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838
마탄의 사수 (838)
“그래도……. 리스크가―”
“할 수 있을 겁니다. 교황 성하께서 이런 버프까지 걸어 준 것도, 향후 참가하는 파티원 모두 이런 버프에 걸릴 것을 생각한다면…… 분명히 가능한 퀘스트이기 때문에 등을 밀어주시는 걸 거예요.”
기정은 눈을 반짝이며 라파엘라를 보았다.
라파엘라는 잠시 놀란 눈으로 기정을 마주 보다 곧 옅은 웃음을 머금었다.
“……보통 사람이 그런 얘기를 했다면 엄청 가식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네?”
“NPC잖아요. 로메로 추기경, 아니, 이제 우르바노 2세 교황에게 그 정도의 믿음을 보이신다는 게…… 남들이 그랬으면 가식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마스터케이 님의 눈을 보니 가식이 아닌 것 같네요.”
“어!? 그, 그게 로, 로메로 추기경님이― 아, 물론 NPC인데! 뭐랄까, 그, 인품이라는 게 있잖아요? 프로, 프로그래밍된 인품이라고 하자니 조금 껄끄럽지만 하여튼 그―”
“풉!”
라파엘라는 은수저로 테이블을 땅땅땅 내리치며 웃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횡설수설 떠들던 기정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얼굴은 이미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좋아요.”
“네?”
“마스터케이 님의 믿음이 단순했다면 유저 최초의 추기경이자 〈홀리 나이트〉가 되실 순 없었겠죠. 별초의 길드도 그렇고, 계산에 따른 믿음이 있다고 저 또한 믿겠습니다. 조금 불안하지만 이걸로 죽기를 각오하고 도전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라파엘라의 똑 부러지는 발언에 기정은 당황했으나 반박할 수 없었다.
‘아뇨, 계산 따윈 없었는데요.’라고 말했다간 그녀의 태도가 다시금 변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피로트-코크리는 어디서 찾죠? 우선―”
“아! 그건 제가 찾아볼게요.”
“마스터케이 님이요? 짚이는 데라도 있으세요?”
“뭐, 조금요. 라파엘라 님은 남은 파티 구성에 대해 고민해 주세요. 저도 몇 명 생각나는 게 있으니 다녀와서 다시 한 번 이야기해 보죠. 시간 남으시면 교황청 도서관에 피로트-코크리 자료가 있을 테니 그것도 한번 확인해 주시고요.”
기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금 전까지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사람이 맞나, 라는 표정으로 라파엘라는 기정을 보고 있었다.
“그럼 미들 어스 시간으로 이틀 안에 재접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기정은 라파엘라와 친구 추가하며 빠르게 로그아웃했다.
현실로 복귀하자마자 그가 찾을 사람은 당연히 한 명뿐이었다.
* * *
“라파엘라가 그런 캐릭터였다고? 성녀聖女가?”
―성녀는 무슨! 장난 아니라니까. 무슨, 이야, 나는 무슨 회계사? 회계사도 그렇게 꼼꼼하게 계산 안 할 것 같더라.
“너 회계사가 뭔 줄 알아?”
―엉아야! 나 경영학과라니까.
“……방금 전에 회계사? 하면서 말꼬리 높여 놓고는 무슨.”
이하는 기정과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두 사람 모두 통화상으로는 웃고 있었으나, 얼굴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피로트-코크리 퀘스트라…….’
기정에게서 이미 퀘스트와 관련된 모든 사항에 대해 들었고, 이하 또한 라파엘라와 비슷한 생각부터 떠올렸었다.
‘아무리 기정이 놈이 강해졌다지만……, 파티 하나로 잡을 수 있을까?’
이하는 상황을 천천히 그려 보았다.
기정이 변신하고 달려드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공격하고, 자신은 기회를 보며 저격한다?
‘그림은 나오지만 무리다. 무엇보다 그쪽에서도 내 위치를 금방 알 수 있는 이상, 단순히 기정의 파티에 참가해서 함께한다는 건 오히려 위험을 부르는 짓일거야.’
―형은 진짜 안 한다고? 뭐, 피로트-코크리가 있을 법한 장소를 알려 준 것만으로도 고맙지만…….
“안 하겠다기보다는…… 아직 잘 모르겠어. 말했다시피 나는 페널티가 있거든. 네가 공략할 때도 마찬가지일 거야. 파티원이 죽는 게 단순히 죽는 게 아닐지도 몰라.”
아군의 숫자만 주는 게 아니다. 그 사망한 아군이 적이 되어 일어설 테니까.
심지어 그 대상이 자신이라면?
‘장난감이라고 친히 불러 주며 나를 잡아먹기 위해 이를 갈고 있을 텐데……. 일반적인 몬스터도 아니고 ‘절대’라는 가정을 할 수가 없어. 절대 안 죽는다는 보장 따위는 없다.’
120% 이상의 능력을 지닌 언데드 하이하를 생성시키고 싶지 않다는 게 이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하얀 죽음〉을 위해 블랙 베스의 충전율을 올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
기정이 걱정되긴 하지만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에 매달리기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적었다.
―그래, 아쉽지만 할 수 없지. 엉아가 세져야 또 나중에 나 도와줄 거 아냐.
“흐흐, 이 자식은 프로 김칫국 드링커네. 피로트-코크리도 마찬가지야. 내가 파티에 참여할 수는 없겠지만, 혹시 도울 일 있으면 말해. 정보 길드랑 여기저기 아주 그냥 탈탈 털어 줄 테니까.”
―오! 하긴, 그런 방법이 있구나! 그럼 형은 걍 깍두기로 참가해 줘.
기정의 목소리는 금세 밝아졌다.
“그리고 삐뜨르……한테도 말해 볼게. 내 귓속말은 받을 테니까. 이지원 쪽도 그렇고.”
―응. 그래 준다면 고맙지. 라파엘라도 미니스 소속이니까 치고받고 싸우진 않을 테고. 이지원 씨가 2차 전직으로 피로트-코크리 사냥! 이런 퀘 떴으면 그야말로 대박일 텐데.
“크크, 그렇게 쉽게 가겠냐. 이지원은 가능성이 낮고 삐뜨르 쪽 설득할 생각이나 해. 랭킹을 떠나서, 삐뜨르만 끌어들여도 미드나잇 서커스를 한편으로 얻는 셈이니까.”
―역시 형한테 전화하길 잘했다. 전투보다 더 도움되는구만.
기정의 감탄은 결코 입바른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듣던 이하가 되려 쑥스러울 정도였다.
“시끄럽다, 인마. 그런 퀘 하려면 로그아웃 힘들 테니까 많이 먹고 푹 자 둬.”
―난 방금 일어났는데 뭘. 형이나 자.
“오케이. 나 잔다.”
이하가 로그아웃한 이유도 애당초 취침을 위해서였다.
미드나잇 서커스의 단장 퀴담에게 시간도 줄 겸, 블랙 베스의 충전율을 채울 ‘노가다’를 위한 체력 비축 겸 숙면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하는 기정과의 통화를 마치고 자리에 누웠다.
‘푸른 수염과 기브리드, 피로트-코크리에…… 카즈토르. 치요도 만만찮고.’
현재 자신의 적은 누구인가.
누구와 싸워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하는 한숨을 내쉬며 적들을 분류해 보았다. 예전에 비하면 오히려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여기저기 흩어진 데다, 누가 누구의 편인지 무엇을 노리는지도 모르던 그때에 비하면 훨씬 낫지.’
마왕의 조각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 그들이 모여 있다.
적어도 신대륙 서부로 대규모 침공을 감행하지 않는 한, 그들은 신대륙 동부의 어딘가에 주요 근거지를 확보하고 키메라 군단 등을 모으고 있을 것이다.
‘팔레오들의 〈게릴라〉 활동과 〈신성 연합〉 덕분에 전선戰線도 충분히 예상되고…… 오염된 세계수의 숲을 기점으로, 모든 공방전이 이루어질 테니까.’
그런 관점으로 보자면?
‘기정이한테 피로트-코크리 퀘가 뜬 게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몰라.’
구대륙의 골칫거리를 맡아 줄 사람도 있다.
퀘스트의 성공 확률이나 피로트-코크리와의 상성 등을 고려하자면 역시 신성력을 보유한 유저들이 나서는 게 낫지 않겠는가.
시티 가즈아가 특별히 위협받지 않는 이상, 구대륙에서 이하 자신이 굳이 나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 나는…….”
이하는 눈을 감고 잠자리에서 뒤척였다.
“신대륙으로 가야겠어.”
블랙 베스의 퀘스트와 적의 추격.
이제부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 이하였다.
그 무렵, 기정은 다시 미들 어스에 접속한 상태였다.
미들 어스 시간으로는 약 14시간가량이 흐른 시점이었고, 라파엘라는 어느새 멤버 하나를 섭외한 상태였다.
“어…… 그분은―”
“적의 아지트로 쳐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찾아서’ 죽여야 한다면, 이분이 계시는 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라파엘라는 자신의 옆에 선 여성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눈을 가리고 있었음에도 여성이 어떤 표정인지 기정은 알 수 있었다.
부끄러워하는 모습으로 기정과 기정의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람.
안대를 차고도 플레이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인물.
신대륙 항행 원정 이후의 신대륙 탐험을 계기로 라파엘라와 친해졌던 여성.
“루비니 님?”
미래를 예견하는 자, 〈닥터 둠〉이라 불리는 오라클 직업의 루비니가 서 있었다.
“퀘, 퀘스트에 포함해 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여러분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저는 그것으로 족해요. 전투 능력 자체는 뛰어나지 못해서……. 피로트-코크리를 찾기까지는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기정은 루비니의 말을 들으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라파엘라는 기정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파티원은 다섯 명이 전부다. 그리고 루비니라면 파티원이 되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다.
그럼에도 이번 퀘스트의 메인이 되는, 그 귀중한 소수에 포함시키려고 그녀를 부른 게 아니라 그저 ‘길잡이’ 역할만 맡기기 위해 섭외했단 말인가?
‘대단해! 나머지 자리는 더 확실하고 강력한 전투 인원으로 메꾸려고!?’
계산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빠른 여성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며 기정은 루비니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 그렇게 먼저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파티원까지는 안 되더라도 저 또한 퀘스트 보상 등은 루비니 님과 충분히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겠―”
“그런데 혹시…….”
“네?”
기정이 겸연쩍게 말을 하는 도중, 루비니는 그의 말을 끊으며 우물거렸다.
라파엘라는 재빨리 루비니의 어깨를 톡, 치며 웃었다.
“그런 거 물어보는 거 별로일 텐데, 언니?”
“그, 그래도― 궁금은 해서…….”
그녀는 어떻게 루비니가 도우미 역할을 자처하게끔 만들 수 있었는가.
기정은 두 여성의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안전한 퀘도 아닌데 혹시 위험이 될 만한 일이 있을지는 충분히 아셔야―”
“그게 아니라요. 저기, 그…….”
또 한 번 우물쭈물하는 루비니를 보며 기정이 답답함을 느낄 때쯤, 루비니가 ‘본론’을 꺼냈다.
“하이하…… 님은 오시나요?”
“네?”
잠시 당황했던 기정은 라파엘라의 기묘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마침내 루비니의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엉아…… 복도 많다, 진짜로.’
피로트-코크리를 찾기 위한 강력한 아군 한 사람이 영입된 순간이었다.
* * *
이하가 접속해서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역시 충전율이었다.
적어도 블랙 베스가 깨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처음으로 현실 시간의 날짜가 바뀐 상태였기 때문이다.
“……뭐, 예상은 했어. 그치, 당연한 거지. 30% 이상이면 기상하고 10% 미만이면 취침이라고 표현한 것 자체가 그걸 가정하고 있는 셈이니까…….”
〈눈을 뜬 전설의 블랙 베스(1차 강화―용암)〉
(거래 불가)
추가 효과―3: 충전율 30% 이상 시 기상
충전율 10% 미만 시 취침
충전율: 0%
“근데 어떻게 0%로 떨어질 수가 있냐.”
1~2% 포인트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제로가 되어 버린다고?
충전율의 감소는 이하의 예상보다 더욱 빠르게 진행된 상태였다.
‘4%가 찼던 것도 〈기간틱 모사〉를 잡았기 때문이었어. 레벨 300이 넘는 필드 보스를 잡아서 고작 4% 채운 거였는데 그게 하루 만에―’
“하이하 님! 저쪽에―”
투콰아아아────────……!
“응, 보고 있어요.”
이하는 블라우그룬이 말을 마치기도 전, 그가 발견한 몬스터를 향해 발포했다.
거리 약 330m가량 떨어진 초원에서 기어 다니던 라이노딜로의 등껍질이 파괴되었다.
처음 라이노딜로를 마주했을 때는 루거의 공격으로도 녀석의 등갑을 파괴하지 못하지 않았던가.
‘스킬이 아닌 평타였지만 어쨌든 당시의 루거가 사용하는 [관통]의 위력보다…….’
지금 이하의 일반 공격이 더 강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부오오오오―!
이하는 라이노딜로의 울음을 들으며 묘한 감회가 들었다.
“시끄러.”
벌레처럼 생겼으나 실상은 선 채로 달리는 코뿔소와 같은 공격 패턴을 지닌 돌격형 몬스터.
이미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는 이하가 녀석을 죽이는 것은 특별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격으로 공격해서 녀석을 자극한 후, 일어선 상태가 되면 배면을 공격하여 내장을 헤집으면 그걸로 끝이니까.
투콰아아아────────……!
총성과 함께 기립했던 라이노딜로의 거체가 무너져 내렸다.
이하는 잠시 긴장한 채 주변을 둘러봤으나 곧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먹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