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32
#531.
결착 나다 (1)
이질감.
그건 이질감이라 불러야 할 감정이었다.
이현수는 지독한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 그의 눈으로 보고, 그의 귀로 듣고, 그의 피부로 느끼고 있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뇌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의 몸을 휩쓸어 버린 거대한 충격에 날려가면서도 이현수는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가 없었다. 그저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리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하늘과 땅이 빙글빙글 돈다.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는 극한의 비현실 속에서도 이현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이제는 지금 그가 처한 상황이 현실인지 꿈인지도 정확하게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지독한 비현실감을 유영하던 이현수는 몸이 바닥에 처박히는 충격에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그를 괴롭혔다.
그그그극.
붕 떠오른 몸이 바닥에 처박혔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충격을 모두 상쇄시키지 못한 몸이 바닥을 긁었다.
“으!”
입에서 절로 욕지기가 흘러나왔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바닥에 박아 넣는다. 순간, 손목이 부러지는 듯한 충격이 몰려왔다.
겨우겨우 몸을 고정시킨 이현수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시야는 전혀 확보되지 않고 있었다. 밀어닥치는 먼지의 폭풍이 그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지옥이겠지!’
굳이 이곳을 명명한다면 말이다.
인간과 인간의 격돌이 자연재해를 만들어낸다. 무학에 몸을 담은 지 이십 년이 넘은 이현수로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해는 포기한다.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저들이 어떻게 이런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가 아니다.
‘누가 이겼지?’
중요한 건 현실이었다.
강진호와 바토르 중 누가 이겼는가에 따라 현실은 급변한다. 동아시아에 엄청난 파장이 일 것이다. 그가 바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강진호의 완전무결한 승리였다.
순간, 이현수가 두 눈을 부릅떴다.
먼지 폭풍이 눈을 찢을 듯 몰려들었지만, 이현수는 결코 눈을 감지 않았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지금은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봐야 한다.
승부가 어떻게 났는지 말이다.
몸을 부숴 버릴 듯 밀려오던 폭풍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그에 따라 그를 괴롭히던 먼지들도 천천히 밀려나갔다.
‘누구냐?’
아직 완전히 확보되지 않은 시야로 흐릿한 사람의 형체가 들어왔다.
“……아!”
이현수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
바토르.
저 모습은 강진호의 것이 아니었다. 우뚝 서 있는 저 거대한 형체는 분명 바토르의 것이었다.
크기로는 누구인지 판별할 수 없다. 모래 폭풍에 날려가 버린 그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저 머리와 어울리지 않는 비상식적인 어깨의 넓이, 그리고 허리로 좁혀지는 역삼각형의 몸매는 분명 바토르의 그것이었다.
이현수가 입술을 질끈 깨문다.
바토르는 쓰러지지 않았다.
이 거대한 격돌 속에서도 그는 버텨낸 것이다.
‘강진호 씨는?’
이현수의 시선이 정신없이 주변을 쫓았다.
바토르는 버텨냈다. 그럼 강진호는?
하지만 아무리 주변을 돌아봐도 강진호라 짐작되는 것은 없었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바토르뿐.
“안 돼!”
생각이 입으로 튀어나온다.
안 된다. 이건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다. 강진호가 바토르에게 패배하는 순간, 대한민국의 무인계는 붕괴한다. 그리고 무인계의 붕괴는 단순히 그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뒷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무인계가 중국에 종속된다는 것은 드러난 세계도 중국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강진호는 져선 안 된다. 절대로!
진다 해도 지금은 아니었다. 총회는 이제 변화하고 태동하는 와중이다. 지금 강진호가 패해 버린다면, 그 모든 동력이 무너질 것이다.
“안 된다고!”
이현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신 곳곳이 부러지고 터진 것처럼 아파왔지만, 지금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이 죽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지금 강진호가 패한다면, 죽는 것보다 못한 꼴이 되어버릴 텐데.
흐릿한 시야 사이로 뭔가가 더 보이기 시작했다.
바토르의 앞쪽.
살짝 솟아난 둔덕 같은…….
마치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 같은 형상이었다.
‘아니야!’
아니다.
저건 절대 강진호일 리가 없다.
강진호는 쓰러지는 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 누구도 강진호가 승부에서 패해 쓰러져 있는 광경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절대로!
비정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현수를 위로라도 하듯이 무심하게 불어온 바람이 그의 시야를 가리고 있던 먼지들을 날려 버렸다.
“아…….”
이현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럼 그렇지.’
말 그대로 둔덕.
강진호와 바토르가 일으킨 충격에 제멋대로 뒤틀려 버린 지각이 불룩 솟아오른 것에 불과했다.
그럼?
강진호는 어디로 갔는가.
“우욱…….”
이현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바토르가 흘린 신음이 그의 시선을 잡아챈다. 소리에 홀려 다시 바라본 바토르는 먼지 속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인상이었다.
강철처럼 굳건하고,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어깨선.
그 어깨선은 지금도 변화가 없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토르의 육체 곳곳이 마지 거북이 등껍질처럼 쩌적쩌적 갈라져 선홍빛의 피를 콸콸 쏟아내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것만으로 인상이 이리 달라질 수 있는가.
그의 육체는 딱히 변한 것도 없건만, 지금은 커다란 모래성처럼 느껴졌다. 불어오는 바람 한 번, 밀려오는 파도 한 번에 속절없이 사라질 모래성 말이다.
이현수의 느낌이 틀리지 않다는 듯 바토르의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휘청거림.
마치 거대한 고성이 쓰러지듯 바토르의 몸이 무너졌다.
“우우욱!”
바토르의 무릎이 꺾인다. 그 커다란 손이 바닥을 짚었다.
그와 동시에 그 커다란 등 너머로 무표정한 얼굴의 강진호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
빌어먹을.
이러니 안 보이지.
몸뚱아리가 너무 커서 강진호의 몸을 모두 가려 버린 것이다. 이현수가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떨리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의 입가에서 선명한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지만, 강진호는 확실히 그 두 발로 서 있었다. 그리고 이현수의 눈에는 딱히 위험할 만한 외상도 보이지 않았다.
강진호의 속이 얼마나 상해 있는지야 여기서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강진호의 상태가 바토르보다 확연히 나았다.
바토르가 억눌린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졌다.”
선언.
나직하고도 담백한 선언.
그 선언을 듣는 순간, 이현수의 몸이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듯 부르르 떨렸다.
저 바토르가 패배를 인정했다.
강진호가 바토르를 이긴 것이다.
그 말이 분명 바토르의 입에서 나왔음에도 몇 번이고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의심해야 할 정도로 충격적인 말이었다.
바토르가 누구인가.
저 중원에서도 그 명성을 날리고 있는 강자다. 그가 이 땅에서 강진호의 손에 꺾인 것이다.
이현수가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일이지만, 그 일을 일구어낸 강진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바토르란 강적에 대한 감탄도, 승부에서 이겨냈다는 환희도 그의 얼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당연히 해내야 할 것을 해냈다는 느낌이었다.
이현수는 자신이 바토르의 등 뒤에 있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지금 바토르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후회 없이 승부에 임했다는 후련함?
아니면 안타깝게 패배했다는 좌절감?
대체 어떤 감정이 그를 지배하고 있을지 너무도 궁금했다.
하나 지금 이현수가 앞쪽에 있다 하더라도 바토르의 표정만 보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 바토르는 너무도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이 나를 이 꼴로 만든 것은 네가 두 번째다.”
강진호의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첫 번째는 홍왕인가?”
바토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강했지. 너무도 강했다. 다시 싸운다고 하더라도 승리는 꿈꿀 수도 없을 만큼 강했다.”
바토르의 목소리가 비감에 젖어들었다.
패배했다.
그의 삶에 패배가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무학을 완성했다고 여긴 뒤로는 스스로를 무적이라 자신했다.
그 자신이 홍왕의 손에 깨졌다. 그리고 이제는 강진호의 손에 또 한 번 깨진 것이다.
바토르가 고개를 들어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의 인생에서 인정해야 할 두 번째의 패배다. 첫 번째와는 그 느낌이 다르지만, 눈앞의 사내를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는 홍왕과는 전혀 다른 강자다.
홍왕은 시원할 정도의 강함을 보여주었다. 너무도 호쾌하고 강해서 패배하고도 웃어버릴 만큼 말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느낌이 전혀 다르다.
그는 홍왕과는 전혀 다른 타입의 강자였다. 지금 그가 받는 느낌은 패배했다기보다는 사냥당했다는 것에 가까웠다.
강진호를 더 이상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실감한 순간, 전신이 마치 거대한 도마 위에 올라와 있는 듯한 공포에 떨렸다.
애써 의연하려 해도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하나 물어봐도 되겠는가?”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왜 패했지?”
“…….”
“나는 내 무학을 완성했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육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 한 번은 패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니까.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너에게조차 패한 것이냐?”
바토르의 마지막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믿어온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는 듯 바토르는 울분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 울분을 눈앞에서 직면한 강진호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바토르라고 했지.”
“…….”
“생긴 것처럼 멍청한 말을 지껄이는군.”
바토르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경멸.
강진호의 목소리에 녹아 있는 것은 진득한, 피가 뚝뚝 떨어질 것처럼 선명한 경멸이었다.
“완성?”
강진호가 코웃음을 쳤다.
“무학에 완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완성이란 개념은 없어. 완벽해 보이는 것조차 언제나 더 나아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완성된 무학은 죽은 무학이야. 더 이상 정진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으니까.”
“…….”
바토르는 말문이 막히는지 멍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죽은 무학이라고?’
그래서인가.
그래서 자신이 패배…….
“듣기 좋은 소리는 여기까지.”
바토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네가 멍청한 이유는 하나다. 세 살짜리 어린애도 알 것을 물었기 때문이지.”
“머, 멍청하다고?”
강진호가 양손을 뻗어 바닥에 박아 넣은 적루와 청루를 움켜잡았다.
“모든 패배의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적루와 청루를 뽑아 든 강진호가 천천히 바토르를 향해 걸어갔다.
“네가 나보다 약하기 때문이지.”
그렇다.
패배에 무슨 이유가 필요하단 말인가.
강자는 승리하고, 약자는 패배한다. 그것은 영원불멸의 이치였다.
“그리고 패배에는 대가가 따른다. 알고 있겠지?”
악마처럼 웃으며 다가오는 강진호를 보며 바토르는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