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31
130화 천라무결(天羅無缺)
‘지나치게 신력에 기대고 있다……라.’
아픈 곳을 찔렸다.
근래 무공을 펼칠 때를 복기해 보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신력을 중심으로 힘을 사용했다.
그게 더 강했으니까. 편리했으니까.
자연히 어떻게 하면 신력을 더 원활하게 사용할지에 대해 몰두했다.
‘구파 무공이 어쩌다 엇나가게 됐는지 잘 알면서…….’
나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어쨌거나 삼재일기공을 다지는 일환이라 여겼으니까.
하지만 장삼풍 사부의 질책을 들으니 나도 좀 엇나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힘은 자기완성을 추구하는 도중에 생기는 부산물일 뿐이다.]무당산에서 장삼풍 사부의 지도를 받을 때 들었던 말이 아프게 와닿는다.
‘신력을 쓰지 말라는 게 아니야. 거기에 집착하지 말라는 거지. 힘에 집착해서 무공의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시시각각 표정 변하는 꼴이 재미있긴 하다만, 아무튼 반성은 다 끝난 거냐?]“옙!”
[그럼 시작해 봐라. 어디 얼마나 반성했나 보자.]나름의 벌충인지 이전과 다르게 바로 알려 주시지 않는다.
얼마나 반성했는지 보여라.
주어진 명제를 복기하며, 강박적인 수순을 버린다.
자연스럽게 지금 펼치고 싶은 대로 행한다면.
‘소림권.’
치고 나가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
소림권의 운행을 돕기 위해 내력과 연계한 불의 신력이 발바닥 중심인 용천혈에 닿았다.
소림권은 강맹한만큼 폭발력이 필요한 무공이기 때문이다.
‘사부님께 한소리 듣기 전이라면 다른 식으로 운용했겠지.’
더 강하게, 더 매섭게 힘을 운용하겠다고 땅의 신력이나 쇠의 신력을 이용해 여러 힘들을 무리해서 복잡하게 끌어올렸을 거다.
당연히 과정이 길어진다.
언젠가 삼재일기공의 성취가 높아져 쉬이 감당할 수 있을 때면 모를까, 지금 이것에 목을 매는 것은 오히려 무공의 완성도를 떨어트릴 뿐이다.
[과함이란 치우침이니, 그것은 끝내 균형을 무너트린다.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지 마라. 무너진 균형은 언젠가 파탄을 일으키는 법이다.]“옙!!”
쾅!
내가 낸 답에 대한 확신과 함께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렇다고 무모하게 지붕 위에 있는 상대를 향해서 직선으로 달려들진 않았다.
‘위쪽에서 자리를 꽉 잡고 있는 적을 상대로 아래에서 공격하는 건 불리함을 자초하는 일이지. 그쯤은 상식이라고.’
내가 노린 쪽은 그 아래 건물이다.
“내려와!”
콰가가각!
놈이 올라타 있는 건물의 기둥에 내 주먹이 닿는 순간 과격한 소리와 함께 건물이 순식간에 주저앉았다.
“제법이군. 그럼 소문이 자자한 소천룡의 기량을 봐 볼까?”
갑자기 눈높이가 쑥 꺼지는 상황임에도 묘한 웃음을 흘리던 상대가 떨어지는 그대로 손을 뻗었다.
짐승의 발톱처럼 굽는 쌍수가 내 머리와 어깨를 노리고 덮쳐 온다.
조공(爪功)은 할퀴거나, 잡아 뜯거나, 꺾어 버리는 데 의의가 있다.
장삼풍 사부의 말대로 저 흑기의 본질이 몸에 닿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것이라면 상대의 조공이 단순한 초식이라도 무시할 수 없다.
일반적으론.
탁! 타탁!
상대의 공격에 대응해 뻗은 내 손에서 찰진 소리가 났다.
상대의 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
“하! 내력 대결이라도 벌여 보자는 거냐?”
넘실거리는 흑기가 범위를 넓힌다. 검은 아지랑이가 상대의 손을 타고 내려와 깍지를 끼고 맞잡은 내 손으로 흘러들어왔다.
마치 검은 불길에 내 팔뚝 전체가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겉으로 보기엔.
검은 기운이 맹렬하게 일렁였지만, 정작 안쪽으로는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
“뭐야, 이거…… 왜?”
“왜긴 왜야.”
잡힌 게 아니라 내가 잡은 거다.
맞잡은 양손을 격하게 잡아당겼다. 그러면서 머리가 앞으로 돌진했다.
빠악!
“크악!”
“니가 허접이란 거지.”
이마로 상대의 인중을 찍어 버리는 느낌은 꽤나 신선했다.
[달마 그 양반이 봤으면, 조만간 철두공 수련도 시키겠군.]‘느낌 괜찮은데. 종종 써먹게 철두공도 배워 볼…….’
[짱돌이랑 차돌 딱 만개만 격파하면, 입문했다 할 수 있겠지.]‘……전투 중에 이상한 거 이야기하는 거 아니지 말입니다.’
순식간에 탑 하나를 대가리로 깨부수고 다니는 미친놈이 될 뻔했다.
“흐읍!”
놈은 충격으로 머리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맞잡힌 손을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내 손을 뿌리치려 했다.
그렇게 상체로 주의를 집중시키는 사이 다리가 요란하게 놀았다.
탁! 탁! 팍!
무릎으로 무릎을 쳐내니 발끝을 세워 발바닥을 꿰뚫으려 한다.
발바닥으로 쳐내니 이번에는 무릎으로 밀고 들어와 내 자세를 비틀려 했다.
두 손으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두 다리로는 정교한 기교로 중심을 흔들려 한다.
신체의 일부를 맞댄 상태에서의 근접 공방!
‘지금 무당파 무공 익힌 사람에게 뭐 하는 짓?’
이런 방식의 교전에서 최강이 바로 무당파 무공이다.
맞대고 있는 무릎을 가볍게 밀고 당기며 상대를 휘젓는다.
“헛?!”
당황하듯 놀라는 상대에게선 처음의 자신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름 초근접전에 능숙한 고수인 것은 분명하지만, 상대가 나라는 점에서 운이 나빴다.
빠악!
“크아악!”
내 무릎에 의해 하체의 균형이 무너졌기에 손을 한껏 흔들고 휘두르다 잡아당기며 다시 한번 인중에 머리를 박아 줬다.
코피가 쌍으로 터져서 얼굴이 피범벅인 상태라 그런지 비통한 울부짖음이 꽤 어울렸다.
어느 정도 놈을 몰아세웠다고 여겨진 순간, 머릿속에서 장삼풍 사부의 진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당의 무공은 원을 근본으로 한다. 그렇기에 그 지향하는 방향은 면면부절(綿綿不絕: 이어지고 이어져 끊어지지 아니한다)인 것이고. 그렇다면 면면부절의 요는 무엇이냐?]힘의 흐름이 끊이지 않게 하는 것!
끊어짐 없이, 상대의 힘을 받아넘긴다!
힘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끊임없이 유동적인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태를 지킨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너지지 않는 완전함.
어떤 것에도 자신을 지켜내는 완벽(完璧).
[그 감각을 키워라.]짧지만, 그 글자 하나하나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잔뜩 응축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 글자들이 머릿속에 들어오는 순간, 팍! 하고 터지며 안에 담긴 것을 풀어내니 아득한 홍수가 되어 범람해 내려갔다.
머리에서 시작한 그 흐름이 전신을 휩쓸었다.
[영강수를 공격적으로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될 거다.]영강수를 바탕으로 설명하니 좀 더 명확하게 장삼풍 사부가 그리는 무공의 요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지키는 흐름을 크게 확대시킨다.’
올가미처럼 잡아 묶고 집어삼킨다.
‘나의 흐름 안에 상대를 가둔다.’
내 안에 완전한 흐름을 거스르는 불완전한 불순물이 있다.
순간적으로 눈앞의 상대가 어디를 공격해도 간단히 뚫을 수 있을 것 같은 허점투성이로 보였다.
탓!
움켜쥐고 있던 두 손을 풀어 주는 순간, 놈은 몸을 뒤로 물리는 척하더니 허리를 비틀며 상체를 탄력 있게 튕겼다. 상체를 중심으로 강궁의 활처럼 뻗는 손끝이 매서운 변화를 그렸다.
‘본 적이 있는 수법!’
하나로 보이지만, 세 번의 타격을 연거푸 퍼붓는 기기묘묘한 무공.
첫 격돌에서 보여 줬던 그 수법이다.
하지만 경각심이 들 만큼 빠르게만 느껴졌던 무공이 지금은 하찮게 보인다.
파파팍!
이번 격돌에서는 세 번의 타격음이 만들어졌다. 하나하나 정확하게 합을 맞춰 받아낸 결과다.
보고, 느끼고, 감지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힘을 활용하는 과정이 정갈해진 결과이기도 하다.
“암혼삼수(暗魂三手)를 가볍게 받아?”
“이름 한번 촌스럽다!”
상대를 도발하면서도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주먹을 내뻗는다.
이곳을 때리라며 내 몸을 이끌어주는 듯한 느낌을 따르자, 미꾸라지처럼 방어를 헤집고 들어간 주먹이 갈비뼈 부근을 쳤다.
우직!
“억!”
깔끔하게 부러지는 감각이 주먹에 남았다.
‘마음먹은 대로 주먹이 들어간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각은 진짜다.
다시 한번 주먹과 무릎을 뻗어 상대를 쳤다.
퍼퍽! 빡!
“큭! 대, 대체……!”
맞는 당사자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얼굴이다.
몸 안에서 이어지고 이어지는 힘의 흐림이 격류가 되어 넘실거린다.
내 안에서 공명하는 무형의 기운이 억눌려 있던 울분을 토해낸다.
“이렇게 하는 건가?”
답답해하며 소리치는 그 힘이 뻗어나갈 길을 열어 주자, 내 팔이 그 흐름을 닮은 움직임을 보인다.
너울거리는 팔이 춤이라도 추는 모습으로 출렁이며 상대를 향해 뻗는다.
강한 위기감을 느꼈는지 상대는 필사적으로 방어를 굳혔다.
두 팔을 교차하며 굳건하게 막아선 방어 위로 내 손이 닿았다.
퉁!
“푸우우욱!”
그저 손이 닿았을 뿐인데 경악으로 일그러진 상대에게서 각혈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피를 토하며 꼬꾸라지는 상대는 이미 절명했는지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몸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 숨통을 끊어 버리는 무공.
[천라무결(天羅無缺: 하늘의 그물에는 흠이 없다)이라 지었다.]“천라무결…….”
한순간 상대의 틈을 옭아매는 듯한 감각은 확실히 하늘의 그물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허나 그 못지않은 백미가 하나 더 있다.
“면장공입니까?”
[잘 알아차렸구나.]“무당면장…… 와아!”
무림에서 내가중수법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무공 중 하나가 바로 무당면장이다.
[달마가 대력금강장을 가다듬은 것처럼, 나도 무당면장을 가다듬어 봤다. 천지인합일(天地人合一)을 이룬 다음에야 굳이 관심을 가질 무공은 아니다만……. 뭐, 다듬어 보니 대충 그런 게 나오더군.]“하하하…….”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시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무척 위험한 무공이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운용하며 다듬어지는 특유의 흐름,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그 감각은 어딘가 천마무겁수를 닮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런 점에서 보면 무공의 위력을 가늠하지 못하고 펼친 현 상황이 아쉽게 느껴졌다.
‘바로 죽일 생각은 아니었는데.’
생각보다 강했던 자라는 점은 둘째치고, 놈이 한 말이나 행동 중에는 신경 쓰이는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죽일지, 잡아 데려갈지를 고민했어. 만약 나를 잡았다면 어디로 데려갈 생각이었을까?’
역시 혈교인 걸까?
하지만 이자에게서는 윤지승 그 정신 나간 노친네가 무공을 펼칠 때 풍겼던 특유의 불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장삼풍 사부의 말대로라면 대법에 성공한 자이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이놈은 과연 속해 있는 조직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것일까?
중신상회와 덕풍 윤가의 뒤처리를 하고 다니는 꼴을 보면 그리 고위직 같지는 않다.
생각해 보면 무서운 일이다.
현장을 뛰는 하수인에 불과한 자의 기량이 이 정도라니!
‘게다가 이것들을 보고 있으면 자꾸 한산월 아주머니 말이 떠오른단 말이지.’
고민할수록 결심이 굳어진다.
‘덕풍 윤가……. 그래, 이번 기회에 끝장을 보자.’
나는 이미 허도진인께 송문고검을 받았다.
무당파 바깥에 있으나, 무당파의 외인(外人)이 아니다.
혈교 마인들의 하수인으로 추정되는 윤시후가 아직까지 무당파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심히 의심스럽다.
명운표국의 일, 중신상회의 일, 무당파 식구로서의 일, 그리고 내 개인적인 사유.
모든 것이 덕풍 윤가를 처리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모인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선행할 것은 이거다.
“일단, 종인걸 그 늙은이가 감춰 두었을 물건부터 찾아볼까?”
“저 삽질에는 재능 없는데요?”
“……응?”
내 나름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중에 돌연 장소월 소저의 목소리가 들린다.
뚱한 얼굴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에는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뭔 소리일까요?”
“무슨 소리긴요. 금방 삽 가져다주겠다는 소리죠.”
생글생글 웃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은 장소월 소저가 고개를 휙 돌렸다.
아직까지 무슨 소리인가 싶은 와중에 이화를 보니 땅 밑으로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다.
부서진 건물의 잔해들이 가득한 곳.
그때서야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망할…….”
아무래도 내가 박살 낸 건물이 종인걸 그 늙은이의 거처라는 것 같다.
당연히 그 늙은이가 증거를 은닉해 놨을 유력한 장소일 테고.
“증거가 뭐였든 무사하길 빌어야겠네. 에휴!”
그렇게 부서진 잔해들을 암담한 눈으로 바라보다 문뜩 떠오른 생각 하나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화야.”
“예.”
“장 소저가 왠지 좀 화난 것 같지 않니?”
“예.”
“진짜?”
“예.”
“……왜 화가 났지?”
“…….”
애석하게도 이 물음에는 이화의 볼도 살짝 부풀어 오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