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499
마탄의 사수 외전 (148)
샤즈라시안 연방이 퓌비엘에게 렌스크를 빼앗겼다는 보고를 처음 들었을 때, 그는 믿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이하는 아직 움직이지도 않고 있다. 알렉산더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건만―.’
하나의 도시, 하나의 성을 탈취하는 데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고?
엄밀히 따져 샤즈라시안 연방과 퓌비엘의 전투가 시작되었다는 보고를 들었던 시점을 기준으로하면, 하루가 아니라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고작 반나절의 시간 사이에, 전투다운 전투를 단 한 번도 치르지 않고 성을 제압하려면 어떤 방식을 써야 하는가.
보어만이 가장 먼저 생각한 건 당연히 카렐린의 배신이었다.
고의로 렌스크를 퓌비엘에게 헌납하는 경우를 그려 볼 수 있다.
전차 군단을 준비 중이었다는 건 보어만으로서도 파악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힘겹게 만든 군사를 잃기 싫어서 일부러 렌스크를 내주었을 수도 있다.
‘렌스크 하나를 내주고― 그것을 빌미로 전황을 교착시키기만 할 뿐, 싸우지 않는다면. 렌스크가 막혀 있어서 전투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나로서도 할 말이 없지.’
일리가 있다지만 카렐린으로서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그저 체면치레용 전투 몇 번만 때우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가 자신이 어떻게 나갈 줄 알고?
과거처럼 유저 개인의 입장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지금의 카렐린은 대통령이다.
미들 어스 유저로서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하는 자리에 올라가 있는 게 아닌가.
‘맞아. 그걸 생각한다면 카렐린이 배신할 이유는 없어. 미니스에 대한 국가 채무가 얼마인데 감히― 샤즈라시안에 대한 경제 간섭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이상 절대로 그럴 수는 없어.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 보어만은 중대한 모순에 빠지게 된 셈이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카렐린은 배신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하나의 성을, 반나절 만에 퓌비엘이 빼앗을 수 있었단 말인가!
“아직 하루도 안 지났어! 24시간도 안 지났다고! 분명히 자신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아직…… 크흠, 그렇습니다. 아직 24시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비록 초기 계획에서 사소한 착오가 있었다곤 하지만― 계획의 큰 틀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안심!? 안심을 하라고? 아직 이 보고가 전하께 입수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전하의 귀에 들어가면 자네와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나!? [라이트닝 랜스]만큼은 확실하다면서!”
니콜라스 재무 장관은 사색이 된 얼굴로 보어만을 바라보았다.
평소대로라면 전전긍긍하는 사실상의 상관을 안심시키기 위해 갖은 말을 했겠으나, 지금의 보어만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사성장군이 제안한 작전이 틀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야습 작전인 ‘라이트닝 랜스’는 제1사단장이 제안한 것이었다.
전쟁에 대해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알 수 없었던 보어만의 입장으로선 그저 그의 제안에 힘을 실어 주어 에윈의 대항마로 띄운 게 전부였다.
야망이 있던 NPC는 자신이 직접 최전선으로 나가며 군부 내에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자 했고, 해당 작전의 성공을 자신하던 대장 NPC를 원수까지 밀 수 있다면 미니스 군부 장악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하루 만에 하필이면 빌헬름을 잃게 될 줄이야…….’
물론 그 결과는 최악의 형태로 돌아왔다.
몇 달을 공들였던 군부에 대한 계책은 이제 전부 파기해야 될 지경에 이르렀다.
아직 재정권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사고 있으므로 당장 파면 등의 처벌까지 받진 않겠으나, 개전 초기의 실패에 대해서는 질책을 당할 가능성도 있다.
“그 건에 대하여 에윈 원수는 뭐라고 말했습니까?”
“빌어먹을, ‘앞으로 조용히 있는 게 우리를 도와주는 일이다. 목숨이라도 붙이고 있으려면 나서지 말라. [라이트닝 랜스] 작전에 대해선 추후에 전하께 보고 드리겠다.’라더군.”
니콜라스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보어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라이트닝 랜스 작전의 실패를 국왕에게 보고하지 않는다는 건, 바꿔 말하면 제1사단장의 전사도 아직 알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것을 굳이 보고하지 않은 채 쥐고 있겠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경고……? [라이트닝 랜스]에 대한 실패 보고를 어느 정도 무마해 줄 테니 조용히 있으라는 뜻인가? 에윈이 아무리 초원의 여우라 불린다지만― 어떻게 이런 식의 딜을 할 수가 있는 거지?’
더 이상 군부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
간접적이면서도 동시에 강압적인 협박에 보어만은 간담이 서늘할 지경이었다.
미니스 왕궁에 대한 지배권을 넓혀 가며 에윈과는 그리 자주 부딪친 적이 없다.
지능적인 NPC라곤 들었으나, 이미 수많은 지능적 NPC들을 포섭한 보어만에게는 어려운 일도 아닐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자신이 제1사단장 빌헬름을 대항마로 띄우는 동안 에윈은 별다른 반격도 못 한 채 당하기만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당한 척하던 게 전부 작전이었다고? 아니, 아니……. NPC가 그렇게 오랜 기간에 걸친 술수를 쓴다고?’
보어만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니콜라스가 뒤이어 내뱉은 말을 들었을 때는, 더욱이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망할 놈의 무지개의 기사…… 새파란 애송이 새끼가 감히.”
“예? 무지개의 기사? 〈베르튜르 기사단〉의 라르크 말씀이신지요? 그자가 왜―.”
콧김을 씩씩 뿜어 대는 니콜라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보어만은 라르크를 욕하려 했으나, 그것 또한 자신의 정보력 부재를 나타내는 행동일 뿐이었다.
“이젠 〈베르튜르 기사단〉이 아닐세! 그것도 파악하지 못했나?!”
“예?”
에윈이 그 누구의 입김도 닿지 않는 곳에서 작전실을 따로 운용 중이었다는 걸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이상, 그가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에윈 원수의 육군 본부 소속 정보 작전 참모부, 작전 장교, 대령 라르크! 비록 작전 참모부의 장은 아니지만…… 실무를 통솔함에 있어서는 작전 참모부장을 보조하는 요직 중의 요직이야! 나한테 저런 건방진 말을 지껄인 게 바로 라르크라고!”
그리고 정보의 은폐/조작을 빌미로 거래를 해 오는 자는 NPC가 아니라 유저라는 것 또한 뒤늦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대, 대령? 아니, 그는― 기사단 소속으로 그저 특별 참모 역할에 준하던 게 아니었습니까? 그런 식의 파격적인 특채는 군 내부에서도 반발이……. 더군다나 에윈 원수라 해도 아무런 말도 없이 할 수 있―.”
“있지. 당장 〈제3차 인마대전〉 당시부터 쌓아 온 그의 명성은 오히려 장군급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는 말까지 돌 지경이니까. 무엇보다 지금은 전시戰時가 아닌가. 일일이 유관 부서에 통보할 필요조차 없었던 거겠지. 나조차도 1시간 전에 겨우 파악했네.”
니콜라스는 보어만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 번의 호흡에서 보어만은 니콜라스의 신뢰도가 5% 이상 차감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보어만 또한 입술을 지그시 깨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설령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좋다.
이번 전쟁으로 미들 어스 전역에 대한 영향력만 키울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겨우 이건가?
나름대로 몇 달 이상 공을 들인 계획이 고작 20시간 만에 휘청거려야만 하나?
‘〈제3차 인마대전〉의 주역이라는 놈들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뿌드득.
니콜라스가 흠칫하며 보어만을 바라보았다.
치아를 갈아 내려던 보어만도 황급히 표정 관리를 하며 그를 보았다.
“비록 초기 작전에 대해 실패하긴 했으나 전쟁은 이제 시작입니다, 장관님. 알렉산더는 움직이지도 않았고 크라벤의 해군 또한 곧 퓌비엘과 격돌하겠지요. 하이하가 등장하는 한순간만 포착할 수 있다면…….”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도 좋다.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겁니다.”
결정적인 카드는 단 하나도 꺼내지 않았으니까.
보어만은 니콜라스에게 단언하며 귓속말을 보냈다.
―라르크 님, 혹시 시간이 괜찮으시면 잠시 뵙고자 하는데…….
존칭을 붙이면서도 그 태도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보어만의 이야기를 들으며 라르크는 콧방귀를 뀌었다.
“총사령관님, 자리 좀 비워도 괜찮을까요?”
“……잘 하고 오게.”
“알겠습니다. 그쪽에서 어떤 카드를 더 쥐고 있는지도 알아보고 와야죠. 흐흐,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니콜라스에게 훈계성 발언을 굳이 라르크가 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자신의 위치에 대해 알려 줌과 동시에 보어만을 꾀어내기 위함이었건만 이토록 빠르게 걸릴 줄이야.
‘일단 군부 쪽에 다른 기생충은 없는 것 같은데…… 알렉산더 말고 또 뭘 믿고 난리를 치는지 한번 볼까.’
〈베르튜르 기사단〉 시절에는 단 둘이서 대화를 나누고파도 나눌 수 없었던 인물이 이제는 조급해져 자신을 찾게 되었다는 점.
라르크에게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고무적인 일이었다.
오후 9시경 대담에 나선 두 사람은 자정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즈음, 퓌비엘의 해역에서는 수백 척의 군함이 출항했다.
〈국가전〉의 첫째 날이 완전히 끝났다.
* * *
이하는 모니터를 보며 피식피식 웃었다.
당연하게도 온라인상의 모든 미들 어스 커뮤니티는 〈국가전〉 이야기로 가득했다.
개전과 동시에 미니스의 군세가 피격했다는 이야기도 큰 임팩트가 있는 일이었지만, 지금 당장 게시판을 채우는 내용은 그게 아니었다.
‘하긴, 개전 당시에 이루어진 일이고 이미 둘째 날의 오후까지 되어 버렸으니…….’
로그아웃하고 쪽잠처럼 수면을 취한 사이, 이미 미들 어스에서는 개전 둘째 날의 오후가 되었다.
그사이, 행군의 평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퓌비엘과 미니스 간의 전쟁이나, 퓌비엘의 추격군에서 개별적으로 후퇴에 성공한 샤즈라시안 자이언트들의 온갖 내용이 인터넷에 올라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캬, 렌스크 사태는 파악조차 못 한 인간들이 많구나.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키드 혼자 해낸 일이다.
혜인과 〈별초〉가 추후 투입되어 성 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지만, 그것을 가능케 만든 것도 결국은 키드 한 사람이니까.
샤즈라시안 연방의 전차 군단에 맞서던 키드를 본 퓌비엘 유저들이 있다.
그들은 퇴각하는 샤즈라시안 자이언트들을 쫓아낸 후, 키드가 렌스크 침공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허겁지겁 그 사실을 알렸건만 막상 믿어 주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게 영상을 남겨 놔야 한다니까. 으히히, 〈하얀 죽음〉으로도 하기 힘든 일을 해내고도 묻히게 생겼구만, 키드.”
전우이자 라이벌이 받는 취급이 즐겁다는 듯 이하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샤즈라시안 방면은 당분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전차 군단이 나온다 해도 그 전까지 렌스크를 지킬 수 있다면, 분명 프레아를 포함한 ‘마지노선 공사’가 유효한 방어선이 되어 줄 것이다.
“크라벤 쪽과는 오늘 밤― 아니, 내일 오전부터 본격적인 해전이 벌어지겠지? 오히려 지금 놀라운 건 미니스 쪽이라고 봐야 하려나.”
이하는 제1사단장의 전사 이후 미니스의 반응에 대해 여러 가지 대응책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미니스 소속 유저 중에서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않은 자가 많기 때문이다.
‘분명 그들 중 하나를 이용해서…… 또 뭔가 화려한 승부를 걸어올 거라 생각했는데.’
삐뜨르를 침투시킨다거나 ‘연금술사’ 크로울리, 파우스트 등의 유저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전장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이하 자신이 직접 뛰어든 게 아니라 확신할 수는 없으나, 만약 그들의 활약이 있었다면 커뮤니티가 조용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티가 나는 유저들이니까.’
결국 미니스에서는 그 어떤 랭커급 유저도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뜻일까?
과거의 〈국가전〉처럼 행군의 평원 내에서 고지 하나를 더 차지하기 위해 서로 의미 없는 소모전만을 하고 있다는 뜻인가?
‘적어도 지금 보기에는 그렇다. 그냥 지루한 전투들만 하고 있어. 왜?’
초원의 여우, 에윈이 이런 짓을 할까?
〈제3차 인마대전〉 당시 그랜빌과 함께 〈신성 연합〉을 이끌었던 NPC는 ‘대장군’이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는 자다.
소모전을 하더라도 반드시 어떠한 계략을 이면에 깔고 있다는 뜻이겠으나, 적어도 인터넷에 올라오는 전투 상황 묘사로는 그런 모습을 읽을 수 없었다.
‘아니, 에윈이 그냥 ‘꼬라박는 식’의 전쟁을 할 리는 없어. 개전과 동시에 하는 야습도 그렇고 어쩌면…….’
이하로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윈이 이런 일을 할 리가 없다.
‘보어만의 입김이 닿아 있는 거다. 에윈으로서도 함부로 전쟁에 관여할 수가 없을 만큼 무언가 일이 진행된 상태라면 어떨까.’
미니스의 군부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에윈이 지휘하는 부대라면 미니스 지상군은 로페 대륙 최강으로 인정할 수 있지만, 보어만의 입김이 닿은 일반 NPC 또는 보어만이 직접 개입하는 거라면…….
“한번 가 볼 필요는 있겠어.”
미니스에 심심찮은 타격을 입혀 볼 수 있다. 이하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