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907
마탄의 사수 외전 (556)
인스턴스 던전처럼 완전히 단절된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된 자만 아니라면.
현재 미들 어스에 접속 중인 모든 유저는 장소를 불문하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필드 사냥터에 있는 유저들도 마찬가지였다.
불과 몇 초 전까지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던 파티원들조차도, 탱커는 탱킹을 못 하고 딜러는 딜을 못 넣고 힐러는 힐을 써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우두커니 서 있는 상황이라니.
놀라운 점이라면 그 와중에도 그들이 죽지 않았다는 것일까.
그들을 공격하던 ‘몬스터’들조차도 지금은 모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미들 어스가 유저들에게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상황임은 분명했다.
콰과과과과───────ㅇ!
천둥소리와 동시에 다시금 번개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몇 줄기로 허공을 수놓으며 빠르게 사라진 그 빛에 의지하여 그리고 그 빛이 남기고 간 잔영에 의하여 다시금 유저들은 보았다.
짙은 고동색, 밤색의 하늘 너머에 고고히 존재하는 무언가.
빛이 번쩍이는 찰나와 그 잔영이 망막에서 사라지는 짧은 사이에도 ‘어떤 움직임’을 보인 무언가.
그것만으로도 어떤 유저들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떤 유저들은 손에 힘이 빠져 쥐고 있던 무기를 놓치고 말았다.
특히 그 상황을 집단이 아니라 개인으로 마주한 유저들 중 몇몇은 더 이상 생각 자체를 않고 로그아웃을 한 자도 있을 정도였다.
그나마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유저들과 함께 있거나, 적어도 미들 어스를 기준으로는 ‘안전함’이 보장되는 장소, 즉, 거대 도시 안에 있는 자들은 겨우겨우 반응을 보일 수 있을 지경이었다.
“저, 저게……. 저게 뭐야?”
“어떻게 된―. 뭐지?”
“크툴루인가, 그거? 크기가―. 저렇다고? 뭐야? 대륙이랑 싸우라는 거야? 우리는 도대체 뭐랑, 어떻게…… 뭘……”
단순히 오우거나 트롤 정도의 대형 몬스터 외에도 에 참가했던 유저라면, 설령 참가해 본 적이 없어도 [메모리얼 던전]에서 ‘티아마트 편’을 한 번 관찰이라도 했던 유저라면 일반적인 크기를 압도적으로 넘는 [초대형 몬스터]의 존재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있는 유저들에게도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자신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생긴 것조차 비정형으로 봐야 한다는 겁니까. 도저히 어떠한 생김새라고 볼 수 없는 저것들을 크툴루라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까…….”
그 대표적인 유저 중 한 사람이 키드다.
마魔 에얼쾨니히를 눈앞에서 본 [속사]의 키드조차 자기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고 싶다는 본능이 샘솟을 정도의 압력.
하물며 다른 유저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창밖으로 고개를 쭈욱 내밀고 관찰했던 캐슬 데일의 유저 몇몇은, 더 이상 그것을 바라보는 것조차 곤욕이라는 듯 이미 안으로 들어와 고개를 돌려 버린 상태가 아닌가.
마주하기 싫을 정도의 공포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존재]만으로 퍼뜨리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이들과 함께 있는 건 삼총사의 ‘두뇌’뿐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루거는 이를 악물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냐…… 아니다, 저건―. 한 놈이 아니야. 키드, 눈 똑바로 뜨고 쳐다봐라. 지금 로페 대륙에 떠 있는 놈은 하나가 아니다.”
“……아. 그런 겁니까. 분명―. 르뤼에에 있던 위대한 옛 존재는 네 개체라고―.”
“그래. 네 마리가 다 떠 있는 거겠지. 빌어먹을,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저건 말이 안 되는 크기지만…….”
두 사람은 동시에 마른침을 삼켰다.
둘 모두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점이 또 있었으니까.
지금은 당장 이곳, 미들 어스의 ‘행성’ 내부에 존재하던 위대한 옛 존재 네 기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네 기에 한정되는가.
‘과연……. 네 기만으로도 이런 압력이라면, 밀그램의 홀로그램도 이해가 갑니다.’
‘라고 했나. 지옥 그 자체였겠어. 지금 눈에 보이는 저런 망할 것들이 최소 열 개체 이상 이곳에 온다고 한다면……!’
아직 우주에 있는 ‘위대한 옛 존재’도 있다.
페르낭이 [절망의 미래] 시점의 에즈웬 교국 교황청 광장에서 확인한 ‘만신전’과 같은 유물이 있다.
애당초 심연에서 우주로 나가 그것을 직접 목격하고 온 이하와 이지원이 있다!
그러한 위협은 단지 밀그램의 허언이 아니며 언제라도 현실이 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는 걸 두 사람은 알았기에, 더 이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던 셈이었다.
다만 키드가 치아에서 바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힘을 주며 그것을 버티고 있었다면…….
“루, 루거 씨, 아파요.”
루거는 자신의 곁에 있는 루비니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끌어안아 그것을 버티고 있다는 게 차이일 뿐이다.
“엉? 앗, 그, 읍?”
그것만으로도 그가 본능적으로 느꼈을 공포와 압박감에 대해 알 수 있을 정도.
키드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곤 다시금 창밖으로 상체를 내밀었다.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합니까, 루거.”
저들이 로페 대륙 상공에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저 구름 너머에서부터, 자신들의 본체 전부를 보여 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하늘을 뒤덮은 실루엣을, 그것도 순간순간의 빛에만 의지해 그 모습을 드러낸 의미는 무엇인가.
진지하게 묻는 키드의 목소리에 루거는 당황하여 답했다.
그러나 그 ‘당황’이야말로, 온몸에 들어갔던 불필요한 힘을 조금이나마 빼 주는 주요한 역할이었던 것!
“모, 모르지. 아니, 크흠, 이제 와서 생각하니 저 크기가 당연히 실체이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환영일 수도 있어. 이환이었던가, 그 망할 마술사만 해도 우리 눈을 쉽게 속이는데 하물며 저런 놈들이라면 그런 건 식은 죽 먹기겠지.”
횡설수설 떠든 루거였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키드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루비니 또한 안대 너머의 눈꺼풀이 깜빡거리는 동작이 안대 밖으로 드러날 정도의 발언이었다.
“그렇……네요. 모두가 저 모습에 넋이 나가 버렸지만……. 모두가 [절망의 미래]니, ‘위대한 옛 존재’니 하는 것에 너무 심취해 있지만―.”
“실체는 저게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그, 렇지! 그거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였다고. 키드 네 녀석 말이야, 내가 루비니랑 잠깐 그런 이야기를 나누려고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 저기…….”
루비니를 안고 있었던 게 실수라 말하려 했지만 그렇게 말하면 루비니가 상처받을지도 모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루거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당혹감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루비니를 번갈아 보다, 키드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상공에 있는 존재들이 환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린 자’가 몇이나 될까.
그 발상만으로도 이미 어깨에 힘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다.
그렇다면 더욱 예리한 발상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그 의도는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시각적 효과로 모든 유저를 얼어붙게 만들었다면 공습이나 폭격…… 또는 그와 유사한 기습 공격의 형태가 함께 되어야 효과가 배가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들이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위대한 옛 존재’들이 실체인지, 허상인지에 대해서 생각한 자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적어도 [팔레오 연합]의 신나라나 에즈웬 교국의 베르나르, 라파엘라 그리고 샤즈라시안 연방의 카렐린, 이고르, 짜르의 인원들 등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의도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답은 굳이 유저들이 찾을 필요가 없었다.
잠시 후, 대륙 곳곳의 상공, 흑색에 가까운 짙은 갈색의 하늘에 푸른 글자들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니까.
이 행성의 생명체에게 알린다.
그것은 미들 어스에 로그인한 유저라면 역시 던전 내부 등을 제외하고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그들’의 포고문이었다.
* * *
신나라의 시선은 여전히 허공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가 지휘하는 [팔레오 연합]의 본부 상공에서도 ‘당연히’ 그들의 포고문은 보였기 때문.
“이환 씨! 어때요?! 환영 맞죠?”
“다, 당연히…… 환영일 겁니다. 모든 대륙의, 모든 위치에서 보이게끔 곳곳에 띄우는 건 어마어마한 마나가 소모되겠지만 어쨌든 저들이 지닌 힘의 총량이 과거의 마魔, 에얼쾨니히와 유사하거나 그 이상급이라고 본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녀가 다른 랭커급 유저들에 비해 비교적 패닉에서 빠르게 탈출할 수 있었던 건 이환이 [팔레오 연합]에서 주로 함께했던 덕분이었다.
“하지만?”
다만, 직업군 중 최고 수준에 달하는 이환조차도 그들의 모든 능력을 파악할 수는 없다는 게 문제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엄청난 일입니다. 완벽하게 환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게, 환영임을 간파했을 때에는 반드시 그것이 파훼되기 마련이건만…… 지금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죠. 결국 저것은 환영이자 또한 환영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이 환영이냐/환영이 아니냐 정도를 가려 내는 것만으로도 이환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트릭’과 관련된 기술을 실제로 적용해 보며 그 가능성을 점쳐 봐야 했으니까.
그리고 이환은 불과 얼마 안 되는 시간 만에 그 결론을 내린 셈이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죠?”
“100% 환영이 아니라는 겁니다. 저 능력은 환영만으로 될 게 아니라…… 아니, 그렇다고 본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환영의 힘을 빌린 것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본체, 그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인지…….”
저들을 읽어 내는 건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 하이하 씨를 비롯해서 모두가 네 개체라고 했는데 네 개체 모두가 저런 힘을 낼 수 있는 것인지……? 눈에 보이는 것은 단지 환영이고 애당초 르뤼에로부터 빠져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 그렇다고 보기엔 당장 허공에 적히는 그들의 말은 분명히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환영이란 결국 보는 이로 하여금 ‘그렇다’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 만약 저게 착각이 아닐 거라고 한다면―. 들이나 마魔 에얼쾨니히도 보여 주지 못했던 힘을 낼 수 있다? 새, 생각해 보니 하이하 씨가 《마탄》을 사용해도 그들을 죽일 수 없을 거라고 했죠. 네, 맞아요. 아마도 르뤼에…… 르뤼에라는 존재? 개념? 그것이 있기에? 만약 저들이 그 르뤼에라는 것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셈이라면―. 그것을 활용해 저런 식으로 할 수 있다면―.”
“이, 이환 씨……?”
신나라는 횡설수설 두서없이 말하는 이환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가 정확히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혜인이나 비예미와는 또 다르게, 비교적 언제나 여유를 갖고 미소를 보여왔던 다.
본인 스스로가 여유롭고 즐겁지 않으면 ‘관객’을 속일 수 없다, 라는 기치 하에 언제나 일정 수준 이상의 여유를 두었던 이환이다.
‘그런 사람이…….’
지금은 여유를 갖긴커녕, 눈앞에 있는 신나라 자신의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공포……라기엔 조금 다르다. 이건 공포가 아니야. 지금 이환 씨의 상태는 공포 때문에 벌어진 게 아냐.’
와 같은 개념이 아니다.
지금 이환의 상태를 과연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적어도 신나라 자신이 개입하여 그를 당장 정상으로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것만을 알 뿐이었다.
‘저 말 중에도 어떤 단서가 있을지 모르지만 어차피 지금은―……. 내버려 둘 수밖에 없겠어.’
그에게 시간이 필요한 것 외에도, 마침내 모두를 집중하게 만든 그들의 ‘포고’의 첫 문장이 허공에 떠올랐으니까.
우리를 받아들여라.
“우리를―.”
“받아들여라? 받아들이라는 건…….”
[팔레오 연합]의 유저들이 중얼거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자는 없었다.
로페 대륙의 모든 생명체에게, 나아가 미들 어스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향해 크툴루를 비롯한 ‘위대한 옛 존재’가 처음으로 표현한 행위였다.
“항복 권고……?”
[절망의 미래]의 시작은 항복 권고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