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461
제106장 공평한 선물
펑! 펑! 펑! 펑!
한적한 해남도에 수십여 척의 전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내 수평선에서 곧장 섬으로 다가온 전선이 하늘을 향해 공포탄을 터트리는 모습에 해남도의 섬사람들은 벌벌 떨었다.
“아니. 갑자기 무슨 날벼락이래.”
“군선들이 어째서 섬을 에워싸는 거지?”
“어서 촌장님께 알려! 검각에도!”
한적하게 물질을 하거나, 낚시를 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들은 믿었다.
갑작스러운 군선의 등장은 뭔가 오해가 있어 생긴 일이라고.
어려움이 있을 때면 언제나 분연히 떨치고 나서는 해남검각의 존재를 믿었기에 당장의 혼란을 애써 삭혔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이번만큼은 언제나 든든한 방벽이 되어 주었던, 검각의 사정도 좋지 못함을 말이다.
***
“검각주! 문을 여시오! 회피하는 것은 일을 어렵게 할 뿐이오!”
“검각의 무공에서 마공의 흔적을 발견했소! 똑바로 해명해야 할 것이오!”
“검각주! 맹의 최종 통보요!”
무림맹의 감찰 무인들이 검각을 에워싸고는 무시무시한 기세를 피워 내고 있었다.
화산파에서 일어난 일로, 망천회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르는 상황에서, 검각에서 회의 흔적이 발견된 것은 치명적이었다.
“각주님! 무림맹의 무사들이 제자들을 잡아가고 있어요!”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죠?”
당황한 어린 제자들을 단속해야 할 검각의 어른들도 연이어 돌아오는 맹의 압박에 아연실색할 따름이었다.
“…….”
혼란스러운 장내를 돌아보는 중년의 여인, 검각주 정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과거의 인연이 결국 발목을 잡는구나.’
예견하고 있던 일이었기에, 그녀는 더욱 아쉬움이 뼈에 사무쳤다.
“최대한 침묵하고, 함구해라.”
말을 하는 그녀가 낡은 고검을 비껴차며, 검각을 에워싼 감찰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너머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는 낙해의 붉은 적광은 마치 검각의 불길한 미래를 예고하는 듯했다.
“모두 자리를 지켜라. 본녀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겠다.”
***
어둠이 내린 시각.
검각주 정연은 야심한 밤을 틈타 검각을 빠져나왔다.
무림맹의 감찰 무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번을 서고 있었지만, 탈인경의 막바지에 오른 그녀의 발걸음을 막아설 수는 없었다.
“이곳도 오랜만이구나.”
신법을 펼쳐 멈춰 선 곳은 짭쪼름한 바닷냄새가 진동을 하는 한적한 해안이었다.
섬의 동쪽, 외딴곳에 있는 이곳은 파도가 깎아낸 예리한 암석이 가득해 섬의 토박이들마저 꺼리는 위험한 곳이었다.
발을 헛디디는 것만으로 파도가 만든 바위에 베이고, 파도에 휩쓸리는 것은 자명했기에.
그녀는 날렵한 신법으로 어둠을 나아가 파도 아래 잠겼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작은 공간에 멈춰 섰다.
위로는 코끼리를 닮은 파도가 깎아낸 절벽이, 아래로는 세찬 파도가 철썩대는 이곳은 아는 이가 거의 없는 그녀만의 비밀 공간.
사뿐.
선녀가 강림하듯 외로운 공간에 내려선 그녀는 사위를 바라보았다.
“…….”
이내 시야가 어둠 속에 적응했을 때, 천연 암벽이 만들어낸 작은 동굴 앞에는 한 인형이 우뚝 서 있었다.
“…….”
검각 최고수이자, 각주인 그녀로서도 등장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귀신같은 신법의 소유자.
하지만, 놀라는 대신 정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신 줄 알았어요.”
“…….”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와, 월광 아래 비스듬히 모습을 드러낸 이는, 붕대로 얼굴을 칭칭 감은 사내였다.
온몸은 화상이라도 입은 듯, 험한 상처가 가득하고, 붕대 아래에는 피딱지가 지저분하게 엉겨 붙어 있었는데, 자연스레 풍기는 암울한 기운과 더불어 사람의 본능적인 두려움을 자아내는 기세가 있었다.
그럼에도 정연은 두려워하는 대신, 반갑게 다가갔다.
“봉안자를 뵈어요.”
사내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역시 이번에도 말을 먼저 꺼낸 것은 정연이었다.
“아저씨와 함께, 봉안자께서도 같이 떠나신 줄 알았어요.”
“…지존께서는. 이곳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알고 있어요.”
냉담한 대답에도 정연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실 때와 같이, 떠나실 때도 무심한 분이었죠. 그런 분에 굳이 제게 만남을 허락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
“달리 구차한 부탁을 드리고자 찾아온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랍니다.”
정연의 눈빛에서 아련한 감정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그 전에 묻고 싶어요. 아저씨는, 검각이 이렇게. 강호의 적이 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계셨나요?”
“…알 수 없다.”
“아마 예상하고 계셨겠지요. 천하의 어떤 일도 모르는 것이 없는 분이시니까요. 검각의 미래 정도야 간단히 예견하고 계셨을 거예요.”
“…….”
검각주 정연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알고 계시겠지만, 무림맹의 감찰단은 물러나지 않을 거예요. 본 각은 결국 무림맹과 관부의 공격을 받게 되겠죠.”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본 각은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이라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많은 제자들이 다치고 죽겠지만, 모든 것을 감수할 생각이에요.”
“…그것이 그쪽의 결정이라면.”
사내의 목소리를 자르며, 정연이 말했다.
“모든 것은 저와 검각이 안고 갈 생각이에요. 그저 그 말을 하고 싶었어요.”
“…….”
말이 없던 사내가 한참 끝에 처음으로 긴 화답을 내어놓았다.
“…원한다면 지존께 청해 도움을 구해 보겠다.”
“아니요.”
정연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과거의 인연은 이것으로 정리가 된다고 믿겠어요. 물론, 저희에게서 저들은 어떤 답도 듣지 못할 테죠.”
“…….”
“함구할 테니, 걱정 마세요. 이것이 지금까지 도움을 입어온, 또한, 과거의 인연에 대한 최대한의 보답이니까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정연은 몸을 돌리며, 선고하듯 덧붙였다.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 될 것 같네요. 부디 아저씨께. 미안하다고 전해 주세요.”
“…….”
“그럼. 이만.”
말을 한 정연의 뒷모습에서 사내는 죽음을 각오한 여인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고통으로 감정이 죽어버린 그였지만, 절절한 감정은 고통마저 넘어 그에게 작은 울림을 주었다.
철썩. 철썩.
정연이 떠나고, 파도 소리만 요란한 가운데, 사내는 우뚝 선 채로 한참이나 어떤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망부석처럼 서 있던 그가 움직인 것은 한참 후의 일로, 동굴에 들어갔다 나온 그의 손에는 퍼덕이는 비둘기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전해야겠군.”
원래라면 침묵해야 할 때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짧은 전서를 완성했다.
“날아라.”
푸드덕!
훼를 차며 창공 높이 솟아오르는 전서구를 보는 사내의 눈이 가라앉았다.
이내, 그의 기척은 쉬지 않고 울려대는 파도의 소리에 잠겨,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혈향이 진동하는 거대한 암실.
음산한 기운만이 감도는 내실 안에는 고통과 비탄 속에 죽어간 수많은 영혼이 귀곡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왔나?”
피와 살점이 엉겨 붙어 검붉게 변해버린 거대한 제단 앞에 앉아 있던 사내가 어깨를 들썩였다.
“하하. 언제 봐도 이곳은 끔찍하군.”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들어선 이는, 바로 천마였다.
“임무 완수했네. 꽤 즐거운 경험이었어. 보기 드문 후학을 구경하는 것은 말이야.”
은근슬쩍 자신의 등 뒤를 점하는 천마를 느끼고도 사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만 세상의 모든 지루함과 권태로움을 품은 사람처럼 느릿하게 운을 뗄 뿐이다.
“감상은?”
“꽤 재미있는 무공이더군. 독고구검은.”
“변수에 대해서 묻는 것이다.”
“쯧. 가혹한 고용주로군. 가끔은 재미난 이야기로 흥을 돋우는 것도 좋은데 말이지.”
천마가 대답했다.
“확인했다. 생각보다 변수가 많아 전부 확인했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운명을 비틀 ‘요인’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증거는?”
“각성체가 반응을 보였다. 요란이라는 여인에게서 말이야.”
뒤이어 나오는 이름을 들은 사내가 여전히 무료함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쉽지만 지금은 이에 만족할 수밖에 없겠군.”
“생각 이상으로 인연을 많이 만든 녀석이었다.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지.”
“…….”
천마가 알기로 눈앞의 사내, 일사도는 세상과 인연을 단절한 지 오랜 세월이 되었다.
수십, 수백의 삶을 살아오며, 어떻게 완벽히 고독한 삶을 살아오는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포기했다.
‘천기를 비틀어, 세계의 운명을 바꾸는 존재이니까 말이지.’
혼자 고독한 채, 손가락을 움직여 세상의 운명을 바꾸는 이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신? 어쩌면 마신(魔神)이라는 이름은 이자에게 가장 가장 걸맞은지도 모른다.’
솔직히 어떤 적도 두려움이 없는 천마지만, 일사도 만큼은 절대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 존재였다.
일사도가 입을 열었다.
“좋아. 변수를 알았다면, 하나둘 그들을 떼어낼 때지.”
딱! 손가락을 튕기자, 어둠 속에서 심장에 붉은 홍옥을 박은 괴인들이 걸어 나왔다.
하나같이 붕대로 몸을 칭칭 감은 이들은, 얼굴이 녹아 버린 듯 표정이 없었으나, 풍기는 기세만큼은 무시무시했다.
천하의 천마가 마른침을 삼킬 정도로.
“또 각성체를 만들어낸 건가? 재주도 좋군.”
“인연을 끝장내야 하니까.”
툭툭. 말을 한 일사도가 어깨에 손을 가져가 자신의 살점을 아무렇지도 않게 뜯어냈다.
툭.
이내 제단에 던지자, 한층 더 시뻘건 운무가 제단에서 풍겨진다.
“아프지 않나?”
“고통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된 지 오래다.”
마른 껍질 같은 목소리로, 일사도는 자신의 옆구리 살을 뜯어내 다시 제단에 던졌다.
“고통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다만, 각성체를 만드는 일은 지루하기도 하지만, 번거로울 따름이군.”
조금도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에, 천마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대체 어떤 괴물인 건지.’
천지자연의 영기를 흡수한 신물만이 제단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사내는 자신의 몸을 떼어내 제물로 바치는 것만으로 각성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온몸이 신력으로 가득 차 있다는 반증.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봐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군.’
자신의 신체를 떼어내 각성체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무척 끔찍하다.
주술이 으레 그렇듯 역천의 존재를 소환하는 것이 불쾌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피를, 살을, 뼈를 마치 진흙처럼 던지면서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일사도를 보면 근원적인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열 구의 각성체를 주마.”
“…뭐, 나야 편하지만.”
“해야 할 일은 잊지 않았겠지?”
“물론.”
천마가 기분을 일소하며 싱긋 웃었다.
“화산파의 일이 강호에 알려졌으니, 엉덩이가 무거운 어린 녀석들이 강호에 모습을 드러낼 테지.”
“정해진 변수 이외, 존재해서는 안 될 자들이다.”
“동시에 망천의 길에 방해되는 녀석들이지. 정과 사는 항상 견원지간 같은 녀석들이야. 간단히 떠미는 것만으로 제풀에 넘어가 피바람을 일으키며, 전쟁을 시작할 거다. 준비만 완벽하다면.”
“모든 준비는 마쳤다. 그런데.”
느릿느릿 이어지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너는 어떤가?”
“나?”
천마가 기가 막힌다는 듯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껄껄 웃었다.
“인제 와서 내가 천하의 혈겁 따위를 두려워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의 눈빛에 흉광이 일렁였다.
“일사도. 네가 할 일은 하나야. 우리의 계약도 바로 그 때문이지.”
전쟁.
“천하의 모든 강자들을 몰아넣어 역사에 없을 대전쟁을 일으킨다. 그것에는 정과 사도 없고, 마도 없다. 오직 죽는 자와 살아남는 자만 있을 따름이지.”
섬뜩한 살기에도 일사도는 좀처럼 뒤를 돌아보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그 말을 믿지.”
예상했다는 듯 살짝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대답하고는, 지나가듯 말을 뱉었다.
“해남검각에서 연락이 왔다.”
“해남검각? 아, 내가 예전에 공작을 벌였던 곳인가?”
“너를 따르던 검각의 꼬마로부터의 전언이다. 보겠나?”
검지와 중지 사이에 잡힌 꼬깃꼬깃한 종이를 노려보던 천마가 이내 고개를 틀며 픽 웃었다.
“시험을 하려는 것이라면 그만두는 것이 좋아. 난 감정 따위는 잊은 지 오래되었다.”
“굳이 시험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만, 보지 않겠다면 굳이 보여줄 필요는 없겠군.”
화르륵. 검지에서 피어오른 푸른 불꽃에 재로 변하는 전서를 보는 천마에게 일사도가 말했다.
“천마. 강호로 나가라.”
그리고.
“강호의 모든 것들에게 공평히 죽음을 선사해라.”
그것은.
일종의 선고와도 같은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