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85
284화 장삼풍 사부의 무도(武道)(2)
“무당파 명광이 소천룡 연청운에게 가르침을 청하오.”
당당하게 스스로를 밝힌 무당파 제자 명광이 포권을 쥐며 예를 표했다.
이어 눈을 번뜩이며 몸을 앞으로 쑤욱 뻗었다.
“합!”
쾅!
진각.
권사가 발경을 구사하기 위해 힘을 끌어내는 수법이다.
발구름을 통해 터져 나오는 힘을 상체로 끌어올려 순간적으로 폭발시켜 위력을 높이는 것이다.
상, 하체의 힘을 일순간에 집중시킬 수 있기에 위력적인 한 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쯧!”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잘못된 선택이다.
힘의 흐름에 각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무당파의 유(柔)는 물과 같다.
물처럼 흘러야 한다.
진각은 그 흐름에 격랑을 만들어낸다.
순간적으로 위력은 높일 수 있지만, 흐름이 끊어지게 된다.
태극권에도 진각이 필요한 순간은 분명 존재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이 명광이란 무당파 제자는 힘으로 날 밀어내려는 것 같다.
확실하게 격차를 보이고자 한다면 유효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뻔히 보이는 수에 나는 몸을 뒤로 물리며 손끝을 갈고리처럼 세웠다.
탁!
뻗어오는 힘을 흘려내고 손목을 낚아챈다.
“흐읍!”
그러자 거기에서 더욱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명광이다.
허리를 비틀고, 어깨를 욱여넣으며 손을 더욱 뻗는다.
허리를 비트는 만큼 상체가 회전하기에 그 회전력이 자연스럽게 팔에 실린다.
온몸을 비트는 힘이 팔에 실리니 금방이라도 손목을 낚아챈 내 손을 떨쳐내려는 것처럼 힘이 요동친다.
나쁘진 않다.
나선으로 뻗어나가는 회전력, 전사를 이용한 수법이다.
손목을 낚아챈 내 손에 반발하는 힘이 가득 차오른다.
펄떡이며 날뛰는 물고기를 쥔 듯하다.
이대로 쭈욱 뻗어나간다면 내 옆구리를 후려치는 장법으로 연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손을 완전히 뿌리쳤다면.
더 큰 문제는 공세를 위한 무리수로 균형이 무너졌다는 점이다.
덕분에 나는 굳이 힘으로 누르려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저 힘의 흐름에 편승하면 통제를 유지한 채 흘려버릴 수 있다.
가볍게 명광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웃!”
몸을 비틀며 과하게 밀어붙였는데, 거기서 한 번 더 잡아당기니 균형이 무너진다.
균형이 무너지니 뻗는 손의 위치가 정상일 리 없다.
명광이 뻗은 일장은 내 옆구리가 아닌 허공을 쳤다.
명광은 내 수세를 뚫지 못했다.
그렇게 빈틈이 커진 사이 나는 발을 앞으로 내밀며 명광의 발목을 걸었다.
그리고 잡아당긴 힘에 딸려온 머리로 상체를 내미니 어깨가 명광의 턱을 쳤다.
퍽!
“억!”
다리가 걸린 채 턱을 가격당한 명광은 완전히 균형이 무너진 채 볼품없이 바닥을 굴렀다.
“호오?”
“대단히 자연스럽군.”
“과연…….”
방금 이어진 공방을 눈여겨본 무당파 제자들이 탄성을 흘렸다.
방금 이 공방의 교환은 미리 합을 짜고 움직이는 약속 대련처럼 보였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나와 명광이 서로 합을 맞췄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감탄하는 것이었다.
나는 쓰러진 명광을 오연한 모습으로 굽어보며 물었다.
“아시겠습니까?”
“발이 꼬여 넘어졌을 뿐이오!”
별것 아니라는 듯 벌떡 일어선 명광이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다시 갑니다!”
“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기수식을 취했다.
얼마든지 와도 좋다는 듯 허허로웠으나 방금 당한 것이 있어서인지 명광은 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빈틈을 엿보는 명광의 눈에 혼란이 느껴졌다.
어딜 봐도 허점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산책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긴장감 없이 힘을 풀고 있으니 어딜 공격해도 될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허점이되 허점이 아니다.
모든 움직임이 유기적으로 맞물리기에 이 허점들은 내가 움직이는 순간 사라진다.
타악!
“합!”
결국, 버티지 못한 명광이 강하게 치고 들어오며 일장을 뻗었다.
장법의 궤도가 머리를 노리는 것이 턱을 맞은 걸 되갚으려는 것 같다.
생각보다 근성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퍽!
“컥?!”
도리어 공격을 하던 명광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내 장법이 명광의 턱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후발선제(後發先制).
선공을 가한 것은 명광인데 내 후공이 먼저 닿았다.
“이, 이게 대체…….”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지 명광은 혼란스러워했다.
무당파 무공의 무리는 단순하지 않다.
공격이 능사가 아니다.
상대가 들어오면 물러나고, 물러나면 들어간다.
공수가 태극의 형상처럼 한 몸처럼 뒤섞여 맞물린다.
그 맞물림 속에서 무당파 무공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이다.
태극은 음과 양이 빈틈없이 맞물려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다.
이것이 없으면 무당파의 무공이 아니다.
힘자랑은 무당파 무공이 추구할 덕목이 아니다.
후발선제를 잊은 무공은 무당파 무공이 될 수 없다.
가장 먼저 고쳐야 할 점이다.
“후우……!!”
명광은 성난 황소처럼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아직 멀었다.
고쳐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이래서는 백번을 반복해도 깨닫지 못할 거다.
“요는 공격과 방어를 따로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무당파 무공의 흐름 속에 갇히는 순간, 수세는 그 자체로 공세가 된다.
“과정을 만들면 결과는 알아서 따라옵니다. 엉뚱한 것에 집착하지 마세요.”
누군가는 공격이 곧 최선의 방어라고 한다.
무당파는 반대다.
방어가 곧 공격이며, 수세를 갖추는 것 자체가 공격이 된다.
공방일체(攻防一體).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해내는 것이 무당파 무공의 진짜 요체라 할 수 있다.
무당파 제자들은 내가 펼친 태극권이 지극히 수비적이라고 했지만, 공방일체를 이룬 장삼풍 사부의 무공은 달리 본다면 공격만을 펼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힘으로 꺾는 게 아닙니다. 담으세요.”
“담으라…… 담으라…….”
“애초에 무당파 무공의 진의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당파 무공을 십분 활용하지 못하는 겁니다.”
무당파 본산제자에게는 잔인한 평가다.
무당파 제자이면서도 무당파 무공을 모른다는 낙제 선고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한층 더 붉어진 명광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그런 명광에게 나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무당파 무공의 본질은 나보다 강한 힘을 이기는 무공입니다. 나보다 강한 상대에게 힘자랑을 하는 것처럼 멍청한 짓은 없어요. 스스로의 기량을 뽐내기보단, 상대의 기량을 먼저 읽어내세요.”
몸과 머리에 장삼풍 사부의 가르침을 다그치듯 박아 넣었다.
명광은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의 호흡은 더 이상 거칠지 않았다.
내 말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인 모습이다.
이 정도라면 일일이 가르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방법이라면 이미 그 몸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명광은 무당파 제자다.
당연히 무당파 무공을 익혔다.
직접 때려눕히며 방법을 몸에 새겨주었다.
“다시… 갑니다.”
조금 전에 했던 말이다.
하지만 담겨 있는 느낌이 다르다.
명광은 진중하면서도 신중하게 다가왔다.
다가오는 속도만큼이나 느리게 뻗어오는 손목이 내 손목과 마주쳤다.
팟!
은은하게 밀고 들어오는 힘이 내 손목을 누른다.
힘을 기울이지만 폭급하지 않다.
파팟!
들어오는 힘을 물러서며 받는다.
이걸 다시 돌려놓으면 힘의 중심이 옮겨진다.
타탓! 파팟!
이에 대응하여 명광의 손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들어오면 물러나고, 물러나면 들어간다.
힘을 주고받으며 균형을 이룬다.
존재하는 것은 힘의 흐름뿐.
주고받을 때마다 힘의 무게가 커져간다.
‘여기에서!’
충분하다 느낀 순간 나는 힘의 흐름을 밀어붙였다.
투웅!!
얼핏 보면 슬쩍 미는 것처럼 보인다.
허나 주고받던 공방의 흐름을 통해 쌓인 힘이 담긴 한 수는 명광의 몸을 밀어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헙!?”
허공으로 붕 뜬 명광이 저만치 날아갔다.
사람 머리 높이만큼 떠오른 명광은 족히 스무 걸음가량 날아간 뒤에야 착지할 수 있었다.
동그랗게 눈을 뜬 명광을 향해 가볍게 웃어 보였다.
“이게 무당파 무공의 기본입니다.”
이제야 무당파 무공에 입문한 것이다.
그리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명광은 이내 흐트러진 복식을 가지런히 한 뒤, 정중하게 두 손을 모아 포권을 쥐며 허리를 숙였다.
“잘 배웠습니다.”
예를 갖추는 명광을 향해 나 역시 포권을 쥐며 예를 갖췄다.
그리고 슬쩍 무당파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살폈다.
젊은 무당파 제자들은 크게 놀라며 저마다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중년쯤 된 무당파 제자들의 경우는 딱히 자극을 받은 모습이 아니다.
“더 보여줄 것이 있는가?”
그런 이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보아하니 명광처럼 기본을 갖추지 못한 인물은 아니다.
‘그래, 여기까진 입문이었지.’
무당파 무공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젊은 제자들과 달리 수련의 깊이가 있는 이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명광을 상대해 준 것이 진정한 무당파 무공을 키워내기 위한 싹을 틔운 것이라면, 이제부터는 제대로 무당파 무공을 손봐줘야 할 사람이 나서는 것이다.
지금부터가 진짜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습게 보여선 안 된다.
가르치는 자가 얕잡아 보인다면 어떤 가르침이 되건 신뢰가 떨어진다.
“검을 쓰십니까?”
“맨손보다는 검이 더 익숙하긴 하네.”
“그럼 지금부터는 검으로 할까요?”
“음?”
내 말에 중년의 무당파 제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림에서 소천룡은 권사(拳士)로서 명성을 떨쳤기 때문이다.
“검을 쓸 줄 아는가?”
“배웠습니다.”
제대로 배운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누가 검을 빌려주시겠습니까?”
내 말에 곰곰이 조금 전의 비무를 복기하던 명광이 손을 들었다.
“저! 여기! 제 검을 쓰시죠!”
명광이 허리춤에서 검집을 풀며 다급히 다가왔다.
하지만 내가 필요했던 것은 허락뿐이다.
“잘 쓰겠습니다.”
채앵!
명광의 손에 들린 검집에서 검이 홀로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허엇!?”
눈을 부릅뜬 명광의 앞에서 검이 춤을 추듯 허공을 노닐다 내 손에 내려앉는다.
이번에 놀란 것은 젊은 무당파 제자들뿐만이 아니었다.
연무장에 자리한 모든 무당파 제자들이 경악을 한 채 내 손에 들린 송문고검에 집중했다.
“……허공섭물?”
누군가 내가 보인 수법을 보며 그리 중얼거렸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는 희망사항이 가득한 어투다.
“아닐세.”
하지만 그를 부정하는 말이 곧장 뒤따랐다.
“허공섭물은 그저 내공으로 물건을 끌어오는 수법일세. 단순히 끌어올 뿐이기에 직선으로밖에 움직이지 못하지. 저런 궤적을 그리는 건 불가능하네.”
경악으로 가득한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허공섭물이 아니라 확신하는 말에 동의하며 그 가능성을 지웠다.
그럼 남는 것은 하나뿐이다.
“이기어검…….”
목소리를 들어보면 당장이라도 스스로의 뺨을 꼬집어볼 것 같다.
단상 위에 올라있는 중년의 무당파 제자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 밑밥은 충분히 깔았고.’
나는 손에 든 송문고검을 앞으로 세웠다.
“시작해 볼까요?”
단상에 오른 중년 무당파 제자의 표정이 조금 전 진지하게 가르침을 받던 명광과 닮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