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70
369화 어색하네?
위태로움은 다급함을 부르고, 다급한 자의 행동은 가벼워지기 마련이다.
위압감이 사라진다는 소리다.
무너지는 검림산에서 도망치는 흑살대 살수들이 그러했다.
지진을 만난 쥐떼와 같다. 당장 이곳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본능만이 남아있었다.
하긴, 누가 이런 짓을 사람이 했다고 생각하겠는가.
사람이 지축을 뒤흔들고, 검림산을 붕괴시켰다고?
나라도 안 믿는다.
차라리 운석이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뜬금없는 자연재해가 설득력이 있을 정도다.
자연재해 취급을 받을 정도라니, 나도 많이 컸다.
스스로의 성취에 뿌듯해하면서도 손에는 살의를 담는다.
살려둬서 좋을 것이 없는 작자들이니만큼 확실하게 쓸어버릴 생각이다.
어설프게 도주했다가 다른 쪽으로 흡수되거나, 경력을 살려 다른 살문을 차려버리면 귀찮아진다.
악충(惡蟲)이 모여 있는 자리를 건드려 흩어지게 해놓고 사방팔방에 알을 까 개체수를 늘리는 것만은 사양하고 싶다.
그러니 모.두.죽.인.다.
그렇게 의지가 움직이자.
퍼억!
흑살대 살수 하나를 훑고 지나갔다.
복잡한 움직임이 필요하진 않았다.
그저 스쳐 지나가며 머리를 박살 내면 그만이다.
사자가 눈먼 토끼를 덮치는 것보다 간단했다.
안개와 흙먼지, 부서지고 비산하는 돌덩이와 돌조각들에 의해 시각은 물론 청각과 감각까지도 차단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주변 모든 것을 선명하게 파악하고 있다.
주변에는 도망치느라 바쁜 무방비한 것들이 즐비했다.
퍼억! 퍼걱! 푸악!
그저 다가가 한방씩 후려갈기는 것으로 충분했다.
‘언제쯤 눈치채려나?’
손을 섞기는커녕 목소리를 내기도 전에 머리를 박살 내고 있어, 누구도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그 정도로 주변의 흙먼지는 지독했다.
머리를 박살 내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지만, 그 소리조차 주변에는 흔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흑살대가 외부의 적들을 상대하는 전투의 흐름을 내가 쥔 상황이다.
아니, 저들은 적이 난입했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으니 더 안 좋다고 해야 할 것이다.
퍼걱! 퍼억! 퍽! 푸악!
흑살대 살수들의 머리가 연이어 박살 났다.
살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모조리 죽일 생각이라 이 상황 자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긴 하지만, 뭔가 찜찜하달까.
투투툭! 툭! 퍼억!
움직이는 도중 몸을 향해 날아드는 돌조각을 쳐내고, 범위에 들어선 살수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그렇게 내 손에 죽은 흑살대 살수의 숫자가 자릿수의 단위를 바꿀 즘.
“적이다!”
누군가 내 존재를 알아차리고 소리쳤다.
주변에 만연한 소음에 파묻히다시피 했지만, 그 의지가 담긴 말은 확실하게 퍼져나갔다.
생각보다 빠르다.
좀 더 주변이 잠잠해진 다음에야 눈치챌 것이라 생각했는데, 살수라서 그런지 오감이 예민하다.
“적이라니…….”
“운석이 떨어진 거 아냐?”
“지진 아니었어?”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흑살대 살수는 얼마 없었다.
검림산은 천혜의 요새나 다름없는 곳이고, 그곳에는 살행에 능한 일천의 살수가 있었다.
이곳을 습격하는 정신 나간 놈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빠각! 퍼걱!
“병신들아! 소리를 잘 들어봐! 돌 박살 나는 소리가……!”
빠각!
더 이상 존재를 감출 생각이 없었기에 즉각 손을 써서 머리를 박살 냈다.
“누군가 있어!”
“적이다!”
허둥지둥 도주하던 흑살대 살수들이 순식간에 전투태세로 돌입했다.
무작정 달리던 발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워 주변의 정보를 확보했다.
시각이 차단된 상황에서 외부의 공격에 대응하는 자세로는 훌륭하다.
다만 살수들과 나 사이의 격차는 크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간격이 있다.
설령 정면에서 맞상대를 하는 상황일지라도 내 한 수를 받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나를 상대로 발을 멈춘다?
자충수(自充手)다.
나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태연하게 움직였다.
적들을 향해 다가가 주먹에 힘을 싣는다.
명궁은 활을 쏜 순간 표적에 맞을지 아닐지를 직감한다고 했다.
지금 내 모든 움직임이 그와 같았다.
빠각!
내 공격에 대비해 경계하던 흑살대 살수가 머리를 잃고 허물어졌다.
이래도 되는가 싶을 만큼 쉬웠다.
[약한 것들 괴롭히니까 좋냐?]장삼풍 사부가 괜한 소리를 하실 정도였다.
‘제가 언제 좋아했다고 그러십니까!’
다만, 내 의도와는 달랐기에 나도 모르게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네가 얻은 힘이 어떤 것인지 기초적인 부분을 점검한 것은 잘했구나.]이게 맞다.
사실 지금까지 흑살대 살수들을 제거하며 시험해본 부분이기도 했다.
이치로 움직인다.
세상을 쥐고 흔든다는 것은 그 세상의 흐름에도 관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내 의지가 세상에 관여할 수 있다는 건, 내 행동이 낳는 결과 또한 강제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과거 사부님들은 무술(武術)과 무도(武道)의 차이에 대해 설명해주신 바가 있다.
무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만드는’ 것이라면, 무도는 그렇게 되도록 ‘이루는’ 것이라 정의하셨다.
적을 맞히기 위해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맞힐 공격을 내지르는 것이다.
앞만 보고 움직이는 자는 결코 위에서 내려다보는 자의 시야를 알 수 없다.
이에 저항하려면 최소 무극의 영역에 발을 들여야 한다.
무극은 자신의 의지를 세상에 관철시키는 힘이다.
상대의 머리를 깨부수겠다는 내 의지가 세상에 심어졌을 때, 상대가 이를 피하고자 한다면 내 의지에 저항할 자신의 의지를 세상에 관철시켜야 한다.
무극의 영역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기어검 같은 수법은 무극의 영역에서 볼 때 기초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이게 무극의 힘을 다루는 제대로 된 방법이다.
그걸 처음으로 보여준 것이 입천신마존이었지만, 지금 내가 다루는 영역은 그보다 더 수준이 높아졌다.
그러니 일개 살수가 대항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으으… 으아아아아!”
“어디야! 어디냐고!!”
상황이 이쯤 되자 흑살대 살수들도 압박감을 견뎌내지 못했다.
눈이 돌아버린 자들이 속출했다.
당연하다.
안개와 뒤섞인 농도 높은 흙먼지에 시각이 차단되고, 지금도 흔들리는 진동은 미세한 감각을 방해하고, 부서지고 비산하는 돌덩이들과 오작동하는 기관들은 청각을 방해한다.
주변에 동료가 있지만, 고립되어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머리를 박살 내고 있다.
몇 날 며칠을 한자리에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극한의 훈련을 받은 살수들이라지만 이건 이야기가 다르다.
원래 사람이 느끼는 가장 원초적인 공포는 미지(未知)에 의한 공포다.
지금 흑살대 살수들은 이미 온몸에 수백의 칼이 닿아있다고 느낄 것이다.
거기에 속수무책으로 살해당할 것이라는 무력감이 얹혀 있다.
“내가 흙먼지를 흩어보겠다!”
누군가 검을 들어 검풍을 뿌렸다.
좋은 시도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퍼걱!
흙먼지를 휘저어놓기는 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기운의 방사로 이 농도 높은 흙먼지를 없애려면 훨씬 더 큰 힘이 필요했다.
그만한 힘도 없을뿐더러, 설령 그런 힘을 방출했다간 흙먼지가 사라지기도 전에 동료들의 목이 날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 짧은 순간에 검풍을 일으킨 자의 머리를 내가 박살 냈다는 것이다.
“X발!”
결국, 참지 못한 놈이 나왔다.
“죽어, 개자식아!!”
파라라라락!
살수답게 암기에 능한지 손목에 감겨있는 은사(銀絲)를 풀어 날카로운 공격을 사방으로 뿌렸다.
내력이 실려 있는 은사는 사람 하나쯤은 간단히 찢어발길 예리함을 품고 있다.
주변 어딘가에 내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펼친 광범위한 공격이다.
문제는 그 공격이 날 맞히기엔 너무나 조잡하다는 점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다.
“악!”
“조심해!”
“어떤 새끼야!!”
그 공격에 노출된 흑살대 살수들은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
언제 어떤 공격이 있을지 몰라 초긴장 상태에 있었기에 상당수는 사방을 휘저은 은사의 예리함을 피해냈지만, 모두가 운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나와! 나오라고!!”
제 손으로 동료를 죽인 걸 깨달은 흑살대 살수는 제 실수를 덮기 위해 마구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끓어오르는 감정이 그를 집어삼켰다.
“죽여버리겠어!”
동료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는 죄의식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려는 편향된 생각.
거기에 목소리를 높이며 날뛴 만큼 표적이 되었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공포.
그 모든 것이 그를 매몰시켰다.
무너져버린 이성이 정상적인 사고를 질식시켰다.
남은 것은 원초적인 몸부림뿐.
“하하하하하! 다 죽어라!!”
그대로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거리낌 없이 손을 쓰기 시작하자 사방으로 살기로 가득한 은사가 퍼져나갔다.
“다 죽여버리면, 그 새끼도 죽겠지!!”
“그만해, 미친놈아!”
“날 막아? 그래, 너구나! 거기 있었구나!”
그렇게 제 동료를 살해한 미친놈이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처럼 날뛰었다.
강한 감정은 타인에게도 전염된다.
지금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라면 더욱 쉽게 옮겨붙는다.
사람 죽이는 일에 능숙한 놈들이 미쳐 날뛰니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X발, 다 죽여!!”
“다 죽이면 되는 거야!!”
자기들끼리 죽이고 죽는 대혈겁이 일어났다.
무지성으로 사방을 공격하다 누군가를 벤 느낌이 들면 좋아하고, 그렇게 좋아라 하다가 누군가에게 베여 쓰러졌다.
물론 멍청한 놈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진정해!”
“정신 차리라고!”
진정시키려는 놈이 있었고.
“나는 흑살 백구십사호다! 자기 소속을 밝혀!”
자신의 신분과 위치를 드러내며 혼란을 잠재우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건 나름 괜찮은 대응이었지만,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이 가짜! 드디어 정체를 드러냈구나! 내가 흑살 백구십사호다!”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흉내 내며 외쳤다.
평상시라면 쉽게 알아차렸겠지만, 굉음이 울려 퍼지는 중이라 그 차이를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하물며 대다수가 광기에 물들어있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불붙은 광기에 다시 한번 기름을 부었다.
“우리 중에 섞여 있어! 숨어들어 있다고! 목소리를 믿지 마!”
[마귀냐?]내가 생각해도 이건 좀 악랄했다.
하지만 괜한 심술이 아니다.
자칫 정신줄 잡고 뿔뿔이 흩어져 도주하면 귀찮아진다.
실제로 흔들리는 정신줄을 단단히 움켜쥔 놈들은 슬그머니 기척을 죽이며 몸을 빼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빠각!
그렇기에 이렇게 기척을 죽이고 도망칠 길을 찾는 놈들을 우선적으로 잡아 죽이고 있다.
싸움은 붙이고, 도망치려는 놈들은 죽이고.
그렇게 혼란을 부추기자 어느덧 난장판이 점차 잦아들었다.
그런 가운데!
화아아아악!
강한 기운이 태풍처럼 일어나 몰아쳤다.
단순히 휘젓는 것에서 그치는 부채질이 아니다.
흙먼지를 광범위하게 밀어내는 압력이 주변을 쓸어버리자 갑갑하던 시야가 열렸다.
그러자 살풍경한 광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수북한 눈처럼 푹푹 들어가는 흙먼지가 가득 쌓였고, 그 흙먼지 사이사이에는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피와 먼지를 뒤집어쓴 생존자들은 사람인지 토인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탁한 눈으로 참상을 바라보던 그들이 내게로 시선을 모았다.
눈에 띄긴 했을 것이다.
나만 유독 거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금 아혈을 점한 채 목을 움켜쥐고 있는 살수까지 들고 있는 터라.
쏟아지는 시선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렇다고 기왕 잡은 목을 놓아줄 수도 없고.
“이것 참…….”
우득!
“어색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