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63
#1362.
북진하다 (2)
“흐응.”
최연하가 살짝 놀란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와! 이거 뭐예요, 누나?”
“그러게.”
한은솔도 깜짝 놀란 듯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자금성 같지 않아요?”
“그 정도는 아니고.”
규모라는 의미에서.
대문을 열고 들어오니 중국 전통식 건물이 눈에 다 담을 수도 없을 만큼 들어서 있다. 규모를 보고 있으니 사람이 사는 건물이라기보다는 영화 촬영장이나 유적지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다.
화려함과 고풍스러움이라는 의미에서는 자금성에 그리 뒤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최연하가 놀란 이유는 눈에 보이는 건물의 크기가 아니었다. 이만한 건물이라면 어떻게든 소문이 나고 취재가 이어져야 정상이건만, 최연하는 단 한 번도 이런 건물의 존재를 들어보지 못했다.
중국이야 문화재가 너무 넘쳐서 웬만한 문화재는 취급도 못 받는다지만, 중국이 아니라 세계 어디를 보더라도 이만한 건물이 화제가 되지 않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진짜 권력이 어마어마한 모양이네.’
도심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건물을 철저히 미디어에서 배제하는 것만 봐도 이들의 권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진짜 왕은 아닐 텐데 말이죠?”
“그리 틀린 말도 아닙니다.”
차이커창이 어깨를 으쓱했다.
“황제라는 말을 붙이기는 어렵지만, 왕이라는 말은 모자란 면이 있죠.”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요?”
“왕을 결정하는 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네?”
조금 어려운 말이다.
“왕에게 필요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침범당하지 않는 영토, 침범당하지 않는 권력, 그리고 침범당하지 않는 힘이죠.”
차이커창이 빙그레 웃었다.
“그걸 가지고 있다면 현대에서도 왕이라 불리기 부족함이 없습니다.”
“어디서 그런 말 하고 다니는 건 아니죠?”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뇨. 또라이 소리 들으실까 봐요. 제가 그래도 그쪽을 그렇게 나쁘게 보지 않았는데, 욕 먹는 건 말려 드려야죠.”
“……감사합니다.”
차이커창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못당하겠네.’
굳이 촌스러운 ‘나에게 이렇게 대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를 꺼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 말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방도가 없다.
차이커창은 단 한 번도 자신을 이리 대하는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차이커창을 더 놀라게 하는 건 최연하가 지금 차이커창을 놀려 대는 게 마왕의 위세를 믿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리 봐도 최연하는 원래 성격이 이렇다.
‘대단하다면 대단한 거지.’
최연하보다 더 성격이 나쁜 여자?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런 이들일수록 성격을 내세울 상황과 죽여야 할 상황을 귀신같이 구분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상황의 기준이 되는 건 다름 아닌 상대하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간다는 말괄량이도, 세상 무서울 것 없다는 톱스타도, 심지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자의 무남독녀조차도 감히 차이커창의 앞에서 당당하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마왕쯤 되는 남자도 관심을 가지는 거겠지.’
어쩌면 ‘나에게 이리 대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에 정말 직격을 맞은 건 그가 아니라 강진호일지도 모른다.
“조금 황당하게 들리는 이야기겠지만,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일입니다. 당장 그쪽의 남자친구만 하더라도 한국에서라면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막강한 권력과 영토를 손에 넣고 있지 않습니까?”
“착각하는 모양인데, 그 사람은 만만돌이라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 번씩은 다 찔러봐요.”
“…….”
어…… 진짜?
차이커창이 당황한 얼굴로 최연하를 돌아보았다.
CCTV를 통해 강진호를 감시하기는 했지만, 그건 길거리의 이야기고,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성격에 말인가요?”
“진호 씨 성격이 어때서요?”
“그야…….”
차이커창은 정말 오랜만에 당황하고 있었다. 강진호의 성격을 강진호의 여자 친구에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오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쪽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과격하지 않아요. 물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건 인정해요. 나도 본 게 있으니까. 그런데 평소에는 좀 많이 달라요. 성격이 좀 확확 변하는 타입이거든요. 평소에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사나 싶을 정도로 좀 답답하고 순진해요.”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진짜라니까.”
“아니, 믿을 걸 믿으라고 해야지.”
순진하고 답답해?
그 마왕이?
마왕이 날뛰는 전장에 최연하를 묶어두고 관전하게 해야 한다. 딱 3분이면 그녀가 마왕에 대해 가지고 인상을 모두 바꿀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여기에 묵으라구요?”
“호텔보다는 이곳이 몇 배는 더 안전하고 깔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확실히 그래 보이기는 하는데…… 좀 민폐 같기도 하고, 미묘하게 불편하기도 하고.”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전혀 민폐가 아니고, 불편함은 곧 괜찮아지실 겁니다. 사실 남는 방이 너무 많아서 문제인 곳이니까요.”
“……그래 보이긴 하네요.”
아무리 봐도 영화 촬영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세트장으로 대여해 볼 생각은 없으세요?”
“굉장히 창의적인 생각이네요. 얼마나 창의적인지 단 한 번도 생각조차 못해봤습니다.”
홍왕이 사는 곳에서 영화 촬영이라니.
주석의 집에 밥 한 끼 달라고 쳐들어가는 쪽이 훨씬 현실적이다.
“그럼 우린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거죠?”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입니다.”
“그 상황은 누가 정리하는데요?”
“아시는 대로.”
최연하가 미간을 좁혔다.
“쉽게 정리될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이 상황을 해결한다면 돌아갈 수 있는 거고, 해결 못해도 돌아갈 수 있게 되겠죠.”
최연하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해결 못해도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모를 최연하가 아니었다.
모르긴 해도 이 일련의 사태는 강진호 때문에 벌어진 일인 게 분명하다. 다시 말해 강진호가 없어진다면 모든 상황이 해제된다.
“함부로 지껄이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제가 그렇게 성격이 좋은 편은 못 돼서.”
차이커창이 고개를 숙였다.
“무례를 저질렀군요. 사과드립니다.”
최연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요. 도움받는 처지에 이리 굴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는데, 진정이 안 돼서.”
“이해합니다.”
고슴도치는 불안할수록 더욱 가시를 세우기 마련이다. 굳이 그 부분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진호 씨는 괜찮은 거죠?”
“저희 쪽에 딱히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좋은 소식?”
“아, 죄송합니다. 말 실수를 했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강진호 씨가 거기서 죽어주는 게 제게는 훨씬 이득이라.”
“아니!”
“그럴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이죠.”
“…….”
차이커창이 한숨을 내쉬었다.
‘병신 같은 놈들.’
일은 함부로 진행하는 게 아니다. 특히나 이런 일은.
이 한 번의 움직임으로 저들은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삼왕급의 무인을 상대하기 위한 조직적인 준비를 해왔다는 게 발각된 게 컸다.
‘처음부터 마왕을 노리고 그런 짓을 했을 리는 없지.’
그렇다면 그 칼날이 원래 겨누고 있던 이들은 누구였겠는가.
당연히 삼왕이다.
아마 홍왕계뿐 아니라 다른 삼왕계도 지금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쓸데없이 둘의 전투에 개입해서 외국인을 돕는다는 불명예를 지고 싶지 않을 뿐, 둘의 대립이 어떤 식으로든 정리된다면 삼왕계가 움직이지 않을 리가 없다.
‘잘못하면 쓰레기 처리를 이쪽에서 맡을 수도 있겠군.’
마왕이 적당한 선에서 발을 빼고 한국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면, 남은 이들을 처리하는 건 삼왕계의 몫이 된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쪽입니다.”
별관에 도착한 차이커창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현대식으로 꾸며진 실내가 드러났다.
“와!”
한은솔이 입을 쩌억 벌렸다.
얼마 전까지 묵은 호텔 스위트룸이 무색할 정도로 고급스럽게 꾸며진 실내였다.
“돈이 정말 많은가 봐요?”
“재력이라기보다는 정성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이곳은 아무나 방문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오로지 홍왕의 손님만이 묵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좋은 숙소를 제공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죠.”
“그래서 돈이 많다는 거죠?”
“……조금?”
차이커창이 빙그레 웃었다.
“여기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중국 내에서는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러니 편히 쉬어주십시오.”
“……고마워요.”
“천만의 말씀. 마왕께 빚을 지워두는 일이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차이커창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문을 닫았다.
최연하가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소파에 던지고는 그 옆으로 자신의 몸도 던졌다.
“아…… 죽을 것 같다.”
“그러게요.”
한은솔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다크 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뭘 어떻게 돼. 그냥 버팅기는 거지.”
“……입국하면 위험하다는 말이 진짜일까요?”
“몰라. 쟤들을 어떻게 믿겠어. 그런데…….”
최연하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비행기 표까지 끊어주고 간 사람들이 창백해져서 돌아왔는데, 그걸 안 믿기도 뭐하잖아.”
“그렇죠.”
한은솔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타국의 무뢰배와 한국 중 누굴 더 믿으라고 할 때, 전자를 선택할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이 지금 한은솔과 최연하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말해주었다.
“아, 몰라. 나 일단 샤워부터 할 거야. 그리고 너도 씻어. 일단 밥 달라고 하고 한숨 자자.”
“누나는 걱정도 안 돼요?”
“걱정되지. 당연히 걱정되지. 그런데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져?”
“그렇긴 한데…….”
“진짜 걱정되는 건 그런 게 아냐.”
“네?”
최연하가 말없이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가만 안 둘 거야!’
이 긴 시간 동안 전화 한 통 못할 만큼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것도 문제고, 전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인데 전화를 안 해도 문제다.
“진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확 그냥 머리털을 다 뽑아버…….”
그 순간.
우우우우우웅.
손에 쥐고 있던 최연하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최연하가 화들짝 놀라 전화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대체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야 연락을 하는 거야, 이 망할 인간아아아아아아! 죽을래?”
쩌렁쩌렁한 최연하의 고함 소리가 건물을 뚫고 솟구쳤다.
한은솔이 기겁을 하여 바깥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가 뛰쳐 오는 건 아니겠지?
“죄송이고 나발이고! 당신, 어디야? 너, 거기 딱 있어! 내가 지금 가서 머리통을 뽑아버릴 테니까!”
한은솔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일련의 과정에서 막대한 재력과 막대한 권력을 입증한 저 차이커창조차도 두려움을 숨기지 못하는 남자.
강진호.
그 위대한 이름이 사정없이 후려쳐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