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029
마탄의 사수 (1029)
로보의 미간이 씰룩거렸다.
[……무엇이 웃긴 것이지.]동굴처럼 낮은 그의 목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블라우그룬이 이하의 곁으로 슬쩍 다가올 정도였으나 어쨌든 로보는 이하의 가디언이다.
가디언 계약을 함부로 파기할 수 없으며, 계약이 유지되는 한 그는 이하를 공격할 수 없다.
이하도 그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디언과의 사이가 나빠 봐야 손해 보는 건 자신이다.
“크흠,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근데 혹시……. 화나신 건 아니죠?”
다만 그 질문이 조금 깐족거릴 뿐이었다. 로보의 미간이 다시 한 번 씰룩거렸다.
[화? 내가 어째서 피수호자에게 화를 내지? 혹시 내가 화를 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나. 수호자로서 피수호자가 강하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나는 그런 것으로 화를 내지 않는다.]묵직한 목소리지만 빠른 어투.
전설이나 신화 속에서 등장할 것 같은 외형으로 심지어 숨까지 조금 가쁘게 쉬는 상태라면?
―화났네.
―네. 엄청 화났네요.
이하와 블라우그룬은 로보의 상태를 금방 읽어 낼 수 있었다. 영계를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가 토라진 모습이라니.
‘설마 이렇게……. 억지로 쿨한 척을 유지하려 할 줄이야. 젠장, 누가 늑대의 AI를 이런 식으로 설정해 가지고는― 끄윽, 참아야 해. 여기서 웃으면 끝이다.’
블라우그룬이 헛기침을 하며 등을 돌리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하도 알 수 있었다. 누구보다 웃고 싶은 사람은 이하였으니까.
“그러니까……. 흠흠! 로보 님께서도 안 보여 주신 힘이 있다, 맞죠?”
[그렇다. 피수호자가 강해지기 위한 연습이기 때문에 나의 모든 힘을 사용하진 않았다. 허나 홀리 페어리들을 활용한다면……. 나 또한 모든 힘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이하가 다시 한 번 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로보는 벌써 ‘그다음’의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다. 자신은 숨겨 둔 힘이 있었으니 전력을 다해 다시 한 번 붙어 보자고 제의하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었다.
‘이제 저격 연습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간 칼부림 나겠네. 완전 먹튀 취급일 것 같은데, 으흐흐.’
로보의 제안은 이하도 바라는 바였다.
처음부터 연습 한 번으로 끝내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의 특성이 두 개인걸 안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한 번의 승리가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럼 홀리 페어리들을 사용해도 상관없다는 거죠? 뭐, 원하신다면 쓰지 않는 방향으로 가도―.”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나 또한 나의 모든 힘을 다해 피수호자의 훈련을 돕고 싶으니.]“알겠습니다. 그럼 이번엔 저도 홀리 페어리 사용하고, 로보 님도 ‘있는 힘껏’ 해 주시는 걸로. 변명 없이, 깔끔하게.”
[내 모든 힘을 다한 상태에서도 피수호자가 원하는 만큼의 훈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네?”
로보는 자신의 가디언 스톤 위를 향해 움직였다.
벌써 ‘시작 지점’에 멈춘 그는 이하와 블라우그룬을 번갈아 보다 입을 열었다.
[너무나 빨리 끝나게 될 테니 말이다.]이하는 저것이 늑대의 웃음인지, 아니면 으르렁거리는 표정인지 쉽게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와 잠시 눈을 마주치던 이하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좋습니다. 그럼 다시 한 번 가죠. 현재 1승 1패입니다. 블라우그룬 씨! 나 좀 옮겨 줘요!”
이하는 곧장 레어의 입구로 옮겨졌다.
블라우그룬이 다시금 하늘로 올라가 자리를 잡기까지 약 2분여의 시간이 걸린 후에야 이하는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다만 이번엔 홀리 페어리들이 들어 있는 병을 꺼내지 않은 상태였다.
―크크……. 즐거워 보이는군.―
“음, 아무래도 고급 NPC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단 말이지.”
철컥, 탄창을 삽입하며 이하는 블라우그룬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로보가 보이는 자신감의 원천이 무엇인지 이제 확인할 때가 되었다.
휘유우우우우…….
폭죽은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있었다.
이하의 위치에선 가디언 스톤이 직접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폭죽이 올라가는 도중에도 이하는 이미 노리쇠를 당겨 한 발을 장전 후, 바위 위에 총신을 걸치고 있었다.
“다 안 보여 준 건 이쪽도 마찬가지거든요, 로보 님.”
호흡을 가다듬는다.
이미 공중에서 발사된 폭죽은 몇 초간 비행을 마친 후 마침내 공중에서 폭발했다.
펑―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이하는 검지를 움직였다.
“〈커브 샷〉!”
투콰아아아────────……!
가디언 스톤이 보이진 않지만 로보는 그 위에 있는 게 확실하다. 상대방의 ‘확정적 위치’를 알 수 있다면?
이하는 보지 않고도 쏠 수 있다.
“어떻게 됐어, 블랙?”
다만 가디언을 맞추는 건 아무런 시스템 알림도 없었으므로 이하는 자신의 저격 결과를 직접 알 수 없었다.
블랙 베스를 통해 들으려는 순간, 이하의 귀에 묘한 울림이 들어왔다.
우우───── 우우우…….
길게 이어지는 늑대의 울음소리.
그것은 하울링이었다.
말하자면 이하의 첫 저격이 실패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크, 시작하자마자 움직인 건가. 〈커브 샷〉으로 세 번 휘어야 도착할 수 있는 위치라 아무래도 탄환의 비행 시간이 늘어진 측면도 있다지만……. 애당초 반응 속도로 보일 수 있는 게 아니지.”
로보는 시작하자마자 움직일 작전을 짜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다란 하울링은 탄환을 피했다는 기쁨의 표시일까? 이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럴 리 없으니까.”
그게 아니라는 건 이미 이하도 알고 있었다.
―하, 하이하 님! 어떻게―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공중에서는 잘 보이나요? 어때요?
이하는 반쯤 체념한 목소리로 블라우그룬에게 물었다. 블라우그룬의 다급한 목소리와 완전히 대비되는 톤이었다.
―어떠나 마나……. 하, 하이하 님의 레어 근처에서…….
블라우그룬이 놀란 이유를 이하도 어느 정도는 추측할 수 있었다.
영령 늑대 군왕, 로보는 영계와 현계를 자유롭게 오간다. 그러나 현계의 사망자들을 영계로 이끎에 있어서 그 혼자 일을 하는가?
바로 그 점에서 이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헷갈려하는 점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건 분명 로보 혼자였으나, 로보의 ‘명령’이 있다면?
―영령 늑대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령 늑대 〈군왕〉의 부름을 받은……. 그의 부하들이―
가디언 스톤의 인근에서, 심지어 로보의 발길이 닿았을 리도 없는 이하의 레어 영역 곳곳에서 희끗희끗한 무언가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파앗―!
이하의 스코프 속에 보였던 희끗한 늑대 한 마리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블라우그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이하 님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수는 적어도 삼십! 온갖 루트로 녀석들이 전부 이동하는데다― 외, 외관상 군왕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래선 하이하 님이 목표물을 찾을 수가 없을 거예요!
분신이나 다름없는 미끼 타깃이 서른 개가 생성된 셈이다.
그것도 모습을 비추는 구간이 거의 없는 루트들로 모두 분산되어 다닌다면 제아무리 이하라도 로보를 분간해 낼 수 없을 터.
블라우그룬이 걱정하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신神의 힘을 받은 녀석들이 줄줄이 튀어나온다 이거지……. 크크, 홀리 페어리들도 이제는 쓸모가 없다. 저들 모두에게 붙으려 할 테니까.―
로보가 홀리 페어리 대응책으로 들고 나온 게 바로 이것이었다. 블랙 베스는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이하는 표정 하나 찡그리지 않았다.
느긋한 동작으로 하늘을 향해 총구를 들어 올릴 뿐이었다.
“응, 그니까. 당연히 그렇겠지. 뭐, 그리고 이미……. 알고 있었잖아?”
느긋할 수밖에 없었다.
블랙 베스가 이하에게 보여 주었던 특성, 시스템 창을 통해 이하가 확인한 두 개의 특성 중 다른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특성을 읽는 순간 이하는 알 수 있었다.
로보는 홀리 페어리를 통한 자신의 공략 파훼법으로 반드시 이 특성을 사용하리라.
그렇다면?
수십 마리의 영령 늑대 떼가 이하 자신을 향해 달려온다면,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상대하며 로보를 저격할 수 있는가.
방법은 뻔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걸 선택한 거니까 말이야. 어떻게 되나 봅시다. 〈방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하는 방아쇠를 당겼다.
투콰아아아────────……!
우렁찬 총성이 울렸다. 이하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떴다.
“흐흐, 지금 로보의 표정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 순간, 기나긴 하울링이 이어졌다.
우우───── 우우우…….
로페 대륙의 구석 어딘가, 이하의 레어 영역 내에서 사상 초유의 영령 늑대 떼거리의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미들 어스를 플레이하는 그 어떤 유저도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오랜 시간 동안 볼 수 없는 진귀한 구경거리였다.
* * *
에즈웬 교황청 광장은 비교적 평온했다.
최근 있었던 라퓨타행 탐사 인원 모집이 모두 끝났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엄숙한 기운이 감도는 것은 교황청 내부였다.
그곳엔 알렉산더와 페르낭 등을 비롯한 기존 라퓨타행 인원 모두와 이번 라퓨타행 신규 인원 모집을 통해 선발된 인원 대다수가 모여 있었다.
교황은 페르낭이 보고한 명단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인원이 전부입니까.”
“그렇습니다, 성하. 라르크를 주축으로 신규 인원을 모집하려 했으나……. 현시점에서 라퓨타로 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페르낭의 지목을 받은 라르크는 교황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교황청 광장에서 벌어졌던 일을 교황이 모를 리는 없었다.
“혼자서는 큰 힘이 되지 못하더라도, 힘을 합한다면 강한 능력을 발휘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그런 분들을 더 데려가야 힘이 되지 않겠습니까.”
교황이 넌지시 제안한 것은 현재 미들 어스 커뮤니티에서 가장 큰 화두로 다뤄지는 논쟁거리였다.
〈어째서 일부 랭커 및 아웃사이더, 고레벨 유저만 라퓨타를 가는가.〉
미들 어스에서 제공한 주요 컨텐츠이자, 모든 유저가 참가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아닌가.
시스템에서 막지 않는 것을 어째서 일부 고레벨 유저들이 통제하고 관리하는지에 대한 불만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자신들도 참가시켜 달라며 격렬하게 주장하는 유저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1:1 테스트에서 아쉽게 탈락한 자들이었다.
교황의 말은 그러한 여론에 AI가 반응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교황 앞에 무릎 꿇은 페르낭은 잠시 뒤를 보았다.
지켜보던 라르크가 입을 열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두고 가야 합니다. 성하.”
“그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용살자 님.”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10명씩 100팀을 짜서 동시다발적으로 라퓨타로 출발시킨다면, 적은 〈쟌나테의 열쇠〉가 어디 있는지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200팀, 300팀으로 늘어난다면 그 효과는 당연히 배가된다. 그걸 모를 유저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포함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라르크는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마왕의 조각과 뱀파이어 퀸의 수하로 들어간 인간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각국의 정보 길드에서 파악한 수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최근 들려온 소식 중 가장 좋지 못한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