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57
제64장 신무학관에 돌아오다 (1)
“아버지가….”
무한성에서 돌아온 즉시 요란을 찾아 녹로를 건네자 그녀의 시선이 아련해졌다.
“괜한 짓을 한 건가?”
“설마요.”
작게 도리질 치며 요란이 입술을 달싹였다.
“제가 아는 아버지는 항상 술에 취해 계셨어요.”
희고 고운 손가락이 검신을 쓰다듬으며 ‘녹로’라는 글귀를 매만졌다.
“어머니와 오라버니를 잃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 저는 너무 어렸어요.”
“추억을 기억 못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슬픈 기억이 옅은 것은 참으로 다행이야.”
삶의 모든 것을 놓아 버린 아비의 등을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 번도 돌아보지 않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울었어요.”
“울보였던 루주라니 한번 보고 싶군.”
“피이-.”
검지로 검신을 살살 쓰다듬던 그녀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결국 넋을 잃고 지내는 아버지를 내버려 둘 수 없어, 어린 나이부터 일을 했죠.”
“…꽤 고생이었겠군.”
“그래도 당시의 복건성은 살만했어요. 작은 몸으로 부산하게 움직이면 미음이라도 입에 댈 수 있었죠.”
“…….”
“뜨거운 미음을 지어, 풀린 눈을 한 아버지의 입가에 흐려 줄 때는 얼마나 기뻤는지.”
아련하던 목소리에 살짝 온기가 어렸다.
“하지만 구걸하며 사는 것도 한계가 있었어요. 결국 저는 말라가는 아버지를 보지 못해, 스스로 저를 팔았죠.”
“그래서 하오문에 들어온 건가?”
“제 몸값을 받아 마지막으로 술과 고기를 사 들고 가 아버지께 드렸어요. 하지만, 미동도 없으셨죠.”
“그것이 부녀의 마지막이었나?”
“네.”
목소리는 흐느낌으로 변해 있었다.
“제 존재 따위는 기억하지 못하실 줄 알았는데.”
어느덧 과거의 작은 소녀로 돌아온 요란이 훌쩍훌쩍 구슬픈 눈물을 흘렸다.
방울져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보며, 초운휘가 입을 열었다.
“백만 냥짜리 미소를 보러왔다가, 진주 같은 눈물을 보게 되는군. 이런 호사라니.”
“죄송해요. 불편하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불편한 것은 없어.”
말하며 몸을 일으켜 그녀의 등 뒤에 앉고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사, 상공?”
“가만히 있어. 내가 좀 서투르거든.”
조심조심 한 줌의 머리카락을 말아 올려, 어설프게나마 비녀를 끼워 넣었다.
익숙하지 않은 손길로 꽤 고생하고 있자니, 말려 올라간 머리카락 아래 흰 목덜미가 붉게 물들었다.
그럭저럭 멋지게 비녀를 꼽은 후, 다시 앞에 앉고는 초운휘가 웃었다.
“하하. 꽤 잘 어울리잖아?”
“가, 감사해요.”
얼굴을 들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웃고 있자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요란이 물어왔다.
“다시 돌아가시는 건가요?”
“응. 그래야지. 슬슬 돌아갈 때가 되었으니까.”
“곧 겨울이 되겠네요.”
“응. 겨울이 오고 있네.”
공력으로 따뜻하게 데운 술을 요란의 앞에 내려놓으며 초운휘가 말했다.
“올겨울은 꽤 가혹할 것 같은 기분이야.”
창밖에서 사선으로 비쳐드는 월광이 유독 차갑게 느껴지는 듯했다.
***
무려 두 달 만의 복귀.
무림맹 아래 수림처럼 뻗은 전각의 꼭대기들이 이제는 집에 돌아오는 것을 반기는 환영객 같은 기분이었다.
마음을 주면 고향이라던가?
어느새 익숙하다 못해 따뜻한 보금자리가 된 신무학관에 입성한 순간, 초운휘가 만세를 불렀다.
“내가 돌아왔다으아으아!”
모두 군주의 귀환을 환영하라!
***
‘…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감개무량한 복귀 즉시 돌아온 것은 불호령이었다.
“왜 이렇게 늦은 건가!”
불려간 집무실에서 장철심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벌써 한 달 전에 돌아왔다네! 자네는 무얼 하다 이제 슬금슬금 기어들어 오는 건가?”
“조오오오기~에서 쫌 일이 있어서.”
“기별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입에서 불을 뿜을 기색으로 장철심이 한 바가지 잔소리를 쏟아냈다.
‘아. 귀에서 피가 나올 것 같아.’
감격스러운 복귀부터 한 식경 내내 언어폭력을 감수해야 한다니,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무사하다면 무사하다고 연락이라도 남길 것이지!”
변명할 구석이 없는 점이 참 안타까웠다.
“죄송합니다아아.”
건성으로 사과를 하니, 의외로 장철심의 추궁은 바로 멈추었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니, 걱정을 했지 않은가?”
“걱정을 했다고요?”
“왜? 내가 위험한 곳에 사람을 보내놓고 꿈쩍도 않을 냉혈한이라 생각했던가?”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정답이다.
하지만 아무리 초운휘라도 지금 고개를 끄덕였다가는 잔소리가 두 배쯤 이어지리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설마요.”
“표정을 보니, 완전 냉혈한으로 본 것 같은데.”
“착각입니다. 모함입니다. 그럴 리가요. 그리고, 딱히 연락을 하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닌데.”
“후우.”
화를 삭이며 그가 미간을 집었다.
“취걸개 장로님께 남긴 편지 말인가?”
“네, 분명히 무사하다고, 잘 다녀오겠다고 분명히 기별을 했습니다.”
“내가 아는 것과는 다르군.”
그가 집무실 서랍 안에서 구겨진 작은 쪽지를 꺼내 밀었다.
“왜 내 눈에는 ‘살아 있어요~ 안녕~’이라고 쓰인 것으로 보이지?”
“…….”
너무 함축적이었나?
“하아. 제발 걱정 좀 끼치지 말고 살게나.”
거기까지 말한 장철심이 쪽지를 호롱불에 태워 버리며 말했다.
“여하튼 무사히 돌아왔으니 됐네. 돌아가 여독을 풀게.”
꾸벅 머리를 숙이며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집무실을 빠져나오자니.
“정말 수고 많았네.”
작은 한 마디가 뒤통수에 날아들었다.
***
복귀를 했으니 어서 꼬꼬마들부터 찾아봐야지.
계곡으로 향하는 산책로에는 군데군데 서리가 맺혀 있었다.
“예전에 왔을 때는 가을이었는데.”
외유를 다녀온 사이, 붉게 물든 단풍이 모두 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있었다.
“계절이 바뀌었구나.”
이곳에 온 이후, 유독 계절의 변화가 생경하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계절의 변화도 느끼지 못하고 살았는데.’
모든 것이 다 새로운 삶을 얻었다는 증표인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워졌다.
“이런 인생도 즐겁구나.”
입맛을 다시며 경쾌한 걸음으로 계속해서 산책로를 넘어, 계곡을 향해 걸어갔다.
***
계절의 변화는 계곡에도 찾아왔던가? 차이가 없다면 살얼음이 낀 계곡에 쫄딱 젖은 채로 입수를 거듭하는 관도들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와아! 교관님!”
가장 먼저 복귀를 발견한 것은 모용소혜였다.
“돌아오셨군요!”
제갈탄의 뒤에서 남궁윤호도 가만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전히 수심에 잠겨 있는 모습을 느꼈지만, 초운휘는 관심을 거두고 물었다.
“다들 잘들 있었냐?”
추운 날에 쫄딱 젖은 모습을 보니, 잘 있었던 것만은 아니겠지만.
‘성과가 있었던 모양이군.’
한층 더 갈무리된 기도는 적잖은 성취를 얻은 증거가 아닐까?
눈치를 짐작했는지 남궁윤호가 대꾸했다.
“언젠가부터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굳이 흐름에 저항하지 않고, 흐름의 방향을 트는 것도요.”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성과가 있는 수련이었군요.”
정강이를 차인 제갈탄이 바닥에서 낑낑거리며 몸을 굴렸다.
‘이제 돌아온 실감이 나네.’
웃고 있자니 뭔가 이상하다.
“가장 시끄러워야 할 녀석이 보이지 않는걸?”
싶어 고개를 튼 순간.
“교관님!”
계곡물이 회오리치더니, 검을 여섯 자루나 품에 안은 백리설이 수면을 박차고 퐁 튀어나왔다.
‘호오-.’
아무래도 가장 성취가 깊었던 것은 백리설인가?
싶어 눈을 빛내고 있자니, 쿵쿵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온 백리설이 빽 소리를 질렀다.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연인에게 인사를 해야죠!”
“연인? 누가 연인인데?”
“아이, 참. 그걸 제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잖아요.”
몸을 베베 꼬는 모습에 초운휘가 식겁을 하며 모용소혜에게 물었다.
“얘. 감기가 심하게 든 거 아니냐? 뭔가 환각을 보는 것 같은데.”
“아, 그게요.”
뭔가 얼버무리는 대답인지라,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자니.
“진설향.”
등골이 서늘한 이름이 들려왔다.
‘뭐, 왜. 어떻게?’
색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지?
떨리는 눈으로 돌아보자, 백리설이 삼백안을 뜨며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설마. 저 말고 다른 여자가 있는 것은 아니겠죠?”
“무, 무슨 소리냐?”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교관님 관찰일기 서른일곱 번째 표본이네요. 뭔가 켕기는 것이 있을 때.”
“…교관님 관찰일기는 뭐야….”
오늘의 백리설은 반가움마저 잊게 할 만큼 몹시 무섭네.
“진 언니에게 이야기 들었어요. 두 분이 무슨 관계죠?”
“…하하. 관계는 무슨.”
적당히 얼버무리며 코끝이라도 튕기고 싶었지만, 백리설의 표정은 사도보다 무서웠다.
마치 사람 열 명쯤은 죽인 연쇄살인마마저 기겁할 만큼 차갑다.
‘뭐야. 얘. 대체 어떻게 진설향을 알게 된 거야?’
재빨리 머리를 굴리며 변명 거리를 떠올리는 찰나, 곁에 있던 모용소혜가 외쳤다.
“언니! 교관님이 당황하고 있어요! [당황], [초조], [혼란]!”
“아앗! 역시 뭔가 있었군요. 어찌 된 거죠? 대답해주세요, 교관님!”
좌측에서는 두 팔을 위협적으로 쳐든 모용소혜가 폴짝대고.
우측에서는 살인마의 눈을 한 백리설이 삼백안을 뜬 채 어깨를 잡고 앞뒤로 흔든다.
그야말로 좌청룡 우백호에게 쪼이는 형국이 아닐까?
‘아, 시작부터 피곤하네.’
결국 정신이 사나워진 초운휘는 상황을 간단히 정리하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성과나 확인해볼까?”
“아앗! 교관님이 비겁하게 회피하고 있어요!”
“이럴 때만 교관님 역할 하려 하지 마시고, 진실을!”
첨벙! 첨벙!
잽싸게 두 사람을 잡아 계곡에 던지자, 제갈탄이 입술을 깨물었다.
“교관님. 눈이 무섭습니다.”
“적어도 인사부터 끝내고 마저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응. 안돼.”
논리로 이길 수 없을 때는 폭력행사가 최고거든.
풍덩! 풍덩!
나머지 둘도 계곡에 던져 넣은 초운휘가 이를 악물며 외쳤다.
“살아남으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휘우우우우우우.
거센 회오리가 계곡을 잠식하다 못해, 폭포마저 거슬러 올라갈 기세로 들끓기 시작했다.
“악당!”
“진실은 폭력에 굴하지 않아요!”
“어푸 어푸!”
“아, 이건 좀.”
다들 수련이 상당했는지, 꽤 끈덕지게 버텼다.
하지만, 결국 교관의 위엄을 넘어설 수는 없는 법.
하나둘 정신을 잃고, 둥실둥실 부표처럼 떠오르고 말았다.
***
“이걸 어쩐다.”
간신히 입을 다물게 했지만, 진설향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뼈아픈 사실이었다.
“살인멸구를 할 수도 없고.”
기억을 잃을 때까지 머리를 때려야 하나, 생각하고 있자니.
“뭐야! 진짜잖아?”
입구 쪽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더니 번거로운 놈들이 나타났다.
“살아 돌아왔네.”
“위험한 곳에 갔었다기에, 찔찔 울며 돌아올 줄 알았는데.”
“역시 교관. 끈질긴 생명력은 정말 대단하구나.”
“왔습니다.”
역시나 시끄럽다 싶더니, 언호승과 적가 쌍둥이, 당간이 나타났다.
‘쓸데없이 목청만 큰 것은 변한 것이 없군.’
골머리를 썩이고 있자니, 문득 언호승이 삿된 소리를 내질렀다.
“뭐야! 역시 가혹하잖아. 조강지처에게도 가차 없네.”
정신을 잃은 백리설을 보며, 킬킬대는 그에, 뭔가 마음 한구석에서 감정이 끊어졌다.
“뭐냐. 언호승. 그 조강지처라는 무서운 단어는.”
“그게 말야. 요즘 여자 관도들 사이에서 나오는 말인데?”
“아니, 어느 맥락에서 나온 말이냐 물었다.”
“그야. 이 무서운 여자가 나에게 와서 묻더라고. 진설향을 아냐고.”
“…그런데?”
어찌 된 거냐고. 조강지처.
“이것저것 도움을 받은 것도 있으니까, 열심히 알아봤지. ‘여기 진설향이라는 도둑고양이가 있냐!’하고 여자 기숙사에 뛰어들었거든.”
“…….”
“하하. 교관들도 너무하지. 덕분에 열흘 동안 근신 먹었다니까?”
“…그러니까. 정실이니 도둑고양이니 하는 단어가.”
“한 백 명 정도에게 수소문하고 다녔더니 그런 소문이 나던걸?”
뚝. 안 그래도 짧은 인내심이 기어코 끊어졌다.
“사소한 일은 잊고. 나를 봐. 정말 열심히 수련했다니까? 이제 와류에서도 제법.”
신나서 떠드는 언호승의 옆구리를 당간이 푹푹 찔렀다.
“호승. 그만해.”
“뭐야. 내가 말하고 있잖아?”
“교관 눈에서 검은 눈동자가 사라졌다.”
그제야 이쪽의 변화를 알아본 언호승이 손바닥으로 탁 제 이마를 쳤다.
“망했네.”
다시 계곡에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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