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32
#1531.
대비하다 (1)
인간의 천성은 바뀔 수 있을까?
성주찬은 솔직히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천성은 바뀌지 않는다.
소심하게 태어난 사람이 대범해질 수 없고, 활동적인 사람이 소파에서 주말을 보낼 수는 없는 법이다.
천성이란 그런 것이니까.
하지만 천성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이 인간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천성적으로 사회에 맞지 않는 부분을 억누르고 깎아 사회에 적응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바꾸는 과정.
그걸 세상은 교육이라 부른다.
‘이 새끼도 바뀔 수 있을까?’
성주찬이 정명철에게 묘한 눈빛을 보냈다.
웬만한 인간은 교육으로 해결할 수 있다. 사람들은 사교육이 발달하면서 학교가 가지는 입지가 계속 줄어든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공교육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어린아이들이 학교라는 사회를 거치면서 해야 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건 보통 인간이 아닌데.’
성주찬이 입맛을 다셨다.
살면서 정명철 같은 인간은 거의 보지 못했다.
‘얘는 다른 의미로 대단한 놈이지.’
보통 사람의 자신감이라는 건 자신이 무엇을 이루었는가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놈은 이룬 것이라고는 개미 눈꼽만큼도 없으면서 자신감만은 하늘을 찌른다. 알맹이 하나 없는 놈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이것도 일종의 정신병 아닌가?’
근자감병?
성주찬이 피식 웃고는 정명철의 엉덩이를 한 번 걷어찼다.
“아니, 이 새끼가 틈만 나면 쉬려고 하네? 힘드냐? 힘들어, 이 새끼야? 네가 지금까지 괴롭혀 온 사람은 십 몇 년씩 괴로워했을 텐데, 고작 며칠 굴렀다고 죽는 시늉을 하고 있네. 확! 시바, 모가지랑 몸뚱아리랑 분리해 버릴라.”
“허억…… 헉…….”
“달려, 새끼야!”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떻게든 정명철을 사람으로 만들어보겠다는 각오를 한 성주찬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그의 이 작은 행동들이 대체 무슨 결과를 가지고 올지 말이다.
“저건 뭐냐?”
방진훈이 거의 인간 좀비가 되어서 연무장을 구르고 있는 정명철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저 사람 무인 아닌 것 같은데? 왜 일반인이 총회 연무장에서 저러고 있는 거냐? 어쭈? 저건 성주찬이 아냐?”
방진훈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성주찬은 총회를 나간 사람이다. 그가 성주찬에게는 나름 개인적인 호의를 가지고 있다지만, 원칙은 분명해야 하는 것. 총회를 나간 사람이 총회에 들어와 있는 것도 문제고, 그런 이가 일반인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도 문제였다.
“뭔 일인지 알아봐.”
“아, 저거요.”
천태훈이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회주님이 또 일 하나 벌이신 모양입니다.”
“응? 회주님이?”
여기서 그 이름은 또 왜 나오는가.
방진훈이 고개를 갸웃하자, 천태훈이 그가 아는 상황을 대충 설명했다.
“아, 그러니까…….”
방진훈이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새끼가 은퇴한 애들 매장에서 깽판 쳐서 영업방해를 한 놈이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놈을 잡아다가 굴린다고? 무인이 아니라서 죽여 버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죽어라 패자니 지은 죄가 패기에는 애매해서?”
“예.”
“별…….”
방진훈이 피식, 웃었다.
“아주 이제는 소꿉장난을 하시네. 예전 같았으면 일반인이고 나발이고 그냥 패 죽여 버렸을 텐데.”
“에이, 회주님이요?”
방진훈이 고개를 슬쩍 돌려 천태훈을 바라보았다.
“내가 요즘 너희를 보면 한 번씩 어이가 없다.”
“……예?”
“너나 나나 회주님 손에 모가지 날아갈 뻔한 게 얼마나 됐냐? 야, 그때 수틀렸으면 우리는 지금 여기 없어. 어디 야산에 묻혀서 염라대왕이랑 쎄쎄쎄 하고 있겠지.”
“…….”
천태훈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회주님이 워낙에 사람이 온화해져서 그렇지, 처음 봤을 때 생각 안 나냐? 나는 뭐 눈에 칼 박아 넣은 줄 알았다. 사람 눈빛이…… 어우.”
방진훈이 진저리를 쳤다. 천태훈 역시 방진훈이 느끼는 감정에 동의했다.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처음 총회와 얽혔을 때의 강진호는 정말 칼날로 만들어진 사람 같았다. 아마도 강진호가 그들을 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이겠지만…….
‘아니, 아니지. 그러고도 한동안은 계속 그런 느낌이었지.’
예전의 천태훈은 감히 강진호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멀리서 보면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농담도 나누는 사이가 되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니 진짜 많이 변하셨네요?”
“나는 아직도 깜짝깜짝 놀란다니까. 이 새끼들이 뭔 회주님이 지들 친구인 줄 알아. 농담 따먹기를 하더라니까? 농담 따먹기를?”
“…….”
찔리는 게 있는 천태훈이 입을 살짝 닫았다.
“옛날 회주님 같았으면 저 새끼는 지 모가지가 어디 있는지 찾고 있었어야 해.”
“……그런 것 같습니다.”
방진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람이 온화해진 건 좋은 일인데, 그래도 저건 좀…….”
“은퇴자들이랑 얽힌 일이라서가 아닐까요?”
“응?”
“회주님도 그쪽으로 신경을 많이 쓰시니까, 그걸 방해하려 드는 놈에게 당연히 화가 나셨겠죠.”
“아니. 그게 아니라 대충 손가락 하나씩 뽑다가 패 죽여 버리면 되는데 왜 살려두려고 하시는 건지.”
“…….”
천태훈이 멍한 눈으로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아니, 아니지.’
생각해 보면 방진훈이 이상한 건 아니다.
총회에 일반을 건드리지 말라는 규칙이 있던 건 사실이지만, 그 규칙이 제대로 지켜진 적은 거의 없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돈 받고 사람 죽여주던 일도 마다하지 않던 총회가 무슨 수로 그 규칙을 지키겠는가.
예전의 총회였다면 정명철은 이미 죽고도 남았다.
강진호가 온 이후로 규칙 같지 않던 규칙이 그 생명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하튼 회주님이 하시는 일이라 저희가 끼어들긴 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
방진훈의 목소리가 묘해졌다.
순간, 천태훈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방진훈이 이런 목소리를 낼 때마다 반드시 일이 터진다. 심사가 뒤틀렸다는 이야기다.
‘회주님에게 심사가 뒤틀리지는 않았을 거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천태훈은 방진훈이 강진호를 얼마나 믿고 따르는지를 잘 알고 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강진호가 없었다면 방진훈은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중걸과 싸우다 죽었거나, 아니면 영남회와 싸우다 죽었겠지.
아니, 굳이 영남회까지 갈 것도 없다.
이중걸이 이기기 위해서라면 일본 놈들까지 끌어들이는 지독한 인간이라는 점은 그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아마 대립이 극한까지 치달았으면, 숙청당하는 쪽은 방진훈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애초에 방진훈이 이중걸에게 반기를 든 것은 그가 총회의 회원들은 소모품 취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진호는 오히려 방진훈보다 더 그들을 챙기고 있다.
숙소를 만들어주고, 봉급을 인상하고, 바깥세상에 당당히 내밀 수 있는 명목상의 직업도 주었고, 이제는 총회를 나간 이들의 먹고살 길마저 열어주고 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강진호교의 교도들이 워낙 많은 총회이지만, 천태훈은 그중에서도 방진훈이 가장 독실한 신자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방진훈에게 강진호의 방침에 딴지를 품는다는 건 신성모독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는 건 다른 쪽에 불만이 있다는 건데…….
“……애들은 지금 뭐 하고 있냐?”
“예? 이제 점심시간 끝났으니 좀 쉬고 있지 않겠습니까?”
“아, 쉬어? 쉰다고?”
방진훈의 눈썹이 꿈틀했다.
“내가 뭐 쉬는 걸 뭐라 하려는 건 아니야.”
“…….”
천태훈의 트라우마가 자극되기 시작했다.
“훈련할 때는 훈련하고, 쉴 때는 쉬어야지. 나도 꽉 막힌 사람은 아니야. 할 걸 다 해놓고 쉬는 건 방해할 생각이 없단 말이지.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아들어?”
“……예.”
“그런데 봐봐.”
방진훈이 턱짓으로 정명철을 가리켰다.
“쟤가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지 않아?”
“…….”
천태훈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아니, 저놈은 지금 벌을 받는 거고, 우리는 수련을 하는 건데, 그걸 그렇게 비교를 해버리시면…….
“물론 네가 뭘 생각하는지는 알아. 상황이 다르다고 여기겠지.”
방진훈이 살짝 콧김을 뿜었다.
“야, 그래도 우리는 무인 아니냐. 그런데 무인의 하루 훈련량이 일반인이 소화하는 것보다 적다는 건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냐?”
“……적지는 않을 겁니다, 절대로.”
“비슷해도 문제지. 안 그래?”
아니, 훨씬 많다구요! 저희 요즘 정말 열심히 한단 말입니다!
할 말은 차고 넘치지만, 천태훈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괜히 입을 열고 변명을 했다가는 문제가 두 배로 커진다.
방진훈은 그런 사람이니까.
“내가 너희를 다그치겠다는 게 아냐. 그런데 생각해 봐. 저 마염 놈들은 요즘 마교에 찰싹 붙어서 수련하고 있지. 그 덩치 놈들은 바토르 님이 공처럼 굴려 대고 있지. 심지어는 위긴스 이사님도 요즘 귀신같이 애들 몰아치더라 이거지. 그런데…….”
방진훈이 슬쩍 고개를 돌려 천태훈을 바라보았다.
“너희는 좀 편한 것 같지 않냐, 이 말이지.”
“…….”
“아아, 내가 너희를 괴롭히고 싶다는 말은 아니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천태훈이, 너는 알지?”
“무, 물론입니다.”
“그래. 너는 알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말인데…….”
“…….”
“좀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냐, 이 말이야.”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그래. 내 말, 잘 이해했을리라 생각해. 그런데 그걸 너만 알고 있어서야 별 소용이 없잖아?”
“……예.”
“아직 휴식 시간 덜 끝났다는 건 알지만, 적당히 애들 불러서 설명하면 애들 의욕도 고취되고, 그러면 서로서로 좋은 거지. 총회의 미래가 너희에게 달려 있잖아. 그렇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역시 말을 잘 알아들어.”
방진훈이 천태훈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겨 주고는 헛기침을 하며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뒷짐을 진 채 휘적휘적 걸어가 버렸다.
“…….”
어쩐지 그 머리에 원사모를 씌워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천태훈이 살짝 이를 갈며 휴대폰을 들었다.
“야, 다들 튀어나와.”
[왜요?]“……방 이사님이 뺑이 돌랍신다.”
[아니, 갑자기 왜?]“그냥 튀어나오라면 튀어나와, 새끼야. 애들한테 전달해서 5분 내로 전부 연무장에 집합하라 그래. 이사님 보고 계실 거니까, 각 잡고 나오라 하고.”
[하아…… 알겠습니다.]“내가 봤을 때는 이거 절대 쉽게 안 끝난다. 어설프게 불만 가진 얼굴로 나오는 게 이사님 눈에 띄면,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다 같이 죽는 거야. 표정 관리 시켜라.”
[예. 걱정 마십쇼.]전화를 끊은 천태훈이 지옥 같은 눈으로 정명철과 성주찬을 노려봤다.
‘좀 눈에 안 띄는 데서 굴리든가. 저 망할 새끼!’
이번 일이 끝나면 반드시 성주찬을 손봐주겠다고 다짐하는 천태훈이었다.
이렇게 작게 시작한 일일 점점 그 크기를 불려가며 총회를 지옥의 연쇄로 몰아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