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88
187화 태허(1)
깨달음까진 아니지만, 곤륜파 제자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결 나아졌다.
물론 어디까지나 마인을 바라볼 때 기준이다.
좀 아니꼽게 풀어내자면 ‘마인 주제에’라는 수식어가 붙은 정도랄까.
언제 칼부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다.
“자네가 천마를 자칭할 땐 남다른 계산속이 있었다고 생각했네만, 이제는 전혀 다르게 보이는구먼. 허면, 청조의 주인은 곤륜에 무슨 일로 오셨는가?”
“가까운 사람을 돕기 위해 영약이 필요합니다. 듣자 하니 대부분 곤륜산에서 난다더군요.”
“허허! 어지간히 가까운 사람인 모양일세?”
“목을 걸어도 좋은 사람이죠.”
“목을 건다……. 마인에게 사람 냄새가 나는 말을 듣는 날이 올 줄은 몰랐군.”
천원진인의 시선에 한 층 더 정이 묻어나는 느낌이다.
“흐음! 곤륜산은 영기가 짙은 곳이라 여러 기화이초(奇花異草)가 자라는 곳이긴 하지. 한데 천마를 자처하는 자네가 찾을만한 영약이라면…….”
“적령초(赤靈草), 영환주(永煥朱), 불하선과(不下仙菓), 천년하수오(千年何首烏)입니다.”
“……자네, 평생 여기 눌어붙을 생각으로 온 건 아니겠지?”
선심이라도 쓰듯 내가 원하는 영약을 내어줄 것처럼 묻던 천원진인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흘겨봤다.
반응을 볼 때 곤륜산에서도 보기 드문 영약인 듯싶다.
반도의 약력을 다스릴 영약이니 범상치 않은 것들인 게 당연한 일이지만.
구하기 쉬운 물건이었다면 진즉에 구해서 설아 누나에게 먹였을 거다.
“며칠 찾아보다 소득이 없으면 돌아갈 겁니다. 본래 산에서 영약을 찾는 일은 ‘하늘의 뜻’ 아니겠습니까?”
나는 하늘의 뜻이란 단어에 유독 힘을 주어 말했다.
[영악한 녀석.]‘틀린 말도 아니잖습니까?’
천마 사부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쯧! 삼풍이 놈이 애를 다 버려 놨군.]적어도 도문에 몸담고 있는 사람에게 하늘의 뜻은 유독 잘 먹힌다.
곤륜파 장문인조차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희귀한 영약을 청조의 주인인 내가 찾아낸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서왕모 님의 사자 같은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지. 엄밀히 따지면 크게 틀리지 않은 말이기도 하고.’
천마 사부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지만 말이다.
대충 짐작은 간다.
‘소천룡이란 이름을 버리고 천마로서 움직일 땐 거침없이 움직이겠다고 결심했지만, 필요한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요.’
장삼풍 사부나 달마 사부가 약팔이 노릇을 하는 것만 봐도 천상에서 곤륜파와 관련해 사부님들에게 압박이 큰 것 같다.
천마의 이름을 걸고 할 만한 짓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해보면 곤륜까지는 이렇게 움직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천원진인에게 말한 대로 얼마간 곤륜산에 머물게 됐다.
나를 따르는 사람들로서는 여정이 늘어난 꼴이지만, 그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불만은 고사하고, 오히려 부담스러운 눈이었지.’
다들 말은 안 했지만, 눈빛들이 초롱초롱 빛나는 것이 ‘이번엔 어떤 기적을 보여주시렵니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내 사람도 아닌 마인 임아형, 적소벽, 염진묵조차 천마수신위들과 같은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정말로 내가 말한 영약들을 며칠 만에 다 모은다면 곤륜파 사람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신심들이 깊어질 것 같다.
목적은 영약만이 아니다.
‘번잡한 일들을 다 감수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가야지.’
신승 어르신이나 허도진인 어르신처럼 곤륜파에도 선근을 깔아줄 수 있다면 깔아볼 생각이다.
사부님들이 천상에서 압박을 받는 주된 요인일 것이기 때문이다.
돌려 말하면 이번 일을 잘 풀어낸다면 사부님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전하느냐, 인데…….’
곤륜파 무공에 해박한 천마가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가르침을 준다?
자괴감에 빠져 검을 뽑아 살인멸구를 시도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일단 현재 계획은 빠른 시간 내에 영약을 발견한 다음 ‘하늘의 뜻’ 운운하며 약 좀 팔아보는 건데…….
‘뭔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뻔히 눈앞에 일어난 일들조차 의심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한없이 선의로 가득한 일조차 의심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단순히 무공만 툭 던져줘서 해결될 일이면 고민할 필요도 없다.
한밤중에 몰래 숨어들어서 비급 하나만 던져주고 오면 되니까.
문제는 곤륜파가 깨달음을 얻어 선근이 나오도록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 납득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뭔가 불합리한 것 같다.
퍼주는 것도 방법을 고민해야 하다니.
그런 가운데.
“……저거야?”
“맞아. 저게 천마래.”
귓가에 앳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힐끔 살펴보니 커다란 나무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사내아이 둘이 보였다.
곤륜파 제자로 짐작되는 아이들이다.
내 이야기를 듣고 구경이라도 온 모양이다.
‘애들이란.’
어딜 가나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해 사고를 치는 아이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모른 척해 줬더니 긴장이 풀렸는지 나름의 품평이 시작되었다.
“마귀 대장치곤 멍청해 보이는데?”
“그러게. 차라리 옆에 있는 할배가 더 천마 같아.”
이건 좀 아프다.
천마임을 자칭할 때 스스로도 부족하다 느낀 점이었기 때문이다.
‘예이~ 예~~.’
[흥! 나는 분명 말했다.]속마음이 얼굴에 드러난 모양이다. 천마 사부의 반응이 매섭다.
천마 사부의 잔소리대로 신경 써야 할 것이 태산이다.
그런 고민들에 비하면 저 아이들 관심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적당히 내버려두면 알아서 흥미를 잃고 돌아갈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중 뜬금없는 말이 들려왔다.
“쟤…… 예쁘다.”
꼬맹이 녀석 중 하나가 이화에게 관심을 보였다.
“저게? 쬐끄만데?”
“그치만 예쁜데…….”
“정신 차려 바보야! 저 쬐끄만 건 마귀를 따르는 마녀라고!”
‘하아…… 숨어있는 거면 좀 조용히 떠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특히 실례되는 말이라면 더더욱.
산이라 그런지 목소리가 참 우렁차게 울리는데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화가 어린애 취급당하는 걸 참 싫어하는데 말이다.
내심 이화를 살피는데, 순간 눈을 마주쳐버렸다.
“잡아 올까요?”
‘……왜 그렇게 목소리가 무섭게 깔리는 거니?’
역시나 이화도 들은 모양이다. 티를 내지 않으려 하지만 살짝 핏줄이 돋은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움직이마.”
“직접 움직이실 일은…….”
“좋은 생각이 나서 그래.”
‘어디서 주워들은 게 있으면 아무 곳에나 가서 떠드는 게 애들이지.’
나는 능운금광보를 펼쳤다.
단 한걸음으로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아이들의 옆을 지나 뒤를 잡았다.
“어, 어디 갔지?”
“몰라! 갑자기 없…… 뒤?!”
금강부동신법의 묘리가 담긴 보법인 능운금광보는 정중동의 극치를 담고 있다.
내 움직임을 놓친 아이들은 뒤늦게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가 좋을까?’
아무래도 작업을 한다면 좀 팔팔해 보이는 녀석이 좋을 거다.
“읍!”
순진해 보이는 아이의 목을 잡았다.
쓸어내리듯 손끝에 힘을 주며 다섯 개의 대혈을 단숨에 찍어 제압했다.
“호오?”
아이의 반응은 상당했다.
목에 있는 아혈을 점거당하는 순간 내가 제압하려는 혈을 방어하려 했다.
나름 효과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내게 대응할 만한 힘이 있었다면 단번에 제압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놔줘!”
스릉!
성격이 괄괄한 아이가 검을 뽑아 들었다.
사악!
제 동료를 제압한 내 팔을 자르려는 듯 뻗어내는 검세가 제법 날카롭다.
‘강직하면서도 빨라.’
연속해서 이어진 검세를 피하면서 아이가 펼친 검세를 파악했다.
기억에 있는 무공이다.
“태청검인가?”
“그래!”
“소청검을 떼야 배울 수 있는 무공일 텐데, 제법이구나?”
“이잇!”
제법이란 내 평가가 놀리는 것으로 들렸는지 아이의 눈매가 사납게 변했다.
검 끝 주변으로 불길 위에 일어나는 아지랑이처럼 주변의 사물을 흔드는 광경이 보였다.
검에 기운을 담고 있다.
보통 재능이 아니다.
“심장에 검을 처넣으면 마귀 놈이라도 뒈지겠지!”
이를 갈며 다시 한번 달려든다.
허나 이번에는 조금 전과 명백하게 다른 부분이 있다.
‘보법?’
걸음이 다르다.
그것만으로 검에 담긴 변화가 풍부해졌다.
“곤륜의 태청검이라…….”
사실 소청검과 태청검이라면 몇 번 본적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도문의 명문을 자처하는 곳이라면 그 유파만의 태청검법과 소청검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당파에도 태청검과 소청검이 있었다.
도를 추구하는 문파의 수련자가 경지에 다다랐을 때 내는 기운을 태청강기라 칭하는 것처럼, 도교의 최고신이 삼청이기 때문인지 도문에 있어 청(淸)이라는 단어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태청검과 소청검 역시 그와 맥을 같이 한다.
그 원류, 시작을 연 곳이 바로 곤륜파다.
원조 계승자가 원조만의 매운맛을 드러냈다.
‘하지만 편협해…….’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아이가 펼치는 검에서 곤륜파 무공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제압한 아이의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천마로 움직이고자 결정하면서, 송문고검은 집에 두고 왔기 때문에 검이 필요하면 빌릴 수밖에 없다.
‘곤륜행을 결정하고, 천상을 통해서 곤륜파에 전해달라는 무공과 무리들이 꽤나 내려왔단 말이지.’
창! 채앵!
가벼운 교환이 청명한 소리를 발한다.
내 손에서 펼쳐진 검로에 아이가 기함을 했다.
“태청검?”
“비슷했나?”
“전혀! 완전 달라!”
태청검은 기교에 매달리는 무공이 아니다.
맑고 투명한 물처럼 그 본질을 드러내는 솔직한 검이다.
검을 휘두르는 수련자의 깊이가 그 맑고 청명한 검로를 태산처럼 무겁고 강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아이의 검을 튕겨낸 내 검처럼 말이다.
챙!
“검에 살기가 짙구나. 그렇게 휘두르지 않아도 될 텐데?”
“사람을 베려면 당연한 거잖아!”
“베는 것에 집착하면 오히려 베지 못하는 법이란다.”
검에 살기가 짙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지만, 살기가 담긴 검은 맑지 않다.
날 선 무기를 휘두르는 검법인 이상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검리가 담기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그 방향성이 온전히 살기만을 담는다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곤륜파는 오랜 싸움에 시달린 탓인지 지나치게 실전에 치우친 느낌이 강하다.
문파의 미래라 할 수 있는 동량의 검에서도 그 치우침이 느껴질 정도다.
‘바로잡는다면 여기부터 손을 대야겠지.’
“곤륜은 도문의 뿌리라 생각했건만, 이제 보니 살귀들의 소굴이구나. 휘두르는 검이 살검뿐이라니. 이래서야 사람 죽일 생각만 하는 살귀가 아닌가.”
마귀라 부르던 천마에게 훈계를 당한 것이 충격일까?
한순간 동그랗게 커지는 아이의 눈이 보인다.
“정신(情)은 맑음(淸)을 따르고, 길(道)은 하늘(天)을 따라라.”
천상에서 내려온 곤륜파 무공의 가르침.
나는 그 가르침을 곤륜의 동량에게 풀어냈다.
그와 함께 사납게 내 팔과 목을 노리고 뻗어오는 검격을 잠재우는 흐름을 그린다.
챙! 카앙!!
“검로를 이렇게 뻗으면 적을 제압하는 게 늦을지라도 자신을 지킨 뒤 행할 수 있다.”
아이의 검을 비스듬히 비껴낸 내 검 끝이 놀라 굳어 있는 아이의 목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