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71
370화 시험 그리고 체감
연청운이 검림삼으로 몸을 날리자, 백설아 역시 곧바로 뒤따라 내려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연청운의 몸에서 급격하게 불어나는 힘을 느끼곤 생각을 접었다.
저 힘에 휘말렸다간 다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
현재 백설아의 힘이라면 크게 다칠 일은 없겠지만, 자칫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여긴 것이다.
해서 청조의 등에 머무른 채 지켜보았다.
예상대로 검림산은 쑥대밭이 되었다.
“와아…….”
백설아가 절로 탄성을 흘렸다.
아래에서 검림산이 차례차례 무너지는 광경도 대단했지만, 위쪽에서 붕괴되는 흐름을 한눈에 담는 것도 장관이었다.
뒤이어 일어난 흙먼지도 대단했다.
마치 거대한 괴물이 몸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다.
그 장엄한 광경 뒤로 학살이 이어졌다.
백설아의 눈으로도 짙은 흙먼지를 꿰뚫어 볼 순 없었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운이가 할 때는 확실하구나.”
상대가 살수라는 것을 모른다면 백에 아흔아홉은 잔인하다거나, 악랄하다는 말이 떠오르겠지만, 이미 콩깍지가 제대로 씌워진 백설아에겐 다르게 보였다.
“멋져.”
삐이이.
이런 순간에도 염장질의 냄새를 풍기는 백설아에게 청조가 한숨을 내쉬었다.
백설아가 청조의 목덜미를 쓰윽 쓰다듬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배시시 웃으며 사근사근 말함에도 청조는 서늘한 한기가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연청운만큼은 아니지만 백설아도 오행신력의 순환을 이뤘다.
천상의 문을 열고 선계로 들어갈 준비를 갖춘 것이다.
서로의 위치에 대해서 파악이 끝난 청조가 경쾌하게 대답했다.
뺘아!
“착하네.”
백설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사근사근했다.
청조의 목덜미를 쓰다듬는 손길 역시 부드러웠다.
하지만 청조는 그 손길이 닿을 때마다 스며드는 한기에 몸을 떨어야 했다.
“앞으로도 잘하자?”
뺘앗!!
청조가 힘차게 대답했다.
지상이었다면 배를 까고 누웠을 태세였다.
그사이 백설아의 시선이 아래에 닿았다.
마침 괴물같이 몸을 부풀리던 흙먼지가 쓸려나가고 있었다.
시야가 트인 곳에는 연청운과 대립하고 있는 흑살대 살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흑살대 일자살수들이다.
“하! 운이에게 이빨을 드러내네. 죽을라고.”
백설아가 가볍게 몸을 띄웠다.
청조의 등을 벗어난 백설아의 몸이 허공을 주유했다.
“너는 여기서 기다리렴.”
“예, 주인마님.”
존중을 담은 태도로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는 이화의 대답에 백설아가 싱긋 웃었다.
허공을 주유하던 백설아의 몸이 지상으로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
나는 움켜쥐고 있던 살수의 목을 분질렀다.
의외인 것은 그런 나를 일자살수들이 그대로 지켜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니 탐색해보겠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주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숨 고르기.
주변에 흩날리던 흙먼지의 양은 적지 않다.
잠깐 사이에 쓰러져있는 사람의 몸을 파묻을 정도다.
얼마나 많은 양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만한 흙먼지를 단번에 밀어낼 정도로 힘을 썼다면 숨을 고르고 내력을 다스릴 여유를 갖는 것이 맞다.
대신 다른 쪽에서 소란이 이어졌다.
“끄아아아아!!”
비명 같은 고함을 내지르는 자.
온몸에 피와 먼지를 뒤집어쓴 자가 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달려오는 그의 뒤로 핏기를 머금은 은사가 하늘거리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제일 처음 미쳐 날뛰었던 그자인 것 같다.
막혀있던 시야가 돌아오면서 흔들리던 정신줄은 잡았지만, 그 빈자리를 들끓는 분노로 채워 넣은 모양이다.
“죽어어어엇!!”
거리를 좁힌 순간 역동적으로 휘두르는 팔의 움직임을 따라 은사가 채찍처럼 날아들었다.
내공을 잔뜩 머금은 은사가 예리하게 번뜩이는 것이, 은사로 나를 휘감기보단 칼처럼 베어 죽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이다.
티링!
그러나 내 손에 닿은 은사는 무력하게 끊어졌다.
칼날처럼 서 있던 은사가 국수가락보다 더 간단하게 잘려 나갔다.
그렇게 상대의 손이 허무하게 허공을 휘젓는 사이.
턱!
열려있는 상대의 빈틈 사이로 다가가 아주 쉽게 목을 잡았다.
“그래, 너는 자격이 있지.”
어쨌거나 덕을 본 것이 있으니 깔끔하게 죽여준다.
우득!
잡고 있는 목에서 생명의 맥이 끊어진다.
축 늘어진 몸은 망가진 인형처럼 움직임이 사라졌다.
방금까지 하늘이라도 죽일 것처럼 날뛰던 자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절기가 파훼 된 채 버러지처럼 죽었다.
남은 흑살대 살수들이 택할 길은 두 가지였다.
감정에 잡아먹혀 눈을 뒤집고 달려들거나.
아니면 공포에 못 이겨 도주하거나.
보통은 덤벼오는 쪽을 더 경계해야겠지만, 나는 도주하려는 놈들을 더 신경 썼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조리 없애버릴 생각이기 때문이다.
‘상화야!’
각성 이후 처음으로 이기어검(?)을 펼쳤다.
조금 전까지 나를 갈라내기 위해 날아들던 은사가 뱀처럼 허공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본래 주인의 손에 들려있던 때와 달리 스스로 묘한 빛을 냈다.
쇠의 신력이 모자랄 때는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했지만, 오행신력을 완성한 지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은사는 오행신력 중 쇠의 신력으로 벼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부가적으로 다른 오행신력까지 가미된 은사는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늘지만, 어떤 보검에도 지지 않는 강도와 예리함이 어렸다.
쉬리리리리리!
살아있는 뱀처럼 허리를 꿈틀거리며 움직인 은사가 도주하는 적들에게로 쏘아졌다.
퍼퍼퍼퍼퍼퍽!
고깃덩어리를 꿰뚫는 꼬챙이처럼 은사가 흑살대 살수들을 꿰어버렸다.
은사에 머리가 꿰뚫린 채 대롱대롱 매달린 시체들은 쓰러지지도 못한 채 축 늘어졌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무기와 암기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사천당가에서 대량의 암기를 일거에 휘둘렀던 적이 있지만, 사실은 다량의 암기를 하나의 흐름으로 휘저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기어검처럼 제각각 움직이는 것은 열 자루가 한계였다.
하지만 지금은 수십에 달하는 무기와 암기들이 제각기 도주하는 자들에게 날아가 꽂혔다.
아직 남아있는 자들이 많아 일거에 쓸어버리지는 못했지만, 흑살대 살수들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콰르르릉!!
그런 가운데 벽력뇌성과 함께 강기가 솟구쳤다.
검은 벼락 형태를 하고 있는 이호의 공격이 뻗어온다.
암형무도(暗形武道)라던가?
다수의 이기어검을 펼치는 중이라 본체인 내 몸뚱이는 무방비라고 판단한 것 같다.
일반적인 이기어검을 상대하는 것이라면 무척 유용할 대처다.
다만 이기어검의 제어를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이호에겐 불행이었다.
코앞까지 날아든 검은 벼락같은 강기를 쳐내는 것은 간단했지만, 달리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기에 그저 멀뚱멀뚱 바라만 보았다.
예상대로라고 생각했는지 이호는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쾅!
먹먹한 굉음과 함께 코앞에서 강한 힘이 터져나갔다.
맨몸으로 강기를 받아낸 나는 흙먼지가 들썩이는 것을 휘저으며 손을 털었다.
흑살대 서열 이 위, 이호가 날린 강기를 직격으로 맞았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되네.”
무극을 통한 의지의 힘을 어떻게,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가!
강기에 직격당할지라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세상에 관철한다면 정말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을까?
결과가 나왔다.
무극을 통한 공격이 아니라면 내게 타격을 줄 방법은 전무하다.
“이러니 내 강환이 통하지 않았던 거네.”
멸천회주가 보인 수법을 따라 해봤는데 생각보다 쓸 만했다.
내가 얼마나 무모한 짓을 했던 것인지 새삼 실감되었다.
당시 멸천회주의 눈에는 내가 얼마나 가소롭게 보였을까.
그놈이 날 죽이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될 지경이다.
사실, 지금도 멸천회주에게 필승을 자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그자와 상대할 자격을 갖춘 것에 불과하다.
“……마, 말도 안 돼.”
반면 내게 공격을 날렸던 이호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멸천회주를 상대할 때 내 표정이 저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 웃음이 비웃음이라 받아들였는지 이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 너 설마 연청운?”
그리고 그제야 나를 알아보았는지 이호가 눈을 치켜떴다.
이제 와서 나를 알아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나를 신경 쓸 때가 아닐 텐데?”
내게 시선이 고정된 그들과 달리, 나는 새로운 참전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쿠우우우우웅!!
열 받은 설아 누나가 일자살수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떨어져 내렸다.
“감히 누구한테 이빨을 드러내는 걸까?”
퍼억!
일자살수 중 하나를 짓밟아 피떡으로 만든 설아 누나가 곧장 장력을 뿌려 그 옆에 있는 놈의 머리를 박살 냈다.
순간적으로 무기를 들어 올려 방어했지만, 무기째 박살 나버렸다.
설아 누나의 공격은 거침없이 다음 일자살수에게로 향했다.
이호 역시 그 공격에 휘말렸다.
“큭!”
이호의 기형도가 일격에 부서져 날아갔다.
강기를 머금은 무기가 수수깡처럼 부서지는 모습에 이호의 눈이 똥그래졌지만, 내가 볼 땐 당연한 결과였다.
한빙의 기운만을 가진 설아 누나에게도 적수가 되지 못했던 놈들이다.
오행신력을 완성한 지금의 설아 누나는 힘의 사용이 조금 서툴긴 하지만, 그 빈틈을 공략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역량 차이가 컸다.
실제로 설아 누나는 적응 훈련이라는 애초 목적에 맞게 힘의 흐름을 잡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지.”
그렇다고 이호를 설아 누나에게 넘겨줄 생각은 없다.
지켜야 할 선약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몸을 튕겨 이호에게로 달려들었다.
파아앗!
내가 발을 딛고 있던 자리에서 땅을 박차는 힘에 휩쓸린 먼지 더미가 높게 치솟았다.
설아 누나를 피해 몸을 물린 이호의 앞에 도달했다.
“크읏!!”
뒤늦게 내 접근을 알아차린 이호가 수세를 취한다.
죽일 목적이었다면 이미 머리통이 박살 났겠지만, 내가 받은 부탁은 좀 복잡했다.
터턱!
몸통 앞을 교차해 방어하려는 이호의 두 팔을 잡고 좌우로 강하게 벌렸다.
뚜둑! 으지직!
“크아아악!”
거칠게 뜯겨나간 두 팔을 미련 없이 내던지고 이호의 머리를 잡아 바닥에 내쳤다.
쿵!
땅에 꽂히는 충격으로 이호의 몸이 튕겨 오르려는 찰나.
우드득!
튕겨 나가지 못하게 등을 밟고 짓눌러 이호의 허리와 척추를 부순다.
“으아… 으아아아아!”
연이은 고통에 참기 어려운지 비명을 토해낸다.
“팔십일호가 니들 본거지가 어딘지 다 불며 부탁하더라. 이호, 네 혀를 뽑고 팔다리를 뜯어달라던데.”
“으아아… 그 썩을 배신자가아아아아!!”
“죽지 마. 아직 부탁이 남았어.”
끝나지 않았음을 안 이호가 어떻게든 내게서 벗어나려 몸부림치지만, 등뼈와 척추가 박살 난 탓에 몸을 꿈틀거리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팔십일호의 부탁은 반만 들어주게 생겼다.
“쯧! 혀를 뽑고 다리를 뜯는 건 척추를 부순 걸로 퉁 쳐야겠네.”
우드드득!
“끄아아아악!”
고통으로 몸을 부르르 떨던 이호의 몸이 그대로 멈추며 혼백이 빠져나갔다.
그렇게 이호의 숨통을 끊고 고개를 돌리자 내게 말을 거는 자가 있었다.
“네가 연청운?”
몸에서 느껴지는 기세로 보아 일자살수 중 가장 강해 보이는 자.
“그렇다면?”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군. 연자염의 손자라……. 확실히 그자가 그런 의뢰를 한 것도 이해가 되네.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겠지.”
뭔가 알고 있다는 듯 주둥이를 놀린다.
그런데 거기에 할아버지의 이름이 걸려있다.
불쾌한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