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386
마탄의 사수 외전 (35)
“바하무트 님! 오랜만에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이하는 반가운 마음으로 바하무트에게 인사를 건넸다.
허공에 뜬 약물들을 만지작거리던 바하무트가 이하를 보며 웃었다.
“오랜만인가? 마왕 에얼쾨니히를 죽이고 처음 보는 건데.”
“으음, 하긴 드래곤의 시간에서는 그리 오랜만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하핫.”
미들 어스 내에서만 50일이 넘게 흘렀어도 드래곤에게는 눈 깜짝할 사이일 뿐이라니. 이하는 드래곤 특유의 시간 감각에 헛웃음을 흘렸다.
인간 형태로 실험을 하던 바하무트는 허공에서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이하에게 다가왔다.
어지러이 널려 있던 온갖 약물과 실험 도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래, 무슨 일이지?”
특별히 마법을 사용하거나 어떤 동작을 하지도 않았다.
그의 움직임 자체가 미들 어스 내에서는 〈스킬〉 취급으로 인정이 될 정도다.
적어도 이하가 알기로 이런 수준의 NPC는 미들 어스를 통틀어 몇 개체 되지 않았다.
“음…… 부탁을 좀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렇기에 바하무트에게 기대를 걸 수 있지 않을까.
베일리푸스보다도 훨씬 수준 높은 바하무트라면, 어떻게든 그의 움직임에 제재를 가할 수 있지 않을까.
어렵사리 운을 뗀 이하는 바하무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현재 인간들의 국가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지금까지 어떠한 구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번 〈제3차 인마대전〉 이후로 큰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 변화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알렉산더―베일리푸스 콤비가 될 것이라는 점까지.
이미 충분한 지식이 있는 드래곤에게 그러한 설명을 이해시키는 건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바하무트 님께서 막아 주셨으면 합니다. 베일리푸스 님은 물론이고 블라우그룬 씨와 아르젠마트 님까지 모든 메탈 드래곤은 인간들의 싸움에 참견을 금한다, 한마디만 해 주셔도 효력이 있지 않을까요?”
다만 모든 것을 이해했음이 분명한 바하무트가 묘한 표정으로 침음을 내고 있다는 게 문제일 뿐이었다.
조바심을 참지 못한 이하는 굳이 한마디를 더 얹어 보았다.
“조금 전 말씀드렸듯 컬러 드래곤은 개입하지 않는 전쟁입니다. 메탈 드래곤들끼리 싸워 봐야, 의만 상하고 또 컬러 드래곤들 좋은 일만 시키는 거 아닐까요?”
그러나 의가 상한다, 같은 감정적인 표현은 드래곤들에게 그다지 크게 와닿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컬러 드래곤에게 좋은 일, 이라는 말도 맞지 않는다.
컬러 드래곤의 장로 플람므가 현명한 드래곤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는 지금, 특별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내가 플래티넘 드래곤이 되기 전을 기억하는가.”
“네? 아…… 그럼요. 코퍼 드래곤 시절, ‘커프케’ 님에 대해서라면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베일리푸스 님이 현재 메탈 드래곤 일족 내에서 어떤 위치인지, 또 어떤 발언권과 힘을 가질 수 있는지도 생각할 수 있겠지?”
전대의 바하무트가 마탄에 의해 소멸하고 모든 메탈 드래곤들이 실의에 빠져 차대 바하무트를 선출해야만 했을 때, 강력한 후보 중 하나가 바로 골드 드래곤 베일리푸스였다.
당시 바하무트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에인션트 드래곤인 데다, 무력―지력에서 골고루 균형이 잡힌 강력함을 지닌 그가 차세대 바하무트로 추대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 하지만― 결국 바하무트를 포기했잖아요?! 베일리푸스 님은 알렉산더와 함께하길 선택했고! 따라서 바하무트의 자리를 이어 가기를 포기했고! 저도 ‘메탈 드래곤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전대 바하무트님의 ‘권속’으로서 말씀드리자면! 바하무트라는 존재가 메탈 드래곤 전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바하무트가 되었던 것은 당시 에인션트 코퍼 드래곤이었던 커프케였다.
그는 플래티넘 드래곤 바하무트로 새롭게 태어났다.
바하무트는 모든 메탈 드래곤의 수장이자 보스다.
그는 모든 메탈 드래곤이 향후 추구해야 할 방향성에 대해 결정할 수 있다.
즉, 메탈 드래곤 일족 내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다. ‘과거의 서열’ 따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이하는 강력하게 말했다.
“바로 그렇단다, 하이하.”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바하무트는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듣고 있었다.
이하로서는 의아한 부분이었다.
“……네?”
뭐가 그렇다는 거지?
바하무트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베일리푸스 님을 통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 또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원하지는 않을 뿐더러, 그럼에도 그분이 원하신다면 ‘동족 간 전투를 배제한 참전 행위를 허한다.’ 정도로 정리는 할 수 있는 일이지.”
완벽하게 저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적절한 방안을 찾아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저 말만 있어도 알렉산더―베일리푸스 콤비를 봉인할 수 있다.
이하는 블라우그룬에게 ‘전쟁 기간 내내 베일리푸스를 따라다니며 괴롭혀라.’라고 말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가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한, 베일리푸스는 전력을 낼 수 없다. 100% 배제는 못 하더라도 그의 힘을 절반 이상 축소시킬 수 있다.
바하무트에게는 혜안이 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바하무트의 표정이 씁쓸해 보이는가.
“설마……. 그런 말도―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아니, 지금이야 괜찮아. 지금이야 괜찮지.”
“그럼 왜 그런 말씀을―.”
바하무트는 고개를 저었다. 이하는 마른 침을 삼켰다.
나오던 물음이 턱, 막혀 버렸다.
바하무트가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가. 이하도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나는 파트너가 없는 드래곤. 따라서 파트너를 둔…… 그것도 우리 일족과 융합할 수 있는 파트너를 둔 드래곤이 향후 어떻게 행동할지는 예상할 수 없구나.”
이미 알렉산더가 힌트를 준 부분에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알렉산더는 2차 전직을 마친 후, 자신의 최강 스킬 중 하나인 〈융합〉을 얻었다.
그것으로 베일리푸스와 자신이 하나가 되어 버린 후, 드래곤의 힘과 〈신성력〉을 합한 공격을 마구잡이로 뿜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얼마 전 방송에서 한 말은 무엇인가.
미니스는 기다리고 있었다.
미니스가 에즈웬까지 매수한 것은 1:3의 구도를 공고히 하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샤즈라시안을 확실히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시간을 버는 게 첫 번째.
“진짜 다 말해 줬구나, 다 말해 줬어. 하핫…….”
그리고 알렉산더가 3차 전직을 마치길 기다리는 게 바로 그 두 번째 이유이리라.
이하는 허탈함에 웃음이 나왔다.
알렉산더는 물론이고 라르크까지, 그들은 한 점 숨기지 않았다.
자신들이 향후 무엇을,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조금만 조사하면 모조리 짜 맞출 수 있는 힌트를 주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하는 당황스럽고 심지어 약간의 모욕감이 들 정도였다.
“왜 웃지, 하이하?”
“으음, 아뇨. 누군가가 절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말이죠. 아, 그럼 베일리푸스 님께― 우선 그 말씀은 그래도 해 주실 수 있겠죠? 메탈 드래곤끼리의 전투는 최대한 지양하라, 정도의 말씀이라도.”
“물론이지. 그분께서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다만 분명히 못을 박아 둘 예정이란다.”
“네, 그러면 충분해요. 그럼 가 보겠습니다, 바하무트 님. 갑자기 찾아와서 징징거리기만 하다 가는 것 같아 죄송스럽네요.”
이하는 바하무트에게 목례하며 말했다.
바하무트는 그저 푸근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완전히 무력형이었던 전대의 바하무트와는 다르지만, 이제는 그 또한 플래티넘 드래곤의 품격을 넘치도록 지니고 있었다.
이하는 수정구를 들었다. 다시 레어로 돌아가 〈제2 합특〉의 훈련장 조성을 관리하느냐?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훈련의 내용을 포함하여, 〈제2 합특〉을 이끌 방향성을 점검하기 위해 [메모리얼 던젼]을 보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시티 가즈아의 워프 게이트 인근으로 수정구를 발동시켰다.
아직 현실의 저녁 식사 시간까지는 약간의 여유가 있는 시점이었다.
[제1장: 〈제2차 인마대전〉에서 일어난 일]―1절: 삼총사: 엘리자베스, 브라운 그리고 브로우리스
•3항: 담금질의 나날들
* * *
이하는 메모리얼 던젼 3항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총사대〉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한 훈련은 어느덧 9주차를 지나고 있었다.
세 달가량의 훈련 기간 이후 〈총사대〉의 본격적인 활동이 예고된 것으로 보자면, 절반 이상의 훈련 과정이 지났다는 의미다.
당초 그들의 창설 목표가 뚜렷했으므로 대부분의 훈련은 그에 맞춘 방식이었다.
‘역시 훈련 자체는 반복 숙달밖에 없지. 기왕이면 대규모 훈련장이 조성되어서, 실전처럼 하면 좋겠지만…….’
이하는 풉, 하며 웃었다. 현재 그들이 훈련하는 것은 일종의 서커스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제법 커다란 나무 원통 위에 좁은 판자를 올려놓고, 그 위에 올라서서 사격을 해야 하다니!
‘짐볼의 일종이라고 봐야겠지? 아주 춤을 추는구만.’
현실이라면 결단코 저런 훈련을 하지 않는다. 우선 위험할 뿐더러, 저런 것을 겪을 상황 자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뭐, 헬리콥터에서의 공중 사격 훈련은 한다지만…… 다르지.’
저것은 ‘흔들리는 선상’이라는 가정하에, 그 흔들림을 억누르고 타깃을 맞힐 수 있는가를 단련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균형 감각이 중요해. 그리고 코어 근육이 충분히 단련되어 있지 않다면 애당초 그 ‘균형’이라는 걸 느끼는 것도 어려울 거야.’
몇몇 단원들은 아예 판자에서 떨어져, 다시 올라서기를 반복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하도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봐줄 찰스가 아니었다.
“이것도 이겨 내지 못하면서 어떻게 〈총사대〉가 될 수 있나! 타깃은 고작 50m다! 흔들림을 버티며 쏘는 게 어렵다면, 애당초 흔들림을 느끼기 전에 사격해 버리면 되지 않나!”
찰스는 중심을 잡기 위해 애쓰는 훈련단원들의 뒤를 걸으며 소리쳤다.
훈련단원들은 일렬횡대로 늘어서 중심을 잡는 중이었고, 그들의 전방에는 각기 부여된 타깃들이 주기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졌다 하는 상태였다.
찰스의 말처럼 흔들림을 느끼기 전에 쏜다는 것은 즉, 판자 위에 ‘오르자마자’ 쏴야만 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지금 그게 가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판자 위에 서서도 더없이 평온한 얼굴로 호흡을 고르는 사람들이 존재할 뿐이었다.
“음…….”
이하 또한 찰스와 같은 방향을 보며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타다앙─────────……!
두 개의 타깃이 동시에 쓰러졌다.
이번 테스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 브로우리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재장전을 시작했다.
균형을 잡는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하여 아예 흔들림 자체를 상쇄시켜 버리는 그의 감각에, 보결 인원의 몇몇 NPC는 그의 판자에 특별한 장치가 되어 있을 거라고 투덜거릴 정도였다.
“장전이 늦다.”
“여기가 진짜 배였으면 빨랐을 겁니다.”
“이익―…… 후우, 하여튼 한마디를 안 지지.”
찰스와 티격태격하는 다른 한 사람은 엘리자베스였다.
브로우리스와 함께 타깃을 맞춘 그녀는 다소 긴장한 얼굴이었으나 사격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타아아앙─────────……!
그리고 가장 뒤늦게 터진 총성에 웃음소리가 따라붙었다.
찰스는 그 방향을 보며 고함쳤다.
“누가 훈련 중에 이빨을 보여! 한 번의 실수가 네놈들의 대가리를 날려 버릴 수 있음을 모르나! 감히 긴장을 푸는―……. 크흠! 크흠!”
다만 그는 끝까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이하는 이미 허공에서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개다리춤을 추면서 벌벌 떠는 브라운이 있었기 때문이다.
“브라운! 정신 똑바로 차려! 〈총사대〉가 되고 싶지 않나!”
“되, 되고 싶습니다! 아니, 될 겁니다! 반드시…… 반드시 퓌비엘 최초의 머스킷 기사단에 들어갈 겁니다!”
후들거리는 허벅지를 부여잡고, 가뜩이나 느린 장전을 겨우겨우 하는 그를 보며 이하는 이유 모를 통쾌함을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기사단〉을 향한 그의 열망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의 이들에겐 그것이 전부일 것이다.
‘으음, 분명 스토리상으로는 이럴 때 감동을 받아야 할 텐데…….’
〈업적: 나도 이제 기사단원! (A)〉
이하에게 있어선 고작 A급밖에 안 되는 업적이므로 그 분위기가 폄하될 수밖에 없다는 건 안타까운 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