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025
마탄의 사수 (1025)
이하의 머릿속이 정리된 것은 그때쯤이었다.
영령 늑대 군왕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원래 어떤 일을 해 왔는지를 깨달았다.
그 일로 인해 향후의 미래가, 로보를 가디언으로 고르며 어떤 극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신神과 마魔의 대결 이후로 상호간 힘을 끼칠 수 없다는 약속에 따른다면?
‘결국……. 현시점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 되는군.’
블랙 베스에게서 부여받은 퀘스트가 있었다.
자미엘을 처치하라는 것.
이하는 그 일에 로보를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신과 마의 태초 약속이 깨지기 전까지는……. 그럴 수 없겠어.’
그 약속이 깨질 수나 있는 것일까?
이하는 문득 라퓨타를 떠올렸다. 혹시 그곳에 가면 어떤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신神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생명체라…….’
그가 거처했던 곳에서 태어난 정령왕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자연 발생으로 태어난 정령 등과 같은 존재와 직접 힘을 쏟아 만들어진 생명체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흐음, 알겠습니다. 일단은! 그 일을 잠시 뒤로 미루는 수밖에 없겠군요. 저기, 그래서 말인데요, 로보 님. 제 영역에서 저를 지키는 것 외에 저의 사소한 부탁도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인가, 피수호자여. 내가 현계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건 오직 그대의 영역 안에서일 뿐이다.]“음, 음,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 만약 제가 수호자 님을, 로보 님을 공격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죠?”
[음……?]이하는 로보의 등 털이 잠시 솟구쳐 올랐다고 느꼈다. 일렁거리는 반투명의 회색 늑대의 털이 곤두선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털이 아니라 그의 기운일 뿐이었다.
경계심을 지녔을 때의 로보는 블라우그룬조차 뒤로 물러서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정작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것은 이하였다. 로보는 이하와 한참 동안 눈을 마주친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관계없다. 가디언으로서 소환되었을 뿐이니까. 설령 지금 이 신체가 사라진다 한들 나는 다시금 나타날 것이다.]“그럼 로보 님이 저를 있는 힘껏 공격하시면요?”
“가디언 스톤을 파괴하는 그 순간까지, 레어의 영역 내에서 하이하 님에게 위해를 가할 수는 없을 겁니다.”
“아하. 그렇다고 가디언 스톤을 파괴한다면 로보 님은 더 이상 이쪽에 계실 수가 없는 거고. 그렇죠?”
로보와 블라우그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모든 상황은 정리되었다.
이하는 로보를 공격할 수 있다.
로보는 이하를 공격할 수 없다. 단, 명령에는 따를 수 있다.
이하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탄창을 꺼내어 블랙 베스에 결합했다.
‘완벽하잖아?’
더 바랄 것 없는 저격용 타깃이지 않은가.
“그럼 로보 님!”
이하는 마침내 자신의 요구를 말했다.
“제 저격 타깃이 되어 주세요.”
[음……? 저격?]―크크, 내 먹잇감이 되라는 뜻이다.―
로보가 그 말을 이해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10여 분이 더 지난 다음이었다.
레어의 중앙부.
하늘까지 날아간 블라우그룬이 폭죽 마법을 터뜨린 순간, 마침내 이하의 저격 훈련이 시작되었다.
상대는 어비스 디아볼로 세 마리의 파괴력과 동격을 지닌, 영령 늑대 군왕 로보였다.
* * *
‘신호와 함께 움직이기로 했으니 아직 가디언 스톤의 인근일 거야.’
이하의 레어 전체 영역을 지도로 본다면 이등변 삼각형에 가까웠다.
전체 면적은 약 3.3제곱킬로미터.
직접 레어로 통하는 입구인 산봉우리 인근에서부터 영역의 경계선까지 가장 먼 곳은 약 2.5km였으며, 가장 가까운 곳은 봉우리를 넘어간 산의 건너편 중순부. 직선거리 약 600m가량이었다.
로보가 태어나는 곳은 산의 입구 근방이었으므로 레어 앞에 위치한 이하로부터는 직선거리로 대략 2.3km이상의 차이가 있었고, 등산 수준이 아닌 등반 수준을 거쳐 올라와야 했으므로 실제 이동거리는 그보다 훨씬 더 길었다.
‘하지만 직선거리만 고려하면 돼. 로보는 돌아와야 하지만 내 탄환은 직선으로 가니까.’
신호가 울린 직후부터 이하는 이동 중이었다.
레어 앞이 좋은 저격 위치였던 것은 김 반장의 손길이 닿기 이전일 뿐이다. 현 시점에선 몸을 숨길 장소도 마땅치 않았으며 로보가 올라오는 루트를 제대로 살피기도 힘들었다.
더 넓은 시야각을 지니기 위해서라도 이하는 산꼭대기를 향한 이동을 선택했다.
가장 먼저 테스트해 볼 것은 역시나 장거리 저격.
‘로보의 스피드는 엄청날 거야. 하지만 아직 이곳의 지형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 그렇다면 레어까지 올 수 있는 가장 무난한 길은 역시나 절벽 뒷길. 예상 루트인 절벽 뒷길을 돌아서 온다고 생각했을 때, 저격 포인트에서 로보까지의 거리는 약 1.7km 내외가 될 거다.’
지형이 파악되어 여러가지 길을 활용할 수 있기 전에는, 반드시 그곳을 통하리라.
이하는 약 300여 미터를 더 움직인 후에야 뒤를 돌았다.
철컥,
노리쇠를 당기는 쇳소리가 거칠게 울려 퍼진 후 이하는 즉각 무릎 쏴 자세를 취했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어야 하므로 엎드려 쏴가 가장 좋겠으나 그렇게 되어선 시야가 나오지 않는다. 다행히도 이하는 무릎 쏴 자세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채 총신을 유지할 방법이 있었다.
“젤라퐁, 스태빌라이져Stabilizer.”
[묭묭!]젤라퐁의 촉수가 블랙 베스의 긴 총신을 받쳐 주고 나서야 이하는 호흡을 고를 수 있었다.
‘예상 루트에 신경 쓰되, 예상 루트 외의 장소에서 나올 것도 대응해야 한다.’
적은 어디인가. 어디쯤에서 움직이고 있는가.
잠시 생각하던 이하는 흠칫하며 놀랐다.
불과 몇 초 전까지 로보, 가디언 등으로 부르던 상대방을 저격의 준비가 끝나자마자 〈적〉으로 인식하다니.
‘흐흐, 김 반장님. 저격수 하이하, 아직 죽지 않았나 봅니다.’
이하는 옅은 미소와 함께 레어까지 올라오는 길들을 살폈다. 로보 정도의 크기라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이동할 수 없다.
풀숲의 흔들림, 흙의 패임, 튀어 오르는 자갈, 그 어떤 것이 되었든 반드시 이질적인 부분이 있을 것이다.
‘아니, 흙이 패이진 않으려나? 자갈도 그렇고……. 아래는 아예 없다시피 했으니까.’
그래도 풀숲의 흔들림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늑대 크기의, 늑대와 외형이 같은 존재가 산길을 달린다면.
새는 어디서 날아오를 것인가. 동물들이 갑자기 이상 반응을 보이는 위치는 어디쯤인가.
예상 루트와 그 외 감각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는 길까지, 이하는 샅샅이 살폈다.
그리고 마침내 무언가가 움직였다.
* * *
좌, 우 방향으로 동시에 날아오른 작은 새.
저것은 분명한 회피의 움직임이었다. 무언가를 피해서 날아올랐다면 한 가지밖에 없다.
이하는 즉각 스코프에 눈을 대었다.
‘직선거리 1.5km 멀지 않다. 그리고 저기서 가장 가까운, 모습을 드러낼 지점은……. 여기.’
저격전을 시작한 직후 저기까지 왔다면 적의 평균 이동 속도는?
이동 속도를 감안했을 때, 모습을 드러낼 지점에 나타날 시간은?
‘앞으로 4초.’
계산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이하는 스코프의 클리크를 조절하고 있었다.
레어 전체 반경과 거리를 알고 있었기에 이미 최대 2km 타겟을 기준으로 설정해 놓은 상태에서 그것을 약간 줄이는 데에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후우우우우…….
‘목표물에 대한 정보가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저격이란 결국……, 얼마나 더 적을 빨리 발견하느냐의 싸움.’
그리고 이번 싸움에선 내가 이겼다.
이하는 로보가 모습을 드러낼 예상 지점을 겨누었다.
이하가 궁금한 것은 로보를 맞춘 다음이었다. 적어도 블랙 베스의 탄환은 로보를 꿰뚫을 수 있다.
그 시점에서 로보는 어쨌든 ‘죽는다’. 그렇다면?
―놈의 특성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른다……. 크크, 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겠지.―
“음. 같은 생각이야.”
[신화급 총기] 블랙 베스의 효과는 발동될 것이다.즉, 로보의 특성을 블랙 베스의 탄환으로 저장이 가능하게 될지 모른다.
일반적인 필드 보스들의 특성은 이미 상당수 저장해 두었다. 그 상황에서 로보의 특성까지 탄환이 되어 준다면.
‘라퓨타로 가는 길은 훨씬 수월해질 거야. 이미 페르낭이 뚫어 두었던 길을 사용할 수 없게 된 이상, 만반의 준비는 필수다.’
그곳은 레가 알고 치요가 안다.
이미 개척을 해 놨기 때문에 오히려 건드릴 수 없는 길.
이번 라퓨타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치요나 마왕의 조각들의 견제를 회피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수반되는 건 ‘미개척 길을 통한 모험’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특성이 될진 몰라.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지.’
현재의 미들 어스 세계관에선 등장조차 하지 않은 몬스터의 특성을 미리 담아 놓을 수만 있다면 도움이 된다,라는 표현 정도로는 부족할 정도의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땡큐, 로보.’
이하의 스코프 속으로 무언가가 덜컥 모습을 드러냈다. 이하의 손가락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눈과 뇌가 반응한 건 그 다음이었다.
“읏!? 안 돼!”
투콰아아아────────……!
총성이 울렸다.
이하가 스코프 너머로 보고 있던 드워프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마지막 순간 겨우 총구를 비틀어 그가 맞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광맥 탐사 드워프?! 뭐야?”
보틀넥이 남겨 두고 갔던 드워프 중 한 명이라고? 그가 저곳에 있는 거였다고?
이하는 로보에게 드워프들에 관한 이야기는 해 둔 상태였다. 로보가 그를 공격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 로보는―.”
바스락.
이하가 깜짝 놀라 총구를 돌리는 순간 그곳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벌써……?”
로보는 이미 그곳에 있었다.
“하이하 님! 괜찮으십니까?”
위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블라우그룬이 이하에게 황급히 내려왔다. 로보는 이하를 공격하지 않았다. 이하는 어리둥절하면서도 묘하게 설레고 있었다.
“블라우그룬 씨, 봤어요?”
“네?”
“여기, 영령 늑대 군왕, 로보 님이 나를 향해 움직이는 것. 봤냐고요.”
“처음엔…… 보였습니다만―.”
“중간부턴 사라졌다. 그쵸?”
“그렇습니다.”
블라우그룬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로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보가 등장하자마자 블랙 베스가 한 말이 있었다.
―크크크……. 영계를 통해서 이동한 건가. 각인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하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하는 새삼 가디언 스톤에서 로보가 처음 등장했을 때를 떠올랐다. 분명히 그때, 빛은 뿜어져 나왔음에도 로보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뒤에서 튀어나왔지. 블라우그룬 씨가 놀랄 정도로.’
처음 생성되는 효과였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니었단 말인가? 이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키며 로보에게 물었다.
“로보 님, 혹시……. 영계를 통해서 이동한 건가요?”
[지금의 장난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면, 내가 그 이상 답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다만―]“억!?”
이하는 화들짝 놀라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 어떤 기척도 없이, 말하던 로보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블라우그룬 또한 두리번거리고 있었으며 자신의 〈꿰뚫어 보는 눈〉에도 걸리지 않는 로보의 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