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456
제104장 대면 (2)
활심원이라는 의원은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꽤 잘나가는 곳이라고 들었는데, 가슴께에 간신히 미치는 조잡한 돌담 안에는 초가집 세 채가 전부였다.
허나, 성세가 거짓은 아닌지, 병자들이 누울만한 평상은 여덟 개나 켜켜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도 없는 것이 딱히 병자를 받지 않는 날인 것 같았다.
“…….”
황량한 마당을 가로질러, 가장 가운데 있는 초가집에 도착했을 때,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셨어요, 상공?”
어둠 속에서 살짝 문을 밀며 얼굴을 드리운 것은 요란이었다.
– 그녀가 내 구원이요, 징벌자였다.
와중에 이상 각성체가 떠든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지만, 바로 상념을 털어낸 초운휘가 물었다.
“차도는 어때?”
“워낙 위중한 상처를 입으셨어요. 급한 고비는 넘겼지만, 요양은 한동안 해야 할 것 같아요.”
“천마를 상대로 멀쩡히 살아남은 것이 다행이지.”
들어선 방 안에는 좁은 침상이 빽빽이 놓여 있고, 한구석에 풍객이 온몸에 침을 꽂고 누워 있었다.
“…왔는가?”
갈라진 입술을 벙긋거리며, 풍객이 눈을 떴다.
“죽다 살아난 기분이 어때?”
“…살아 있기는 한 건가? 정말 지독한 고수였네.”
풍객이 흩어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 평생. 절망을 느낄 만큼 속수무책을 느낀 적은 자네 이후 처음이었어.”
“그거 천마였어.”
“천마신군 말인가? 내가 아는 그가 어찌 이런 신위를.”
“초대 천마. 일사도가 초대 천마를 어떻게 불러냈는지, 현세에 강림시켜 이사도로 삼았어.”
눈을 동그랗게 뜬 풍객이 이불을 쥐어뜯었다.
“빌어먹을. 전설의 천마라니. 살아 있는 것이 용할 지경이군. 풍신결이 문제가 아니었어.”
“천마조사 손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 대단하지. 앞으로 풍신결 펼칠 때마다 하늘에 절을 해.”
“제길! 제길!”
욕설을 뱉어내는 모습을 보며 초운휘는 킥킥 웃었다.
지금은 바보처럼 투덜대지만, 요란을 어떻게든 지키던 풍객이다. 심지어 천마의 손에서 어떻게든 살려 보내겠다고 노력하다, 결국 죽음의 문턱까지 직행했다.
의원의 실력이 천하제일을 다투지 않았더라면, 그는 죽음을 면치 못했을 터.
“병중에 분기를 터트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지 않았소? 몸에 화기를 일깨우는 일이오.”
뒷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초로의 노인이었다. 의원이 입는 백의에 검붉은 피가 묻은 수건에 손을 닦는 모습이 확신을 더하게 했다.
“맥을 짚어보겠소.”
묵묵히 다가온 그는 맥문을 쥐고 이리저리 살피다 한숨과 함께 손을 놓았다.
“최소 석 달은 요양을 해야 하오. 그것도 최소로 잡은 것이지.”
“…….”
죽었다 살아난 풍객은 달리 말을 하지 않았지만,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단야와 함께 지내서 그런가? 성격이 좀 이상해진 것 같은데?’
역시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
생각하고 있자니 의원이 이쪽을 향해 돌아보며 물었다.
“그쪽이. 이분의 보호자요?”
“지금은. 원래 안 친한 사이야.”
“사람 면전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대답을 듣고 도리어 당황한 의원은 헛기침을 하더니, 수건을 헤집어 은침을 꺼내며 지나가듯 말을 이었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목숨을 장담하지 못했을 것이오.”
“그래?”
“내 실력이 조금이라도 부족했어도 마찬가지라오.”
“하하. 누가 그대의 실력에 비할 수 있겠어?”
“나를 아시오?”
동그랗게 눈을 뜨는 그를 보며 초운휘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상공. 이분께서는….”
초운휘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
“생사신의(生死神醫).”
생사신의.
침과 약만으로 죽은 자도 살려낸다는 강호 제일의 의원이었다.
강호인은 절대로 치료하지 않는다는 괴짜 의원. 누구나 그의 치료를 받고 싶어 했지만, 상대가 높은 직책이나 재물을 가진 이일수록 기괴한 조건을 내건다는 괴인.
동시에 황궁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어의(御醫)이기도 했다.
“호오. 강호인 중에서 나를 만난 이가 많지 않거늘. 강호인을 치료하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거든. 워낙 피를 보는 이들이라 생리적으로 싫단 말이지.”
“그리고”
“?”
“하오문주.”
“!”
풍객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고, 요란도 당황해 두 손으로 입가를 막았다.
“아마 요란 그대가 만났을 때는, 축출공으로 얼굴을 변형시켰을 거야. 안 그래?”
“…….”
침을 회수하는 그의 손이 허공에 뚝 멎은 채 한참 동안 침묵과 함께 했다.
그가 입을 연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어떻게 알았나?”
“내가 이것저것 주워들은 것이 많아.”
“평생 나를 알아볼 사람이 나타날 줄은 몰랐거늘.”
“상황을 보면 충분히 짐작 가지.”
“심중의 의심만으로 황실의 어의와 하오문의 문주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겠는가?”
운을 떼고는 의관을 고쳐 옷 가짐을 바로 한 그가 돌아보며 덧붙였다.
“바로 맞추었네. 내가 하오문주일세.”
화산에서 약속한 마지막 대면이었다.
***
과거 초운휘는 하오문주를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세상에 나왔을 때, 이미 망천회의 손에 하오문은 절단이 난 후였으니까.
하지만, 신묘한 의술을 펼치는 의자(醫子)의 이름은 이후에도 여러 번 언급되었다.
참혹한 싸움이 끝날 때마다, 사람들이.
“생사신의께서 계셨더라면, 절반은 살렸을 텐데.”
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의 정체는 알아챘지만, 천하제일의 명의가, 과연 하오문의 문주로 활약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해 묻자 그가 대답했다.
“처음에는 나도 하오문과 하등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네. 물론, 문주 자리 따위를 원할 생각 따위는 없었지.”
“그럼 왜 맡게 된 거야?”
“내가 빈민가를 돌아다니며 치료하던 이들 중에서 하오문도들이 있었던 모양이야. 그들이 전대 문주에게 내 존재를 알렸고, 그렇게 연을 맺게 되었다네.”
전대 문주는 의술에 전념하는 생사신의를 포섭하려 노력했고, 결국에는 자신을 대신해 하오문을 맡기를 권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거절했네. 하지만, 나중에는 생각이 바뀌었어. 빈한한 이들을 치료하는 것이 내 일인데, 완치한 환자들이 다시 다쳐서 돌아왔거든. 결국 나는 이유를 알아보려 하오문의 정보력을 이용했다네. 특히 못된 놈들 중에 강호인이 문제인 경우가 많았지.”
환자를 보살피다, 강호인에 염증을 느껴 투신한 경우다.
천생이 의원이라 그런지, 하오문에 들어온 이유도 그다웠다.
“망천회와 원수가 된 것도 비슷한 이유야?”
“그건 다르네. 망천회와 부딪힌 것도 필연이었어. 자네는 그들이 어떻게 회의 수족을 거두는지 알고 있나?”
“누군가에 원한을 가진 사람들, 복수를 하고자 하는 자들, 욕심을 이루려고 하는 자들. 갈구하는 자들에게 은밀히 접근하지.”
“알고 있군. 알겠지만, 본문은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네. 그곳에서 궁핍한 사람들을 살법(殺法)으로 이끄는 자들을 발견했지.”
전생에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단순히 정보력이 거슬려 멸문시킨 것으로 생각했는데.’
뭔가에 결핍된, 기대지 않고는 살아가지 못하는 이들을 끌어들여 세력을 확장하는 방식부터 상극이었던 것이 하오문을 멸문으로 이끈 시초였던 모양이다.
“개인사는 여기까지 하지. 동의하는가? 경혼검괴? 아니면, 암존이라고 불러줄까?”
역시 이쪽의 사정을 알고 있다.
“아무래도 좋아. 호칭 따위는.”
“호탕해서 좋군. 사실 자네에 대해서 좀 알아봤다네. 무한의 지부, 청벽루를 쥐락펴락한다는 말에 경계했던 것도 사실이야. 솔직히 말해서는 난 자네가 위험하다고 생각했네.”
충분히 그럴만하다. 충성심 높은 요란을 홀려 수족처럼 부리고, 순식간에 지부를 휘어잡았다.
뒤이어 여러 가지 일을 벌였으나, 하오문에게는 딱히 실익이 없는 이들이기도 했고.
“어쩌면 망천회가 보낸 간자라고도 생각했지. 내부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극비 정보를 너무 깊이 알고 있었지 않은가.”
“그래도 간자는 너무한걸? 꽤 도움을 준 것으로 아는데?”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하는 것이 놈들의 수법이 아닌가? 화산의 제자 중에 배신자가 숨어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하지만 안심하게.”
그가 살짝 웃었다.
“지금은 자네를 꽤 좋게 보고 있거든.”
“나에 대한 판단은 어떤데?”
“생각을 포기했네. 자네에 대해 알아가기도 마찬가지지.”
“세상의 모든 정보를 총괄하는 하오문주가 너무 약한 소리를 하는 것 아니야?”
“정보는 정보일 뿐. 너무 집착하면 오히려 판단을 흐리게 만들 뿐이네. 참고하되, 맹신하지 않는 것. 내 지론이라네.”
“그래서 판단은?”
농담에 만만치 않은 답으로 응수하며 그는 싱긋 웃었다.
“난 사실 자네를 만날 생각이 없었어. 만나도 좀 살펴보고 안전이 확인되었을 때 만나자고 생각했지. 자네도 알다시피 내 입장이 있지 않은가. 황실을 드나드는 어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골치가 아플 일이 많거든.”
“말이 길어지는 것을 보면,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되지?”
그가 껄껄 웃었다.
“맞아. 자네를 신뢰하기로 했네. 요란과의 일을 보고 결정했지.”
역시 관도들을 은밀히 지원한 것도 이자의 작품인 듯했다.
“적어도 망천회의 멸절! 그것을 원한다는 점에서 자네와 나의 의견이 일치하네. 하여 놈들을 치는데 협조하지.”
“화끈한 대답 나 좋아해.”
“그리고 자네에게도 한 가지 제안을 하지. 협력을 이끌어낸 대가로 말이야.”
그의 눈빛이 처음으로 하오문의 문주다운 무거운 기세를 흘렸다.
“자네에게 묻겠네. 단 하나. 자네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알려주지. 어떤 것이든 좋네. 자네는 무엇을 가장 먼저 알고 싶나?”
“단 하나? 하나뿐이야?”
“하오문이 알고 있는 극비정보를 무엇이든 대가 없이 알려주지. 천하재보를 얻는 법이든, 만금을 벌 기회든, 신병이기의 위치든 무엇이든 좋네. 내 호의라 생각하게.”
– 단 하나의 질문.
간단하지만, 하오문의 모든 것을 조건 없이 알려주겠다는 제안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개방과 함께 강호에 가장 강력한 소식통이자, 무수한 점조직을 가진 수장의 말이다.
말 하나에 천금을 일굴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 천하기보가 숨겨진 장소를 알아낼 수도 있다.
“…….”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초운휘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여심(女心)을 공략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
“?”
“호감을 산 것은 확실한 것 같은데, 한 방이 좀 부족한 것 같단 말이지.”
어째서인지 이 질문에 요란은 얼굴을 붉힌다.
“?”
풍객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으며, 생사신의는 배를 잡고 웃었다.
“하하하하!”
한참을 웃은 그가 눈물을 털어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황금의 산을 쌓을 방법이나, 천하의 기보가 잠든 곳은 알아도, 사람의 마음을 어찌 알겠나?”
그가 덧붙였다.
“의뢰인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주지 못했으니, 천하의 정보를 거머쥔 하오문의 문주로서 무안하기 짝이 없군. 사과의 의미로 앞으로 자네가 원하는 하오문의 모든 정보를 제한 없이 지원하겠네.”
아무래도 그 나름의 시험이었던 모양이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경천검괴.”
엿 같은 별호를 굳이 입 밖에 낸 것을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괜찮은 결말이 아닐까 싶다.
화산에서의 모든 일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