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87
86화 당가내란(1)
오삼보는 과거 사천에서 뛰어난 무공으로 이름을 떨쳤던 상문파의 후계자였다.
전란의 시기였기에 강맹한 무공을 앞세운 상문파는 급격하게 세를 불릴 수 있었다.
그러나 정사마가 휴전을 맺은 이후로는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문파를 성립함에 있어 무공만이 전부는 아니다. 특히 세력이 커질수록 세력을 추스를 수 있는 존재가 중요해진다. 하물며 휴전이 성립되어 소소한 분쟁만이 남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사천에서 전장이 사라지자 상문파는 빠르게 자리를 잃어갔다.
오삼보는 그 몰락하는 상문파의 마지막 유산을 들고 사천당가의 데릴사위가 되었다.
“하아…….”
오삼보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돌아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사면초가가 따로 없네, 써그럴.”
기대와는 달리 사천당가가 야심을 펼치기 어려운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 데릴사위들은 불만이 있었다. 당연히 끼리끼리 뭉치며 불만을 주고받는 모임들이 은연중에 존재했다.
변화의 시작은 어느 날 당가 데릴사위들 사이로 은밀한 제안이 들어오면서부터였다.
내용은 간단했다.
[난세(亂世)를 돌려주겠다.]이 어설픈 휴전에 진절머리가 난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심지어 마교와 사파에서도 그런 자들이 있다고 했다.
“그 말에 넘어가는 게 아니었는데…….”
난세를 돌려주겠다는 말은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정신을 차렸을 때는 홀린 듯 그 뜻에 동참한 뒤였다.
그들이 꾸민 일이 가주의 암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땐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연판장에 손을 올린 이상 기호지세(騎虎之勢)였다. 달리는 호랑이 등에서 뛰어내려 봐야 호랑이 밥이 될 뿐이다.
“총관이 저리 움직인다는 것은 내부에 불순분자들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는 건데…….”
남은 길은 반란을 혁명으로 승화시키는 것뿐이다.
‘잠깐? 그게 아니지.’
막바지에 몰린 오삼보는 문득 한 가지를 깨달았다.
‘왜 내게 남은 길이 그것뿐이라는 거야?’
사천당가 데릴사위 오삼보에게는 분명 그 길뿐이다. 연판장에 손을 올린 순간 다른 길은 없다.
하지만 오삼보라는 한 개인이라면?
‘튀면 되는 거 아닌가?’
다 버리고 도망치면 된다.
다행히 미끼로 삼을 녀석들은 충분히 많다.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탓인지 여전히 반란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하는 멍청한 놈들이 태반이다.
‘이 병신들이 난리를 피우는 사이 몸을 빼내는 거라면…… 가능해.’
마누라와 자식을 버리는 일이지만, 오삼보는 차라리 후련했다. 어차피 사랑 없이 한 혼인이었고, 자식이라고 낳은 놈도 자기 성씨를 물려주지 못한다.
‘이런 일을 획책하는 놈들이 있는 이상 조만간 난세가 펼쳐질 거야. 전장이 다시 돌아온다면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어. 사천당가와 척을 지는 것이 되지만…… 까짓거 사파로 가면 될 일 아니겠어?’
상문파 후계자라는 책임이 어깨 위에 놓여 있을 때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상문파는 이미 망했다.
상문파 후계자도, 사천당가 데릴사위도 다 버려버리는 순간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다 버리는 거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해내겠다는 다짐을 하며 오삼보가 씨익 웃었다.
“오 형은 자신이 넘치시는 것 같군요.”
생각하던 것이 얼굴에 드러나기라도 했던 걸까. 불현듯 말을 걸어오는 자가 있었다.
조문혁. 한때는 사이가 좋았지만, 지금은 꺼림칙한 존재다. 이 반란에 자신을 끌어들인 자이기 때문이다.
오삼보는 내심을 숨기며 신색을 바로 했다.
“느낌이 좋아서 그러네.”
“하하! 저도 그렇습니다. 일이 잘될 것 같아요.”
“그런가?”
“예. 해서 말인데, 오 형이 이번에 몇몇 분들과 중책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도망칠 생각인데 중책은 무슨 중책이야.’
오삼보는 조문혁의 제안에 코웃음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런 걸 맡았다간 도망치기 힘들다. 당연히 거절할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말만 하게.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인데, 내 뭔들 못 하겠나.”
‘어?’
그런데 오삼보의 입이 생각과 따로 놀았다.
“아무래도 확실한 게 좋지 않겠습니까? 가주를 치료할 약을 치우는 것도 좋지만, 차라리 이 기회를 살려 아예 가주를 처리해 버리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깔끔하지요.”
‘미쳤냐!!’
오삼보는 정신 나간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참 좋은 생각이군!”
“하하! 역시 오 형입니다. 시원시원하시군요.”
하지만 여전히 입은 따로 놀았다.
마치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전장이 다시 돌아올 겁니다. 난세가 시작되는 거지요.”
조문혁이 다시 난세를 입에 담았다.
전장이 다시 곁으로 돌아온다.
오삼보라는 존재가 다시 쓸모 있어지는 시대가 온다.
‘……그런가?’
오삼보는 갑자기 그 말이 솔깃하게 들렸다.
‘내가 방금까지 무슨 생각을 했더라?’
하나에 꽂혀서 다른 쪽으로 시선을 두지 못하는 것처럼, 오삼보는 자신이 조금 전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즉각 떠올리지 못했다.
오삼보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거사(擧事)가 오 형의 어깨 위에 달렸습니다.”
조문혁이 오삼보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굳건하게 말했다. 똑바로 눈을 마주치며 건네는 말에 오삼보는 흔쾌히 답했다.
“맡겨주게. 내 반드시 가주의 목을 따고 모두가 바라는 난세의 문을 열겠네.”
‘이거였나 보군!’
말을 꺼낸 것만으로 가장 바라는 것을 손에 쥔 것처럼 환희가 밀려온다.
오삼보는 조금 전 자신이 떠올렸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는 것에 기쁘게 웃었다.
그런 오삼보를 바라보는 조문혁 역시 활짝 웃었다.
***
본래대로라면 만독신군을 치료하는 자리에는 나와 당만옥 총관만이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예정 외의 인물이 한 명 더 합류하게 되었다.
“이 아이가 동행했으면 좋겠다고?”
“예. 안에서 탕약을 달이고 해야 할 텐데, 그러려면 나름 손이 필요하니까요.”
“흐음.”
마교의 신녀씩이나 되는 애를 아무 데나 두고 다닐 용기는 없다. 그곳이 사천당가 안쪽이라면 더더욱. 언제 터질지 모르는 벽력탄은 가능한 시야가 닿는 곳에 두고 잘 관리하는 것이 만수무강에 이롭다.
다만, 당만옥 총관은 썩 달갑지 않아 하는 눈치다.
이해는 되었다. 무방비한 가주 옆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을 가까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뭐, 상황이 상황이니 어쩔 수 없군. 안쪽에서 탕약을 달여야 하는 건 사실이고.”
화타 선생의 계책대로 약재 일부를 백무호와 당사연에게 맡겼다. 그곳에는 당만옥 총관이 고르고 고른 당가 최정예가 매복 중이니, 허튼짓하려는 놈들이 있다면 순식간에 벌집이 될 거다.
“그래도 좀 섭섭하군. 사천당가의 신용이 이리 떨어지다니.”
당만옥 총관은 내가 이화를 옆에 두려는 것이 당가 배신자로 인해 화를 입을 것을 염려한 탓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갑갑한 노릇이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멋쩍은 웃음만 흘렸다.
오해를 사긴 했지만, 어쨌거나 목적 달성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뜻대로 하게.”
다행히 이 문제는 무사히 타협되었다.
[자자, 빨리빨리 서두르자. 환자도 있는데 여유 부릴 새가 어딨냐.]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탕약이나 달여. 쓰잘데기없는 건 엉덩이에나 쑤셔 박든가!]당만옥 총관을 다독이는 동안 화타 선생이랑 편작 선생이 머릿속에서 날뛰었다.
먹음직한 고기를 눈앞에 둔 열흘쯤 굶은 사람 같다.
[잘만 하면 자기네 쪽 신선 하나 챙길 수 있을 것 같으니 저러는 거다. 대충 그러려니 해.]장삼풍 사부의 설명을 들으니, 왜 화타 선생과 편작 선생이 저 난리인지 알겠다.
‘그러고 보니 신승 어르신이 천상에 이를 재목이란 걸 알았을 때 달마 사부도 꽤나 난리셨지.’
그 근엄하던 달마 사부가 주책없이 날뛰며 기뻐하던 모습을 떠올리니 쉽게 이해되었다.
더불어 장삼풍 사부가 퉁명스러운 이유도 알 것 같다.
‘첫 사부가 장삼풍 사부였는데, 정작 도가 계열 신선 후보는 못 찾았네.’
지레짐작이긴 하지만, 아마도 맞을 거다. 달마 사부가 당시 보였던 반응이나, 지금 화타 선생과 편작 선생의 반응들을 보면 이 문제는 사부님들에게도 꽤나 민감한 부분인 것 같다.
‘에효! 왜 화산파에는 그런 분이 없었는지. 쩝!’
화산파에서 좋은 인연이 있었으면 장삼풍 사부도 기분이 나았을 텐데. 그 점은 좀 아쉽다.
만독신군이 누워 있는 방에 도달하자 곧바로 준비에 착수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재잘거리는 편작 선생의 가르침과 화타 선생의 훈수에 따라 약재를 달이기 시작했다.
실내에서 불을 피워야 했지만, 당만옥 총관은 완벽하게 준비를 갖춰 놓았다.
[아깝네. 만독신군이라는 이 꼬맹이가 독공을 익힌 것만 아니면 이 기회에 화신지력(火神之力)도 좀 나눠달라고 해보는 건데.]‘화타 선생님. 사심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만?’
은연중 느껴지던 화타 선생의 뻔뻔한 기질이 이제는 대놓고 나왔다.
의술에 한해선 고금제일을 논한다는 양반이 이러고 있으니 뭔가 기분이 이상야릇하다.
나중에 화타 선생이나 편작 선생을 논하며 공경하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입이 꽤나 간지러울 것 같다.
[이제 약을 먹여.]탕약을 만드는 건 특별할 게 없었다. 그냥 시키는 대로 약재를 넣고 달이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부턴 중요하니까 집중해라!]여기부터가 진짜인 것 같다.
[저 만독신군이란 애송이가 감당 못 할 독을 섭취했음에도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건 스스로 독기와 싸우며 내부에서 그 나름의 순환을 이뤄냈기 때문일 거다. 그 독기를 좋은 방향으로 인도해야 해.] [그걸 위해선 네가 정확한 때에 정확하게 침을 놔야 한다.]미리 준비해 두라 요청한 것들 중에는 자철로 만든 장침들도 있었다. 그 준비를 부탁할 때 내가 침을 놓을 일이 생길 거란 예상은 했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자 내심 긴장되었다.
[지시에 따라 혈 자리에 정확하게 침만 놓으면 된다. 네 녀석 무공 펼칠 때 감각이면 눈 감고서도 할 수 있는 일이야. 긴장할 일 아니다.] [진짜 어려운 것은 기와 독의 운행에 따라 시기적절하게 침을 놓는 부분인데, 그건 우리가 다 해줄 거니까 네 녀석이 걱정할 건 없어.] [중요한 건 천혈을 열어야 하는 건데, 그러려면 백회를 개방해야 한다. 그래야 머리가 열려.] [기왕 하는 거 침놓을 때 땅의 신력이라도 좀 넣…… 아, 알았어! 거 쪼잔하게!]‘머리가 열린다?’
그 부분을 강조하는 걸 보면 사람이 선(仙)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한 중요한 전제 조건 중 하나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얀마! 정신 안 차리냐!]딴생각 떠올린 걸 단번에 알아챘는지 편작 선생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성을 낸다.
일단 침놓는 일에 집중했다.
지금 내가 할 일은 두 신의의 말대로 시기적절한 순간에 정확한 시침을 하는 일이었으니까.
잡념을 버리고 들려오는 목소리에만 반응하여 움직이는 내 손놀림은 그야말로 대가의 움직임이었다.
지켜보던 당만옥 총관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을 정도다.
“허어! 신묘한 금침법이로다. 화타의 침술이 이 정도로 대단했을 줄이야.”
[이게 왜 화타 금침법이야!]당만옥 총관의 실언(?)에 편작 선생이 버럭 성을 내셨다.
침술 지시는 편작 선생이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반응이 무척 살벌하다. 그냥 넘어갔다간 곤란할 것 같아 즉시 정정해 주었다.
“침놓는 법은 편작의 가르침을 따르는 중입니다.”
“편……작?”
돌아볼 여유가 없어 확인까진 못 했지만, 어째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괜한 말을 했나 싶다.
[집중해! 여기부터가 제일 중요한 십이 침이다!]집중이 흐트러진 걸 감지했는지 편작 선생이 다그치신다.
정말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콰앙!
갑자기 폭음과 함께 건물 내부에 격한 진동이 흘렀다.
건물의 일각이 무너질 때나 있을 법한 진동과 굉음이 안쪽 공간을 흔들었다.
그 틈을 타고 무언가가 한 다발 날아들었다.
‘암기?!’
만독신군을 치료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재수 없을 정도로 아픈 순간을 찔렸다.
허나 나보다 더 먼저 움직인 이가 있었다.
당만옥 총관보다도 더 먼저 움직인 존재.
“감히…….”
공기가 건조하게 말라 버릴 정도의 열기가 파도처럼 일렁였다.
고운 미성에 어울리지 않는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방안을 채우는 순간.
“……뉘 앞에서 하찮은 수를!”
콰아아아아!
기세 좋게 날아들던 암기들이 허공에서 녹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