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13
312화 이게 소림이다(2)
자연스럽게 나와 신승 어르신은 도연과 그를 따르는 무리에게 포위당했다.
‘쯧! 시기가 적절하긴 하네…….’
저 다혈질이 여기까지 생각하고 일을 저지른 것 같진 않다.
그저 본능적으로 일을 저지른 것이 맞을 거다.
하지만 순순히 당해 줄 생각은 없다.
‘이놈들의 목표는 방장.’
방장만 죽이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해볼 수 있으리라 믿는 것 같다.
제정신이 아니다.
벼랑 끝에 몰려 있는 긴박함이 느껴졌다.
그만큼 저들도 궁지에 몰려 있다는 의미겠지만, 이쪽도 상황이 안 좋기는 매한가지다.
결정적으로 수적 열세가 컸다.
단순히 적을 척살하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누군가를 지키며 싸우는 것은 난이도에서 차이가 크다.
“십팔나한진을 펼쳐라!”
그것도 무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진법에 맞선 상황에서라면 말이다.
우리를 포위하고 있던 도연을 따르는 일당들이 손에 들고 있던 기다란 장봉을 일제히 휘둘렀다.
그물처럼 촘촘히 짜인 장봉이 일제히 머리 위로 벼락처럼 떨어졌다.
터터텅! 터텅! 퍼억!
집채만 한 바위도 산산조각으로 박살 낼 힘을 담은 장봉이 일거에 떨어져 내리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올 것은 욕밖에 없었다.
이 작자들은 십팔나한진이라면서 왜 서른 명이 봉을 휘두르고 지랄인 것일까!
가뜩이나 두 손이 봉쇄되어 있는 내 입장에서는 더 끔찍했다.
“크읏!”
“흐읍!”
그나마 신승 어르신과 사대금강이 내 옆을 지키며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장봉을 막아냈지만, 문제는 다음이었다.
“타打! 척擲!”
포위당한 상태에서 머리 위로 봉을 내리치면 그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손을 위로 올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 아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고스란히 노출된다.
반절 가량은 신승 어르신과 사대금강의 손을 봉쇄한 사이, 어깨 아래를 노리고 후려치는 장봉이 벌떼 우는 소리를 내며 쇄도해왔다.
부우우우우웅!!
옆구리와 허리, 무릎은 물론 발등까지 노리는 공격이 날아들었다.
천자산에서 본 나한진과는 확연하게 다른 느낌이다.
천자산에서 본 나한진이 격체 전력을 이용한 내공의 흐름을 이어 위력을 높이는 것이라면, 지금 눈앞의 나한진은 형의 흐름을 유기적으로 이었다.
텅! 퍼펑! 퍼억! 퍽!
“크윽!”
“욱!”
‘찌르기 누구야, 썅!’
공격이 휘두르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중에는 찌르기를 해온 놈도 있었다.
횡으로 휘두르는 공격은 방패처럼 막아선 신승 어르신과 사대금강이 몸으로 받아냈지만, 그 틈새를 찌르기가 갈랐다.
명확하게 나를, 정확히는 방장을 노린 공격이다.
퍼펑! 퍽!
두 손을 쓸 수 없었기에 발을 들어 정강이와 허벅지로 공격을 받아냈다.
“큿!”
얼음으로 만들어진 망치에 얻어맞는 느낌이다.
뼛속 깊이 충격이 스며드는데, 생살을 발라내 드러난 뼈에 얼음물을 들이붓는 것 같다.
연금강을 펼쳐 몸을 보호했음에도 그 정도다.
하나하나가 고수의 진력이 담긴 공격인 만큼 몸이 무쇠라도 멀쩡히 받아내기 어렵다.
하지만 그나마 나는 나았다.
그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낸 사대금강은 내공으로 몸을 보호했음에도 이미 피투성이가 되었다.
“도연! 싸움을 멈춰라!!”
사대금강의 한 사람이 도연에게 소리쳤다.
“방장을 구하기 위함이다! 광목천, 자네야말로 나를 따르시게!”
“지금 방장을 죽이려 드는 쪽은 너희다!”
하지만 도연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반복할 뿐이다.
이대로는 두들겨 맞다가 끝날 판이다.
“진을 깨겠다.”
같은 생각인지 신승 어르신이 앞으로 나서셨다.
콰아아아아아!!
순간 신승 어르신의 힘이 폭발적으로 뻗었다.
사방을 향해 신승 어르신의 아홉 신형이 덮쳐오는 장봉들을 모조리 후려갈기며 진법에 틈을 만들어냈다.
“연대구품?!”
누군가 놀라며 신승 어르신이 펼친 무공을 외쳤지만, 나는 저게 끝이 아님을 안다.
그리고 역시나 신승 어르신의 몸에서 황금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팔비신!
신승 어르신의 의념이 현세에 구현된 무극의 형태.
금색의 서광이 여덟 개의 팔로 변하며 갈라진 진법의 틈새로 쇄도했다.
파가각!
“커헉!”
부러진 장봉과 사람의 피와 살이 나부낀다.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찢어버리며 신승 어르신이 돌격하신다.
막는 것이 있으면 박살 내는 소림의 무(武) 그 자체를 보여주신다.
그렇게 만들어진 틈새로 나 역시 몸을 던졌다.
‘빡세지만…….’
본래 진기도인은 완벽하게 안정된 상태에서 시도하는 수법이다.
사실 나 역시도 상화까지 동원해 감각을 끌어올렸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난해한 무공을 펼쳤다간 자칫 기혈이 꼬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냥 가면 섭하지?’
당한 게 있는데 그냥 갈 수야 있나.
나는 세밀하게 내력의 일부를 뻗어냈다.
상화의 도움을 받지 않은, 내 의지로 움직이는 이기어검이다.
목표는 부러져 허공에 나부끼는 장봉 조각.
내 의념이 닿는 순간 힘없이 날아가던 부러진 봉에 새로운 방향성이 만들어졌다.
“죽어어어엇!”
그리고 마침 딱 좋게 나를 노리고 달려드는 혜인이 눈에 들어왔다.
허공에서 갑자기 방향을 바꾸며 날아든 부러진 장봉 조각이 혜인의 목 측면 경동맥에 박혔다.
퍼걱!
“커……!”
자신만만하게 방어를 도외시하고 달려들던 혜인은 그대로 바닥에 꼬꾸라져 작살 맞은 물고기마냥 펄떡거리며 두 손을 휘휘 젓다가 그대로 몸이 축 늘어졌다.
“이기어검?!”
“진기도인 중이라더니!!”
진기도인을 하는 중에 경공을 펼치며 움직이는 것도 기사라 불릴 일인데, 이기어검까지 펼쳐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경악하는 자들의 외침이 줄을 이었다.
“막아!”
이대로라면 내가 완전히 포위를 뚫고 나갈 상황임을 알아본 도연이 소리를 질렀다.
측면이 뚫리며 나한진의 형태가 무너지는 순간 도연을 비롯한 학의 주구들도 필사적으로 몸을 던졌다.
아귀도(餓鬼道)의 굶주린 아귀들마냥 끈덕지게 달려드는 그들에게선 생사를 도외시한 집념이 가득했다.
신승 어르신이 철벽처럼 가로막고, 사대금강이 필사적으로 저지했지만, 사방에서 파도처럼 밀려드는 자들을 모두 막아내지는 못했다.
“도연! 더 이상 죄를 짓지 마라!”
“이제 와서 무슨 개소리냐!!”
후덕함으로 이름 높던 도연의 얼굴엔 더 이상 웃음이 보이지 않았다.
누구보다 아귀(餓鬼) 같고, 누구보다 야차(夜叉) 같은 모습으로 몸을 던졌다.
퍼걱! 우드득!
“크아아악!”
신승 어르신의 팔비신.
극락정토를 수호한다는 금강나한의 팔을 빌려온 듯한 금색의 일격에 어깨가 완전히 뭉개졌음에도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는 거리에서 도연은 한 번 더 박차 오르며 아직 남아있는 팔을 뻗었다.
우습게도 그가 펼치는 무공은 금강대력장이다.
문제는 그 금강대력장이 분명 정수를 담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썅!’
어설프게 발로 차 냈다간 된통 당할 것 같다.
소림방장에게 진기도인 중이기에 내력을 자유롭게 움직이기도 어려워 힘을 집중할 수도 없었고, 양손도 자유롭지 못해 흘려내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냥 포기해?’
갈등이 일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도연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차라리 방장을 포기하더라도 도연을 죽이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지만 그 생각은 빠르게 접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방장이 죽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차후 분명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명분(名分)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각오를 굳히고 두 손을 힘껏 움직였다.
빠각!
파고들던 도연이 처맞으며 피를 토했다.
“허……!”
턱을 가격당한 도연이 달려들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튕겨 나갔다.
도연의 얼굴에는 당혹감보다는 어이가 없다는 감정이 더 강했다.
그럴 만도 했다.
도연의 턱을 후려친 것은 방장의 머리통이었으니까.
방장에게 진기도인 중이라 두 손을 쓸 수 없으니 두 손이 묶여있는 방장의 머리통으로 도연을 후려갈겼다.
이것도 인과응보다.
자기 계획을 위해 이용한 방장으로 한방 갈겨준 것이니 적절한 대처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금강불괴 소림의 방장답게 몸뚱이 하나는 튼튼해서인지 생채기 하나 안 났다.
그런 거다!
[내가 지금 뭘 본 거냐?] [허허……,]“아니, 그…….”
“어…… 으음…….”
아쉽게도 내 편의적인 해석에 동조해주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나와 방장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던 사대금강은 물론 신성 어르신까지 입을 뻐끔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어쩌라고요. 난 무죄라고요!’
물론 위험할 방법일 수 있었기에 땅의 신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방장의 몸을 보호하는 데 쓰기도 했다.
“아니, 힘껏 후려갈기긴 했지만, 생각보다는 멀쩡…….”
“크륵!”
“…아닌가? 어! 어엇!”
갑자기 소림 방장의 입에서 피거품 끓는 소리가 들렸다.
충격 때문에 기혈이 잠깐 흔들린 여파인 것 같다.
“안 죽었어요! 목숨엔 지장 없다고요!”
진기도인 중이기에 방장의 신체 내부를 선명하게 살필 수 있었다.
잠깐 기혈이 흔들려 각혈을 하긴 했지만, 목숨이 위태롭진 않다.
땅의 신력은 그렇게 가벼운 힘이 아니다.
“어서 탕약고로 가시죠. 한시가 급합니다!”
“……그렇겠지.”
어째 돌아오는 대답이 떨떠름하다고 느낀다면 착각일까?
신승 어르신이 애써 시선을 피하며 쓰러져 있는 도연을 노려보았다.
“남길 말은?”
턱을 제대로 맞은 탓인지 몸을 추스르지 못하는 도연이 이를 갈았다.
“미친놈들…….”
“좋은 대답이다.”
퍼걱!
도연의 머리통이 박살 났다.
퍼걱! 퍽! 푸억!
더 이상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게 된 다른 자들도 모조리 머리가 박살 났다.
***
탕약고로 달리면서 신승 어르신이 물었다.
“날 그렇게 치워버리고 싶었던 게냐?”
보아하니 탕약고에 가서도 방장이 목숨을 잃는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한 선언 때문인 것 같다.
어째 농담으로 하신 말이 아닌 것 같다.
뭔가 억울했다.
***
탕약고에 도달한 나는 편작 선생의 조언대로 해약을 만들어 방장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내상이 컸기에 한동안 몸을 정양해야 했고, 다시 무인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그래도 목숨은 구했다.
다만, 주변에서 미묘한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사실이야?”
“뭐가?”
“네가 방장님 머리통으로 도연 뚝배기를 깨버렸다던데?”
범각이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들어보니 뭔가 심각하게 각색된(?) 소문이 소림에 퍼지고 있는 모양이다.
“대가리를 깨버린 건 신승 어르신이고, 나는 그냥 턱주가리만 날렸을 뿐이거든?”
“아아, 그렇구나아아. 턱주가리만 날렸구나아아아.”
어째 비꼬는 것 같다.
근데, 이게 비꼴거리가 되나?
“소림 규율에 방장 머리통으로 변절자 턱주가리를 날리면 안 된다고 되어 있냐?”
“어어…… 아마… 없겠지?”
없다고 하니 다행이다.
명예 제자인 내게 소림 규율이 먹히지도 않겠지만.
그리고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와서 긁어대는 이놈이 괘씸했다.
“다음에 급할 땐 니 머리통도 좀 써먹어 보자.”
“어우, 철두공이라도 익혀놔야 하나…….”
당황한 범각이 맨들거리는 머리를 쓱쓱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범각을 격침시킨 나는 서쪽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걱정되네. 소림이 이 정도였다면…….”
마음이 걸리는 두 곳.
공동파와 화산파.
그곳을 지원해 달라고 부탁했던 백무호와 장소월 소저 등의 상황이 어떨지 걱정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 바람을 타고 소문이 귀에 닿아왔다.
북쪽에서 일어난 변란으로 모용세가가 멸문했다는 소문이었다.
그리고 종남파가 화산파를 공격했다는 소문이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