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053
마탄의 사수 (1053)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이하 님.”
“치요가 노리는 건 동쪽에 있어요. 이쪽에 이고르를 비롯해서 뱀파이어들을 남겨 두고, 파, 파이로와 함께 마탄의 사수 등을 첫 번째 팀에 보낸 게 전부 눈속임일 거라고! 동쪽! 그럼 동쪽을 왜 갔지? 치요가 생각하는 건―”
동쪽에 무엇이 있나. 이하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사우어 랜드였다.
그러나 치요는 사우어 랜드로 들어갈 수 없다.
라퓨타를 찾을 수도 없다. 미리 라퓨타 근처에서 대기할 수도 없다.
혹 운 좋게 라퓨타를 찾아도 입장 권한은 없다. 마탄의 사수가 파이로와 함께 있는 이상 치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없나?
“……사우어 랜드나 라퓨타가 아니었어.”
치요가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이고르도 이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하는 알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선 이고르나 파이로보다 훨씬 더 치요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단순히 치요가 시키는 대로 하거나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던 이고르와 파이로, 사스케와는 다르다.
이하는 치요의 지시나 명령을 듣지 않았다. 그가 한 일은 언제나 그녀의 마음을 읽으려고 했던 일뿐.
이하는 치요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치요는 이하가 어떤 수를 쓰는 것인지 밝혀내려 최선을 다했다.
그런 관점에서 두 사람은 ‘연인’이라 봐도 좋은 셈이었다.
‘그 어떤 유저보다 서로의 마음을 읽으려고 했기 때문에 알 수 있어. 치요는 〈쟌나테의 열쇠〉가 첫 번째 팀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녀는 〈쟌나테의 열쇠〉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불확실한 도박에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을 것이다.
현시점에서 그녀가 가장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
라퓨타행을 완벽하게 지체시키기 위해 획책할 수 있는 수단.
치요는 그걸 노릴 것이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는 이하의 머릿속에 곧장 떠올랐다.
“〈레드 체펠린〉이에요. 레드 체펠린을 무력화하거나― 아니, 최악의 경우 그것을…….”
뱀파이어화시키기 위해 동쪽으로 떠난 것이리라.
신나라, 이환, 시몬과 블라우그룬은 물론 이고르마저도 입을 쩍 벌린 채 이하의 말을 듣고 있었다.
“빨리! 빨리 갈 준비하세요!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야 해! 치요를 따라잡아야 합니다! 각 팀에 연락부터!”
이하는 곧장 채비를 갖추며 자신의 추측을 전달했다. 그러나 신나라와 이환, 시몬 등은 잠시 당황했다.
“자, 잠시만요! 이하 씨! 지금 공격당하고 있는 팀은 어떻게 하고요? 그쪽부터 향하자면서요?!”
“이익― 하지만 그랬다 간 늦을지도― 치요가 〈레드 체펠린〉에 무슨 짓을 해 버리고 나면 라퓨타까지 가는 건 불가능해질지도 몰라요! 첫 번째 팀은―”
“버린다는 건가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신나라의 말을 들으며 이하는 이를 악물었다. 레드 체펠린이 중요한 점은 라퓨타까지 자동으로 안내한다는 것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권한을 갖고 있기에 사우어 랜드에서도 소중히 다루는 것!
‘맞아, 울렉! 울렉이 지켜 줄 수도― 아냐, 아냐.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또 당한다. 반드시 직접 가야 해. 유저의 악행은 유저의 손으로 막아야 한다. 미들 어스는 울렉이나 사우어 랜드의 공룡들을 시켜 치요를 막아 주지 않을 거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하는 잠시 고민했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보며 어리둥절하게 포박된 상태로 앉아 있던 이고르가 억지로 웃으며 외쳤다.
“캬, 캬하하핫! 뭐지? 치요는 애초에 파이로와 나머지 뱀파이어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건가? 나까지?”
“그건 나도 몰라! 단순히 시간을 벌기 위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브라운은 브로우리스에게 줄곧 어떤 흔적을 남겼다. 삼총사만이 알아볼 수 있는 무언가라고 했다.
치요는 자신의 진의를 들키지 않기 위해 브라운을 떼어 내려 했던 건 아닐까?
이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더 이상 고민할 시간도 아깝다.
“그렇다면 치요는―”
“이고르!”
“뭐, 뭐냐!”
치요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하에게 물으려던 이고르는 이하의 호령 한 방에 입을 다물었다.
이고르도 자신이 죽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특정 수준 이상의 정보는 모두 풀어졌고 더 이상 이고르 자신은 이하에게 이용 가치가 없을 테니까.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 같았던 이하는 이고르에게 총구를 겨누긴 했으나 발포하진 않았다.
이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어쨌든 나도 약속은 지킨다. 이번엔 그 검을 그대로 두겠어. 하지만― 다음번에 다시 한 번 뱀파이어 측에서 만난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아. 짜르가 당신을 버리는 선택을 하게끔 만들어 주지.”
“빌어먹을 놈이―”
“그리고 당신도 잘 생각하는 게 좋아. 치요가 두뇌에선 가장 뛰어난 유저처럼 보이겠지?”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실제로 너 같은 병신은 치요가 어떤 선택을 할지 이제야 겨우 실마리를 잡은 거 아닌가? 캬하하핫!”
이고르는 죽기 직전까지도 이하를 도발하려 했다. 정작 도발이 역효과를 불러오리라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허허, 같은 팀인 자기도 몰라 놓고 뻔뻔하긴 하구만. 하긴, 얼굴에 저 정도 철판은 깔아야 뱀파이어 짓 해 먹겠지.”
“입 닥쳐, 이름 모를 털보 새끼!”
시몬에게 한 방 먹은 이고르가 악다구니를 썼다. 그런 이고르를 보며 이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가방을 뒤적였다.
“하지만 치요도 못 맞췄어.”
“뭘?”
“이거.”
“무―”
이고르의 동공이 확장됨과 동시에 블랙 베스는 불을 뿜었다. 귓속말을 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투콰아아아────────……!
긴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을 때, 이미 놀란 눈의 이고르 머리는 사라진 다음이었다.
신나라는 잠시 눈쌀을 찌푸렸다. 이고르가 잔인하게 죽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걸 보여 줄 필요까지 있었을까요?”
“이고르는 치요가 아끼는 가장 강력한 패 중 하나예요. 당장 〈신성 연합〉으로 전향하진 않겠지만, 뱀파이어 측에서 빼내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죠.”
“흐음, 그걸 위해서 그의 믿음을 부숴 버린다는 겁니까.”
이환도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그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이하가 어떤 심정으로 행동했는지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계략으로 가장 뛰어난 게 치요가 아니라는 것만 알려 주면 되니까요.”
이고르에게는 ‘언캐니’를 보여 주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었으리라.
적어도 무식한 그가 치요의 두뇌만큼을 믿고 따른다는 건 어느 정도 밝혀진 사실이었으니까.
이하의 말을 들으며 시몬이 머리를 긁적였다.
“허허, 근데 그걸 말한 건 하이하 님이 아니라 라르크 님이었던 것 같은데.”
“저, 정확히는 공동입니다. 제 아이디어에 라르크 자식이― 크흠, 나라 씨, 죄송합니다. 어쨌든 라르크 씨가 숟가락만 얹은 거라고요.”
“어휴, 이미 다 끝난 일인데요. 하여튼! 어떻게 할 거예요? 브로우리스 님에게? 아니면 동쪽으로? 그것도 아니면…….”
투닥거리는 남성들을 보며 신나라는 빠르게 제안했다. 중간에 말을 끊었지만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하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동시에 이하가 생각한 방법이기도 했다.
“네. 가죠. 나라 씨, 이환 씨, 시몬 씨. 세 분은 여기, 지도를 갖고 첫 번째 팀에게 가 주세요.”
이하는 신나라에게 지도를 넘겼다. 신나라는 지도의 위치와 방위를 확인한 후, 곧장 그것을 갈무리했다.
“하, 하이하 씨는― 설마 혼자서 치요를 뒤쫓겠다는 겁니까?”
“허허, 지도도 없이 가려면―”
“지도는 괜찮아요. 치요의 좌표와 내 좌표를 비교하면서 가면 되니까. 문제없죠, 블라우그룬 씨?”
“물론입니다, 하이하 님.”
분명 이것은 최초 나눴던 이야기와 다르다. 이런 방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여러분, 서둘러 주세요.”
“누가 할 소리를. 이하 씨야말로……. 조심히, 그리고 무사히 도착해서 치요를 막아 주세요. 근데 어떻게 가시려고―”
“알겠습니다. 블라우그룬 씨!”
“준비됐습니다.”
이하는 신나라의 말을 끊으며 블라우그룬을 불렀다. 블라우그룬은 자신의 몸을 쉴드로 감쌌다.
“무, 뭐 하시려고요?”
신나라의 물음에 대꾸하지 않은 채, 이하는 블라우그룬을 겨눴다.
“〈방출: 매혹의 여왕 개미〉.”
투콰아아아────────……!
총성이 울렸을 때, 그 자리에 더 이상 블라우그룬은 없었다.
두리번거리던 신나라는 잠시 후, 이하의 발밑에서 꾸물꾸물거리는 작은 형체를 발견했다.
“꺅! 뭐야! 이거 뭐예요, 이하 씨!? 어떡해! 너무 귀여워!”
{하이하 님, 바로 가시죠!}
그것은 둥실둥실 떠올라 이하의 가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시몬은 이게 무슨 일인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작아진 블라우그룬의 매력에 빠진 신나라도 특별히 분석 따위는 하지 않았다. 전부 이해한 건 이환뿐이었다.
“여, 여왕개미― 미니스 사막 개미굴의 보스 스킬인 ‘소인화’……?”
이하는 날아오는 블라우그룬을 보며 가방을 열었다. 블라우그룬이 그 안에 쏙 들어간 이후, 이하는 손에 쥔 것을 가방에 넣었다.
그 다음에야 이하는 블랙 베스의 총구를 동쪽 하늘로 들어 올렸다.
“그럼 저는 갑니다! 〈고스트 인 더 쉘〉!”
총성과 함께 이하가 사라졌다. 신나라와 이환, 시몬은 신뢰와 불안이 반쯤 섞인 얼굴로 이하가 날아간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괜찮을까요, 〈쟌나테의 열쇠〉까지 쥐고……. 하이하 씨 혼자서―”
“괜찮을 거예요. 애초에 이하 씨가 받겠다고 했을 때, 저희가 모르는 또 다른 비장의 무기가 있다는 거니까.”
이고르에게 보여 준 아이템은 바로 〈쟌나테의 열쇠〉였다.
“허허, 그나저나 드래곤을 개미로 만든 건 어떻게 한 거랍니까? 몬스터 스킬을 빼앗아서 쓰나?”
시몬이 구시렁거리며 슬쩍 물어보았으나 그 말에 정확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잠시 후, 치요의 기존 근거지에는 그 어떤 생명체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 * *
“그래서 하이하는 안 되고 내가 가져야 한다는 건가.”
“역逆에 역逆, 그 역에 역에 역逆을 잡는다고 까불어 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다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라르크.”
라르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알렉산더를 보았다. 그 고개는 잠시 후 교황청에 모인 모든 유저들을 향하게 되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돼요. 공격을 당하고, 어쩌고, 그건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단순하게? 어떻게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쟌나테의 열쇠〉를 〈라퓨타〉까지 가져가는 거죠. 거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라르크는 눈을 가늘게, 다시 크게 뜨며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았다. 마치 유저들의 속마음을 파헤치려는 듯,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어 내겠다는 태도였다.
그의 물음에 쉽사리 답하는 유저는 없었다. 조용히 있던 기정이 속삭이듯 답했다.
“……죽지 않아야 한다?”
“어휴, 기정 씨! 당연한 소리를―”
“정답. 지금은 바로 그 당연한 것만 지키면 되는 겁니다.”
기정이 대답하자 보배가 그의 등짝을 치려 했으나 라르크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보배는 무안하게 붕 떠 버린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절대 죽지 않을 사람. 어차피 공격받을 확률의 계산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팀을 나누고 어쩌고 한다고 해서 확률 자체가 줄어드는 건 아니니까요. 으음, 그러니까― 설명하자면―”
“치요의 행동을 독립 변수로 특정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가 종속 변수처럼 계산하며 팀을 나눈 게 사실 수학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지만― 하핫, 그렇다고 아주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겠죠. 행동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분명 유의미한 값을 지니겠지만 거기까지는 제 전문은 아니라…….”
혜인이 부끄러워하며 라르크의 말을 이었다. 라르크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