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s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92
392화
천영봉을 벗어나, 무당산에 올랐다.
태극군자가 무당파 장문인과 했었던 약속.
무당검선에게 데려온 손님, 천휘를 소개하겠다는 말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태극군자가 앞서서, 안내하며 달려갔다.
제운종을 펼치는 그의 움직임은 평소와 다르게 거칠고, 날카로웠다.
심란한 마음이 묻어난 탓이리라.
태극군자가 힐끗 뒤를 돌아봤다.
안개에 휩싸인 천영봉을 보는 그의 눈이 일렁거리며, 잔잔히 요동쳤다.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았다지만, 검선에게서 직접 들은 진실에 대한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
그가 다시금 마음 정리를 위해 주먹을 말아 쥘 무렵.
“검선과는 길을 달리하게 되었어.”
옆에서 굳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리추풍신법(萬里追風身法)을 펼치며 바짝 다가온 천이개의 목소리였다.
태극군자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면서, 고개를 위아래로 주억였다.
검선과의 관계는 이제 틀어진 상태.
아니, 실은 이미 전부터 틀어져 있었다.
그 목적이 자신들과는 아예 처음부터 다르지 않았던가.
태극군자는 천영봉을 향하고 있던 시선을 거둔 뒤, 차가운 목소리를 흘렸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백님께서 구천회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거두어들이진 않으셨다는 거지.”
“그건 다행인 일이네.”
천이개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구천회의 전력은 파악이 불가했다.
그들이 얼마나 강한 고수들을 보유했는지, 그 숫자가 대체 몇 명인지.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구주삼패세와 동급 혹은 그 이상.
해서, 구천회를 상대하게 된다면 무당검선은 필수 불가결한 전력이었다.
그렇기에 무당검선이 구천회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은 이상 아직은 괜찮았다.
“그리고 구천회 또한 팔무신을 노리니…….”
“언젠가는 부딪치겠지.”
그 말을 끝으로 둘은 동시에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되도록 구주삼패세는 유지되고, 구천회만 무너졌으면 하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러지 못할 듯 보였다.
이대로라면 구주삼패세의 시대는 끝이 날 것이고, 결국 구천회가 모습을 드러내리라.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구천회가 팔무신을 노린 이상.
한편.
슥―
앞서가는 태극군자와 천이개의 대화를 한 귀로 흘리며 느긋하게 따라가던 천휘는 무심하게 무당산을 올려다봤다.
한참 황혼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어스름한 노을빛이 내리깔리며, 무당산을 포옹하듯이 감싸 안았다.
완만한 산세, 고즈넉한 산길.
풀로 감싸진 오솔길을 걷고 있으니, 짙은 풀 내음이 코를 간질였다.
같은 도가라지만, 높고 험악한 산세인 화산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흠, 영산은 영산이네.’
천휘는 간단한 감상과 함께 가만히 주변을 살폈다.
붉은 벽에 청록색 지붕을 얹은 도관들이 푸르른 초목들과 조화(調和)를 이루면서, 절경을 선보이고 있었다.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이 조화로운 무당산의 풍경을 구경하며 걸음을 옮기던 중.
탓.
선두에 가던 둘이 멈춰 섰다.
천휘 또한 발걸음을 멈춘 뒤 앞을 주시했다.
고풍스러운 현판이 보였다.
‘독특하네.’
붉은색의 현판은 양쪽에 있는 소나무의 튼실한 나뭇가지에 끈으로 묶여서, 허공에 매달린 채 떠 있었다.
얼핏 보기엔 그냥 나무에 묶은 뒤, 방치해 둔 것만 같은 모습이었으나.
그것이야말로 무당의 가르침,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모습이었다.
천휘는 현판의 글귀를 바라봤다.
오래된 현판에는 영성이 스며든 글귀가 아름답게 적혀져 있었다.
절로 시선을 빼앗는 서체였다.
‘해검지(解劍地).’
천휘는 이 명칭이 뜻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아니, 무당파를 아는 자라면 누구라도 알 수밖에 없는 명칭이었다.
그때였다.
휘이이―
옅은 바람이 살짝 불어와 뺨을 간질였고, 천휘의 고개가 돌아갔다.
십수 명의 도사들이 나타났다.
백색의 도복을 입은 그들은 하나같이 고매한 기운을 풍겼다.
“본 파에 방문한 것을 환영하외다.”
중앙에 있던 노도인이 다가오며 말했다.
현 무당파의 원로, 목현진인이다.
그는 태극군자를 보더니 곧장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목진 사형.”
태극군자는 목현진인을 지긋한 눈길로 쳐다보더니, 이내 미소를 머금었다.
걱정이 묻어나는 따스한 미소였다.
“건강해 보이니 다행이구나.”
“사형께서도 건강해 보이시니, 다행입니다.”
태극군자와 인사를 나눈 목현진인은 바로 옆의 천이개를 바라봤다.
“본 파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천이개 대협.”
“큼, 크흠. 오랜만에 보는구먼.”
목현진인의 정중한 인사에 천이개는 멋쩍은 얼굴로 헛기침을 뱉었다.
그에 슬쩍 웃어 보인 목현진인이 고개를 들어 이번엔 그 시선을 천휘 쪽으로 향했다.
“처음 뵙겠소이다. 빈도는 목현이라 하오.”
여전히 양손을 모으고 있는 그의 모습은, 어린 아해에게 노도인이 보이는 예의라기엔 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나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장문인에게 미리 전해 듣지 않았는가.
무당검선과 검을 나눈 절대자.
거기다가 동행하는 자는 작금의 강호에서 배분으로는 최고(最古)라 해도 무방한 태극군자와 천이개였다.
겉모습만으로 그 나이를 유추하는 것은 멍청한 짓거리였다.
이내 그가 고개를 들어 말했다.
“장문인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있소이다. 하나, 안내하기 전에…….”
목현진인이 슬쩍 뒤를 돌아봤다.
“제자는 이리로 오거라.”
부름에 목현진인의 뒤편에 서 있던 청년 도사가 바짝 긴장한 듯한 얼굴로 천휘의 앞까지 빠르게 걸어왔다.
긴장한 것과 달리 흔들림 없는 걸음은 그 보법과 기본이 뛰어남을 방증했다.
송현칠검(松峴漆劍) 공우(崆雨).
목현진인의 제자이며, 옥기린을 제외하면 무당파의 후기지수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는 도사였다.
직후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곳은 해검지입니다. 들어서기 전에 소인께 검을 맡겨 주십시오.”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무당파에 들어가기 전 병장기를 맡기며, 살(殺)을 해(解)하는 곳.
해서, 그는 정중하게 요청했다.
천휘는 굳은살이 박인 공우의 양손을 응시하다가, 허리춤에 있는 두 자루의 검을 풀어서 그 위에 올려놓았다.
“제 목숨을 바쳐서 지키겠습니다.”
공우가 눈을 빛내며, 단언했다.
검수에게 검이란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상대가 검을 믿고 맡겼으니 그에 맞는 예의를 보여야 마땅했다.
태극군자는 순순히 검을 맡기는 천휘를 보며 안도의 미소를 머금었다.
반면 천이개는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저놈이 이리 쉽게 검을 맡긴다고?’
의아한 일이었다.
그가 아는 천휘는 독불장군이었다.
그렇기에 해검지라고 할지라도 검을 맡길 바에야 장문인을 부르라며, 움직이지 않고 버틸 줄 알았다.
그가 아는 천휘는 그러고도 남을 놈이니.
그런데 예상외로 순순히 넘겼으니 어찌 놀라지 않으랴.
그때 천휘가 툭 던지듯이 말했다.
“당연히 그래야죠.”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불만이 음성에 묻어나는 어투였다.
생각하면, 참으로 웃긴 일이지 않은가.
객에게는 검을 맡기라고 하면서 그러는 자신들은 검을 차고 있으니.
평소라면 건네주기는커녕, 뭔 개소리냐고 난리를 쳤을 일이었다.
하지만 천휘는 그러한 불만을 삼켰다.
지금은 불만을 터트리는 것보다 무당에 머물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사흘 뒤 무당검선과의 결전.
그것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불쾌함은 넘어갈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원한다면 언제든 검을 다시 가져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따라오시오.”
목현진인이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고, 그를 따라 걸으며 수십의 도관들을 지나쳐 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황혼이 저물고, 밤이 찾아왔다.
곳곳의 도관에서 희미한 등불이 켜지며, 어둠을 밝혀 낼 무렵이었다.
목현진인이 발걸음을 멈췄다.
고적한 전각의 앞에서였다.
“이곳에 들어가시면 되오.”
천휘는 고개를 들어, 현판을 봤다.
안에서 비추는 희미한 등불에 의해 보이는 현판 속 글씨는 유려했다.
[금전(金殿)]천휘가 그 글을 읽는 사이.
“들어오시지요.”
안에서 향이 피어난 것만 같은 은은하고도, 고적한 음성이 들려왔다.
태극군자와 천이개는 서로를 쳐다보다가, 곧장 발걸음을 움직였다.
둘이 지체 없이 문을 열어젖힌 다음, 그 안으로 들어가고.
천휘가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이건 화산파랑 다를 게 없네.’
들어선 천휘는 간소한 전각의 내부를 훑으며 짧게 감상평을 내렸다.
무당파의 장문인이 머무는 거처라고 하기엔 의외로 낡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끝.
낡은 탁자에 앞서 보았던 무당파의 장문인, 목엽진인이 앉아 있었다.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약속은 지키셨군요.”
“장문인과의 약속을 안 지키겠나.”
목엽진인은 태극군자와 짧게 이야기를 나눈 뒤, 천이개를 응시했다.
“오랜만입니다. 천이개 대협.”
“오랜만이네.”
인사하는 셋을 보던 천휘가 성큼성큼 걸어가서는 유일하게 공석인 의자에 털썩 앉은 순간.
“그리고 이렇게 만나 반갑구려.”
목엽진인이 말을 건네왔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천휘를 훑던 그가 빙그레 웃더니, 곧이어서 나직한 말을 내뱉었다.
“천휘 도우.”
그 말에 태극군자와 천이개가 짐짓 놀란 얼굴로 목엽진인을 바라볼 때.
“그 반응을 보니, 맞나 보군요.”
목엽진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 말에 태극군자와 천이개가 실수를 깨닫고 아차 하며, 미간을 좁혔다.
한편 천휘는 무덤덤했다.
알든, 말든 뭔 상관인가.
오히려 아는 게 길게 말할 필요가 없어 마음이 편했다.
“흠, 잘 아네요.”
“두 자루의 검을 지녔으며, 그러한 기백을 지닌 청년 고수가 천하에 어디 둘이겠는가.”
그 말대로 작금의 강호에서 천휘의 인상착의는 파다하게 알려진 상태.
더욱이 무당검선과의 결전에서 보인 기백은 압도적이라, 모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할 수 있었다.
“과연 소문대로 놀라운 무위더군.”
목엽진인이 감탄하기를 잠시.
“한데 왜 그런 짓을 하였는가?”
바로 추궁하는 말을 내뱉었다.
부른 목적 중 하나였다.
천영봉은 무당파의 권역이며, 성역.
그런데 지금 수십, 아니. 수백 년 동안 흔들림이 없던 무당산을 뒤흔든 것으로 모자라, 천영봉이 반파될 만큼 무력을 사용한 것이다.
죄를 물어도 무방한 일이었다.
순간 목엽진인이 흘리는 공력이 향의 연기처럼 은은히 퍼져 나갔다.
그 기세가 조용히 주변을 잠식해 갈 무렵.
“먼저 도발하던데요?”
육합전성이 공력을 파훼했다.
천휘는 음성에 공력을 실어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가만히 목엽진인을 주시했다.
“……그렇군.”
목엽진인이 고개를 주억였다.
반박이나 의심은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던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직후 그는 천휘에게서 고개를 돌리더니, 태극군자를 보며 말했다.
“사형은 사백님께 소개하기 위해서 매화신협을 데려왔다고 하였지요.”
“…….”
침묵한 채 고개를 끄덕이는 태극군자를 보던 목엽진인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하면, ‘회’라는 곳과 관계된 일로 다시 돌아오신 겁니까?”
“네가 어떻게 그걸!”
“무슨……!”
순간 소스라치게 놀란 태극군자가 눈을 부릅뜨며 목엽진인을 바라봤고, 천이개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놀라는 둘을 무덤덤하게 바라본 목엽진인은 태연한 표정으로 끓인 찻물을 찻잔에 따르며, 답하듯 말했다.
“사형께서 무슨 일 때문에 그리 움직이시는지, 그것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 * *
희미한 등불이 일렁거리는 방 안.
의자에 앉은 한 인영이 탁자 위에 놓인 접힌 종이를 펼쳐서 읽었다.
一. 개방주, 돌연 잠적.
二. 사흑련주가 사황과 접촉.
三. 하오문주와 무영문주 접촉 확인. 무영신투의 비동 열린 흔적 발견. 흉수는 이전에 비동에 숨겨져 있던 진법을 찾아낸 자로 추정 중.
四. 패군, 여전히 반 은거 중.
五. 암제의 제자, 행방 묘연. 매화신협을 제거하려다 오히려 당한 것으로 추정 중.
六. 천마신교, 움직임 포착.
“…….”
조용히 글을 읽던 이는 눈을 찌푸리더니, 곧 옆에 둔 종이를 끌어당겼다.
아무것도 안 적힌 새하얀 종이였다.
그것을 노려보던 이는 묵이 묻어 난 붓을 들더니, 곧장 글을 적어 갔다.
스윽― 스윽―
묵향이 물씬 피어오름과 함께 종이에는 한 획, 한 획, 유려한 글씨가 적히며 문장 세 개가 완성되었다.
一. 매화신협. 태극군자, 천이개와 함께 무당파에 도착.
二. 무당검선 출(出). 매화신협과 충돌. 그 여파는 지금으로서는 파악 불가능한 영역. 추후 확인 예정.
三. 태극검제, 태극혜검 복원을 직전에 둔 상태.