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33
232화 제압
하나하나가 작은 암기일지라도 그 수가 수백을 넘는 숫자가 일제히 움직이면 그 자체가 압도적인 폭력이나 다름이 없다.
자칫 같은 편도 휩쓸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저놈! 그리고 저놈! 저놈도!!’
하지만 미리 보아둔 고수급들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살짝 정신줄도 빠졌는지 반응들도 굼뜨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암기들이 그들을 휩쓸었다.
“피해!”
가까스로 정신줄을 잡아낸 이들이 몸을 날려 피했지만, 내가 휘두르는 암기들은 단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비는 땅으로 내려와 강을 형성하고 대지 위를 흘러간다.
“미친!”
“뭐야 저거!!”
강물처럼 하나의 흐름을 이룬 채 도도하게 흘러가는 암기들이 순식간에 적도들을 휩쓸었다.
‘으아아…….’
덕분에 난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상태다.
아무리 도검에 비해 작다고 해도 한 번에 암기 수백을 움직이는 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소모했다.
온몸의 신경이 파도치듯 꿀렁거리는 것을 보면 상화 역시도 이만한 숫자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건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만큼 강력했다.
“이걸 어떻게 막…… 커헉!!”
제어가 되는 수백의 암기들, 이기어검의 편린은 사신(死神) 그 자체였다.
“이런 씨벌!”
어설프게 암기를 던져 봐야 암기의 대열에 합류할 뿐이다.
일부 고수들은 무구로 암기를 쳐내려 시도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내 공령의 기운을 받아 날뛰는 암기들은 하나하나가 검기와 같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무서운 것은 압도적인 숫자다.
권각의 고수라면 두 손, 두 발을 자유롭게 다루며 한 번의 움직임으로 네다섯의 투로를 뻗어낼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팔꿈치, 무릎, 어깨 등을 활용하면 한 번에 십수 번의 투로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지금 내가 휘두르는 것은 십수 번으로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손발이 수백 개가 달린 괴물이나 다름이 없다.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호신강기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아니면 압도적인 강기로 일거에 소멸시켜 버리거나.
하지만 이 힘을 받아내야 할 이들 중에 그런 고수는 없다.
도도한 강물처럼 흐르는 압기의 폭류는 단순무식하게 모든 것을 뒤덮고 지나갔다.
그렇다고 마냥 무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거…… 생각보다 부담이 큰데…….’
힘을 휘두르면 그 휘두르는 힘의 반작용도 당연히 뒤따른다.
힘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내 움켜쥔 주먹은 뭔가에 잔뜩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파랗게 물들어있었다.
천마혈족 장로들을 상대로 싸울 때는 검이 부러져도 부러진 검첨이 살아 움직였지만, 지금은 튕겨 나간 암기들 태반이 대열에서 이탈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더는 안 되겠다!’
상화도 나도 한계였다.
나는 움켜쥐고 있던 주먹의 힘을 풀었다.
그 순간 허공을 유영하던 암기들의 움직임이 멈춰 섰다.
파사삭!
쇳소리를 내며 암기들이 떨어졌다.
“아아…….”
적도들에게는 악몽 같았던 암기의 폭우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틈새로 내 몸이 튀어 나갔다.
파각!
가차 없는 일격이 머리를 부쉈다.
폭우와 같던 암기에만 신경을 쓰던 이들에겐 날벼락이나 다름이 없었다.
빠악! 퍼억! 텅!
물 흐르듯 무당과 소림의 절기를 쏟아냈다.
일찍이 장문경 선배와 허도진인께서도 놀라워하시던 무공의 연계.
두 가지 상반된 무류에서 강함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일으키며 거침없이 휩쓸어대니 적도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게다가 이곳에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지금이다! 싹 쓸어버려!”
흐름을 잡아낸 당천기 가주가 암기를 매섭게 뿌리며 반란분자들의 목숨을 거두기 시작했다.
서걱!
당가의 담을 넘을 때부터 검에 살기를 담고 있던 청경진인 역시 무섭게 날뛰었다.
기세에 밀려버린 반도들이 고꾸라졌다.
더는 내가 나설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천당가 반도들의 기세는 바닥으로 처박혔다.
그런 가운데 내 발끝은 당영진에게로 향했다.
“하…… 하하…… 씨…발…….”
당영진은 오랜 세월 준비해 두었던 모든 것이 허무하리만치 간단히 무너지는 걸 받아들이기 힘든지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당영진이 나를 노려보았다.
“너어…….”
허탈함이 가득하던 당영진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번뜩이는 것이 보였다.
독기가 가득한 눈빛이 붉게 물들었다.
‘역해.’
눈을 마주치자마자 온몸을 덮쳐오는 역겨움.
“내 눈을…….”
무언가 나를 훑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내 안으로 파고들려던 무언가가 힘없이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무언가 사이한 술수를 부리려 했다는 건 알겠다.
“봐라…… 악!”
퍼억!
역겹게 느껴지는 눈깔에 가차 없이 주먹을 꽂아주었다.
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는 당영진을 따라잡은 나는 그대로 목을 낚아채 얼굴을 땅에 박았다.
순식간에 제압당한 당영진이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바닥을 기며 몸을 빼려 했다.
빠악!
“으아아아악!”
무릎을 박살 난 당영진이 고통에 바닥을 구르는 사이 나는 내 안의 상태를 점검했다.
“별거 없네?”
“으아악! 당연하지, 씨발! 섭혼술이 쉬운 줄 알아? 그냥 눈 한 번 마주쳤다고 휙휙 조종할 수 있으면 그게 천하제일무공이지. 그래도 한 방에 걸리는 새끼들도 있었는데…… 아파! 썅!”
“섭혼술?”
“혼심안(渾心眼)이란 거다!”
‘뭐야 이놈?’
뜬금없이 술술 대답을 해준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그냥 사람을 잘 꾀는 게 아니었네.’
사공패도 그렇고, 당영진의 말 한마디에 미쳐 날뛰던 사천당가 고수들도 그렇고, 단순히 언변이 좋아서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세운 게 아닌 것 같다.
사이한 술수를 구사해서 마음을 흩트려 놓았던 것이 분명하다.
이제야 뭔가 앞뒤가 맞는 느낌이다.
게다가 말하는 꼴을 보면 아마 내게도 그 짓을 시도해 보려 했던 모양이다.
‘그깟 잡술이 청명심법으로 보호받는 내 심지를 흔들 수 있을 리가 있나.’
그냥 청명심법도 아니고, 사실은 대라조화심결이라는 희대의 신공이 원류인 심법이다.
내게 이걸 전수했다는 이유로 신선인 장삼풍 사부가 상사에게 혼나는 것을 보면 규격 외의 무공임이 분명하다.
당영진이 아니라 당영진에게 저 사술을 전수한 자가 나서 본들 내 심지를 흔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규격 외의 고수인 입천신마존도 심력으로 나를 제압하려던 것에 실패했었다.
“섭혼술이라고 해도 그 사람의 본성을 바꾸진 못해. 그러니까 사공패 그 병신에게도 밑작업을 하면서 본연의 성정을 내가 제어하기 편하게 세공한 거고. 뭐, 심리적 방어 기제까지 간단히 부러트릴 수 있다면 시시콜콜한 밑작업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내 공부는 거기에 미치지 못했거든.”
당영진은 쉬지 않고 입을 놀렸다.
자신이 펼친 술수의 장단점까지 모조리 털어놓은 당영진이 그제야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데 나 왜 이렇게 줄줄이 설명질이지?”
“그걸 왜 나한테 묻냐?”
제멋대로 주둥이를 털어대는 꼬라지를 보면 내게 그 혼심안이란 수법을 펼쳤다가 되레 지가 당한 것 같다.
‘청명심법, 아니 대라조화심결에 사술을 돌려버리는 수법도 있나?’
규격 외의 무공이니 뭐든 못하겠냐만.
“……씨발? 너 뭐 하는 새끼야?”
이제야 혼심안의 수법에서 좀 벗어났는지 믿을 수 없단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당영진이 다시금 몸을 빼려 했다.
우직! 우드득!
“으아악!!”
남은 무릎 하나와 어깨를 뭉개버리니 당영진이 비명과 함께 저항을 멈췄다.
이제야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받아들였는지 팔다리가 축 늘어졌다.
피투성이 얼굴을 한 당영진이 상큼한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얌전히 협조하면 나 살려 줄래?”
“……생각해 보지.”
“하하! 너 거짓말 못 하네.”
가슴을 발로 밟고 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뭔가 놈의 몸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난 거짓말 못 하는 놈이 싫더라.”
붉게 빛나던 녀석의 눈동자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안구부터 시작해서 놈의 온몸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칠공에서 피와 고름을 쏟아내는 당영진의 육신이 이내 진흙처럼 주르륵 흘러내렸다.
붕괴된 몸이 일렁이려는데, 내가 장악한 영역이 이를 억눌렀다.
치이익!
그대로 흘러나가는 당영진의 몸이 닿는 것마다 타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났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당영진이 펼친 것은 독공의 일종인 것으로 보였다.
당영진이 의도한 대로 크게 퍼져나갔다면 적지 않은 손해를 봤을 것이 분명했다.
“쯧.”
녹아내린 당영진을 바라보며 혀를 차던 나는 문득 등이 따갑다는 것을 느끼고 뒤를 돌아봤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고정된 사람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환호도, 승자의 포효도 없었다.
마치 추구하는 무공의 극한을 본 자들의 특유의 풀린 눈들만이 있을 뿐이다.
‘나도 사부님들을 직접 만나 뵈었다면 저런 눈을 하고 있었으려나?’
나쁜 의미들은 없는 것 같으니 다행이다.
그런 가운데.
“잠깐 나 좀 보자.”
당천기 가주가 나를 불렀다.
***
“뭐냐, 그건?”
“그야…….”
“무당파 무공이라고 하면 나를 놀리는 걸로 알겠다.”
당천기 가주가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 허도진인하고도 친분이 있다. 내가 아는 한 무당파 무공 중에 지금 네가 펼친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없어.”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질문이라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심각하게 고민을 하던 당천기 가주가 불쑥 물었다.
“천마신공이냐?”
“……예?”
“그거밖에 없잖아.”
아무래도 내가 펼친 무공의 근간이 천마신공이라 착각하시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종 노도 그렇게 생각했었지?’
이러다가 천마신공이 무슨 세상에 다시없을 신공절학으로 여겨질 판이다.
물론 천마신공이 대단한 무공인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입교하면 나도 배울 수 있냐?”
“……?”
‘이분 양심 어디?’
무려 사천당가의 가주씩이나 되는 양반이 천마신교에 입교하는 것을 진지하고 고민하고 있다.
세상에!
이러다 정말 천마신교가 무림을 지배하는 세상이 열릴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너무 잠잠한데?’
천마무겁수가 분명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무공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상화의 도움은 둘째치고서라도 장삼풍 사부의 무공과 달마 사부의 무공이 뒤를 받쳐주고, 공령의 공능이 도와야 가능한 일이다.
그것을 천마신공으로만 구사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니 머릿속이 시끄러울 만큼 사부님들의 성토가 이어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조용했다.
‘무슨 일이 있나?’
천마신교를 나설 때쯤부터 이랬다.
무림 초출 당시 소림을 나와 화산파로 향하던 도중, 사부님들이 교대 일정을 짜기 위한 논의로 잠시 바쁘셨을 때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오랫동안 사부님들의 목소리가 끊겨 있던 것은 처음이다.
이대로 영영 사부님들과 연결이 끊기는 것은 아닐까?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천마 만세! 이러면 되는 거냐?”
“…….”
그 전에 일단 출타한 이분 양심부터 좀 찾아드려야 할 것 같다.
***
한편 천상에선.
“왜 현천궁의 무공이 지상에 남아있는 거냐?”
크게 분노한 현천상제가 거대한 존재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대답해라, 옥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