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1061
1061화
진태경이 지닌 기감(氣感)은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무림인으로서 하나의 생존 수단으로 갈고닦은 기감.
또 다른 하나는 시스템을 통해 개별적인 스킬(Skill)로서 부여된 기감.
전자가 평상시에도 숨을 쉬듯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이라면, 후자는 명확한 의지와 목표를 전제로 시스템을 발동시키는 원리다.
‘약했던 시절에는 기감 스킬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
비록 진태경의 무공이 일정 수준에 다다른 이후부터는 사용 빈도가 급격히 줄었지만, 그럼에도 엄청난 장점을 지닌 기감 스킬의 활용도는 여전했다.
특히, 지금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를 자세히 엿보고자 할 때는 더더욱.
‘스킬, 기감 발동.’
진태경이 마음속으로 명령어를 읊조린 순간, 어느덧 9성에 도달한 [기감]의 푸른 원이 빠르게 뻗어 나갔다.
솨아아악.
진태경에게 주어진 이 이능(異能)에는 소리도, 형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드높은 경지에 다다른 극소수의 고수들만이 느낄 수 있는, 아주 미세한 파동만이 있을 뿐.
그리고 이는 대인(大人)이라 불리는 저 괴인의 정체를 판가름할 또 하나의 장치기도 했다.
‘만약 스킬이 성공한다면 정확한 정체를 파악할 수 있을 테고, 실패하더라도 딱히 손해 볼 건 없지.’
물론 기감 스킬은 만능이 아니다.
스킬로 파악할 수 있는 제한선을 넘어선 고수들은 레벨이 물음표로 표시되거나, 혹은 발동과 함께 일어나는 파동을 느끼고 즉각 튕겨 내기도 한다.
심지어 적천강 같은 경우에는 첫 만남 당시 스스로 기운을 조절하여 말도 안 되는 낮은 레벨로 표시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과연 저 거지 몰골을 한 초절정 고수는 어떻게 대처할 것이며, 이미 발동된 스킬은 어떤 정보를 알려 줄 것인가가 진태경에게는 중요했다.
‘도대체 누구지, 당신은?’
진태경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상대를 응시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모를 태연한 기색으로 기름진 머리를 벅벅 긁고 있는 저 봉두난발의 괴인을.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비밀의 장막을 걷어 줄 푸른 원이, 마침내 목표에 닿는 것을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귓가를 파고드는, 익숙한 알림 역시도.
띠비빅!
실패를 알리는 날카로운 소음이 울려 퍼졌고, 진태경은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고수다. 나보다도 레벨이 높은.’
그러나 진태경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레벨은 강자와 약자를 나누는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라는 것은 이골이 날 정도로 몸소 겪어 보았으니까.
레벨의 높낮이로 확실하게 강약을 판가름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일류, 혹은 절정까지일 뿐 그 이상의 영역에 존재하는 고수들은 다르다.
절정의 경지에 머물러있던 과거, 이미 수십 레벨이나 높은 적들을 상대로 연달아 승리를 거머쥐었던 진태경은 특히나 레벨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꿰뚫고 있던 진태경조차도, 다음 순간 눈앞에 떠오른 한 줄의 메시지를 보고 난 후에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 스킬, [기감]이 반쯤 성공했습니다!
“……어?”
자신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반문.
앞서 들려온 실패 알림과는 조금 다른 내용에 진태경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성공이면 성공이고, 실패면 실패지 반쯤 성공은 또 뭐란 말인가.
‘잠깐, 그러고 보니까 아까 실패 알림이 좀 이상하게 들리긴 했던 것 같은데…….’
그리고 머릿속의 의문이 완성되기도 전, 그제야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낀 듯 홱 고개를 돌린 괴인이 진태경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라, 방금 그쪽에서 이상한 바람이 불었던 것 같은데. 자네도 느꼈나?”
하지만 진태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는 것이 옳았다.
시스템이라는 이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이래, 처음 보는 괴상한 현상을 뚫어져라 응시하기에 바빴으니까.
[Lv.119 ???]물음표 세 개.
그것이 전부였다.
옷소매로 눈가를 문지르고, 여러 차례 힘주어 깜빡여 보아도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물음표만이 존재했다.
‘……이랬던 적이 있었나?’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졌지만, 진태경은 이미 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다.
없었다.
단연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레벨이 물음표로 표시된 적은 수두룩했어도, 이름만큼은 아니었다.
정체를 숨기기 위한 가명(假名)이든, 태어날 때 누군가 지어준 실명이든 사람이라면 각각 저마다의 이름이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눈앞의 대인은, 저 괴인은 아니었다.
그리고 더없이 생소하면서도 당황스러운 지금의 이 상황이, 진태경으로 하여금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도대체 뭐야, 당신?”
상당한 당혹스러움과 일말의 의심을 담아 불쑥 던진 그 짧은 물음에, 주위의 모든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대인을 바라보았다.
앞서 진태경의 어조는 사뭇 무례하게 느껴질 정도였지만, 대인에게 큰 도움을 받은 현천진인과 공동파 제자들마저 그 사실을 지적하는 것을 잊었다.
그저 며칠 밤낮을 함께 하면서도 누구 한 명 듣지 못했던, 저 괴이한 은인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알고 싶을 뿐이었다.
더불어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화왕과 궁성을 비롯한 화룡각 대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십여 년간 녕하성의 촌구석에 처박혀 있던 초절정 고수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으니까.
그리고 찰나에 집중된 그 수많은 이목 앞에서, 대인은 아무렇지 않게 반문했다.
“응? 지금 내게 물어본 건가?”
“그래, 당신.”
“오, 그거 아주 좋은 질문이야.”
낮게 깔린 진태경의 대답에 땟국물이 흐르는 목덜미를 벅벅 긁은 대인이, 길게 늘어트린 머리카락 사이로 누런 이를 드러내며 해맑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통성명도 안 했군. 이참에 정식으로 인사하지. 나는…….”
어느새 쥐 죽은 듯이 고요해진 주위.
한껏 곤두세워진 수백 쌍의 이목이 천천히 달싹이는 대인의 입술을 향해 집중되었다.
“쿨럭. 이거, 먼지 때문에 목이 칼칼하구먼. 다시 하겠네. 나는…….”
헛기침과 함께 다시 느려지는 목소리에 사람들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과연 누구일 것인가.
아직 이름 석 자도 알려지지 않은 은거기인?
아니면 아주 오래전에 세간의 뇌리에서 잊힌 전대의 고수?
그도 아니라면…… 혹시 한때 마교에 몸담았다가 개과천선한 과거의 대마두?
이렇게 시시각각 크게 부풀어 오르는 수많은 추측과 함께, 대인은 진중해진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어. 그러니까, 나는…….”
“아니 이런 천하의 씨벌놈을 보았나!”
벌써 세 번째 반복된 ‘나는’에 반쯤 이성을 상실한 적천강이 눈을 까뒤집으며 앞으로 나서려던 그 순간이었다.
입술을 움찔거리며 같은 말만 반복하던 대인이,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탄성을 토해낸 것은.
“맞소. 바로 그거인 것 같소!”
“제아무리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다 해도 어찌 이런 개 같은 짓거리를…… 뭐라?”
걸음을 내딛다 말고 주춤한 적천강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반문한 그때, 대인이 박수까지 쳐 가며 재차 외쳤다.
“조금 전에 당신이 했던 말, 그게 맞는 것 같단 말이오! 미친놈, 그게 바로 내 이름인 것 같소!”
“……?”
“……?”
그와 동시에, 숨 막히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그들은 넋 나간 눈빛으로 대인을 바라보다가 이내 서로를 응시했다.
들리지 않는 무언(無言)을 눈빛으로 주고받으며.
‘도대체 뭔.’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미친놈? 그게 사람 이름이라고?’
‘아니, 지금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하지만 아무리 눈빛을 주고받아도 눈앞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고, 적천강은 기나긴 일생을 통틀어 몇 번 느끼지 못한 극심한 당혹스러움에 사로잡힌 채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 ‘극심한 당혹스러움’을 이미 몇 번에 걸쳐 느끼게 해 주었던, 자신의 하나뿐인 제자를 향해서.
“그러니까 지금…… 저 염병할 놈이 뭐라고 헛소리를 지껄인 게냐?”
하지만 스승과 마찬가지로, 제자 역시 현재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Lv.119 미친놈]“…….”
진태경은 대인의 머리 위에서 변화한 홀로그램 창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뭐지, 진짜.’
일단 바뀌었다. 확실히 바뀌긴 했다.
그런데. 그렇긴 한데…….
‘그래서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데.’
이걸 제대로 바뀌었다고 할 수가 있나. 아니, 어쩌면 이제는 시스템이 오류가 난 게 아닐까.
수많은 생각과 회한이 유성우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가던 바로 그때, 잠시 잊고 있던 한 사람이 진태경의 곁에서 입을 열었다.
“에효, 좀 나아지셨나 싶더니 또 이러시네.”
숨 막히는 침묵을 깨트린 그 음성을 따라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흉악한 생김새를 한 전직 마적단 출신의 중년인이 움찔하며 입을 열었다.
“어, 다들 신경 쓰지 마십쇼. 그냥 평상시 모습이니까.”
“평상시 모습이라고?”
진태경의 물음에 녕하성에서 활동했던 전직 마적단이자, 현 백마방의 단주이며, 백마칠종의 맏형인 마중걸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소만. 일전에도 한 번 얘기한 적 있지 않았소?”
진태경은 그제야 얼핏 떠올릴 수 있었다.
대인을 두고 정상은 아니라고 했던 마중걸의 이야기를.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게 뭔…….”
“한 몇 달 전쯤인가, 대인께서 머무시는 거처로 찾아갔을 때는 저 양반 이름이 뭐였는지 아시오?”
“뭔데.”
“점순이.”
“……!”
“갈 때마다 이름이 바뀝디다. 개똥이, 소똥이였던 적도 있소.”
진태경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던 그때, 대인이 돌연 크게 헛숨을 들이키며 외쳤다.
“헉, 개똥이! 그래! 개똥이였던 것 같소! 이번에는 확실해! 아마도!”
띠링.
[Lv.119 개똥이]그 순간, 진태경은 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