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22
14. 선택을 해야 한다면
‘대영웅의 자질이라는 설명을 봐서는 저 녀석이 그 창천검성의 소년기 상태인 건 맞나 본데? 그나저나 하필 막 감정경을 써버렸으니, 저 감정 관계인지 뭔지를 확인하려면 6시간이 지나야 하네.’
소종천은 임무 알림의 설명을 읽으며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엉뚱하게 느껴지는 임무이긴 한데, 보상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빨리 해결하고 싶어지는 임무기도 했다.
‘청강석을 준다니. 그것도 딱 5개를!’
일전에 무공 습득 임무를 완료하고 얻은 청강석이 5개.
이번에 등장한 임무로 또 청강석을 받게 되면 청강석이 10개 모이게 된다.
아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천급 뽑기를 돌려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감정 관계를 호감으로…… 뭔지 몰라도 친해지라는 소리겠지?’
사내놈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니 영 마땅찮긴 하다.
그래도 보상을 생각하면 뭔가 하긴 해야 했다.
‘애초에 남궁건이랑은 친하게 지내면 뭔가 콩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고. 그럼 어쩐다?’
원래도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던 성격은 아니었는지라,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 뭘 해야 한다는 게 굉장히 어렵게 느껴졌다.
‘남자들끼리 친해지려면 그나마 술자리가…… 아니, 그런데 생각해 보니 여기 생도들은 아직 성인도 아니잖아?’
이곳에서는 나이가 16세가 되어야 호패(號牌)가, 그러니까 현대로 치면 주민등록증 같은 것이 발급된다.
황룡단의 단원들은 15세이니 호패가 없고, 당연히 아직은 성인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물론 음주에 나이 제한이 있어 법으로 금지되는 세상도 아니나, 호패도 없는 이가 주막에 들락거리며 술을 찾으면 어린놈이 발랑 까졌다는 소리를 들을 수는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애초에 합당한 이유 없인 외출 허가를 받기도 어렵잖아?’
비록 몇 번 마주친 것이 다이긴 하지만, 남궁건이란 친구가 술이나 마시겠다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밖으로 따라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단원들의 편의를 위해 출입이 허가된 상인들.
정 마실 생각이라면 그들을 통해 유통하는 방법밖엔 없지 싶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임무 발생에 정신이 팔려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데, 남궁건의 불퉁한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인사나 좀 할까 했더니 무시하는 거요?”
말없이 다른 생각에 잠겨 있던 시간이 너무 길었나보다.
정신을 차린 소종천은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기보다 일단 남궁건과의 대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 미안. 네 얼굴을 보니 갑자기 중요한 일이 떠올라서.”
“날 보고 말이오? 흠. 어떤 일인지 무척 신경이 쓰이는구려.”
“별건 아냐. 오로지 나한테만 중요한 일이지. 그나저나…… 혹시 술 좋아해?”
일단은 수업 중인지라 길게 이야기하긴 어려우니, 혹시나 의외로 술꾼이라면 따로 불러내 자리를 만들어볼까 싶어 넌지시 물어보았다.
“음? 그다지. 입에 대본 적이 없소.”
하지만 전혀 관심이 없다는 투.
역시 아직은 술잔을 기울이며 친해질 나이는 아닌 모양이다.
‘그럼 뭘 해서 친해져야 하지? 환상의 똥꼬쑈? 뭔가를 보여줘야 하나?’
무슨 이야기를 해야 좋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남궁건이 먼저 다른 주제를 꺼내 들었다.
용건이 따로 있어서 말을 걸었나보다.
“혹여나 검법으로 전향할 생각이라면 말리고 싶소.”
“엉?”
무슨 소리인가 싶어 묻자, 남궁건은 이렇게 대답했다.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되니 하는 말 아니겠소? 이전의 비무를 지켜보며 본인 역시 기회가 되면 소종천 학우의 권법을 상대해 보고 싶다 여겼거늘. 갑자기 권을 포기하고 다른 무공으로 바꾸겠다고 하면 심히 곤란하오.”
남궁건의 말에 소종천은 잠시 의미를 생각하다가 말했다.
“쉽게 말해 그쪽도 나랑 한판 붙어보고 싶으니까 헛짓거리 말고 하던 거나 계속하란 소리지?”
“……뭔가 표현이 천박해진 듯하지만, 그렇다고 본인의 뜻과 아주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겠구려.”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남궁건.
소종천은 이거다 싶었다.
‘겨뤄보고 싶다라? 역시 싸우면서 친해지는 게 답인가.’
나이가 어려도 이곳의 생도들은 다들 무인.
그리고 무인들은 대개 입으로 떠드는 것보다 주먹이나 쇠붙이로 소통하는 것을 선호한다.
분위기가 심하게 과격해지지만 않는다면, 친분을 나눔에 있어 비무만큼 좋은 방법도 없지 싶다.
아니나 다를까 슬쩍 이야기를 꺼내자 남궁건은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럼 생각 있으면 나랑 친선 비무나 한번 할까?”
“아주 좋은 제안이오!”
기다렸다는 듯이 덥석 무는 남궁건.
“거기! 뭐가 그리 시끄러운 게냐!”
‘이크.’
대화를 계속 이어가다 보니 눈에 띄었는지, 수업을 진행하던 곽진에게서 호통이 떨어진다.
편하게 떠들어댈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긴 하다.
정확한 일정 같은 것은 정해지지 않은 채, 비무에 관한 이야기는 일단 거기서 중단되었다.
* * *
“그래. 비무에서 승리했다지? 애썼다.”
“흐흐. 다 교관님의 지도 덕분입니다.”
평상시와 같이 저녁 시간대에 곽진을 찾아간 소종천.
이마에 붕대를 감고 있는 소종천을 보며 곽진은 혀를 찼다.
“꼴을 보아하니 상당히 험하게 싸운 모양이로구나. 그런데…….”
잠시 말끝을 흐린 곽진은 곧바로 소종천의 눈을 직시하며 다른 주제를 꺼내 들었다.
“소림오권을 펼쳤다고 들었다. 분명 네 입으로 소림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더냐? 어찌 된 영문인지 궁금하구나.”
“아, 그것이…….”
가르침을 받던 중간에 뽑기로 얻은 소림오권.
곽진에겐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았었다.
생도들 간의 비무일 뿐이지만 판을 그렇게 크게 벌였으니, 교관의 귀에 들어가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
이런 상황에 대한 변명거리를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기에, 소종천은 적당히 말을 고르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어릴 적에…….”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가전 무공을 익혀가던 소종천.
그런 그를 뒷바라지며 생계를 유지하느라, 항상 늦은 시간까지 집을 비우던 어머니.
그리고 어느 날 그의 집에 찾아온 나이 든 스님.
“……그러니까, 탁발승 하나를 집에 들인 적이 있었는데 그에게 무공을 배웠다 이 말이냐?”
“매번 혼자 끼니를 때우기 적적하여, 상을 차리는 김에 그냥 수저 하나 더 놓았었죠. 그런데 그 노스님이 지닌 봇짐에 책이 슬쩍 보이더라고요.”
그저 별생각 없이 스님이라 ‘불경을 항상 가지고 다니시나 봅니다’ 하고 말을 걸었는데, 노승은 불경이 아니라 대답했다.
하면 그 책은 무엇이냐 물었더니 이제는 아무도 찾는 이가 없어진 과거의 흔적이라 하더라.
그냥 별생각 없이 구경해 봐도 되는지를 묻자,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듯하던 노승은 이내 묘한 웃음을 보이며 책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밥 한 끼 얻어먹은 값을 이것으로 치를 수 있다면 그것도 부처님의 뜻이라며, 굉장히 복잡한 심경이 담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게 소림오권이었습니다. 단지 구경만 할 생각이었는데 그 스님은 제가 책에 빠져드는 것을 보시고는, 자신에겐 이제 필요 없는 물건이니 원한다면 가지라고 하시더군요.”
“허어?”
“가전 무공외의 다른 무공을 접할 길이 없던 차였는데, 그렇게 무공서를 보게 되어 신기한 마음에 덥석 받아들였죠.”
“그래서 소림오권을 익히게 되었다?”
“받기야 받았는데 당시 스님이 뭔가 큰 짐을 내려놓은 듯한 얼굴이었던지라, 혹시 복잡한 사연이 있는 무공인가 싶어 몇 번 건드려보기만 하고 깊게 수련하지 않았었습니다.”
어차피 소림오권 자체가 어느 정도 권법에 대한 기초가 준비되지 않고는, 제대로 수련할 수 없는 수준 높은 무공이기도 했다.
“그간 머리로만 내용을 외우고 있었는데. 이곳에 들어오고 나니 역시 가전 무공 하나만으론 부족하다 싶어서 꺼내 들게 된 거죠.”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술술 늘어놓는 소종천.
“마교와의 대혈전으로 소림의 본산의 무맥이 끊겼다지만, 본산을 떠나 있다가 살아남은 이가 아무도 없진 않았겠지. 어쩌면 그분은 돌아갈 곳을 잃고 방황하게 된 무승 중 한 분이실지도 모르겠구나. 기연이로다.”
소종천이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다 여겼는지, 곽진은 크게 의심하지 않고 믿는 눈치였다.
사실 만룡각에 무공 비급이 잔뜩 모여 있으니, 첫날의 개방 시간에 여러 무공서를 구경하다가 외우게 된 것 중 하나라고 우길까 생각도 했었다.
앞으로도 본래 익히고 있는 무공과 관계없는 무공들을 뽑기로 얻게 될지도 모르니, 미리 떡밥을 깔아둘까 생각했던 것.
하지만 소림오권이 정말 만룡각에 비치되어 있는지 확인할 길도 없고, 혹시나 이것도 외어보라며 다른 책을 던져주면 바로 들통 날 거짓말이라 그만두었다.
‘뭐, 이런 허술한 핑계로 계속 내 능력을 감춘다 해도, 결국 언젠가는 의심을 사게 되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
어차피 누가 들어도 납득할 만큼 교묘하게 말을 지어내기엔, 소종천은 영 머리를 굴리는 재주가 없었다.
미래의 일은 미래의 자신에게 맡기기로 한다.
아무튼, 당장 눈앞의 곽진은 그럴듯하다며 넘어갔으니 다행이다.
“하면 네가 반야신공을 선택한 것도 이미 소림의 무공을 익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겠구나.”
“……예 뭐, 그런 것도 있죠.”
거기까진 생각 안 했지만 알아서 납득해 준다니 고마울 뿐이다.
소종천의 이야기를 들은 곽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상황이 애매해졌구나. 평범한 권법 하나만을 익힌 이 아이가 권사로 경지를 이루기는 어렵겠다 싶어, 차라리 내 검법을 전수하며 다른 길로 인도하려 했거늘. 한데 이제 보니 충분히 정통 권사의 길을 걸어갈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은가.’
기라성 같이 많았던 무수한 고수들이 마교와의 혈겁에서 스러지고, 살아남은 이들도 대부분 천명이 다해 눈을 감았다.
소림이 강성하던 시기를 기억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무림인 중 하나인 곽진은, 소종천이 익힌 소림오권이 어떤 가치를 지닌 무공인지 잘 알고 있었다.
소림이 자랑하는 최고의 절기들인 ‘칠십이종절예’에는 속하지 못하나, 대성한다면 능히 일류의 끝에 도달할 수 있는 권법.
거기서 절정의 벽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지는 본인의 재능과 노력 여하에 달렸겠지만, 소종천이라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 여겨졌다.
‘이 아이에게 검을 가르쳐 보고 싶기도 하지만, 안타깝게 몰락해 버린 소림의 처지 역시 눈에 밟히는구나.’
기묘한 인연이다.
정식으로 소림의 맥을 이은 것은 아니나, 어쩌면 다시 한번 소림의 이름을 무림에 퍼뜨리게 될지도 모르는 아이.
다른 인사였다면 소림이 어찌 되든 별 관심이 없겠지만, 자신은 조금 사정이 다르지 않던가.
‘먼저 떠나버린 효원이 소림을 부탁한다고 내게 보내준 인연일지도. 허헛!’
생각을 정리한 곽진은 소종천에게 다시 선택을 정하도록 물어보기로 했다.
본인 역시 검법을 배워보겠다 말하긴 했으나, 그것은 손안에 쥔 보물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해 내린 결정일 터.
“처음에는 검법을 전수해 줄 의향으로 불러들이긴 했으나, 소림의 권법이 네게 이어졌음을 알았으니 다시 의사를 물어봐야 하겠구나.”
하나도 대성하기 쉽지 않은 공부를 둘씩 하는 것은 미련한 행동.
곽진은 소종천에게 권법과 검법 중 어느 것을 주력으로 삼고자 하는지 다시 잘 생각해 볼 것을 이야기했다.
“소림오권은 충분히 평생을 두고 수련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공부이니, 너는 고심해서 자신의 길을 결정하는 것이 옳다. 혹여나 검법을 배우지 않겠다 해도 내 계속 네 수련을 봐주도록 할 터이니, 확실하게 마음이 가는 길을 선택하도록 하거라.”
“으음…….”
곽진의 말에 소종천은 머리를 굴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굳이 지금 당장 검법을 익힐 필요는 없긴 한데.’
익숙한 권법을 놔두고 검을 익히려 한 것은, 절정 고수와 연을 맺어두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마음.
그리고 추영권보다 더 뛰어난 무공을 배우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간에 이렇게 소림오권이라는 쓸 만한 무공을 얻게 되었고 곽진이 저렇게 말하기도 하니, 굳이 힘들게 걸음마부터 다시 검법을 익혀야 할 이유가 줄어들긴 했다.
‘이러면 역시 하던 권법이나 계속 단련하는 편이 나으려나? 나중에는 뽑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무공을 익히게 될지 몰라도, 지금은 한 우물을 파는 것이 맞을 건 같긴 한데.’
고민 끝에 소종천은 결정을 내렸다.
뽑기로 무림최강 2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