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Repair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굴레를 벗어나다 (1)
호선의 수하가 당황한 듯 들고 있던 법보를 살폈다.
마치 요왕의 본명법보처럼 생긴 조그마한 여우구슬이었다.
지이이잉!
그가 재차 영력을 주입했지만 나타나는 형상은 여전했다.
두 개의 금모신검.
아니, 꼬리털이 구슬의 표면에 나타났다.
[호선께서 존체를 두 개나 내려 보내신 건가? 음…….]잠시 고민하던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잘 되었군. 하나의 존체가 1할의 힘. 2개니까 2할의 힘을 강림시킬 수 있겠구나. 그 정도면 금방 끝나겠군! 자, 울어라! 호주(狐珠)여─!!]진언이 울리자 적운자와 나에게서 빛이 터져 나왔다.
나는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적운자의 것을 빼앗아 들었다.
“……!!”
차라리 가장 강한 내가 감당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이었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앗──!
엄청난 섬광이 터지며 내 본원공간에서 금모신검이 스스로 빠져나왔고, 들고 있던 것과 함께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이윽고 난데없이 비명이 터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악!!!]일행 모두가 고개를 들어 올려 진원지를 찾았다.
[왜, 왜……! 저를!! 끄아아악─!]강림했던 호선의 수하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호선이 그의 몸에 빙의하려는 것이었다.
호선이 그에게 해준 말이 거짓이었단 소리.
존체를 들고 있던 이에게 빙의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적합한 신체를 내려 보낸 것이었다.
수하의 몸이 점차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가 비명을 내지르며 저항해보려 했지만 삽시간에 모든 신체가 보랏빛 요기로 채워지며 주도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꾸우우웅─
묵직한 울림이었다.
수하였던 자의 두 눈은 혼탁한 광망을 내뿜었다.
그가, 아니 그녀가 고개를 돌려 정확히 나를 내려 보았다.
[너로구나.]역시 상계의 지존들 중 하나인 호선(狐仙).
술법을 펼치지 않고도 나를 알아본다.
나도 빙의된 호선을 마주 노려봤다.
사뭇 심각한 분위기였다.
일행은 물론이고, 곳곳에서 구경하고 있던 종문의 노조들 또한 침을 삼키고 있었다.
단 한 마디만을 내뱉었을 뿐인데도 모두가 압도당했다.
그녀의 목소리에선 가늠하기 어려운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된 지고한 존재일까.
수천 년 아니, 수만 년…….
혹은 수십만 년을 살아온 영생의 괴물일지도 모른다.
나는 기선을 빼앗겨선 안된다는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호선인가? 일단 반갑소. 한데… 무슨 일로 빙의까지 하신 거요? 하계에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뒷골목 거지새끼도 아니고.”
느닷없는 욕지거리에 호선이 입을 다물었다.
지고한 존재인 그녀가 어디 가서 이런 말을 들어보았을까.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녀가 쉬이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공중으로 솟구쳐 그녀의 앞에 떠오른 채 모두가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구대마존 중 일좌를 차지하고 계신 호선이시다! 모두들 인사드리도록. 그러면 너희들이 가진 영석만큼은 탐내지 않으실 지도 모르겠다!”
말도 안되는 헛소리였지만 상대를 조롱하는 데엔 최적이었다.
덕분에 얼어붙어있던 일행들이 긴장을 털어낼 수 있었다.
일행 중 적운자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소인은 한낱 종문의 노조일 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가진 영석이 얼마 안됩니다. 이것이라도 드리면 되겠습니까?”
적운자가 저물대를 뒤져 하급 영석 두어 개를 꺼내 내밀었다.
[이, 이것들이 정녕……!]호선이 분노하기 시작했음에도 조롱은 끊이지 않았다.
사형들은 수도자가 아니라며 제발 봐달라고 하였고, 화련이는 그저 욕설을 내뱉었다.
모두가 겁대가리를 상실한 듯 걸죽한 입담으로 호선을 능욕했다.
그리고 화룡정점은…….
“호선이시여, 제 가문은 재물이 많습니다. 대부업도 하고 있사온데, 조금 빌려드립니까? 아, 이율은 달에 3할입니다! 특별히 1할 깎아…….”
[닥쳐라───!!!]천 공자 놈의 조롱에 결국 호선의 화가 폭발했다.
빙의해 있던 육체가 번쩍거리며 연결이 불안정해지려는 징조까지 엿보였다.
조금만 더 도발했다면 정말로 끊겼겠지만, 가까스로 참아낸 것이었다.
‘아쉽군.’
혹시나 날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실패했다.
호선의 기세가 나보다 강해보였기에 써본 궁여지책이었다.
호선이 광망이 어린 눈으로 지상을 살피며 선언했다.
그녀의 시선이 이제 나를 향했다.
[네가 가진 신보(神寶)를 내 것으로 만들겠다.]아마 이 말이 그녀가 하고자하는 전부일 터.
우웅─
보랏빛 조기(爪氣)가 나에게 날아왔다.
세 갈래의 곡선이 날아왔고, 나는 천뢰무극의 권(天雷武極拳)으로 맞섰다. 두 기운이 맞부딪치는 순간 섬광이 터져 나왔다.
파아앗! 스스스스…….
역시 호선은 달랐다.
천인지경의 힘이 별빛에 곧바로 소멸되던 것과는 달리, 시간이 소요되고 있었다.
다만, 그 와중에 쇄도하는 충격은 몸으로 감당해야만했다.
투쾅──!
내 몸이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하늘 높이 떠 있는 상태였음에도 찰나지간 만에 도달할 정도의 위력.
흙먼지를 털어내며 일어섰다.
“끄음……!”
새어나오려는 신음을 도로 삼키고 호선을 향해 다시 달려들려 할 때, 이미 내 옆에 도달한 그녀가 손을 휘두르는 게 보인다.
이번엔 양손을 교차시켜 막아냈다.
떠어어엉─! 하는 굉음과 함께 내 신형이 다시 하늘로 솟구친다. 지상에 있던 호선의 몸이 꺼지듯 사라지고 다시 내 옆에 순식간에 도달한 채 강력한 기운을 발출했다.
쐐애애애애애액──!
초승달 모양의 진한 보랏빛 기운이 쇄도한다.
마치 나를 쪼개버리겠다는 듯 전력이 담긴 일격 같았다.
문득 저걸 맞으면 아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것 같지는 않고…….
양손을 그러모아 기운을 집중시켰다.
벼락과 심검이 합쳐진 천뢰무극정(天雷武極精)이 만들어진다.
그것을 내던지자…….
호선과 나의 중간지점에서 서로 맞닿았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두 기운이 아무런 움직임 없이 정지했다.
이윽고 서로의 힘이 조금씩 상쇄되더니 무로 흩어진다.
참격의 날카로움과 뇌정의 폭발력이 동수를 이룬 것이다.
그야말로 신비한 광경.
호선 역시 제법이라는 듯 눈에 이채가 빛났다.
하지만 금방 끝내려는 생각인지 연이어 공격을 쏟아냈다. 주로 날카로운 참격의 형태였지만, 내가 뇌권과 탄지공으로 동수를 이루기 시작하자 허상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꼬리를 소환해냈다.
두 개의 금모신검을 통해 구현하는 것이었다.
꼬리가 내 배를 뚫어버리겠다는 듯 맹렬한 찌르기를 연이어 펼친다.
허공에 공기가 찢어지는 파공성이 끊이지 않았고 내 옷자락이 사정없이 뜯겨 나갔다.
나는 뇌극으로 응수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찌르니 허공에서 맞닿으며 엄청난 파동과 함께 천천히 상쇄되었다.
우리의 신형이 점점 더 멀리 밀려나기 시작했고, 호선이 답답함을 풀으려는지 두 꼬리를 미친 듯이 휘둘렀다.
후우우우우우웅!!
수십 수백의 참격이 마구잡이로 엉킨 채 쏘아진다.
나는 그것을 향해 손날을 들어 내리찍었다.
적운(赤雲), 황운(黃雲), 백운(白雲), 청운(靑雲), 그리고 천뢰(天雷)까지.
백락조차 넘어선 기운이 폭발한다.
꽈아아아아아아앙───!!
우리의 주변에 있던 산봉우리가 움푹 파였다.
애꿎은 자연지물이 날아간 것이다.
나는 되도록 하계를 보존할 생각이었기에 공중으로 치솟으려 했으나, 그곳엔 이미 내 머리를 향해 내리꽂히는 호선이 있었다.
[죽어라─!!]그녀가 양손을 뻗은 채 가까워지자 나 또한 양손을 내밀었다.
쩌억─!!
서로의 손바닥이 마주쳤다.
그 상태로 나를 놓아주지 않으려는지 손을 웅크려 깍지를 끼는 모습.
끝없이 기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어쩌다보니 영력대결의 양상으로 치달은 것이었다.
드드드드드드──!!
산천초목들이 미친 듯이 진동하더니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재로 흩어지거나 조금 멀리 떨어진 것들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산맥 전체가 황무지로 변하고 있는 상황.
2할 전력의 호선과 내 힘은 호각지세였다.
그런데…….
갈수록 상대하기 편해지는 것은 왜일까?
천뢰의 힘도 그렇고, 별빛의 힘까지.
싸우면 싸울수록 끝없이 강해지는 느낌이었다.
초반엔 단 일합만으로 내상을 입을 뻔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완전한 동수 그 자체였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내가 우위를 점할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었다.
손을 마주잡은 호선이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어떻게… 계속 강해지는 것이냐?]마치 새롭게 얻은 무공 경지에 적응하면 급속도로 강해지는 것처럼 내 실력은 미친 듯이 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승산이 생겼다는 생각에 내 짐작을 얘기해줬다.
“아무래도 얼마 전 경지에 도달한 탓인 것 같소. 그대와 싸우면서 빠르게 강해지는 것일 테지.”
호선의 얼굴엔 물결이 일고 있었다.
영력대결의 여파로 인한 것이었다.
달리 말해, 내 천뢰무극의 힘이 그녀의 요력을 뚫고 조금씩 침투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럴 리가. 이건 말도 안 된다. 어떻게 하계에 너 같은 놈이… 믿을 수 없다──!!!]콰아아아아아──!!
호선이 요력을 미친 듯이 일으켰다.
숨기고 있던 기운을 남김없이 드러낸 것이었다.
순간 이번엔 내 얼굴로 힘의 파동이 전달된다.
이대로 있다가는 먼저 기운이 떨어지는 쪽이 당하고 만다.
아마 신체가 먼지로 흩어져버리지 않을까.
[경지를 올린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잘되었구나. 이대로 터뜨려주마.]“…….”
그녀의 말대로 내 영력은 거의 바닥이었다.
상계에서 단말을 통해 2할의 요력을 전해 받은 호선과 내가 지니고 있던 영력의 크기는 애초부터 달랐다.
점점 더 밀려드는 요력에 내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호선, 하계를, 그냥, 포, 기해주면 안되… 나?”
호선이 콧방귀 뀌며 대꾸했다.
[흥, 죽을 때가 가까워지니 후회되느냐? 어림없는 소리. 신보를 얻은 뒤 모조리 태워버리겠다.]“그럼 어쩔 수 없지…….”
나는 본원공간을 뒤졌다.
그곳에 잠들어 있던 나만의 보물들.
그동안 아끼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나보다.
하나, 둘, 셋…….
도합 스무 뿌리의,
천년영초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기운을 실처럼 쪼갠 후 그 움직임으로 천년영초를 잽싸게 삼켰다.
꿀꺽.
파아아아앗─!!
갑자기 솟구치는 내 힘에 호선의 눈이 커진다.
[뭐, 뭐냐…….]의아한 듯 물어오는 목소리.
영약을 삼켰음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약이란 것은 본래 진귀한 것이기에 더는 없을 거라 여기는 듯 했다.
다시 한번 꿀꺽.
[아니……?]한번 더…….
그렇게 다섯 뿌리쯤 먹었을 때 호선과 내 힘은 다시 동수를 이루기 시작했고, 열 뿌리가 되었을 땐 호선의 무릎이 서서히 굽혀지기 시작했다.
[이, 이놈! 어찌 영약이 계속 나온단 말이냐! 인정할 수 없다!]현실을 부정하는 그녀였지만 약육강식의 세계는 냉엄했다. 힘의 우위가 가려지자마자 형편없이 밀려나는 그녀였다.
이제는 도리어 내가 손바닥을 놓아주지 않아 더욱 처량한 모습.
[크아아아─!!]호선이 온몸을 뒤틀며 발악하기 시작했다.
무지막지한 거력을 통해 두 사람의 신형이 번쩍이며 이곳저곳을 움직였다.
…영력을 겨루면서 우린 세상을 떠돌았다.
산을 무너뜨렸고, 바다를 갈랐으며, 화산도 폭발시켰다.
육, 해, 공을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움직였다.
기운이 부족한 호선은 나대신 몸으로 그것들을 부숴나갔다.
그 누가 이 자를 구대마존 중 일인인 호선이라 생각할까.
내가 주기적으로 천년영초를 꺼내먹자 그 얄미운 모습에 호선이 결국 분노를 참지 못했다.
[이런 교활한 놈! 신보의 공능이 영약을 만들어내는 것이었구나! 그것을 속이고자 싸움을 이렇게 유도한 것이냐!]제멋대로 판단을 마친 그녀가 갑자기 눈에 독기를 머금었다. 숨기고 있던 한 수를 사용하려는 듯 했다.
‘어……?’
그 순간 그녀에게 달려있던 두 개의 꼬리가 하나로 합쳐지며 무언가 압도적인 기세를 내뿜기 시작했다.
마치 그 두 개의 금모신검을 제물로,
상계에서 무언가를 내려 받는 듯 한 모습.
파지지지지지직……!
새롭게 생겨나는 단 하나의 꼬리에 천기가 요동치며 그것을 배격하려 한다.
일전에 보았던 모습이었다.
천겁을 주관한다던 상천소림의 어떤 놈이 나를 잡으려고 본신을 현현시키지 않았던가.
그러니 저것은…….
호선의 진짜 꼬리다!
다만, 오랜 시간 유지할 순 없는지 이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곧 다시 역 소환될 것 같은 모습.
한데, 그 찰나의 순간 꼬리가 유려하게 움직이더니 어떠한 술법을 펼쳐냈고, 내 정신이 어딘가로 잡아당겨지는 느낌과 함께 시야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두고 보자는 듯한 호선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린다.
[네 정신력도 무력만큼 되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