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594
마탄의 사수 외전 (243)
콰콰콰콰콰────────!
이하 일행은 말 없이 폭포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말을 하려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
폭포 인근에서 하늘을 날아온 혜인이 열심히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으나 그의 입이 오물거리는 모습만 보일 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에 담을 수 없이 거대한 폭포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음은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조차도 제대로 들리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후우, 끝이 보이질 않습니다. 얼마나 깊은 건지……. 폭포수가 햇빛을 반사시키지도 않는 것처럼 점차 어두워져서 그냥 올라왔습니다.
―쩝, 미치겠네. 혜인 씨가 지금 오르락내리락한 게 한 30분은 넘었죠?
―거의 그 정도 되지요. 자유 낙하 속도에 비할 바는 아니겠습니다만, 그래도 느린 수준은 아닙니다.
혜인의 비행 속도로 편도 15분을 내려가도 끝이 나오지 않는 폭포?
그걸 폭포라고 할 수 있을까?
비단 이하만이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건너편 보이는 사람은 여전히 없죠? 도착했을 때는 오후라 해가 없었다 쳐도 이제 완전 한낮인데.
이하의 귓속말에 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하물며 건너편도 보이지 않는다.
이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꿰뚫어 보는 눈〉에도 건너편의 형태 자체가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현실에서라면 존재할 수조차 없는 지형이지만 게임 속에서는 그리 특별할 게 없다.
미들 어스가 아니라도 이러한 식으로 표현하는 게임은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적으로 구현하지 않은, 사실상 지도의 끝. 여기가 [세상의 끝]이라는 건가?’
더 이상 지형을 생성하지 않은 채, 현재까지 만들어 둔 지형을 마감하기에 ‘폭포’라는 개념만큼 환상적인 건 없으니까.
마나를 거의 다 소진한 혜인이 헉헉거리며 명상 스킬을 사용하는 동안, 다른 유저들도 곳곳에 흩어져 주저앉아 상황을 그리고 생각을 정리했다.
‘〈사우어 랜드〉 쪽에서 더 나아갔어도 이랬을까?’
에리카 대륙의 동쪽 끝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다만 이하를 포함한 다른 유저들도 에리카 대륙 동부 끝에 위치한 〈사우어 랜드〉에 출입한 게 전부일 뿐, 〈사우어 랜드〉에서 다시 동쪽으로 한없이 나아간다면 무엇이 나오는지는 확인한 바가 없지 않은가.
―으음…… 뭐, 게임에서도 그렇지만 영화나 만화에서 보면, 확실히 이런 폭포 느낌으로 뭔가 이승과 저승이 나뉘고, 거기서 떨어지면서 뭔가 딱! 됐던 것 같은데.
―혜인 오빠가 15분을 내려가도 발 디딜 곳이 없는 폭포에서 떨어지자고요, 기정 씨?
―구, 굳이 그러지 않아도― 떨어지는 엘리베이터에서 점프하듯이 뭔가 지면에 닿기 전에 딱…….
보배의 추궁을 받으며 기정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혜인은 피로한 와중에도 피식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케이, 람화정 씨 정도라면 자유 낙하 도중에도 스킬 캐스팅을 할 수 있겠지만…… 아니, 하물며 내 한 몸도 아니고 전원의 목숨을 책임질 정도의 도박은 못 하겠구나. 〈블링크〉는 운동 에너지까지 상쇄시키는 게 아니라 불가능할 테고 말이야.
물리 직업군과 마법 직업군의 스킬 발동 방식은 많이 다르다.
혜인 또한 나름대로 경지에 오른 유저 중 하나였음에도, 그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았다.
―아뇨, 뭐, 그냥― 보통은 뭐, 그랬다는 거죠. 어차피 탈 것도 없고…… 부담 갖지 마세요, 혜인 형님.
기정이 손사래를 치는 모습을 보다, 이하는 문득 생각났다.
―아, 탈 거. 탈 거 있다.
―응?
―……하루 종일 헛짓거리 하다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러는 거지.
루거가 꽤 까탈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이하는 민망해져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흐레째에 도착하여 오늘이 딱 열흘째 되는 날이다.
48시간 동안 수면을 취하지 못한 두뇌는 아무래도 빠릿빠릿하게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아, 아니. 배가 있긴 있거든? 있긴 있는데…….
이하는 자신의 가방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내어 들었다.
잘 봉인된 유리병 안에는 물이 얕게 차 있었다.
그 위에서 두둥실 떠 있는 모형 선박이 유저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하는 다시금 아이템의 설명을 살폈다.
〈다섯 개의 강을 건넌 신화 속 선박의 모형〉
설명: “그곳까지 가려면 말이야, 이 배를 타고 다섯 개의 강을 건너야 한다고 전해진단다. 첫 번째 강에서 이미 압도적인 무력감이 밀려와 모두가 돌아간다고 전해지지…….”
단서는 분명히 있었다.
그것도 두 개나.
―이 배를 타고 건넌다, 라고 되어 있어. 생각해 보니 배를 만들어서 가져올 수도 없고, 뭐, 내가 생각했던 ‘강’이라는 개념은―. 그 알잖아요, 다들? 저승의 뱃사공~ 뭐 이런 거! 그런 걸 생각했던 건데…….
비단 상상 속의 나룻배가 아니더라도 유리병 안의 선박과 유사한 배가 첫 번째 강 인근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는 강 주변에서 모형 선박을 참고하여 선박 제작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면?
―이 유리병을 땄을 때…… 선박이 나온다거나?
아이템의 설명, 문자 그대로라면?
말 그대로 ‘이 선박’을 타고 강을 건널 수 있다고 본다면?
이하의 말이 끝날 때쯤, 곳곳으로 흩어졌던 유저들은 모두 이하의 주변으로 모여 있었다.
―일리 있습니다.
―아, 그 옛날 만화의 ‘캡슐’처럼? 펑! 하면서 배가 나온다고?
―망할 자식이, 진작 그거부터 깠어야지! 괜히 하루만 날렸잖아!
서로가 한마디씩 내뱉고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유사했다.
젤라퐁에게 포박당한 삐뜨르조차도 뒤로 벌렁 누워 발로 박수를 치며 이하의 의견에 동의해 주고 있을 정도였다.
―으음, 근데 그래서 배가 나온다 한들, 그다음은요? 옆에 강이 엄청나게 넓으니까 분명 배도 뜰 수는 있겠지만 유속이 빠르잖아요? 배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아무리 큰 배라도 떠내려가지 않을까 싶은데.
라파엘라가 초췌한 얼굴로 말했다.
눈앞에 있는 막대한 크기의 폭포가 이루어질 수 있는 건 그만큼 넓고 많은 물이 쏟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하 일행이 줄곧 정서 방위를 향해 이동하며, 옆을 따라 흐르던 작은 물줄기가 어느새 저렇게 큰 폭포를 이루게 될 정도로 넓어 진 게 아닌가.
폭포의 인근이므로 당연히 그 유속도 장난이 아니었으며, 비교적 느린 유속의 지점으로 가려면 최소 5시간 이상의 거리를 다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닻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옳겠으나……. 이럴 줄 알았으면 크라벤 왕국에서 한 사람 넣을 걸 그랬네요. 뭐, 저도 기초적인 범선 조작은 할 줄 알긴 하지만요.
물론 단서를 찾은 이상, 이들에게 문제될 건 없다.
애당초 페르낭을 이 집단에 포함시킨 이유는 그가 모험과 관련된 일에서는 만능이기 때문이니까.
오히려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이힛! 그럼 그 배를 꺼내서 타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강의 건너편으로 가는 건가? 근데 강의 건너편이라면 남쪽 방위에 가깝지 않아요? 아, 북쪽으로 쭉 가면 뭔가 또 있으려나?
그들은 줄곧 서쪽으로만 왔고 마침내 폭포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즉, 더 이상 서쪽 방위에는 폭포밖에 없다는 뜻.
그러나 강을 건넌다는 건, 말 그대로 강 건너편의 육지에 도달하는 게 목적이라는 의미다.
그들이 현재 있는 장소로부터 ‘강을 건널 때’ 그 목적지는 남쪽 또는 북쪽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다시금 모두가 고민에 빠졌으나 이하의 입꼬리는 올라간 상태였다.
그가 찾아낸 두 번째 단서가 바로 이것이었으니까.
―아뇨. 그대로 서쪽으로 갑니다.
―포, 폭포에? 기껏 배까지 찾았으면서 왜―. 아니, 배가 뭐 하늘을 나는 기능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형?
―모르겠어. 하지만 우리가 제대로 온 건 확실한 거 아냐?
―뭐가?
이하의 미소를 보며 키드의 눈이 커졌다.
적어도 아이템의 설명을 들은 적이 있던 유저들은 모두 같은 반응을 보이는 중이었다.
―아, 압도적인 무력감……! 모두 돌아간다고―.
―맞아요. 분명 무력의 정령여왕도 자신의 힘이 닿은 건 아니라고 했어. 정령의 힘이 아니지만 무력감을 느끼게 만드는 거라면…….
사람이 질겁할 정도의 거대한 자연에서 오는 무력감.
즉, 눈앞의 폭포가 바로 ‘첫 번째 강’이 아닐까.
이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배를 타고 가는 겁니다, 저 폭포를 향해서.
세상의 끝을 그리 호락호락하게 갈 수는 없을 터, 반드시 그에 따른 용기는 필요하리라.
―으으, 근데 너무 지쳤으니까…… 재정비만 잠시 할까요? 미들 어스 시간으로 사흘 후에 다시 여기서, 콜?
현실의 시간으로 약 14시간 30분.
밀린 수면을 보충하기에도 부족하지만, 애당초 이곳까지 온 사람들은 모두 각오하고 있던 바였다.
―흐아아암, 일단 자고 일어나서 씻어야겠다.
기정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로그아웃을 준비했다.
로그아웃을 준비하는 몇몇 유저들 사이에서 삐뜨르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지만 그뿐이었다.
어차피 이하가 지닌 아이템이 없다면, 먼저 접속한다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혼자 영계에 간답시고 함부로 폭포 아래에 몸을 던지는 각오 따위를, 〈미드나잇 서커스〉의 단장이 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 사흘 후에!
유저들은 모두 로그아웃했다.
그들이 처음 폭포를 마주하고 약 18시간가량이 더 지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18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바사삭― 바스락……!
이하 일행이 미리 정리했던 주변 몬스터들이 다시 ‘리젠’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는 뜻이었으며.
“하아, 하아…… 겨우― 겨우 따라잡았네.”
동시에 삐뜨르의 뒤에서부터 줄곧 이하 일행을 쫓아오던 자가 도착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라는 의미였으니까.
터억, 터억, 터억.
“여기가…… 거긴가?”
지팡이가 흙바닥을 짚는 거친 소리와 함께, 그 또한 [세상의 끝]으로 가는 첫 관문에 다다르게 되었다.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성취감과 안도감에 당장 벌렁 드러눕는 행위도 하지 않았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폭포와 그 주변 인근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더 이상 아무도 없었다.
“몬스터를 상대할 때 이미 반응이 없었으니까…… 로그아웃이겠지.”
자신이 쫓던 목표들이 모두 사라졌음에도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유저들의 행동 패턴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러면…….”
그는 약 20여 분의 시간 동안 폭포 너머는 물론, 폭포 아래와 강 건너를 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곤 다시 약 30여 분간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를 몇 번.
도착 1시간 만에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기 시작했다.
* * *
이하는 미들 어스 접속기 앞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충분히 잤고, 충분히 먹었고, 충분히 쌌고…….”
단순히 신체적 리듬만 되찾은 게 아니다.
람화연이 깔끔하게 현황을 정리해서 보내 준 [샤즈라시안 연방 북부] 팀과 [크라벤 남부] 팀에 대한 정보도 보았다.
샤즈라시안 북부 팀은 여전히 힘겹긴 하지만 루비니의 합류 이후 압도적으로 상승한 효율성 덕분에, 전과 같은 대참사는 벌어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크라벤 남부. 르뤼에의 파편 기둥을 찾았다던 군도 인근에서 강렬한 반응을 보였지만 일순간일 뿐, 그 후로는 다시 아무런 성과도 없다고 했지.’
드레이크를 포함한 수색대는 군도를 사실상 점령, 그들 중 대다수를 죽이고 몇몇을 생포하여 에즈웬 교국 인근으로 보냈다고 했다.
‘과거 베르나르가 그곳에서 겪었던 것과 다르게, 이번엔 반항도 별로 없었다는 게 특이점이라고 해야 하려나.’
[절망의 미래] 내 감염체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한 수준의 전투력이 있었다는 베르나르의 증언과 달리, 매우 손쉽게 점령이 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는 람화연의 메모도 있었다.성과라면 성과라 할 수 있지만 숨어 있는 크툴루들을 찾아야 하는 본격적인 목표에 비한다면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으으으, 그쪽도 미들 어스 최고의 팀 중 하나인데 뭔 걱정이냐. 나나 잘해야지.”
그리고 세 번째, [세상의 끝]으로 향하는 이하 자신의 팀.
첫 번째 강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첫 번째 강을 건널 만한 단서까지는 찾았으나 그것이 실제로 유효한 계획인지는 이제부터 테스트해 봐야 하지 않는가.
만약 먹히지 않는다면, [크라벤 남부] 팀보다 이하 자신의 팀이 뒤떨어지게 될 테니까.
이하는 스트레칭을 마치고 미들 어스 접속기에 몸을 뉘였다.
시간은 약속 시간 정각.
“후우…… 가자, 로그인.”
───────────……!!!!
몇 번을 경험해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추락감에 몸이 움츠러들 무렵, 이하는 어느새 지면을 밟고 서 있었다.
이하가 가장 먼저 본 것은, 기정을 비롯하여 약속 시간 전에 먼저 접속했던 팀원들의 표정이었다.
“기정아? 표정이 왜 그래?”
“혀, 형…… 빨리. 빨리 와서 이것 좀 봐 봐.”
기정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하를 향해 손짓했다.
이하는 어쩐지 불길한 마음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그리고 바닥에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
[첫 번째 강은 여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폭포 아래에 무언가가 있는 걸 보았는데, 다만 내려갈 방법을 찾지 못한 게 아쉽게 되었습니다. 이 메모는 미들 어스 기준 9일 10시경 작성되었으며 작성자 본인은 11일 정오 무렵 다시 접속하도록 하겠습니다.]“뭐야…… 이게?”
매우 공손하지만, 매우 얼토당토않은 메모였다.
미들 어스의 시간으로 오늘은 11일 오전 10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