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20
320
복수에는 기간을 두지 않는다.
지금 당장 보복할 사람이 없다면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기다렸다가 새로 태어난 아기를 죽이기도 한다.
좌우지간 어떤 식으로든 보복해 올 것을 각오해야 한다.
하오문을 치려면 마인들을 치는 것과 같이 정도 무림 전체가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정도 무림과 유계가 싸움을 시작한 지금은 하오문이 재기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였다. 정도 무림은 하오문주가 옛 기반을 하나씩 하나씩 복구해 나가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어쩌지 못했으니까.
하오문주는 하오문을 다시 차지했다.
하오문이 밀지를 보내왔다.
마야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하오문주가 무림의 공적이 된 마야에게 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굉장한 모험이다.
이는 하오문 전체를 마야에게 맡긴다는 거나 다름없다.
정도 무림이 하오문부터 치기 시작하면 어쩔 것인가.
방법이 없다. 당하는 수밖에 없다. 하오문주는 그만한 빌미를 제공했다.
마야는 하오문주가 전해준 밀지를 마음으로 받았다.
따뜻했다. 포근했다. 정겨웠다.
허나 밀지의 내용은 세상의 따사로움을 한꺼번에 앗아갔다.
― 자하부(紫霞府) 멸(滅), 자하부주(紫霞府主) 사(死). 흉수(兇手) 십공봉(十供奉).
― 낙화향 육령(六靈), 구령(九靈) 사(死). 낙화향(落花鄕) 폐쇄(閉鎖). 흉수(兇手) 천검대(天劍隊).
― 칠성군(七星君) 출타(出他). 목적(目的) 마야(魔爺) 격타(擊打).
‘북검문이 움직였어!’
마야의 미간이 좁게 찌푸려졌다.
금연화의 부친이 죽었다. 그녀의 일가붙이가 모두 죽었다. 그녀의 집이 불타 재가 되었다.
흉수는 십공봉이다.
사람 수로 따지면 열 명이 저지른 일이지만 복수를 하고자 한다면 구파일방을 모두 쳐내야 한다. 십공봉은 개인의 자격으로 자하부를 친 것이 아니라 구파일방을 대표해서 나섰기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혈귀대주의 복수를 하겠다고 남무림을 휘젓고 다닌 여인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았다.
이제 그녀의 모든 것을 앗아간 사람이 나타났다. 한두 명도 아니고 중원 무림 전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복수는 할 수 없다.
가능한 십공봉을 죽이는 선에서 끝내야 한다.
구파일방이 십공봉을 내놓을 리 없으니 암살전의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금연화에게는 하늘이 무너질 소리다.
일령과 절혼마녀의 가슴도 찢어진다.
육령과 구령은 일령에게는 친자매와 다름없는 여인들이다.
그들도 죽었다. 절혼마녀를 대신해 낙화향을 지키다가 죽었다.
사실 그녀들은 죽을 이유가 없었다. 밀지대로라면 천검대가 나서서 죽였는데, 그럴만한 가치도 없었다.
육령과 구령은 금연화의 호법일 때 호칭일 뿐이다. 그 당시, 무공이 제일 강했던 일령조차도 겨우 이류를 벗어난 수준이었다. 하물며 육령과 구령의 무공이래 봐야 파락호들 정도는 상대할 수 있지만 정통 무가의 무인들은 상대하기 곤란했다.
그런 여인들을 천검대가 나서서 도륙했다는 것은 마야에 대한 선전포고 밖에 되지 않는다.
북검문이 하는 말은 명확했다.
너희를 몰라서 내버려둔 게 아니다. 너희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으니 이제부터 척결한다. 너희에게는 죽음밖에 없다. 너희와 선이 닿은 자도 모두 죽는다.
“휴우!”
가는 한숨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지만 마음을 몇 십 번 고쳐 잡았어도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다.
다담선자가 밀지를 빼앗듯 건네받았다.
“동생에게는 제가 전할게요. 칠성군이 온다니 준비하세요.”
호채마는 침울했다.
금연화는 남이 아니다. 중원을 가로지르며 동거동락(同居同樂)했다. 숱한 싸움도 겪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호채마보다 잘 아는 사람도 없으리라.
아니다. 호채마보다 더 잘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이제 막 모두 세상을 등졌다.
“십공봉 중 한 놈은 내가 맡지.”
수검이 한광(寒光)을 쏟아냈다.
기꺼이 구파일방의 적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한 놈은 내게 맡겨.”
언장은마는 싸움에 끼는 일이 거의 없다. 싸움에 대해서는 의견조차도 개진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자청해서 나섰다.
금연화는 말이 없었다. 눈물도 많이 흘리지 않았다. 눈물 한 가닥이 양 볼을 타고 또로록 흘러내린 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아픔을, 슬픔을 참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슬픈 눈으로 자하부가 있는 남쪽 하늘을 쳐다봤다. 하염없이, 시간이 가는 줄을 까맣게 잊고.
일령은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쏟았다.
육령, 구령과는 자하부를 떠날 때 본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죽일 거야. 죽일 거야.”
그녀는 이를 악물며 눈물을 흘렸다.
이럴 때, 호채마는 위로를 하지 않는다. 다른 때는 뭐라고 한 마디 하지만 죽음에 대해서만은 침묵을 고수한다. 특히 가족의 죽음 앞에서는 실컷 슬퍼하도록 내버려둔다.
호채마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가슴에 한을 담아놓고 산다. 구구한 사연을 늘어놓으면 탄식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혼자 참고, 혼자 이겨내야 한다.
슬픔은 공유하지만 이겨내는 것은 자신 스스로 해야 한다.
호채마는 그때까지 기다린다. 시간이 얼마가 지나든 기다려준다. 보호하면서, 마음으로 같이 울어주면서.
금연화는 오래 슬퍼하지 않았다.
그녀는 검을 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소름이 오싹 끼칠 만큼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십공봉을 죽이는 사람은 제 적이에요.”
***
마야가 종적은 환히 드러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방의 이목이 낮이나 밤이나 호채마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개방은 마야와 싸우고자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기꺼이 마야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칠성군은 북검문을 나서기 무섭게 개방도를 만났고, 마야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
그들은 일로 직진했다.
서두르지는 않았다. 마야는 무시할 수 없는 강적이 되었다. 칠성군과 천랑대, 천검대가 당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와 부딪치기 전에 준비할 것이 있으면 해야 한다.
우습게 되었다.
예전에는 천비대 만으로도 마야를 맹렬히 추격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북검문의 모든 전력을 투입하고도 승부를 장담하지 못한다.
마야가 이토록 성장하는 동안 북검문은 뭘하고 있었나.
“천검대가 낙화향을 요절냈으니 두 여자가 부화를 삭히지 못할 거요. 일령과 절혼마녀. 이 두 여자는 천검대에 한을 품고 있을 테니, 천검대주.”
“후후! 걱정 마십시오.”
천검대주가 일령과 절혼마녀의 화상(畵像)을 집어들었다.
다행히도 북검문에는 마야에 대한 자료가 넘치도록 많았다. 천비대의 장고(臟庫)에는 마야를 비롯해 호채마 개개인에 대한 신상내력부터 그들의 무공, 병기, 특기사항 등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비록 그들은 몰살당했지만 그들이 한 일은 영원히 북검문의 자산이 될 것이다.
천기수사가 고개를 저었다.
“천검대주의 능력을 못 믿는 게 아니고 천검대만으로는 두 여자를 잡기 힘들게요. 두 여자의 신법이 워낙 신출귀몰해서. 이공자께서 천검대와 같이 해주시겠습니까?”
이공자 도건평이 씁쓰름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가장 꼴이 우습게 된 사람들은 칠공자들이다.
북무림을 통치할 꿈에 잔뜩 부풀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한낱 마인을 상대하기 위해 무공을 사용해야 한다니 비참해도 이리 비참해질 수 있는 것인가.
좋다.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칠성군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을 뽑아 명령권이라도 줘야 하지 않은가. 천기수사의 명을 받게 하다니, 이런 법은 없다.
허나 명을 내린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북검문주다.
북검문주의 친필 서한이 눈앞에 펼쳐진 이상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공자.”
천기수사가 대답을 독촉했다.
“알았소.”
어쩔 수 없이 한 말이다.
북검문에서 천검대가 이공자 도건평을 지지하고 있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만약 도건평과 천검대가 두 여자를 잡지 못하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을 게다.
도건평과 천검대주에게는 천기수사의 말이 이런 경우를 염두에 두고 짜놓은 함정처럼 들렸다.
‘두고 보자.’
천기수사는 두 사람의 안색 변화는 무시했다.
“칠신녀, 금연화를 맡아주시게.”
“네.”
칠신녀는 다소곳했다. 말을 조심하고 행동도 있는 듯 없는 듯 하니 경계를 하는 사람도 드물다.
그녀는 천기수사의 명도 기꺼이 받았다.
“넌 다담선자를 맡아야겠다.”
천기수사의 눈이 육신녀에게 돌려졌다.
다담선자는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사람 중에 하나다. 그녀의 추명반은 그야말로 번개다. 눈 깜짝할 순간에 승부가 갈리기에 가장 꺼려하는 승부다.
더군다나 육신녀는 불구의 몸이다.
누가 봐도 상대가 안 된다. 북검문을 나설 때도 육신녀는 그저 따라와 구경만 할 줄 알았다.
육신녀가 대답했다.
“죽음을 주시는군요.”
“그냥 죽지 않으리라 본다.”
“알았어요.”
검은 복면 사이에서 슬픈 한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그럼 여자들은 됐고…… 천랑대주, 목숨을 주셔야겠소.”
“누구와 싸우란 말이오.”
천랑대주가 잔잔히 말했다.
“그저 목숨만 주시오.”
“……?”
“여인네는 수를 맞출 수 있지만 사내들은 오히려 우리 쪽이 부족하니 다른 방도가 없구려. 저쪽에서 가장 먼저 나설 자는 콘과 수, 그리고 독인이오. 그렇지 않으면 사망혈인일 테고.”
어느 한 사람도 녹녹하지 않다.
“그러니 천랑대가 목숨을 주셔야겠소.”
천랑대주는 말뜻을 짐작했다.
“폭사(爆死)?”
천기수사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폭사는 유계 마인들이 시도했는데, 실패로 끝났소. 안 된 일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고, 난 다른 수를 준비했소이다.”
“……?”
“흑균(黑菌)이오.”
“뭣!”
“뭐, 뭣!”
“어멋!”
칠성군 중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천기수사의 딸인 육신녀마저도 흑균이라는 말에는 깜짝 놀라 경악성을 토해냈다.
흑균은 독이 아니다. 병균이다. 치명적인 균으로 공기를 통해 전파되며, 감염되면 고열에 시달리다 죽는다.
약은 없다.
숱한 독문과 의원들이 약을 찾아내려고 노력했지만 현재까지도 찾지 못했다.
감염되지 않는 게 최선이다. 병이 들면 죽는다.
“후후후! 후후후후!”
천랑대주가 웃었다.
사실, 마야를 치는데 가장 껄끄러운 자들이 콘과 독인, 그리고 사망혈인이었다. 그들만 없어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대량살상 능력을 지닌 자들이 즐비하니 공격하기가 난감했다.
흑균이라면 아주 쉽게 죽일 수 있으리라.
호채마가 독에 면역력이 있다지만 독이 아닌 균 앞에서는 무용지물, 죽을 수밖에 없다.
“지금 무슨 소린가! 그럼 우리도 흑균에 죽으라는 소린가!”
도건평이 노성을 질렀다.
천랑대가 흑균을 퍼트릴 때, 천검대와 도건평은 두 여인을 상대로 싸우는 중이다. 그들뿐이 아니다. 육신녀와 칠신녀도 싸움판에 있다. 모두 흑균에 노출된다.
“어쩌겠습니까? 우리가 모습을 보이자마자 일령과 절혼마녀가 달려 나올 텐데, 싸움을 피할 수는 없지 않소이까.”
“이런! 그걸 말이라고!”
“제 딸도 싸웁니다. 칠신녀도 싸울 겁니다. 그렇지 않은가?”
천기수사가 칠신녀를 쳐다봤다.
칠신녀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우리 모두 살아갈 수는 없었어요. 미끼가 필요하다면 해야죠. 천랑대는 해도 되고, 칠성군은 안 되나요? 목숨은 다 같은 거잖아요. 저는 할 게요.”
“후후후! 그래, 너는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게 너니까.”
이공자의 말투가 뒤틀렸다.
칠성군이 후계자 암투를 벌일 적에도 칠신녀는 뒤로 물러나 사태만 지켜봤다. 아니, 후계자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게 하고 싶어서 한 말인가? 그녀에게 힘을 보태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지금도 그렇다. 그녀는 세상을 등져도 아까울 게 없을지 모르지만 이공자 정도 되면 아까운 게 참 많다.
“천검대주, 천검대를 일 대만 내놓게. 그들로 하여금 일령과 절혼마녀를 상대하게 하고…… 아! 모두 죽을 것 굳이 이판사판으로 싸울 것 있나. 슬슬 피하면서 시간만 끌면 되겠지. 우리도 천랑대가 썼던 수법을 써보자는 거야.”
이공자 도건평은 싸우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죠.”
천검대주도 동조했다.
도건평과 천검대는 늘 행동을 같이 했으니, 도건평이 싸우지 않겠다고 선언한 마당에 천검대가 싸울 리 없다.
“괜찮겠소?”
천기수사가 천랑대주를 쳐다봤다.
“우리가 조금 빨리 움직이면 될 터.”
천랑대주는 어금니를 꾹 악다물었다.
천랑삼대가 죽은 일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혀있다.
그는 천랑삼대가 몰살당할 줄 알면서도 내보냈다.
일공자가 보내자고 했다. 삼뇌가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콘을 잡을 비책이 마련된다고. 그래서 모든 아픔을 감수하며 그들을 보냈다.
콘을 잡을 비책 따위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