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34
233화 신(神)개념 개판
멈춰 있는 세계는 죽어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전지전능까진 아니더라도 하나의 정점에 다다랐다 할 수 있는 천상의 신선들은 태생적으로 능동적일 수 없다.
그렇기에 고여 버릴 수밖에 없는 천상은 물질계인 지상을 아꼈다.
물질계는 토양이고, 씨앗이었으며, 가지각색의 거대한 흐름을 일궈내기 좋은 터전이었다.
그 큰 흐름은 하나의 거대한 여과기이기도 했다.
신은 신이고, 마는 마.
추구하는 방향에 한해선 완전할지언정 그것이 삼라만상을 통달했다고 할 수는 없다.
천상의 드높은 이들조차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충돌은 불가피했다.
본인들이 원하지 않아도 그들이 가진 힘의 본질이 맞물리면 불과 물이 만날 때처럼 크게 반발하며 그에 따른 부산물들이 만들어졌다.
음과 양, 태극이 맞물리고 화합하여 오행을 만들었듯 그러한 부산물들은 물질세계의 거대한 흐름 속에 녹아들었다.
윤회와 순환.
인과라는 이름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모든 세계가 공존하는 형태가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천상과 지상은 상호공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허나 문제는 물질계가 너무 약하다는 점이었다.
당장 하급 신선인 장삼풍만 하더라도 홀로 물질계를 무너트릴 힘이 있다.
지옥의 한 영역 전체를 일순간에 탈취해 쥐고 흔들었던 것이 장삼풍의 힘이다.
이 힘을 물질계에 적용한다면 어떤 참상이 일어날지 쉬이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물며 장삼풍보다 더 윗줄의 존재들이 흥미 위주로 지상을 휘저으면 물질계가 무너지는 일은 순식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기에 봉신대결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인과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 강대했던 현천상제가 인과의 흐름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졌던 것도 그러한 이유다.
인과의 흐름 속에는 사람의 것만이 아닌 신들이 흘려보낸 부산물들도 가득하다.
그렇기에 여전히 지상은 험난했다.
현천상제는 거기에 칼을 휘둘렀다.
당시 하늘의 뜻은 너무도 참혹했기 때문이다.
하늘은 감정이 없으니, 오로지 원활한 인과의 흐름만을 추구한다.
활발함이란 평온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평온한 연못에 천적이 들어오면 생존을 위해 펄떡펄떡 뛰어다니듯, 하늘이 바란 것은 멈춤 없이 활발한 세상이었다.
천상의 신들이 진심으로 나서면 어렵지 않게 정리할 수 있는 요마들과 마귀들이 버젓이 인세에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들이다.
그것들을 현천상제가 나서서 치워 버렸다.
갱생이 불가능한 피와 학살을 즐겼던 부류를 쓸어버리고, 타협이 가능한 부류는 천상으로 끌어올렸다.
그 대가로 옥좌에서 내려와 몰락하였으나 오늘 이날까지 현천상제는 이를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현천상제의 역린을 건드리는 일이 드러나 버렸다.
천상의 일각, 선계의 대전에서 분노를 드러내는 현천상제의 모습에 여러 대선들이 불편하면서도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
“현천궁의 맥이 지상에 남아있다……. 흐음…….”
“허허. 거참.”
당시 선계에는 현천상제의 행보가 과했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현천상제의 판단에 손을 들어주는 이들이 더 많았다.
현천상제가 지상에서 쓸어버린 존재들은 말 그대로 극악한 부류들이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인세를 혼란에 빠트려 원망과 저주 그리고 투쟁을 낳는 존재들이었다.
사람들이 쌓아 올린 문명을 짓밟기만 하는 존재들.
아무리 균형의 추를 이루기 위해서라지만, 그런 존재들을 좋게만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물며 현천상제는 그 과정에서도 구해야 할 존재들은 가능한 구해내기까지 했다.
여러 영수들과 마왕 출신의 신격들은 현천상제의 희생 아래 천상에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랬기에 신선들은 현천상제의 분노를 이해했다.
현천상제와 함께 몰락한 현천궁은 현천상제에게 있어 아픈 손가락이다.
눈물을 머금으며 모두 거둬들였고, 잘라냈으며, 폐기해야 했다.
그런 현천궁의 맥이 지상에 남아있다는 것은 그 과정 속에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게 하늘의 장난질이라면 가만있지 않을 거다, 옥황!”
분노한 현천상제의 머리 위 공간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검은 하늘의 주인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현천상제가 존재감을 드러내자 선계가 흔들릴 정도였다.
현 선계를 총괄하는 상제의 자리에 있는 옥황상제가 이를 가만히 바라보다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하늘을 의심하시오?”
“하늘이 친 장난질이 한둘인가!”
요마와 마왕들마저 균형을 위한 저울추로 이용했던 것이 하늘이다.
모조리 수거했다 여긴 현천궁의 맥이 지상에 남아있다는 것에 하늘의 의지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없다 자신할 수 있는 이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현천상제 이후 천의를 따르는 존재로 자리하고 있는 옥황상제 역시 딱 잘라 말하지 못할 정도면 말 다 했다.
그런 가운데 한 신선이 투덜댔다.
“에잉! 그 연청운이란 아해가 문제구먼. 괜한 일이나 드러나게 하고. 쯧쯧쯧.”
갑자기 불똥이 이상한 곳으로 튀었다.
장삼풍이 걱정했던 일각.
천상의 모두가 연청운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그 일부가 이빨을 드러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네. 지상의 일에 천상의 존재가 개입하더니 결국 이리 사달이 나지 않았는가.”
그 말을 기점으로 대전이 반으로 갈라졌다.
“사달은 무슨! 똥이 있으면 치워야지 덮는다고 능사인가?”
“하여간 누가 복지부동 아니랄까 봐.”
“어우, 저 꼰대 또 시작이야.”
“꼰대는 무슨! 딱히 틀린 말도 아니구먼!”
“예이, 예. 다음 꼰.”
“쯧쯧! 하여간 요즘 젊은것들은 뭐라고 하면 꼰대로 몰아붙인다니까!”
“나 때는 말이야…….”
지상에서 도를 닦는 도인들이 보면 이게 뭔 신(神)개념 개판이냐며 말문을 잃을 모습들로 대전이 시끄러워졌다.
참 신선한 광경이긴 했다.
“연가 아해가 문제라……. 하하!”
거기에 태을진인이 참전했다.
“지금 밑에 하급 신선들이 죽어 나가는 건 알고 계시는지? 방금 하신 말, 아래 녀석들 앞에서도 하실 수 있으십니까?”
“아니, 뭘 또 그렇게 이야기 하나?”
“꼬우시면 그 고상한 부채 내려놓고 명계로 가서 똥지게 드시던가요.”
“커험…….”
“현장 돌아가는 꼬라지도 모르면서 병신 같은 소리나 하고 있어. 꼰대 새끼가.”
“뭐? 새끼? 태을, 자네 말 다 했나?”
“더 할 건데? 계속할 건데?”
태을진인도 위아래로 치이면서 쌓인 게 많아 보였다.
그렇게 대전의 분위기는 점점 더 수위를 높여 갔다. 조만간 부모님과 조상님 안부까지 확인할 판이었다.
그 상황의 정점을 찍은 것은 최초로 불똥을 일으킨 대선의 한마디였다.
“그냥 그 연청운이란 아이를 지워버리면…….”
“그 아이를 건드리려면 여의 허락이 있어야 할 것이니라!”
콰르르르릉!!
서왕모가 노기를 드러냄과 동시에 푸른 뇌전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검은 하늘에 푸른 뇌전이 감돌며 대전을 뒤흔들었다.
선계를 지탱하는 강력한 축이 연청운을 비호하니 뭔가 말하려던 대선이 입을 다물었다.
현천상제와 달리 권한이 막강한 서왕모다.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 입을 다무는 대선의 행태에 그를 옹호하던 이들조차 혀를 차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중에는 옥황상제도 있었다.
“그만!”
더 이상 봐줄 수 없었는지 옥황상제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 권위를 대놓고 무시할 수 있는 존재는 이곳에 없었다. 순식간에 시장바닥 같은 소란이 가라앉았다.
“현천이 제시한 의혹은 알아보도록 하겠소.”
“그럼 자오경의 봉쇄 역시 풀어 놓는 것으로 알겠다.”
“그러시오.”
현천상제의 말에 옥황상제는 간단히 응했다.
용무를 마친 현천상제가 등을 돌렸다. 그러면서 옥황상제 주변의 꼰대 대선들을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저놈들은 변한 게 없군.”
대전을 나온 현천상제가 분노와 씁쓸함이 뒤섞인 얼굴로 중얼거렸다.
외견상으론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기에 그 모습이 어딘가 기묘해 보였다.
“변할 리가 있겠는가. 애당초 변화라는 것은 우리에게 친숙한 일이 아니니라.”
고아하게 걷는 서왕모가 현천상제와 함께했다.
서왕모의 말에 현천상제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변화라…….”
현천상제에게는 아픈 말이다.
변화를 바라지 않는 그들과 달리 현천상제는 변화를 원했다.
좀 더 나아지길 원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지금과 같다.
“어쩌면 저것들 짓일지도 모르겠군.”
현천상제가 모든 것을 떠안았지만, 그럼에도 그 여파는 크고 거대했다.
그로 인해 발생할 변화를 탐탁지 않게 여긴 대선들이라면 가능한 이를 묻어버리려 했을 수도 있다.
태을진인이 조용히 대답했다.
“안 그래도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알아보고 있다?”
“달마가 수고하고 있지요.”
“……그랬군.”
사실상 징계로 인한 직무 정지 상태라 할 일이 없는 현천상제다.
끝없는 지루함은 그 자체가 죽음에 이르는 형벌과 다름이 없었다.
그렇기에 자오경을 지켜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연청운의 스승을 자처하는 셋. 장삼풍과 달마 그리고 천마 중 유독 달마의 등장이 드물었던 이유를 현천상제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고생이 많구나.”
“상제께서 하신 희생만 하겠습니까.”
“하하하!”
태을진인의 말에 현천상제가 맑게 웃었다.
뭔가 기대해 볼 만한 것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가 오면… 상제께서 많이 도와주십시오.”
“‘그때’라…….”
현천상제는 태을진인이 말하는 ‘그때’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듣고, 머릿속으로 그 모습을 그려보았다.
“저것들 손에 똥지게가 들려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야, 필히 도와야지. 암!”
현천상제의 입가에 더욱 진한 웃음이 그려졌다.
***
사천당가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큰 사달이 났다.
하지만 전혀 분위기가 처져 있지 않았다.
어느 쪽이냐 하면 뭔가 들떠 있는 느낌이 가득하다.
너무 좋은 꿈을 꿔서 눈을 뜨고 일어났음에도 꿈에 취해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게다가 이상할 정도로 내게 협조적이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았다.
하나같이 얼굴에 홍조마저 보이는 것이 꼭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분위기가 좋네요.”
“그런 걸 봤으니 당연한 일일세.”
당만옥 총관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당만옥 총관의 표정 역시 잠깐이지만 당가 사람들에게서 보아온 그 표정이 머물렀다 사라졌다.
당만옥 총관이 말한 ‘그런 것’이라면 납득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선근이 트인 당천기 가주조차 간이며 쓸개며 죄다 빼줄 것 같은 태도를 끌어낸 광경이었다.
규격 외의 것을 마주한 사람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두려워하든가, 경외하든가.
사천당가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후자인 듯하다.
내겐 나쁠 것이 없다.
사천당가가 협조적으로 나온다면 앞으로 이끌어갈 계획이 편해진다.
좀 과장해서 사천당가와 천마신교가 합병한다고 해도 문제없이 넘어갈 정도다.
“청성파를 설득하면 반은 이룬 셈이군요.”
“청성파를 설득하는 일이야 성사된 거나 마찬가지라네. 실질적인 문제는 아미파와 흑애무천이 될 걸세.”
당만옥 총관은 이미 혈교와 학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대할 것인지 숙지한 모습이다.
순조롭다.
‘허전해…….’
하지만 그런 희망적인 흐름에도 불구하고 뭔가 비어 있는 느낌이다.
있어야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뭐,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었냐?]비로소 내 안의 허전함을 채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동경으로 내 얼굴을 확인한 건 아니지만, 방금 내가 지은 웃음은 분명 사천당가 사람들이 나를 볼 때와 비슷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