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43
43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하오문주나 하오문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단지 어딘가에 있을 그들이 원하는 조그만 정보만 내놓을 뿐이다.
왜? 한 가지만은 믿으니까. 하오문은 자신들을 이용하거나 배반하지 않으며, 자신들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대신 검을 들이대 준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정보를 내놓는 이유는 또 있다. 오대 직업군처럼 상하 관계가 뚜렷한 직업도 없다. 윗사람의 눈 밖에 나면 그 직업에 몸담을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윗사람은 그 윗사람에게, 또 그 윗사람에게. 그들의 꼭지에 하오문주가 있다.
이런 점이 하오문을 칠 수 없게 만든다.
그들을 친다는 것은 애꿎은 양민을 치는 것과 같다.
하오문 본문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들리는 풍문으로는 한 군데에 오래 정착하지도 않고 중원 십팔만 리를 떠돌며 인간 말종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한다.
혹자는 황궁에서 민심을 살피기 위해 하오문이라는 가상 조직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혹자는 관부에서 사람이 존재하는 한 결코 없어지지 않을 오대 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하오문이라는 단체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하오문은 소문만 무성했지 실체를 드러낸 적은 없다.
하오문도는 하오문이 어떠한 행사를 하는지도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하오문주, 그가 눈앞에 있다.
일견 간사해 보이는 노인, 품위없이 쥐새끼처럼 눈알을 데룩데룩 굴리고 있는 염소수염의 노인.
소립파는 한껏 여유있는 모습으로 천천히 말했다.
“하오문에 비원(悲願)이 있다는 걸 알아. 그럴 아는 한 하오문은 내게 돈을 요구할 수 없어. 그 비원을 풀어줄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또 있나?”
“알…… 고 있었나?”
“십전이라니. 후후후! 욕심도 크군. 세상을 말아먹기로 작정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야! 이놈들아! 빨리 방 치우고 닭 잡아! 다 틀렸어!”
이번에는 반응이 즉각 나타났다.
곶감을 꿰던 사내는 재깍 마당으로 내려와 닭을 잡기 시작했고, 부엌에 있던 아낙은 후다닥 달려와 방으로 안내했다.
하오문은 영원히 근거를 마련할 수 없다.
그들이 힘을 가지고 정착하게 되면 세상은 어둠에 덮인다.
생각해 보라. 땀 흘려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도둑질이나 하고, 남의 전낭이나 훔치고, 사기나 치고, 노름이나 하며, 딸자식은 몸을 파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하오문이 음지를 벗어나 양지로 들어서는 순간 관부와의 대격돌은 피할 수 없게 된다. 관부뿐만이 아니다. 정도문파라고 일컬어지는 무림문파와의 충돌도 피할 수 없게 된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하오문의 등장을 원하지 않으니까.
이것이 하오문의 첫 번째 비원이다.
두 번째 비원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강한 무공을 알고 있어도 익힐 수 없다는 것이다.
힘이 있는데 나서지 않을 수 있나.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했다. 강한 힘을 지니게 되면 한 번쯤 드러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하오문에는 그만한 무공이 있다.
도비들이 훔쳐 온 무공비급만 해도 한두 권이 아니다. 배수가 슬쩍한 비급도 많다.
그 많은 비급들이 곰팡내를 풍기며 푹푹 썩고 있다.
그걸 수련하게 되면 하오문의 몰락은 기정사실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에 익힐 수가 없다. 어떤 자는 정말 세상을 뒤집어엎을 생각을 가질지도 모른다. 하오문이라고 인재가 없겠나.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오문의 몰락이 눈에 보인다고 해도 한 번쯤은 시도해 볼 만한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는 안 된다. 하오문은 이대로 존속되어야 한다. 그래야 만인의 지탄을 받는 사람들이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도와줄 수 있다.
하오문주…… 그는 무공비급이 가득 담긴 보물 창고를 지키는 수문장이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도 손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첫 번째 의무다.
이것이 하오문이 지닌 두 번째 비원이다.
하오문은 무공비급을 연구하여 그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무공으로 재창출해 냈다.
신법은 도비를 더욱 뛰어난 도비로 만들어준다. 음양환희술(陰陽歡喜術)은 창기들을 윤택하게 해주었고, 금나수(擒拿手)는 배수나 도곤을 불패로 이끌었다.
그러나 무공은 무공인 것, 신법만 뛰어나다고 뛰어난 도비는 되지 못했다.
결국 하오문은 무공을 각 분야별로 두 가지씩 분류했다.
호신무공과 가장 뛰어난 도비, 창기, 배수, 편자, 도곤이 되는 무공.
생각은 좋았지만 그들의 의도는 분류에서 그치고 말았다.
도박 기술이 무공인가? 남녀가 교합하는데 어떤 무공을 사용해야 하나. 무림인과 싸우는 것도 아니고, 쾌락만 추구하는 취객을 상대로 진기를 쏟아내? 차라리 신음 소리 한 번 더 내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호신무공 쪽에서는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다섯 직업군에서 불세출의 기재를 만들어낸다는 방법은 실패했다. 그쪽은 타고난 재주를 가진 놈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오문의 세 번째 비원이다.
하오문주가 원한 건 세 번째 비원을 풀어달라는 것.
한 가지만 요구할 수 있기에 도비를 선택했다.
뛰어난 도비가 되기 위해서는 감쪽같이 잠입할 수 있는 신법이 필요하다.
그 부분은 하오문도 어느 정도 성취를 이뤄냈다.
잠입을 했으면 보물이 숨겨져 있는 곳을 찾아내야 한다.
각종 기관진식(機關陣式)에 능통해야 한다.
무공비고에는 기관진식에 관한 서적만 이백여 권이 넘는다.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달라는 것이 첫 번째 주문이다.
도비는 미세한 흔적도 찾아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천안통 같은 무공을 수련할 수도 있지만, 한 가지 안공을 수련하기 위해 평생을 바칠 수는 없다. 쉽고 빨리 수련할 수 있는 안공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 두 번째 주문이다.
보물이 있는 곳에는 함정도 있다. 특히 암기가 설치된 곳을 함부로 더듬다가는 손목이 절단난다. 보물을 찾는 동안 누가 다가오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오감을 극도로 발달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는 것이 세 번째 주문이다.
도비는 어둠 속에서 움직인다.
들어가고 나올 때 어둠과 동화된다면 금상첨화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은신술을 마련해 달라. 네 번째 주문이다.
그에 반해 소립파의 주문은 간단했다.
상조문, 철사문, 독조림, 그리고 궁왕 강창도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내 줄 것, 하나. 그들을 잡을 수 있는 행로를 마련해 줄 것, 둘. 그들 외에 단문협 혈귀대 몰살 사건과 관련된 자들을 찾아내 줄 것, 셋.
그것뿐이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별로 어렵지 않구먼. 그거면 되겠나?”
하오문주는 다른 사람들을 곁눈질로 훑어보며 말했다.
하오문주라고 해서 생각을 고쳐 봤지만, 정말 믿음이 가지 않는 노인이다.
“기한은 한 달. 올해 첫눈은 붉은색일 거야.”
“크크! 정말 손댈 생각인가?”
“…….”
“혈귀대의 몰살은 나도 애석하게 생각하는 일이네만…… 지금 남도문 애들 독 올랐어. 자네들이 무슨 일을 저지른지 알아? 무려 사백여 명을 죽였어. 이게 말이나 되나? 나 같아도 약 오르지. 내 생각에는 이쯤에서 덮는 게 어떨까 싶네만.”
“삼십육고질(三十六孤蛭)이 있는 것은 봤고. 건곤사괴(乾坤四魁)도 이곳에 있소?”
“있네.”
또 한 번 놀랄 일이다.
하오문주를 보필하는 건곤사괴는 일파의 문주와 버금가는 무공을 지녔다고 한다. 하오문주의 친위 조직인 삼십육고질은 인간으로서의 모든 행복과 권리를 포기하고 평생 하오문주에게 충성하며, 받은 명령은 죽음을 무릅쓰고 완수한다고 한다. 오죽하면 외로운 거머리라고 불리겠는가.
그들이 여기에 있다. 마을에서 보았던 농부들이다. 어쩐지 뿜어내는 예기가 범상치 않다 했더니.
“삼십육고질만으로는 남무림을 따돌릴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건곤사괴가 있었군.”
“안전은 걱정 말라니까.”
“이것으로 거래 끝냅시다.”
“좋네. 언제 들어갈 텐가?”
“무공비고에는 무공비급만 수천 권. 쓸 만한 게 상당할 텐데, 이렇게 내놓아도 되는 거요?”
“그까짓 것 수만 권이 있으면 뭐 해. 일견후즉파(一見後卽破)라는 마야 앞에서는 무용지물인데. 쯧! 무공도 수련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런 능력이 주어졌으니, 자네도 참 답답하겠어.”
두 사람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담만 늘어놓았다.
양쪽 다 비정상이다.
이것이 강한 자의 여유라면…… 한 사람은 하늘이 내린 천재일 것이며, 다른 한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무림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거목이리라.
그날, 소립파는 마차를 타고 떠났다.
“한 달이면 올 거야. 몸이나 추스르고 있어.”
그는 옆집에 마실이라도 가는 듯 여유로웠다.
2
남무림 무인들이 보는 북검문 무인들은 후안무치한 인간들이다.
삼십 년 무란(武亂)의 원인이 어디에 있던가. 용검문의 소가주가 난부투왕의 질녀를 겁간하고 살해한 데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북무림은 질녀의 복수를 한 난부투왕까지 장강에서 살해했다.
그들은 무인이 아니다. 인두겁을 쓴 파락호다. 무공을 지녔다고 전부 무인인가. 사리 판단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인간들이 힘을 가졌다고 세상을 좌지우지한다면 이 세상 꼴이 어떻게 변하겠는가.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
힘에 앞서서 도의가 우선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남무림 무인들은 똘똘 뭉쳤다.
구파일방 중 장강 이남에 적을 둔 청성파(靑城派), 아미파(峨嵋派), 점창파(點蒼派), 해남파(海南派)가 힘을 합쳤다.
열 개 대문파 중 네 문파가 뜻을 같이해 주었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또한 저 멀리 청해(靑海)에 존재하여 구파일방에는 거론되지 않지만, 문파의 힘만은 어느 문파에도 뒤지지 않는 곤륜파(崑崙派)까지 나섰다.
반면에 북무림에 가담한 문파는 화산파(華山派), 종남파(終南派), 공동파밖에 없다.
가장 염려했던 소림사(少林寺)와 무당파(武當派)가 혈란(血亂)은 하늘의 뜻이 아니라며 등을 돌렸고, 개방은 남북 양 무림에 거지가 없는 곳이 없으니 어느 쪽도 가담할 수 없다며 발을 뺐다.
무너진 세력의 균형을 맞춘 것은 오대세가다.
남무림에는 사천당문(四川唐門)만이 존재했지만 북무림에는 남궁세가(南宮世家), 황보세가(皇甫世家), 진주언가(晋州彦家), 제갈세가(諸葛世家)가 용트림했다.
구파일방, 오대세가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팽팽한 국면이다.
문제는 각 문파들이 본문을 둔 위치다.
북무림은 공동파만이 변방이랄 수 있는 사천성(四川省)에 위치해 있을 뿐, 여타 문파는 중앙에 밀집해 있어서 장강 중동부에 전력을 집중할 수 있다.
반면, 남무림은 가담한 문파 모두가 변방에 위치한다.
해남파가 남쪽 끝에, 점창파는 운남(雲南)에, 청성파, 아미파, 사천당문은 사천성에. 청해에 있는 곤륜파는 명분으로만 가담했을 뿐 고수 몇 명 보내온 것이 고작이다.
장강 서부 쪽은 월등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중동부에서는 근근이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그뿐인가? 북무림에는 무신이라고 일컫는 초절정 강자가 네 명이나 존재한다.
남무림은 세 명이다.
파락호들이 흔히 하는 말로 대가리끼리 싸워서 결판을 낸다고 해도 불리하다.
남무림은 뭉칠 수밖에 없었다.
무인들뿐만이 아니라 민초들까지 힘을 보탰다.
북검문에는 목서가 있어서 세상을 살핀다. 남무림은 모든 사람이 목서다. 조금이라도 수상쩍은 사람이 나타나면 인근 무가에 연락을 취했으며, 무가에서는 결속을 굳건히 하는 측면에서 금전적인 보상을 했다.
삼십 년이라는 지루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원래의 뜻이 변질되고 결속력 또한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금전적인 보상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활짝 열어놓게 만든다.
장강 이남에 북무림 무인들이 설 땅은 없다.
북무림 무인들에게 장강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라는 ‘헹기못’이 될 것이다.
목을 깨끗이 씻고 장강을 건너라.
이승에서의 일을 모두 마무리한 자만 장강을 건너라.
“어찌 된 일인가!”
“무지막지한 도법에는 혈(穴)이 필요 없습니다. 단 일초에 몸을 쪼개는 도법, 혈염도라 추측됩니다.”
“혈염도…… 마도를 떠올린 이유라도 있나!”
“도룡사검의 사흔이 이유입니다. 검이 몸에 닿은 각도가 전부 다르고, 쑤시고 베는 기법이 각각 다르며, 수검(收劍)의 흔적도 모두 다릅니다.”
“사흡검법이군.”
“또 있습니다. 절명삼후(絶命三后)가 병기도 뽑지 못한 채 죽었습니다. 전신에 검푸른 반점이 있었고, 반점이 생긴 곳은 빠른 속도로 썩어 들어갔습니다.”
“시마까지…… 그들이 왔는가.”
보고는 끝났다.
누가 남무림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는지 찾아냈다.
수검과 시마가 살겁을 펼쳤다면 그 한가운데는 마야가 있다. 그리고 마야 곁에는 자하일봉이 있다.
광살녀, 그녀가 자하일봉이다. 자하쌍구검이 알려진 것과 너무 달라서 긴가민가했지만 이제는 확실하다. 마인들과 어울리면서 음산한 마기를 받아들인 거다.
‘마야…….’
남도문 추혼단주(追魂團主) 부위량(傅偉良)은 무의식적으로 책상을 톡톡 두들겼다.
마야가 천비대의 수중에서 빠져나간 일은 그도 알고 있다.
나중에는 천랑대까지 동원되었으며, 제육역 열 개 문파까지 가담한 것으로 안다. 또 있다. 북검문주가 북무림 제일기재들이라고 칭송한 칠성군까지 추격전에 나섰다.
그런데도 놓쳤다.
한낱 마인 나부랭이에게 닭 쫓던 개 꼴이 되었다고 비웃었는데.
이제는 자신 차례다.
한 발만 삐끗하면 북검문처럼 개망신을 당한다. 차라리 북검문이라면 이를 갈지언정 명분은 서지만, 마인 놈들에게 망신을 당한다면 어디에 얼굴을 내놓지도 못한다.
“마야에 대한 자료를 모두 가져와라.”
‘패도무적의 마인은 많았다. 하지만 누구도 마야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못했다. 놈이 마야로 불린다면 그에 합당한 무언가가 있을 것.’
추혼단주 부위량 앞에 놓인 종이는 생각처럼 많지 않았다.
마야라고 불리는 자이니 수북이 쌓일 줄 알았는데…… 마야에 대한 정보가 얼마 없다는 이야기다.
일견후즉파라. 어떤 무공이든 보기만 하면 파해법을 찾아낸다. 또한 삼류무공도 그의 손을 거치면 절정무공으로 둔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