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447
#446화
띠링.
–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익숙한 시스템 알림.
그리고 뒤이어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는 반투명한 홀로그램 창이 허공에 떠올랐다.
퀘스트
[또 다른 혼란]평화롭던 호북성에 불길함이 감돌고 있습니다.
맑은 장강의 강물은 피로 붉게 물들었고, 위세를 떨치던 해사방은 숱한 죽음과 함께 무너졌으며, 장강수로맹을 지탄한 동정어옹은 실종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이 일의 전말을 밝히고 흉수를 찾는다면 혼란은 가라앉을 것입니다.
등급 : 절정
제한 : 진태경
임무 : 사건의 전말을 밝히기 (미완료)
보상 : ???
실패 : 호북성의 혼란 가중과 잇따른 추가 사건 발생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 / N
퀘스트라…….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입을 굳게 다문 무송, 그런 그를 서늘한 미소를 띤 채 응시하는 와룡객 제갈풍.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는 적천강과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문경.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사태를 담담하게 주시하는 진위경까지.
‘역시, 알고 있었구나.’
제갈풍이 한 말에 의하면, 해사방주와 일천의 방도들이 적벽의 강물에 뼈를 묻은 것이 보름 전이라고 했다. 진위경은 사천으로 향하던 도중에 그에 관한 소식을 들었음이 틀림없다.
‘돌아가는 행선지에 호북을 넣었다는 건 하남의 수뇌부에서도 허락했다는 뜻이고.’
소림과 사천에서 벌어진 혈사로 인해 암천의 존재가 만천하에 퍼져 나가고 있는 지금.
이와 같은 상황에서 현재 호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다.
암천의 계략이라면 반드시 막아야 하고, 암천이 불러온 혼란을 틈타 장강수로맹이 벌인 흉계라면 일벌백계(一罰百戒)로 다스려야 한다.
지금 진위경은 태원진가의 소가주이자 가주 대행이 아니라, 곧 결성될 신(新) 무림맹의 감찰관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나 역시 진위경과 뜻을 함께해야 한다는 거지.’
어차피 패널티도 없는 퀘스트다. 승낙 여부를 물어 봤자 이미 한배를 탄 입장인 내게는 물어보나 마나지.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예스.’
띠링.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 퀘스트, [또 다른 혼란]이 퀘스트 창에 등록됩니다! 상황에 따라 퀘스트 정보는 갱신될 수 있습니다.
글쎄, 여기서 더 갱신될 것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미 제갈풍의 말이나 제갈세가로 오면서 느낀 분위기를 봤을 때, 호북성 전체가 이미 장강수로맹을 흉수로 낙인찍고 손가락질하는 것이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장강수로맹이 흉수라는 거, 확실한 겁니까?”
적어도 아직까지는 속단할 수 없다는 게 개인적인 판단이다.
그리고 무거운 침묵을 깬 내 한마디에, 와룡객 제갈풍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열화신룡 진태경. 자네는 이 일에 관해 묻고 싶은 것이 많은 것 같은데.”
“없진 않죠.”
“말해 보게. 서로의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선에서.”
“우선 증거가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증거?”
“예. 정황만 있잖습니까. 최소한 적벽에서 그 일이 있던 날 밤, 장강수로맹이 해사방을 공격하는 광경을 본 목격자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목격자라, 그리고 또?”
“장강수로맹을 공개적으로 지탄했다는 동정어옹의 행방 역시 밝혀지지 않았고요.”
“계속해 보게.”
나는 적천강을 곁눈질하며 말을 이었다.
“제가 예전에 노, 아니 스승님께 들은 바에 의하면 동정어옹은 정사 어디에서 속하지 않은 초절정 고수라고 알고 있습니다.”
“정확히 알고 있군. 동정어옹께서는 일평생 동정호(洞庭湖) 인근에 머무르시며 각계의 명사들과 교분을 쌓으셨지.”
동정어옹은 기인이사(奇人異士)가 많은 무림에서도 유독 잘 알려진 인물이다.
정사 어디에도 몸담지 않은 채 일평생 동정호 인근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도 특이하지만, 항상 지니고 다니는 한 자루의 낚싯대로 펼치는 고강한 무공은 무림에서도 유명했다.
“그런 초절정 고수인 동정어옹이 아무도 모르게 실종되었다는 게, 저로서는 잘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어떤 점이 그러한가?”
“만약 동정어옹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죽었다면 그건 상대방 역시 비등하거나 그 이상의 고수라는 이야긴데……. 초절정 고수끼리 한판 제대로 붙으면 아주 난리가 납니다. 모를 수가 없어요.”
“말 한번 시원하게 하는군. 계속해 보게.”
“그리고 이건, 어, 무송 선배한테 실례가 되는 이야기긴 한데.”
내가 나섬으로써 약간의 평정을 되찾은 무송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게. 난 괜찮으니.”
“정말요?”
“물론.”
“그러시다면야, 뭐.”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장강수로맹에 그 정도 고수가 있습니까? 제가 경험해 본 바로는 영 아닌 것 같던데.”
“……!”
“……!”
아니, 괜찮다며. 말해 보라며.
조금 전과는 달리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 무송의 표정에 나는 슬며시 말을 고쳤다.
“아, 물론 호북에 한해서 하는 말입니다. 저 해상왕 대협 존경합니다. 드라마도 재밌게 봤, 아니 아무튼 굉장히 좋아해요.”
“…….”
“사실 어릴 적 제 꿈이 수적이었습니다. 위대한 항로! 위대한 장강!”
“…….”
그래, 내가 잘못했다.
어떻게 보면 도와주고 있는 입장인데도 죄책감이 드는 건 왜일까.
나를 위기에서 구해 준 것은 제갈풍의 한마디였다.
“있네. 그 정도의 고수가.”
“예? 있어요? 거짓말 아니고 진짜로?”
“…….”
다시 시무룩해지는 무송을 뒤로한 제갈풍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장강일도(長江一刀) 황충.”
“장강일도. 장강일도…….”
별호는 어디서 들어 본 것 같기도 한데, 이름은 낯설다. 삼국지의 그 황충은 아닐 거 아냐.
‘처음 호북에 도착했을 때 무송이 말했던 그 황 숙부라는 사람인 것 같긴 한데.’
내가 처음 듣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던 그때, 적천강이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끼어들었다.
“장강일도? 해상왕의 의형제라는 그놈?”
“예. 아마 노선배님께서도 알고 계실 겁니다.”
“정마대전 중에 한번 스치듯이 봤지. 수적치고는 차분하고 똘똘한 놈이었어. 젊은 놈이 성격도 그렇고 무재도 제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기어코 벽을 넘은 모양이군.”
“그가 해상왕을 돕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장강수로맹도 없었을 겁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옆에서 잡아 주는 사람이 없으면 해상왕, 그 성격 더러운 놈이 어떻게 장강에서 왕 노릇을 해?”
이야, 이 정도면 면전에 대고 침 뱉는 수준이다.
바로 코앞에서 스승의 욕을 들은 무송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적천강은 눈을 부릅뜨는 것으로 간단히 진압해 버렸다.
그 틈을 노린 내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럼 그 장강일도가 동정어옹을 제거했다는 겁니까?”
잠시 고민하던 제갈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아마도?”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네. 확신은 없고 심증과 정황만이 있는 상황이지. 하지만 동정어옹께서 실종되기 전, 마지막으로 향한 장소가 어딘지에 대해서는 증언할 수 있는 목격자들이 많다네.”
“그 장소가 어딥니까?”
제갈풍이 무송을 응시하며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동정채. 앞서 언급한 장강일도 황충 대협이 채주로 있는 동정채의 본거지로 향하셨지. 그리고 두 번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네.”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무송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부르짖었다.
“황 숙부께서는 그러실 분이 아니오!”
그 역시 해상왕의 절기를 이어받은 제자 중 한 사람.
절정의 끝자락에 걸친 무송이 뿜어내는 기파에 가라앉아 있던 먼지가 일어난다.
소매로 입가를 가린 채 잔기침을 내뱉은 제갈풍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어째서 그런가?”
“가주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황 숙부는 정마대전 당시에도 스승님을 설득하여 정파의 손을 들어 주셨고, 본 맹에서도 온건파에 속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분이 해사방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고 동정어옹을 제거하시다니, 이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공허하고 무의미한 말이로군. 주어진 상황과 사람은 매번 바뀌며, 나와 같은 지자(智者)는 일의 정황으로 결과를 유추해 내는 것이지.”
무송의 분노가 무색할 만큼 제갈풍은 침착했다.
“단언컨대, 나는 장강수로맹이 이번 일의 흉수라고 확신하지 않네. 하지만 모든 정황이 귀 맹을 가리키고 있어.”
“어째서입니까? 오랜 세월 대립하던 해사방이 사라지니 본 맹의 형제들이 그 빈자리를 차지해서? 아니면 동정어옹이 단순히 황 숙부를 찾아가는 길에 실종되어서?”
“둘 다일세.”
“본 맹의 형제들에게 물어보기나 하셨습니까?”
“아직.”
“그런데 왜……!”
무송이 고함을 내지르려던 그 순간, 제갈풍의 조용한 목소리가 나를 포함한 모두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장강수로맹의 누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 누구에게 물을 수 있단 말인가?”
“……!”
“……!”
“달포라는 시간이 흘렀네. 자네는 본가가, 무당파가, 그리고 관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애꿎은 장강수로맹을 의심하는 것이라 생각한 것인가?”
방 안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사람들은 말없이 제갈풍과 무송을 응시했다.
석상처럼 굳어 버린 무송과 달리, 제갈풍의 말은 매끄럽게 이어졌다.
“적벽에서의 그날로부터 이틀 뒤, 발 빠르게 해사방의 영역을 장악했던 당양채와 홍호채가 자취를 감췄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렇다면 동정채는.”
“누군가 내게 그런 말을 하더군. 동정채는 강물 위에 세워진 천혜의 요새라고. 직접 시도해 보니 그 말이 맞았네. 해사방의 핵심 수부들마저 모조리 수장된 지금, 우리로서는 천령폭(天靈瀑)의 물길을 넘어 동정채로 진입할 수 없었지.”
신비롭고 위대한 자연은 때때로 인간의 침입을 불허한다.
제갈풍이 말한 천령폭은 극소수의 뱃사람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동정채로 가는 통로임이 분명했다.
장강수로맹, 해사방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을 지닌 수부이거나 혹은 호북의 장강에서 일평생을 살아온……. 동정어옹도 그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동정어옹은 고인이 된 해사방주와 막역한 사이였네. 친우의 죽음에 격분하며 공개적으로 귀 맹을 지탄했고, 배를 띄워 천령폭을 넘었지. 지난 달포 동안 우리가 수십 척의 선박을 수장시킨 바로 그 천령폭 말일세.”
돌연 자리를 털고 일어난 제갈풍이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무너진 책장을 보며 작게 혀를 찬 그가 높이 쌓인 책 무더기 사이를 뒤지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거 알고 있나? 비록 천령폭을 넘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수십 척의 선박을 공물로 받은 장강이 선심 쓰듯 선물 하나를 던져 주더군.”
드륵, 쿵!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던 책 무더기가 와르르 무너지며 먼지가 일었다.
희뿌연 먼지를 뒤집어쓴 제갈풍이 관을 고쳐 쓰며 허리를 폈다.
그런 그의 손에는 거무튀튀한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저건…….”
“자네의 짐작이 맞네, 후개.”
궁기방의 중얼거림에, 제갈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죽조간. 천하 무림에 오직 단 하나뿐인 동정어옹의 독문병기지.”
“……!”
“자, 그럼. 선화아 무송.”
제갈풍은 부러진 흑죽조간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눈을 부릅뜬 무송을 향해 찌를 듯이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앞장서서 안내해 주게, 천령폭 너머의 동정채로.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