
“아, 알겠습니다.”
능운비는 향이에게 자신의 행적을 알려 줄 무인을 남겨 둔 채 소림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