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8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77)
투란은 잠깐 침묵했다.
드라고니아가 한 말 중에 쿡 꽂히는 부분이 있었다.
투란 스스로도 드레이크의 성장에 집착하는 것을 느끼고 있으니까.
몬스터 로드로서 충실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려 했다면, 드라고니아가 말한 대로 했을 터였다. 그렇게 해서 원하는 바를 충분히 얻어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투란은 고집스럽게 드레이크의 성장을 원하고 몬스터 로드로서 그 형상을 드러낼 때의 약점, 보기 흉한 부분을 교정하는 일에 집착했다.
굳이 이곳을 찾아온 것도 그 집착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집착으로 인해 이제까지 해온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간다면…….
“아으읏! 읽을거리가 많아져서 바쁜데 이게 뭐야! 가만히 먹을 것 먹으면서 미궁 도전기를 읽으려고 했는데!”
투란은 당장 하려던 것을 잠시 미뤄두고 고민해야 했다.
―미궁 도전기?
드라고니아가 의아한 듯 되뇌었다.
‘메듀시아 미궁에 도전했던 이야기래. 그 안에 미궁에 대한 정보도 담겨 있을 거라고…… 어? 아, 세란드가…… 몬스터 세란드가 말해줬어. 거기 죽으러 가냐고 놀리면서 말이야. 고르고니아, 스테노아 얘기를 내가 안 해줬거든. 살아나오면 뭘 소개시켜 주느니 했는데…… 젠장, 어둡고 좁은 곳에서는 메탈릭이 더 강한데…… 아, 정말 이 카탈리스트를 먹으면 루미널의 특성이 완전히 살아나려나?’
복잡해진 투란의 생각은 좌충우돌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준비를 하면서 미궁을 향해 나아가려던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다.
냉정하게 다시 생각하면 계획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엉망진창이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드레이크의 강화하는 것부터 막힐 거란 예상은 전혀 못 했다. 이전에 쏟아온 것마저 한꺼번에 뒤엎을 정도의 요소, 몬스터 카탈리스트에 대해 아무 대책이 없으니 어쩔 수 없기는 했다.
―메듀시아의 미궁은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정확한 위치도 잊혔다고 한다만, 도대체 언제 그 미궁에 들어가서 뭘 조사한 녀석들이 있다는 거냐?
드라고니아의 물음은 엉키고 성키며 뒤죽박죽이 되어 가는 투란의 마음을 붙잡았다. 묻는 내용 또한 꽤 심각한 것이니 투란이 그쪽으로 생각을 돌리기도 쉬웠다.
‘상아탑이나 헌터 길드에 있는 책이라던데? 드라코눔에는 없어? 대도감에는 당연히 실려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찾아봐. 정말로 있다면…… 생각할 거리가 많은 일이다.
드라고니아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 냉정함 덕분에 투란은 뒤엉킨 생각을 조금 더 정리할 수 있었다.
몬스터 카탈리스트, 루미널 골든 드레이크―광금룡―의 신체에 적용되는 이 시커먼 돌은 분명히 필요하다. 성장이란 요소에 있어서, 자신의 몸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서 드레이크가 겪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경험이었다. 이미 스스로 겪고 지켜본 드레이크의 기억이 있다 해도 투란은 몬스터 로드로서 자신의 몸에 그것이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가를 확인해야 했다. 그 과정을 ‘악마의 심장’으로 ‘기억’하고 ‘통찰’하여 다시 메탈릭 골든 드레이크―강금룡―의 특징을 덧씌우든 말든 해야 했다.
생각할수록 당연한 대처였지만, 막연하게 투란을 불안하게 하는 부분은 이 시커먼 돌을 받아들인 자신의 드레이크가 이전처럼 간단히 새로운 특징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그럴 경우에 남은 길이라고는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보다 몬스터 로드다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아, 골치 아프게 하네.”
다소 뜬금없는 넋두리를 한 다음에 투란은 도감을 꺼내 속삭였다.
“메듀시아, 미궁 도전기…… 칼날강에서 미궁까지 실린 지도.”
말 나온 김에 두 가지를 동시에 요청한 셈이었다.
도감은 파르락거렸고 거침없이 투란의 말에 응했다.
―이건…… 비밀등급이 꽤 높은 거 아니었냐?
페이지의 색채를 보자마자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투란은 어리둥절하다가 그 의미를 한 박자 늦게 알아차렸다.
파쿠란이 말한 것처럼, 페이지는 짙은 보라색 테두리를 두른 채로 하얀 바탕에는 은은한 붉은빛이 맴돌고 있었다. 웬만해서는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내용이 담긴 페이지가 두툼하니 등장한 것이었고, 팔랑거리듯이 옆으로 늘어지듯 넓게 펼쳐진 지도가 덤인 듯이 붙어 있었다.
―과연 의도적으로 메듀시아의 미궁 정보를 감추고 있었다는 거로군.
잠깐 생각 후에 상황을 납득한 듯이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투란에게는 납득하기에는 굉장히 많은 얘기가 누락된 것이기는 했지만, 일단 그 생각을 옆으로 치워놓고 투란은 도감에서 로어 트럼프를 끌어내 멀리 보이는 북방 산맥의 풍경부터 칼날강까지를 주욱 훑어내리듯이 담았다. 그다음에 간단히 말한다.
“지도에 이런 것이 보이는 자리가 어디쯤인가 표시해줘.”
―음?
드라고니아가 움찔하는데, 투란이 펼쳐 지켜보는 지도에는 파란 점이 찍히고 있었다. 칼날강 근처에 찍힌 파란 점, 그리고 메듀시아의 미궁을 표시하는 빨간 세모를 보며 투란이 다시 입을 여는데…….
“미궁으로 가는 길에 나타날 만한 몬스터에 대해서, 여기 추가해줘.”
탁탁 가볍게 지도를 치는 손짓과 함께 나온 말이었다.
지도에는 바로 다양한 채색이 이뤄졌고, 여백에 그 색상별로 여러 가지 이름이 쓰였다.
그 광경을 보면서 투란이 조금 기분이 풀렸다는 듯이 히죽 웃었고, 드라고니아는 묻는 말을 꺼낸다.
―전에 이런 거 써본 적이라도 있냐?
‘응? 있을 리가 없지. 그냥 막 생각나는 대로 시켜보는 거라고.’
―아, 그래.
당당함을 넘어서 뻔뻔한 투란의 대답에 드라고니아는 포기했다는 듯이 대꾸했다. 시켜서 안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자유롭게 질러대는 투란에게 도감이 호응해서 정보를 펑펑 토해내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 되는대로 시키는 투란이 잘못된 것은 분명히 아니니까.
그런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은 키득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너, 요술병의 시종(侍從)이란 옛날이야기 몰라?’
―요술병……? 드라코눔에서는 듣지 못한 이야기다만?
‘작은 병에 요술이 걸려 있는데, 그 안에서 시종이 튀어나와 뭐든 시키는 일을 척척 해준다는 이야기야. 심지어 사람을 죽이라 하면 죽이고, 도둑질을 하라 하면 해오는 그런 시종이지. 한데 뭘 시켜도 시종은 척척 해내. 그 능력이 탐난 요술병 주인이 그런 능력을 얻고 싶다고 말하게 되는데, 그 순간에 요술병의 시종은 해방이 되었고 주인은 시종이 되었다는 거야.’
―그게 대체 뭔 얘기냐?
‘시종은 요리를 시키면 요리를 하고, 청소를 시키면 청소를 하지. 대장장이 일도, 목공일도 척척 해내고 말이야. 주인이 시종의 능력을 탐냈던 까닭은 그렇게 뭘 시켜도 척척 잘해내니 굉장히 부러워진 거야. 그런데 그런 걸 알아낼 때까지, 주인은 시종에게 닥치는 대로 뭐든 시켜봤어.’
―그래서 너도 일단 닥치는 대로 도감에 뭘 시켜보는 중이란 소리를 하는 거냐?
‘응. 너도 봤잖아, 도감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도감 주인의 기량이라고, 그 매뉴얼인가 하는 부분에 바로 써 있었다고. 생각에 따라 도감은 들고 다니기 편한 철판(鐵板)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해보는 거지.’
이야기를 하면서 투란은 슬슬 복잡해진 머리가 개운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지도를 통해 저 먼 산맥의 풍경과 칼날강 사이의 거리를 고려하고, 표시된 위치를 대충 가늠해도 아직 미궁까지는 거리가 꽤 있었다. 드레이크의 날개로 단숨에 돌파한다면 하루 안이겠지만 걸어간다면 며칠 거릴 수도 있었다. 원래 계획이었다면 드레이크를 강력하게 키워 단숨에 갔겠지만, 지금은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가는 길에 미궁 주변의 몬스터를 살피면서 다른 대책을 구상해내면 되는 것이다.
미궁에 도달하는 길목에 등장하는 몬스터라면 미궁에서 흘러나온 몬스터에 대항할 적당한 수단이 되어 줄 수도 있으므로.
이런 투란의 생각이 닿은 듯, 드라고니아가 불쑥 한마디 한다.
―투란, 드라고(Drago)는 피하는 쪽을 권하고 싶다만.
‘뭐? 드라고? 드라고니아? 여기 그런 게 있어?’
투란은 다시 지도를 봤다.
다채로운 색상으로 쓰인 몬스터의 품종…… 거기 드라고니아가 말한 ‘드라고’가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아니라, 드라고다.
다시 한번 단호하게 나온 말 그대로, 투란이 다시 봐도 역시 ‘드라고’였다.
‘이게 뭔데?’
―용의…… 일족이 전락(轉落)한 경우다.
마지못해서,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분명히 알려줘야 한다는 말투로 나온 대답이었다. 드라고니아의 이런 태도는 투란의 미간을 찌푸려지게 했다.
‘드라고니아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
―드라고니아의 일족이 되었어야 할 자들이 그러기를 거부하고 도달한 결과, 그게 몬스터 드라고야. 날개와 함께 이성(理性)도, 지능(知能)도 사라진 채로 이빨과 발톱, 강인한 몸만을 믿고 살육하는 포식자가 된 녀석들이지.
번뜩, 투란이 눈을 부릅떴다.
‘그건…… 에테온에서 난동을 부렸을 때의 너랑 비슷하다는 말이야?’
―전혀 달라! 나는…… 미쳤을 뿐이고, 저건 몸은 몬스터이고 마음은 마수가 된 경우니까.
이를 갈듯이 대꾸하는 드라고니아였다.
투란은 눈을 가늘게 하면서 멀리 있는 산맥의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했다.
그 생각의 결과는 금방 투란의 마음속으로 흘러 들어가며 소리 없는 질문이 되었다.
‘야, 난 이게 뭔지도 몰랐는데 왜 일부러 말한 거야? 혹시 내가 이걸 잡으러 가길 바란 거야? 이거면 드레이크가 아니더라도 쓸 만하다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아닌 척하고 알려준 거야?’
―걷든 날든 네가 고를 길은 미궁까지 일직선이잖아. 이 지도에 표시된 색상이 몬스터의 활동영역이라면, 드라고 이름색은 여기서 미궁까지 일직선으로 가는 길목을 꽤 넓게 차지한다. 어차피 마주칠 테니까 말해본 거라고!
약간 망설이는 듯하다가 투덜거리듯 대답하는 드라고니아였다.
투란은 그 말투에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잡으라고 부추긴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곧장 가면 어차피 만날 테니까, 아예 미리 말해두면 피하려나 싶어 한 말일 뿐이라니! 투란을 앞으로 직진, 돌격만 하는 바보라 여겨서 꺼낸 소리란 뜻이잖은가.
그래서 투란은 단순하게 묻는 말을 던져본다.
‘세냐?’
―뭐?
‘드라코눔의 아칸보다…… 몸으로 잘 싸우냐고.’
나온 말을 되새기면 아무래도 마법을 활용하는 쪽은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그 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이니, 당연히 물을 말이었다.
드라고니아는 잠시 한숨을 쉬는 듯한 낌새를 드러내다가 대답한다.
―드라코눔에서 상급의 무투술을 터득한 일족이라면 맨몸으로도 지지 않고 싸울 수 있다고 말한다만, 그런 식으로 싸우지 말라고 가르치지. 드라고는 정신을 포기하고 오직 그 몸뚱이로 이 세계에 적응하려 했고, 그 결과가 몬스터가 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육체적인 측면에서만큼은 우리 일족의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성능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존재야.
‘그래…… 그런데 내가 피해야 하는 이유는 뭐야? 그냥 네 기분 나쁘다고 하는 말은 아닌가 본데?’
투란이 다시 콕 짚어 물었다.
어지간한 몬스터라면 현재 투란에게 장애가 될 일이 없었다.
잡아서 보이드의 비술로 찍어누르고 바로 써먹을 수 있었다.
당장 드레이크의 강화가 애매해진 상황이니, 보다 순수하게 강력한 드라고의 몸이 더 좋은 대책일 수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꺼리고 있었다.
굳이 투란에게 미리 말할 정도로 그러는 것이 타락한 일족에 대한 정서적인 문제만은 아닐 터였다. 그러니 투란은 분명하게 확인해야 해서 묻는 것이었고, 드라고니아는 씁쓸한 말투로 잠깐의 망설임을 털어내듯이 대답한다.
―아까도 말했잖아. 이성과 지능을 내다 버리고 몬스터가 되었다고 말이야. 드라고는 그 정신상태를 유지하는 채야. 쉽게 말해…… 그냥 미쳐 있다. 몬스터니까 미친 것 같은 것이 아니라, 그 몸을 본능에 맡겨놓고 그대로 미친 정신을 유지한다는 말이다. 다른 경우가 아니고, 용의 일족이 그럴 경우에 그 광기는…… 몬스터 로드에게도 위험하니까.
‘그러니까…… 원래 너네 일족이어야 하는 것들이 일부러 미쳐서 몬스터가 되었다, 그런 얘기를 하는 거야? 그래서 그 미친 상태를 일부러 유지하는 중이고?’
―대단히 왜곡된 말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흠, 찾아보면 나오겠지. 지도에 이렇게 표시될 정도면 꽤 많은 얘기가 있을 것 같잖아?’
투란은 지도를 보며, 미궁 도전기의 두툼한 페이지를 보며 결론 내렸다.
드라고니아도 동의했다.
―그렇겠지. 인간의 관점에서, 우리와 전혀 다른 부분을 보고 있을 수도 있어. 어쩌면…… 몬스터 로드 중에서 드라고를 획득한 경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고 말이야.
‘그렇다면…….’
투란의 눈길이 미궁 도전기로 옮겨갔다.
그 사이에 투란의 한 손은 시커먼 돌조각, 큰 거 하나를 슬그머니 집어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