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56
63. 대결(2)
“무인들의 내기에 다른 말이 필요한가? 당연히 비무로 실력을 겨뤄보자는 거지.”
소종천의 말에 황주방은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그런 내기를 저희가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십니까? 권괴님의 상대를 하려면 운현 사형을 모셔 와야 할 터인데, 바쁘신 분을 이런 일에 끌어들일 수야 없지요.”
얻어맞고 흥분했던 감정이 조금 가라앉았는지 다시 존댓말로 돌아온 황주방.
황주방이 거론하는 사형이 누구인가 생각하던 소종천은, 이내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소종천과 맞상대가 가능한 초절정 무인 중 무당에 속한 사람은 한 명뿐이다.
“운현? 아, 검선의 도호였지. 검선과 사형제지간인가?”
“……그렇습니다. 그만한 위치에 계신 분이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황주방을 대답을 하며 소종천의 눈치를 살폈다.
말하면서 생각해 보니 상대의 의도가 짐작이 되는 것도 같았다.
‘흥! 모르는 척하기는. 보아하니 운현 사형을 끌어들이는 것이 목적이었나 보군? 소란을 일으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사형을 꺾어보겠다는 속셈일지도 모르겠어.’
이제 막 명성이 퍼져 나가는 무인이지만, 배분으로는 현 연맹의 수뇌부들보다 전대의 기인으로 추정되는 소종천이다.
후배의 아래에서 지시를 받으며 활동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명예욕이 강한 무인이라면 당연한 것일 터.
‘맹주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서 이런 일을 꾸민 건가? 어리석은…… 아무리 대단한 무위를 지녔다고 해도, 기반 세력이 없는 단신으로 노릴 수 있는 자리가 아니거늘.’
탈혼검선이 무인들의 정점으로 추앙받는 경지이긴 하지만, 그와 동일한 경지이면서 배분은 더 높은 무인이 점창과 개방에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가 연맹의 맹주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은, 현 무림 최고의 문파로 손꼽히는 무당파의 영향력 덕분.
‘중소문파들 사이에도 끼지 못할 소림 따위의 배경으로는 불가능한 일. 후배 밑에서 일하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면 검제나 투광개처럼 본산에나 틀어박혀 있을 것이지, 이따위 수작을 부리다니.’
하지만 그런 황주방의 생각과 달리, 소종천의 입에서 나온 발언은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바쁘신 맹주님을 오라 가라 할 수는 없지.”
검선이 상대라 해도 이길 자신은 충분하지만, 애초에 소종천이 떠올린 계획은 그와는 관련이 없었다.
“쯧!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럼 선배님은 격에도 맞지 않는 후배를 상대하는 걸 내기로 하시겠다는 뜻입니까? 설마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믿으시는 건 아니겠지요?”
물론 아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질게 뻔한 내기에 혹할 사람은 없을 터.
그렇기에 소종천은 몇 가지 조건을 더 첨부했다.
“나는 혼자, 그쪽은 인원 무제한.”
“흐음?”
“그리고 상대가 동급의 경지가 아니라면 강기를 사용하지 않겠다.”
“허!”
소종천의 말에 황주방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강기를 쓰지 않는다 해도 절정의 무인이 초절정을 이길 가능성은 한없이 0에 가깝지만, 머릿수의 제한이 없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초절정 무인이 일대일 형식의 비무에 나선다면 열 명, 스무 명이라도 연달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십 명, 백 명, 그 이상을 넘어가서도 그럴 수 있을까?’
아무리 초인이라 불리는 경지라 해도 그건 아니라고 본다.
물론 아무리 무당파라 하여도 절정의 무인을 백 명 이상 동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절정 무인 사이에 일류 정도의 무인을 섞는다면, 백 명이 아니라 천 명이라도 소집할 수 있는 저력은 가지고 있다.
‘초절정 무인도 인간인 이상 지칠 수밖에 없다. 일류 무인들로 적당히 내력과 체력을 소모시키고 절정 무인들을 투입한다면, 저 자신감 넘치는 노괴물 하나쯤은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으리라.’
계산은 섰다.
하지만 황주방은 바로 소종천의 제안을 받아들이진 않았다.
‘돈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무력을 잃어서야 어불성설. 권괴를 꺾는 과정에서 발생할 무인들의 손실을 생각하지 않을 순 없지.’
문파를 지탱하는 허리라 할 수 있는 일류 무인들도 그렇지만, 만약 장로급 인사인 절정 무인을 여럿 잃는다면 그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손해다.
황주방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비무의 방식이 생사결이라면 조금 그렇군요. 그렇게 되면 사실상 전면전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만.”
“흠. 부상이 뒤따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비무 자리에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공격은 하지 않겠다.”
“혹시라도 비무 도중 사망자가 나온다면?”
“그럼 내 패배로 하지. 물론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부상을 그쪽에서 일부로 방치하는 경우는 논외야.”
“큭! 본파의 명예를 의심하는 그런 발언은 조심해 주십시오!”
기분 나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황주방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조건이라면 나쁘지 않다. 다만 분파의 인원만으로는 진행에 무리가 있으니…….’
어차피 절정 무인을 모으는 것은 분파만으로는 어림도 없고, 최대한 많은 수의 무인을 동원하려면 본파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업체 건에 대한 의견 충돌을 해결하고 싶다면 내기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다만 비무의 일정은…….”
황주방은 내기의 위험부담을 최소로 낮추기 위해 더 유리한 조건을 달고자 협상을 이어갔고, 결과적으로 열흘 뒤 무당파의 본산에서 비무를 진행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후후. 살펴 가십시오, 선배님. 약속한 날짜에 뵙겠습니다.”
“기분 좋아 보이네. 벌써 이긴 것처럼 말이야.”
“크흐흐! 글쎄요. 선배께서 책임지기 어려운 일을 벌이신 게 아닌가 걱정되긴 합니다만. 설마 나중에 소림무문은 그런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다며 딴소리가 나오진 않겠지요?”
“그렇다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하하…….”
소종천의 대답에 황주방은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 말대로 소종천에게 실제로 사업체의 소유권을 넘길 권한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명소졸도 아니고 무림 전역에 명성이 퍼지고 있는 소종천이 내뱉은 말이니, 나중에 소림불문에서 모르는 일이라 잡아떼도 무당파에서는 내기의 내용을 강제로 집행할 명분이 있다.
아무런 무력도 없는 소림불문이 따져봐야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내기에서 이기는 것이 먼저겠지만, 이런 조건이라면 패배할 가능성은 전혀 없겠지.’
비무 장소가 무당파의 본산이니 무인이 부족할 일은 없지만, 혹시 몰라 열흘의 기간을 두었으니 다른 곳으로 파견된 무인들을 소집할 시간도 충분하다.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는 싸움.
상대의 만용 덕분에 큰 이득을 취할 기회를 잡았다 여기는 황주방을 뒤로하며, 소종천은 무당의 분파를 벗어났다.
* * *
“종천. 이거 정말 괜찮은 거야?”
“물론 믿고 있긴 하지만, 이래서는 혼자 무당파 전체를 상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황주방 앞에서 동요를 드러낼 순 없어 입을 닫고 있던 동료들이, 불안함이 깃든 표정으로 말을 건네 왔다.
소종천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무리한 행동이었다.
“본인도 함께 참가시켰다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을 진데, 어째서 혼자 비무에 나서는 것으로 조건을 정한 것이오?”
남궁건이 살짝 찡그린 얼굴로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하자, 소종천은 피식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다 방법이 있어서 나선 거니까. 지금이 딱 적당한 조건이야.”
자신하는 대답에 일행들은 더 따지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늘 그랬듯이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소종천의 능력이, 뭔가 해결책을 만들어낼 것임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열흘 뒤.
호북성 십언시에서 무당산을 향하는 관도 위로, 무수히 많은 무인들이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반로환동을 이룬 엄청난 고수로 이름이 알려지고 있는 멸악권괴 소종천이, 무당파의 고수들과 비무를 벌인다는 소문이 알게 모르게 퍼진 탓이다.
자세한 사정까진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런 대단한 무인이 벌인다는 일에 관심을 보이는 찾아가는 이가 적지 않았다.
“이보시오! 그저 구경만 하겠다는데 왜 막는 게요!”
“금일 본산에는 외부인의 출입에 대해 금지령이 내려졌으니, 쓸데없는 생각 말고 돌아들 가시오.”
하지만 그들은 무당산 초입을 통과할 수 없었다.
무당파의 무인들이 출입을 통제하며 막아섰기 때문.
소문을 듣고 기한에 맞추고자 부랴부랴 달려온 사람들이 격하게 항의했으나, 무당의 무인들은 요지부동이었다.
모여든 무인들의 수가 상당했고 그들 중엔 명성이 알려진 절정 무인도 여럿 있었지만, 무당파와 척을 질 생각이 아니고서야 억지로 뚫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차마 걸음이 아까워 돌아가지도 못하고 있는 이들로 인해, 무당산 입구는 때아닌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정말로 권괴와 무당이 싸우는 겨?”
“들은 소문대로라면 그렇다던데.”
“무슨 내기 때문이라던데, 뭐 자세히 아는 사람 없소?”
“으음? 그냥 친선 비무 아닌가?”
“내 동생의 친구의 사촌이 무당파에 들어가 있어서 조금 들었는데…….”
“무슨 얘기요? 거, 나도 같이 좀 압시다!”
수십 명, 수백 명, 어느새 천 단위를 향해 나아가는 군중들.
발 디딜 틈도 없어 보일 정도로 모여든 무리가 시끄럽게 떠들어대니, 그 소란이 보통이 아닌지라 무당파의 무인들은 얼굴을 구기며 소리를 질렀다.
“돌아가라는 말 못 들었소?”
“본산의 영역 앞에서 이리 소란을 피우다니! 당장 해산하시오!”
“계속 이렇게 버틴다면 실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소!”
그러나 몇십 명이라면 모를까, 세 자릿수를 넘어선 사람들이 쉬이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힘으로 쫓아내기엔 수가 너무 많다.
다들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피우니, 무당파의 무인들은 차마 진압에 나서지는 못하고 짜증을 내며 이를 갈았다.
그러는 와중에, 누군가 관중들 틈을 헤치고 걸어 나왔다.
“좀 지나갑시다.”
입구를 막고 있는 자신들을 본척만척하며 지나가려는 젊은 무인의 모습에, 무당파의 무인들은 옳다구나 싶어 검을 빼 들었다.
“멈춰라!”
“본문의 행사를 이다지도 우습게 여기다니!”
“기어코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릴 건가!”
본보기로 한 명쯤 호되게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다른 이들도 물러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무당의 무인들이 검을 휘두르려던 찰나.
뼈를 박살 내는 소리와 함께 거친 주먹이 그들의 몸을 파고들었다.
“커억!”
“우웩!”
“미친놈들이 약속 장소를 여기로 잡아놓고 왜 막고 지랄들이야?”
소종천이었다.
후열에 있던 무인들이 낭패한 얼굴로 검을 거두었다.
“이, 이런…….”
“뭐 하자는 거냐? 내가 못 들어오게 막으라고 위에서 시켰어?”
“아, 아닙니다. 착오가 있었을 뿐이니 권괴께서는 안으로 드십시오.”
뒤늦게 인상착의를 보고 상대의 정체를 깨달은 무인들이, 억울함을 속으로 삼키며 길을 열었다.
“권괴!”
“저분이 소문의 그…….”
“반로환동이라더니 정말로 어려 보이는군!”
모여든 사람들의 관심을 뒤로하며 걸어가는 소종천과 그 뒤를 따르는 세 명의 동료들.
당황한 마음에 쉽게 길을 열어주었던 무인들 중 하나가, 다급하게 소종천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잠시! 본산에 오르는 것은 권괴님 한 분뿐이어야 합니다.”
“음? 내 일행들을 두고 가라고?”
“비무와 직접적으로 관계되지 않은 사람은 안에 들이지 않기로 되어 있습니다.”
무인의 말에 소종천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이봐. 무당파에서도 비무와 관련 없는 어린 제자들이나 잡무를 맡은 사용인들을 따로 내보내진 않은 것으로 아는데? 문지기라도 비무 내용이 어떤지는 대충 알고 있지 않아? 아무리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지만, 설마 위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비무 참가자라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할 말이 궁해진 무인은 입을 다물었다.
“제한? 무슨 말이지?”
“비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가?”
내기의 조건은 누가 봐도 소종천에게 불리한 것이었으니, 자세한 내용이 외부에 퍼지는 건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다.
“크흠! 알겠습니다. 어서 지나가십시오.”
뒤에서 귀를 열고 깊은 관심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무당파의 무인은 더 따지지 않고 일행들을 통과시켰다.
입구를 지나 한참을 걷고 있자니, 따가운 시선이 하나둘 소종천을 향해 내리꽂혔다.
무당파의 무인들이 내비치는 적의.
소종천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산보를 나온 듯한 여유로운 태도로 계속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수백 명의 무인들이 날카로운 기세를 피워 올리는 공터 앞에서, 소종천은 느긋하게 움직이던 발길을 멈추었다.
주위를 쭉 둘러본 소종천이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흐! 거, 많이도 모여 있네. 이만한 전력이 다 무력화되면, 몇 달쯤 봉문해야 될지도 모르겠어.”
시선에 담긴 적의가 한층 더 진해졌다.
뽑기로 무림최강 15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